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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83)  공지 (1)  단편 (48)  장편 (3)  축설 (10)  행사 (21) 
지나가다
그가 떠나는 날



             그가 떠나는 날

    
                                              by 지나가다
                                              sson-_-v@hanmail.net
    





        
         토미는 느긋하게 앉아 그의 연인인 지원이 고양이와 놀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홍빛의 긴 손가락 끝을 물려줄 듯 하다가 빼내는 단순한 동작을
         몇번이고 반복하고 있는 지원과 그를 닮은 고양이는 무척이나 행복해 보인다.
         무심코 손을 뻗어 잦은 염색으로 결이 엉망이 되어버린 지원의 머리를 쓰다듬자
         고개를 돌려 소파에 앉은 토미를 바라보며 생긋 웃어준다. 고양이는 자신이
         따돌림을 받았다고 생각하는지, 불만스럽게 가르릉 거리며 토미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더니 다시 내밀어진 지원의 손끝을 잡기 위해 앞발을 놀려댄다.
        
         " 짐은 다 쌌어요? "
         " 응. 뭐 대강. 이 집에 내 물건은 얼마 없었으니까. "
         " 내일 비행기는 몇 시에요? "
         " 11시까지만 나가면 되. 마중나와 줄꺼지? "  
         " 물론. 같이 가는 사람은 없다고 했죠? "
         " 어. 아마 마중나올 사람은 몇 명쯤 될꺼야. 물론 너도 아는 사람들이겠지만. "
         " 흐응. "
        
         불만스럽다는 콧소리를 내며 지원은 고양이를 내려놓고 일어선다. 호리호리한
         팔다리를 뻗어 기지개를 켜고, 전등 스위치를 눌러 어둑해진 거실을 밝히고  
         주방으로 들어갈 기세를 보인다.
        
         " 저녁은 뭘로 할까요? "
         " 뭐든 좋지만. 솔직히 별로 생각이 없는데? "
         " 내일 아침 챙겨먹을 수 없을 것 같은데 든든히 먹어둬야죠. "
         " 점심 먹은지도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말야. "
         " 그래도 먹어야 해요.
           이런. 집에 먹을게 하나도 없네. 며칠 정신이 없었더니…. "
         " 거봐. 그러지 말고 술이나 한 잔 하자. "
         " 마실 것도 없어요. 아무래도 나갔다 와야겠어. 진짜 먹고 싶은 거 없어요? "
         " 너가 만들어주는 건 뭐든지 좋아. 다만… "
         " 다만 그 '된장'이 들어간 음식 빼고 말이죠? 그게 몸에 얼마나 좋은 건데. "
         " 마미 저는 콩이 싫다구요. 같이 나갈까? "
         " 아니 괜찮아요. 오늘 하루종일 힘들었잖아. "
        
