창작 완결방입니다. 누구나 글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83   5/  6   0
Category (83)  공지 (1)  단편 (48)  장편 (3)  축설 (10)  행사 (21) 
kuroasa
나는 숨쉬고 있다




            나는 숨쉬고 있다
    
                                                         by kuroasa
                                                         otakusun@hotmail.com
    





        
         그가 떠났다.
         .
         .
         .
         .
         .
         .
         .
         .
         .
         .
         .
        
        
        
        
        
         이른 봄을 재촉하는 차가운 비를 피해 들어선 작은 찻집.
         그 곳에서 나는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 따뜻한 모카쵸코를 마시며
         밖이 내다보이는 유리너머로 거리를 내다보았다.
         우산을 받치고 지나가던 그와 나는 한순간,
         그 찰나의 순간에 눈이 마주쳤다.
        
         흐릿한 유리를 통해 바라본 그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수려해보였다.
         비가 내리는 와중에서도 그의 눈은
         나의 눈을 향하고 있었다.  
         유리를 타고 떨어지는 빗방울에 상관없이
         나의 감정은 촉촉히 물들기 시작했다.
         적정체온을 유지하는 나의 심장은
         메말라 있던 건조함을 물리치고
         서서히 습기를 품게 되었다.
        
         아무 말도 없이 내가 앉은 테이블의 맞은 편에 앉아서
         그는 포트의 다즐링을 주문했다.
         차가 우러났을 무렵, 그는 크고 깔끔한 손으로
         우아한 찻잔에 차를 따랐다.
         향긋한 향기가 묻어나는 수증기를 눈으로 쫓다가
         그의 시선은 나를 잡아내었다.
         공기중으로 사라지는 수증기를 무시하며
         그는 내가 현실속에 자리잡고 있는
         존재로서 나를 붙잡았다.
        
        
         그렇게 우리의 만남이 시작되고
         우리의 사랑도 시작되었다.
        
        
         노랗게 핀 개나리가 거리의 색을 바꾸기 시작했고,
         그는 짙은 회색의 외투를 벗은 산뜻한 모습으로
         나와 어울려주었다.
         나는 여전히 짙은 색의 두꺼운 외투를 입고서…
         햇살은 따뜻해지고 있었지만,
         가끔가다 심술을 부리는 차가운 바람은
         나를 떨게 만들었으니까…
        
         옆구리에 파고 드는 한기를 물리치기 위해
         나는 그의 옆구리에 팔을 끼고 거리를 걸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상한 시선으로
         나와 그를 흘끔흘끔 쳐다보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꼈지만,  
         모두가 그와 나를 부러워한다고 생각하고
         속으로 뿌듯함이 차올랐다.
        
         벗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밤,
         그와 나는 벗꽃이 난무하는 거리를 걷고
         검게 칠해진 장막의 한 귀퉁이에서
         처음으로 입맞춤을 나누었다.
         입술을 가르고 들어오는 그의 혀가 달콤해서
         그의 옷자락에 매달려, 그의 체취에 흠뻑 취했었다.
         가늘게 떠는 내 어깨를 껴안고
         그는 따뜻한 온기를 나누어주었다.
        
         소담스러워 보이는 장미가 봄비를 맞아 영롱한 색으로 반짝이고,
         진한 노란색으로 피어있는 장미가 영롱함을 발할 무렵에서야
         나는 무겁게 내 몸에 걸쳐져 있던 두터운 외투를 벗을 수가 있었다.
         그 때가 되어서야 나는 봄이 내 곁에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결 가벼워진 나는 상큼한 꽃향내처럼
         그의 곁을 맴돌고 있었다.
         그런 나를 그는 어린아이같다며 눈웃음지으며 놀려대곤 했었다.
         그가 웃을 때마다 부끄러워지기도 했지만,
         그가 나로 인해 웃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봄의 전령사처럼 활기에 가득차 있었다.
        
         나는 그렇게 숨을 쉬고 있었다.
        
        
         지상으로 향하는 볕이 대지를 달구기 시작하고,
         장미들이 그 뜨거움을 견딜 수 없다는 듯 서서히 시들기 시작했을 무렵,
         나는 그의 무릎을 베고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에서
         다정한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른함에 빠지곤 했었다.
         그는, 그와 만난 이후로 한번도 자르지 않은 내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녹아버릴 듯한 달콤한 언어들을 내 귓가에 흘리고
         나를 좋아한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막 피기시작한 붉은 색의 칸나마냥
         양빰에 홍조를 띠고 눈을 감고
         그의 부드러운 손길을 온몸으로 느꼈었다.
        