         가벼운 윈드브레이커를 걸치고 지갑을 확인하는 지원의 모습, 퉁퉁부은 표정을
         연기하며 쿠션을 껴안고 돌아앉은 자신을 달래는 가벼운 키스를 해주며 웃는
         지원의 모습, 소파에서 몸만 삐죽히 내민 자신을 향해 현관 신발장에 놓여있던
         키를 흔들며 현관문을 나서는 모습을 토미는 가슴에 세기듯 바라보았다.
         현관에 놓인 열쇠를 가지고 나간다는 건 그들에게는 돌아오겠다는 약속과도
         다르지 않다. 처음 지원을 위해 이 조그만 아파트를 마련해 주었을 때, 스페어
         키를 달라던 자신에게 지원은 초인종을 사용하라고 했다. 언제나 일정한 시간외엔
         외출을 할 수 없는 군인이니까, 자신이 늘 있어주겠다고 했다. 지원이 일이 있어
         나갈 때면 그 하나 밖에 없는 열쇠를 흔들어 보이며 불안해 하며 지켜보는
         토미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집에 가둬둘 수 없으니까 꼭 돌아오겠다며 인사하는
         것이다. 그들의 약속은 깨지지 않고 지금껏 잘 지켜져 오고 있었지만 이제 토미는
         본국으로 돌아가버리고 언제 다시 들어올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 토미는
         그를 배웅하던 그 위태로운 자세 그대로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토미는 한국 발령을 자원한 미군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아이 시절에 미국인
         부모에게 수출된 입양아로 그 사실을 모른채 16년을 자랐다. 그와 부모는
         놀랄만큼 닮았고, 서로에 대한 애정도 의심할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는 언제까지나 그를 속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사실을 이야기 해주었다.
         토미는 자신이 그들의 하나뿐인 자식이라는 사실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조용히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대신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인 입양아들의
         모임에 나가는 등, 자신의 뿌리찾기에 열중했다. 대학에 들어간 후, 자신의
         애국심도 시험해보고 학비도 아낄 겸해서 학군단에 지원했고, 졸업한 후 이쪽으로
         배치를 받은 것이다.
         잠시 부모의 얼굴을 떠올려봤다. 다른 도시에 있는 대학에 오면서 자연스레
         멀어진 두 사람, 하지만 만 21세가 되었을 때 자신의 친부모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 가는 길에 그의 손을 꼭 붙잡아주던 두 사람. 여전히 때마다 홀마크의
         카드를 잊지 않고 보내주는, 휴가를 얻으면 하루라도 늦을까 싶어 허둥지둥
         달려가는 자신을 안아주는 두 사람. 이제 토미가 미국으로 돌아가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하면 두 사람은 진정으로 충격을 받을 것이다.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손을
         잡아주실까. 아니면 소리를 지르며 싸움을 하게 될까. 아무리 다잡은
         마음이라지만 그 두 사람의 노부부를 생각하면 약해지고 마는 토미다.
        
         " 냐아- "
        
         어느틈에 나타났는지 지원의 고양이가 달겨든다. 소파 팔걸이 밑으로 머리를
         늘어뜨린 토미의 머리가 좋은 장난감 정도로 보였는지도, 평소부터 좋아하지 않는
         자에 대한 복수인지도 몰랐다. 하마터면 눈에 상처가 날뻔 했다고 기겁을 하며
         몸을 일으킨 토미는 습격에 실패하고 도망가려는 고양이의 목덜미를 집어든다.
         털을 빳빳하게 세우고 이빨을 내보이는 폼이 정말 화가 난 듯도 하다.
        
         " 그래. 나도 잘못하는 것 같단 말이야. 하지만 말이지 나도 입장이라는 게 있어.
           알겠냐 고냥? 너는 그냥 주인님 주시는 밥 얻어먹고 부비적 거리고만 있으면  
           되지만, 나는 그게 아니라고.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니네 주인님 좋게
           만들어주려고 그러는 거니까 너무 미워하진 마. 에잇. 내가 너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걸. 하루 종일 떠나지 않아도 좋은데… "
         " 뭐가 좋아요? 고양이 좀 내려놔줘. 애 경기하는 거 안 보여요? "
         " 빨리 왔네? "
         " 으응. 그냥 간단하게 차리려고. '제이'에 들려서 버번 좀 얻어왔어요. 와일드
           터키. 좋죠? "
         " 좋지~ 그래 제이 녀석은 아무말 안 해? "
         " 후후 그의 메시지를 꼭 듣고 싶어요? "
         " 아아 싫어. "
         " 빨리 가버리고 다시는 오지마! 아니면 이거 원샷하고 죽어버려! 래요.
           그러면서도 섭섭한가봐. 내일 못간다고 투덜거리던데요? "
         " 글세 그게 과연 못 와서 투덜거리는 건지는 모르는 거지. "
        
         지원은 좀 더 붉어지고 찬기운이 도는 손끝으로 토미의 코를 살짝 꼬집어주고
         장봐온 것을 챙겨 부엌으로 들어간다. 토미의 손을 벗어난 고양이는 열린 베란다
         문을 통해 어디론가 나가버리고 만다. 토미는 재빠르게 사라지는 고양이의 꼬리를
         바라보다 지금 마실거냐고 묻는 목소리에 마실 건 내가 준비하겠다며 장장 두
         시간을 부비적거리던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조그만 냉장고와 키가 맞는
         길다랗고 낮은 책장을 나란히 놔둔 곳 -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바Bar앞의 의자에
         걸터 앉아 두 잔의 버번을 준비하던 그는 부지런히 움직이는 지원의 등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쓸쓸해 보인다. 처음에도 그 쓸쓸한 등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리고 일년. 자신이 같이 한 시간이 그것을 떨쳐내주지 못한 것인가 가슴이
         아팠다. 곧 떠나야하는 자신의 감상(感想)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라고 생각하며
         토미는 한숨을 내쉬었다.
        
         " 뭐 도와줄 건 없어? "
         " 별로. 먹을 생각 없다면서요? 간단하게 만들려구. "
         " 그래. 술은 어떻게 마실래? "
         " 물론 얼음 넣어서. 너무 많이 마시지 말아요. "
         " 그래… 아 참. 제이 녀석 뭔가 다른 말은 안 해? 그 빌어먹을 전언 말고
           말이야. "
         " 뭔가 말하긴 했는데 까먹어버렸어요. "
         " 설마- "
         " 쿠쿡. 그냥 뭐 이런저런 이야기죠. 다시 온다며 떠난 미군 중에 돌아오는 사람
           못 봤다거나… 구체적인 약속을 했냐고 묻는 따위… 그런 거야. 알잖아요?
           제이형은 미국 싫어하는 거. "
         " 흐응. especially for me겠지. "
         " 형이 들으면 섭섭해 할꺼야. "
         " whatever, 너 나 없을 때 그 녀석한테 밤늦게 찾아가거나 하면 안 된다? "
         " 하하. "
        
         지원은 가스렌지 앞에 서서 웃기만 할 뿐. 어떤 약속도 해주지 않는다. 토미 역시
         어떤 기약도 없이 가는 것이라 그를 추궁할 수 없다. 기약 뿐 아니라 그에게 어떤
         것도 해주지 못하고 가는 것이다. 집은 올해말에 임대계약이 끝난다. 그 사이에
         임대료를 올려달라거나 하는 요구가 있다면 지원은 집을 비워줘야 한다. 돈을 좀
         주고 가기는 하지만 그것은 몇 달 생활비도 되지 않는다. 돈이 떨어지고 토미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그는 돈을 벌러 나가야 한다. 고등학교 졸업증도
         어떤 신원보증도 세울 수 없는 지원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주 한정될 수 밖에
         없다. 차라리 제이라고 부르는 그 녀석을 따라가는 것이 그에게는 최선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지원을 아껴줄테니까.
         토미는 자꾸 우울한 쪽으로 흐르는 자신의 생각을 멈추기 위해 아직 얼음이 얼마
         녹아들지 않은 독주를 들이켰다. 내가 돌아오면 되는 일이야. 토미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지원을 잊지 않고, 제대 절차를 무사히 밟고, 부모님을 만나 뵙고
         토미 자신을 낳은 한국으로 영원히 돌아오면 된다.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마음을 다잡고 번잡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이태원의 거리를 내다보았다.
         토미는 이 거리에서 지원을 만났었다. 티셔츠 위에 커다란 미군 자켓을 입고,
         역시나 헐렁하고 낡은 청바지를 입고 귀에는 커다란 헤드폰을 끼고 풍선껌을 불고
         있는 어린 사내아이. 밤이 되면 음란한 옷으로 갈아입고 하룻밤 상대를
         찾아헤메는 이들로 가득한 이 거리에서 지원은 도대체 어울리질 않는 스스럼 없는
         태도로 인도턱에 무릎을 모으고 앉은 채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토미는 이틀간의 휴가를 보내고 오던 참이었다. 어렵게 찾아낸 자신의 친모의
         무덤을 돌아보고 그녀가 살았다는 조그만 바닷가 마을에서 그녀의 소문을
         얻어듣고, 불쾌해져 휴가기간이 사흘이나 남았는데도 일찍 귀대하는 길이었기에
         발걸음은 느렸고 뭐든 들어가지 않으려는 구실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지원이
         눈에 띄였다. 토미는 반쯤 복수심(미혼모 하나 쯤 간단히 죽여버릴 수 있는
         나라에 대한?)에 불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조금이라도 뺄 줄 알았던 지원은 순순히 그를 따라나섰다. 오늘 누굴 만나기로
         했는데 오지 않네요. 아마 잊은 모양이죠. 라고 태연하게 말하면서 분명히 자신의
         것이 아닌 바지를 털고 일어섰다. 토미는 조금더 화가 치밀어 그의 손목을
         우악스럽게 잡고 걸었다. 하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다. 그는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소년이 자연스럽게 보조를 맞추고 휘청이지도 않고 식은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지만 몸상태가 안 좋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적어도
         이틀은 굶었을 것이다. 인도에서 자원봉사하며 노숙자를 돌본 경험이 있는 토미는
         퉁명한 말투를 유지한 채 그에게 배가 고파졌다고 내뱉고는 따뜻한 밥을 파는
         식당으로 들어섰다.
         지원은 다행히도 태어나서 이런 맛있는 음식은 처음 먹어본다는 듯 (토미가
         보기엔) 내용물이 의심스러운 국을 들이키고 반찬을 리필해가며 공기밥 두 그릇을
         비워버리느라 토미의 갑작스런 호의를 의심하지 않았다. 단지 행운이라고만
         여겼다. 그의 행운은 그대로 이어져 시간제의 러브호텔이 아닌 하룻밤을 자고 갈
         수 있는 정식 호텔로 그를 이끌어갔고, 더더군다나 하룻밤의 상대는 자신이
         샤워를 마치기도 전에 잠들어버렸다. 지원은 이런 행운을 감사해하며 그에겐
         행운의 화신인 토미의 품으로 기어들어가 잠이 들었다.
        