         내리쬐는 타는 듯한 태양빛을 피해 그와 나는
         시원한 바람을 몰고 오는 짙은 푸른색의 파도가 일렁이는
         바닷가로 여행을 갔었다.
         밤의 색을 담고 일렁이는 파도 앞에서
         그는 행여나 내가 파도에 휩쓸릴까봐
         내 손을 꼭 잡고, 서늘하게 느껴지는 공기를
         그의 체온으로 막아주었다.
         그가 나의 어깨를 감싸고 나는 그의 허리에 팔을 두르며
         함참을 걷다가 그와 나는 숙소로 돌아왔다.
        
         낮은 조명이 발하는 침대위에서
         그와 나는 사랑을 나누었다.
         그와 몸을 섞으며 아픔에 겨워 흘리는 내 눈물보다
         그가 흘리는 땀방울이 더욱 소중해서
         나는 입술을 깨물며 터져나오려는 아픔의 신음을 참아냈다.
         그렇게 그와 나의 사랑은 소중한 아픔을 딛고
         서로간의 격렬한 감정을 보듬어 안았다.
        
         하늘이 옅은 색으로 바뀌고 높아질무렵,
         나는 그의 자동차 옆좌석에 매력적인 여성과 함께
         어딘가로 달려가는 모습을 우연찮게,
         정말 우연찮게 볼 수 있었다.
         나는 제출하기 위한 보고서 작성차
         조사차 갔었던 서울 변두리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 길목을 내려와서 지하철 역으로 향하는 도중,
         낯익은 그의 옆모습을 차창 너머로 발견했다.
         그는 빨간 신호등에 차를 세우고 있었고,
         고개를 호탕하게 젖혀 상대방과의 대화가 즐겁다는 듯이 시원하게 웃고 있었다.
         곧이어 신호등이 바뀌고, 그는 나를 발견하지 못한 듯이
         시원스럽게 차의 기어를 바꾸고 차선에 뛰어들었다.
         보행신호가 들어왔지만, 그의 옆에 앉아있던 화사한 여성이 눈앞에 아른거려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그와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에
         나는 그를 피해다녀야만 했었다.
         그는 하루가 멀다하고 나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액정에 뜨는 그의 번호를 볼 때마다 번번히 전화기의 전원을 끊어버렸다.
         그가 행여나 나에게 이별을 고할까봐 차마 그와 통화를 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차가워진 공기를 견디지 못해 심한 감기로 앓아 누웠지만,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 그의 다정한 얼굴을 그리며
         나는 심하게 끓어오르는 열을 식히려 했었다.
         그렇게 혼자서 아파했던 날의 3번째 밤에 그는 나를 찾아왔다.
         시야에 들어오는 그의 모습을, 나는 너무 그리워한 나머지
         환영이 보이는 것이라고 나를 달래려고 했었다.
         열을 식히는 차가운 물수건이 이마에 닿았을 때에
         비로소 나는 그의 모습이 환영이 아님을 알았고,
         그는 열로 인해 괴로워하는 나의 손을 잡고
         나의 이름을 계속해서 불렀다.
         아픔에 겨워 흘리는 눈물을 닦아주며
         그는 나에게 아프지 말라며 더 아파했다.
        
         그렇게 나의 아픔은 손을 잡아준 그의 온기로 잊혀졌다.
        
        
         초록색의 나뭇잎이 알록달록하게 변하고
         그와 나는 두 번째의 여행길에 올랐다.
         붉게 물드는 단풍빛을 바라보며 나는
         그와 나의 사랑이 식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 두 번째의 여정의 두 번째의 밤,
         나는 그를 졸라서 사랑을 확인했다.
         나를 함락하며 깊게 파고드는 그를 느끼며
         나는 그의 체온을 놓지 않으려 매달리고, 또 매달렸다.
         그리고, 그 밤 노랗게 물든 은행잎은
         가만히 첫잎을 떨구기 시작했다.
        