         ' 너 몇 살이야? '
         ' 그건 왜 묻죠? '
         ' 너 아직 미성년이지? 하이스쿨은 졸업했어? '
         ' ……. '
         ' 집에 들어가. 갈 차비는 있어? '
         ' 괜찮아요. 어제는 고마웠어요. '
        
         지원은 혹시 그가 경찰에 신고하지는 않을까 두려워하면서 돌아섰다. 더 자고
         싶어하는 몸을 다그쳐 토미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렸다. 조금씩 잠에서 깨어나는
         토미의 몸에 올라가 키스하고 애무해주며 전날 대접받은 걸 갚고 싶었지만 그는
         자신을 밀어냈을 뿐이다. 부끄럽고 상처입어서 얼른 방을 떠나고 싶었다. 남은
         돈으로 피시방에나 기어들어가서 잠을 좀 자고 오늘밤 재워줄 상대를 찾아봐야지.
         어제처럼 바람맞으면 안 될텐데 라고 생각하면서 주머니에 남은 동전을 세며
         자신의 백을 집어들었다.
        
         ' 집에 무슨 사정이 있는 거야? '
         ' 안녕히. 어제는 정말 고마웠어요. '
         ' 물었잖아. 대답해! '
        
         의외로 그는 끈질겼다. 혹시 잘못 걸린게 아닐까 지원은 겁이 났다. 전에
         경찰에게 걸려서 집-정확히는 사이비 종교의 기도원이었지만-으로 돌아갔을 때
         지원을 맞이한 것은 아버지의 주먹이었다. 죽도록 맞고 방에 가둬졌다.
         문밖에서는 하루종일 찬송가가 들려왔고 어머니는 목사(라고 그들이 부르는
         사람)를 모셔와 몸에 씌인 악마를 물리쳐달라고 했다. 목사는 냉엄하게 지원을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방밖에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동안 그는 지원의 입에
         넥타이를 물린 채 그를 범했다. 어머니를 위해 쥐어짜는 듯한 기도소리를
         외쳐대며 간간히 목소리를 낮추어 다시 도망가면 죽여버리겠다고 지원을
         위협했다. 삼년째 계속된 지긋지긋한 관계.
         그는 믿어주지 않았다. 단지 지원이 돌아가지 않기 위해 꾸며대는 말이라고만
         여기는 것 같았다. 하긴 처음에 자신을 돌려보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지원은
         혹시라도 다시 도망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지방으로 튀든가 밀항선이라도
         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입을 다물어버렸다. 하긴 그가 믿어준다고 해서 별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행운은 여기까지인가 라고 생각하며 룸서비스인
         아침을 든든히 먹어두었다. 하지만 그는 의외의 제안을 해주었다. 남은 휴가를
         같이 보내주면 경찰에 신고 같은 건 하지 않겠다고 했다.
         토미는 그 삼일을 기억하고 있다. 지원과 함께 되는대로 돌아다니다가 놀이
         공원을 가거나 동물원이나 퀘퀘한 냄새가 날뿐인 인천항을 가보기도 했다. 같이
         숙소에 들어도 그저 자기만 했을 뿐, 그의 몸에 손을 대거나 하지는 않았다. 왠지
         그랬다가는 지원이 떠나버릴 것 같았다. 적어도 오늘 같은 날이 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예감은 들었다. 이렇게 함께 생활을 할 수 있는, 그러니까 서로
         사랑하는 날이 말이다. 여태껏 그를 다뤄온 다른 남자들처럼 되기는 싫었다.