        
         노랗게 퇴색해버린 은행잎이 거리에 수북히 쌓이고
         나는 다시금 두꺼운 외투를 꺼내입었다.
         그는 여전히 외투를 입지 않은 가벼운 복장이었지만,
         나는 밀려드는 이른 겨울의 한기를 참지 못해
         무거운 외투를 항상 걸쳐야만 했다.
         차가운 바람에 노출된 손이 시려워서
         그에게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그는 자신의 두 손을 바지주머니에 숨겼다.
         그의 그런 행동이 무척이나 섭섭했지만, 나는 그를 탓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추위를 잘타는 내 자신을 질타했다.
        
        
         거리위에는 생명을 다해서 말라버린 낙엽만이 뒹굴고,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차가운 비가 혹시라도 옷에 스밀까봐
         나는 두꺼운 외투자락을 꼭 여미며
         그와 내가 처음으로 만났던 그 장소에 도착했다.
         이미 도착해 있던 그를 발견하고
         나는 얼굴가득 웃음을 띄우며 그의 앞에 앉았다.
         그의 앞에는 식어버린 홍차가 놓여 있었고,
         나는 언제나처럼 달콤한 모카쵸코를 주문했다.
         그는 담배를 빼어물고, 깊게 들이마신 후,
         어지러히 흩어지는 탁한 연기를 내뿜었다.
        공기중으로 사라지는 연기를 눈으로 쫓으며
         나는 그것이 처음 만난 날의 수증기와 비슷하다며 뿌듯해했다.
         모카쵸코의 수증기가 더 이상 피어오르지 않고
         찻집의 출입문에 달린 종이 딸랑, 하고 울렸을 때
         나는 비어버린 내 앞자리를 발견했다.
        
        
         " …미안하다…. "
        
        
         그 한마디 말을 남기고 그는 내 앞에서 사라졌다….
        
        
        
         새로이 태어날 생명을 위해 내렸던 봄의 비는
         대지를 얼려버리는 겨울비로 바뀌었다.
        
         식도를 통해 흘러들어가는 차가운 모카쵸코는
         내 몸의 온기를 빼앗고, 그 씁쓸한 모카쵸코가 서러워서
         나는 뜨거운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내 심장의 습도수치가 것잡을 수 없이 높아져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모카쵸코는 더 이상 달콤하지 않았다.
        
         이미 기력을 다한 낙엽은
         냉기를 퍼붓는 빗물에 휩쓸려 떠내려갔다.
         세차게 하수구로 빨려들어가는 형체를 알 수 없는 낙엽들이
         그렇게 사라져갔다.
        
         대지를 적시는 듯한 기세로 내리는 겨울비는
         내일 아침이면 그 대지를
         차갑게 얼려버릴 것이다.
        
         내 몸을 순환하는 붉은 피는
         손 끝에 이르러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내가 내뱉는 숨은 입김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나의 심장은 서서히 온기를 잃고,
         드라이아이스처럼 건조해져가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숨을 쉬고 있었다.
        
                                                                                
         끝.                  
  



 
 23
  유유상종, 유혈낭자에 관한 고찰
kuroasa    2004/08/21   759 
 
  나는 숨쉬고 있다
kuroasa    2004/08/21   966 
 21
  실현불가능
atlantis    2004/08/21   748 
 20
  그녀는 그를 사랑했다
하리    2004/08/21   716 
 19
  49제 (하)
하리    2004/08/21   716 
 18
  49제 (상)
하리    2004/08/21   794 
 17
  그가 떠나는 날
지나가다    2004/08/21   918 
 16
  그 많던 시간은 누가 다 먹었을까
아르헨    2004/08/21   689 
 15
  백의의 천사 or 악마
몬토    2004/08/21   1563 
 14
  당신에게 키스하는 이유
ijen    2004/08/21   1254 
 13
  mensonge
ijen    2004/08/21   1140 
 12
  일반론 [1]
ijen    2004/08/21   1180 
 11
  2003년 atropos님 생일 : Happy Toghther (3월 10일 완결편) [1]
ijen    2004/08/21   1174 
 10
  2003년 atropos님 생일 : 3월 10일 일요일 오전 11시 맑음 (발신편)
ijen    2004/08/21   1237 
 9
  2002년 atropos님 생일 : 3월 10일 일요일 오전 11시 맑음 (수신편)
ijen    2004/08/21   1292 
 
 [1][2][3][4] 5 [6]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 Chan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