         마지막 삼일째 오후, 다시 부대로 돌아가기 위해 처음 만난 거리로 돌아왔을 때
         토미는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지원은 반쯤은 믿고 반쯤은 이미 포기한 채
         순순히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토미는 장교였고, 귀국 후의 생활을 대비해 돈도 꽤
         모아두었다. 그 돈으로 그는 지원을 위해 아파트를 하나 마련해주었고 그렇게
         그들의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 뭘 그렇게 멍하게 있어요? 접시 좀 날라줘요. "
         " 뭐 별로. 와우 굉장한 냄새가 나는데? 새삼 배고파졌어. "
         " 다행이네요. 내 잔 좀 줄래요? "
         " 응. 우리의 당분간 마지막 밤을 위해- "
         " 하핫. 당분간 마지막이라니. 어쨌든 마음에 드니까 건배. "
         " 그동안 건강하길 바랄게. "
         " 아. 토미형도 언제나 건강하길. "
         " 언제나라니. 마치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는 거 같은데? "
         " 그런가. 별로 그런 뜻은 아니였는데. "
         " 지원아- "
         " 돌아오겠죠? 틀림없이? "
         " 물론이야. 그 동안 시험 공부나 열심히 하고 있어. 괜히 우울해지지 말고.
           알았지? "
         " 응. 노력해볼께요. "
         " 금방 돌아올꺼야. 너가 내 빈자리를 실감하기도 전에 나는 돌아와 있을 거야. "
         " 응. "
         " 지원아. 이리와. "
         " 나 잠깐 화장실 좀. "
        
         울음섞인 목소리를 웅얼거리며 일어선 연인의 손목을 잡고 그대로 끌어 안았다.
         아이를 달래듯이 쉬- 괜찮아를 중얼거리며 가늘게 떨리는 어깨가 진정될 때까지
         안고 있었다. 지원은 정성들여 만든 저녁식사가 싸늘히 식도록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작은 아파트 가득 어둠이 깔렸을 때가 되어서야 그는 눈물을 닦고 토미의
         무릎 위에서 일어섰다. 돌아본 그의 얼굴엔 이미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 형은 좋은 아빠가 될거야. 이렇게 아이달래기에 익숙하니까. "
         " 이런 큰일인데. 나는 이미 달래줄 울보 아이가 하나 예약되어 있거든. "
         " 울보라서 미안하네요. 그래도 식은 저녁을 위해서는 울지 않을 거야. 하룻밤에
           두 번이나 울어버리면 형도 지겨워질테니까. "
         " 어차피 별 생각도 없었으니까. 나는 괜찮아. "
         " 헤에- 아까는 먹고 싶다고 했잖아요. "
         " 그건 네가 웃으면서 권했기 때문이야. "
         " 아 그 말 좋은데요? 그래서 더 떠나보내기가 싫어졌어. 나 아닌 사람한테 그
           말솜씨 자랑하면 내가 곤란해지잖아. "
         " 걱정마. 영어로는 이렇게 못 하거든. "
         " 다행이네 정말로. 별로 믿기지는 않지만 말이에요. "
         " 전화 자주 할게. "
         " 나 공부하는 거 방해될텐데. "
         " 그래도 좋을만큼 좋은 소식 있을 때만 하지. "
         " 역시 보내기 싫어졌어. "
         " 나도 가기 싫어. 하지만 우리 오래도록 같이 있으려고 가는 거잖아. "
        
         진지해진 토미의 말투에 베어나오는 슬픔을 그도 느낄 수 있었다. 이 사람도 역시
         가기 싫은 거겠지. 나를 위해서 자신의 가족, 자신의 모든 친구와 익숙한 풍경을
         버리려는 사람에게 내가 무슨 권리로 투정을 부리는 것인가. 부끄러워져 고개를
         숙인 지원의 입술에 따뜻한 입김이 와 닿았다.
        
         " 당분간 마지막 밤. 울다지친 애인 달래다 세고 싶진 않은데?"
        
         토미의 눈에서 그는 자신을 향한 사랑을 발견하고 조금이나마 웃을 수 있다. 말은
         유들유들하면서도 자신의 안색을 초조하게 살피는 토미에게 미소를 돌려보내며
         그의 손목을 끌었다.
         토미는 이 순간을 사랑했다. 섹스를 시작하기 전의 긴장감. 지원 자신이 이끌었던
         상황이라도 그는 항상 침실문이 닫히면 온몸을 굳힌 채 토미를 경계한다. 이
         순간이 되면 항상 자신을 따뜻하게 받아들여주는 지원일지라도 틀림없는 만
         17세의 건강한 남자아이라는 걸 느낀다. 토미에 대한 애정과 자신의 남성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이다. 그 내부의 치열한 싸움이 끝날 때까지 토미는 조용히
         그를 바라보며 기다린다. 지원이 미안한 듯이 입술을 부딪혀오면 그는 지원의
         사랑을 실감하며 새삼 감동하고는 한다.
         당분간은 이런 경험은 없겠지. 토미는 그가 눈치채지 못하게 한숨을 쉬며 그의
         허리를 끌어 안고 키스하며 조금씩 침대로 다가갔다. 그들이 처음으로 사랑을
         나눈 곳, 수많은 밀어와 한숨을 나누었던 곳. 얼마나 많은 눈물이 뿌려졌으며
         얼마나 많은 땀이 스며들었을까. 이제 이 곳은 당분간 지원만의 공간이 되어 그의
         빈자리를 체취로나마 메꿔줄 것이다. 각자의 마음속에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모두 떨어낼 수는 없었기에, 그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는
         긴박감이 돌았다. 찢듯이 서로의 옷을 벗겨내고, 몸이 한기를 느낄 새도 없이
         서로의 손이, 입술이, 온몸이 덥혀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시간을 끌었다. 어느 곳하나 빼놓지 않고 온몸을 더듬으면서도
         다음날 친구들의 놀림감이 될 정도로 입술이 부르트도록 키스를 나누면서도
         애닯게 떨고 있는 서로의 성기만은 애무하지 않았다. 절정의 순간이 오는 것이
         두려웠다. 혹시 잠들어버리지는 않을까. 그 상태로 아침이 오는 것이 아닐까
         무서웠다. 연인의 몸을 흐릿하게 비춰주는 달도 져버리고, 저 창 너머로 동이
         터오면 그들은 서로를 잃어버린채 기약할 수 없는 시간을 홀로 보내야 한다. 마치
         이 모든 것이 엑스터시와 함께 오는 것처럼 그들은 그렇게 시간을 끌었다.
         그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뭍고 익숙하고 그리운 체취를 들여마시며 초조함과 슬픔
         사이를 오가던 토미는 지원이 울고 있다는 걸 더듬어냈다. 그는 지원의 눈물을
         핥고 가는 목덜이에 이를 세우고 자신의 손길에 일어선 유두를 깨물며 아래로
         내려갔다. '이제 어쩔 수 없는 일이야.'라고 자신과 그에게 타이르듯 마침내 그의
         귀두에 짧게 키스를 했다. 지원은 한숨을 내쉬며 토미의 짧은 머리카락에 손을
         집어넣고 재촉한다. 오래 끈만큼 쉽사리 절정에 올라선 지원은 스스로 그의
         뿌리를 잡고 자신에게로 이끈다. 그 역시 평소 지원을 위해 쓰던 콘돔도 젤도
         없이 어렵게 그의 안으로 들어서 어이없이 사정해버리고 말았다.
         쿠쿡. 지원이 웃고 토미도 따라 웃는다. 그들 사이에 팽팽하던 긴장은 사라지고
         이제는 시간을 미루는 것도 포기해버리고 만 헛헛한 웃음만 남는다. 서로의
         웃음이 너무 슬퍼보여 위로하기 위해 나누는 손길이 다시 열기를 띄우자 그들에겐
         또하나 미뤄야할 것이 생겨버린다. 연인의 몸속 깊숙이 자신을 남기고 싶은 마음,
         독점하고 있는 순간을 어떻게든 끌어보려는 마음. 한치의 틈도 없이 꼭 달라붙은
         두 사람은 이제 곧 헤어져야할 눈동자를 바라보며 무언의 대화를 나눈다. 두
         사람의 몸이 점점 굳게 죄어들고 이제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순간이 오자 지원이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못할 소리로 연인을 부른다. 토미. 토미. 토미. 이
         목소리는 토미의 가슴속 깊이 파고들어, 부정하면서도 붙들고 있던 그들의 사랑에
         대한 토미의 의심을 부숴내렸다. 그리고 그들은 같이 하얀 엑스터시에 올라섰다.
         침실엔 가쁜 숨소리 뿐 여전히 꼭 달라붙어 있는 두 사람은 말이 없다. 그리고 곧
         가쁜 숨소리 마저도 사라지고 대신 밤이 되어도 잠들지 못하는 도시의 온갖
         소음들이 자리를 메꾸었다. 서로를 불편하게 하는 자세를 바꿔 마치 겹쳐진
         스푼처럼 몸을 맞댄 두 사람은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토미는 한 번 잠에서 깨어났다. 어디론가 사라졌던 고양이가 다시 나타나 지원의
         목덜미에 또아리를 틀려한 때. 토미는 최대한 움직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고양이를 내쫓고 지원을 바라보았다. 아직 어린티를 내며 잔뜩 웅크린 그의 자는
         모습은 슬픔을 잊은 평화로웠다. 가끔씩 열려진 창을 통해 들어오는 찬바람에
         지원은 몸을 돌려 자신의 품안에 고개를 묻는다. 일어나서 창문을 닫고 올까
         생각해봤지만 이 따뜻한 침대를 벗어날만큼의 문제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지원의
         잠을 깨우긴 싫었다. 아니 지원의 체온을 놓치긴 싫었다. 그는 그대로 점점
         밝아오는 아침을 원망하며 지원이 깨어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마주 바라볼
         때까지 연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을 받아내며 냉정하게 다물린 지원의
         입매를 쓸어주던 토미는 갑자기 자신을 꼭 끌어안는 지원 때문에 놀랐다.
         " 날 잊지 말아요." 그는 나직히 속삭였다.
         " 이 세상에서 나에겐 당신 하나 밖에 없어. "
        
         이제 일어나야할 시간이다. 토미가 떠나는 날이 밝은 것이다.
        
                                                                                
           끝.
        

    
      <지나가다님의 COMMENT>
     그러고 보니 저도 써둔게 없어서-_-a. 이벤트 준비용입니다.
     James Baldwin의 '또하나의나라' 중 2부 1장의 골격을 빌려왔음을 알려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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