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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리사
2002년 겨울 이벤트 : Kiss





겨울이라면 생각나는 건? 이라고 물었다.

눈- 이라는 대답에, 상투적인 인간이라고 비웃는 내게

그럼 너는? 이라고 되묻는다.

내 대답은.





                            Kiss












겨울 여우비가 차가운 이유에 대한 소고











햇살이 유난히도 좋은 오후,

늘 가는 카페 창가 자리에 죽치고 앉아 있었다.

늘 보는 주인이 지루한 듯 소파에 기대어 레모네이드를 마시고 있다.

커피숍 주인이 왜 항상 레모네이드냐고 하면, ‘그냥, 좋아서-’ 라며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그 모습이 꽤나 유쾌했었다.

어쩌면 마주 했던 사람의 웃음이 유쾌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다.










레모네이드는 달콤하다.

아니, 새콤하다.

무엇보다 가볍다.

커피처럼 무겁지 않고 녹차처럼 심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좋아하는 걸 거야- 라고 말하는 그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고양이처럼 얼굴을 온통 찌푸리며 기지개를 켜는 것이 좋았던 건지

그 기지개 뒤에 민망한 듯 웃는 입술이 좋았던 건지

그 입술이 내게 닿던 순간이 좋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여튼, 난 그와 함께 있을 때면 레모네이드가 좋았다.










물론, 지금은 잉글리쉬 애프터눈. 오후니까, 잉글리쉬 애프터눈.

홍차 향이 꽤나, 근사하다.

천천히 피어오르는 김에 입술을 묻으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금새 눈가가 더워져왔다.



알았으면 좋았을 걸.

실은 네게 나,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걸 알았다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

다른 사람이 사랑하고, 다른 사람에게 웃어주고, 다른 사람에게 많은 것들을 약속하는 너를

먼저 알았다면

나 그렇게 네게 오래 질척이지는 않았을 텐데.

...어쩌면 좀 더 쉬웠을지도 모르는데.











대개 후회는, 확실히 소용이 없다.








게으르게 쿠션을 안고 비비적거리다 마지못해 찻집을 나왔다.

쿠폰에 돌고래 도장 하나.

소리 없이 자동문이 열리고 계단을 또각 또각 걸어 내려온다.

학교 담과 나란히 붙어 있는 골목을 걸으며, 기도했다.








눈이 내리기를.








겨울엔 눈- 이라고 했다.

너무 틀에 박힌 사고라고 비웃자, 그럼 너는 대체 뭐가 생각나냐고 반문했다.

내 대답은, 눈 내리는 거리에서의 키스.

마주 서서, 키스. 어깨를 끌어안고 꼭 붙어 서서, 키스.

미친놈이냐고 말하는 그에게

이번 겨울에 눈이 내리면 꼭 길거리에 서서 키스를 하고 말 거라고 말해주었다.

기막힌 듯 웃는 그에게 꽤나 굳은 다짐이라고 두 번 세 번 확인하는 나를 보며

그는 또 웃었다.

행복했을까?

행복했을지도.






눈이 내리면 거리에서 널 꼭 붙들고 키스를 할거야.

누가 보든 상관없어. 눈만 내리면, 어떻게든 네게 키스할거야. 절대, 놓지 않을 거야.








언제부터인지 대답이 없어진 그에게, 다짐하듯 했던 말들.





오늘도, 눈이 올 하늘은 아니다.




며칠 째 겨울치곤 너무 따뜻한 날씨. 지독하게 청명한 하늘.

이렇게 그 때의 내 다짐이 아니라면 그와 마주할 수조차 없는 나.




최악의 겨울이다.






하늘색 패딩코트에 손을 찌르고 걷다가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고, 그에게 웃어주고, 그를 좋아한다.

나 외에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곁에 있지만 내 곁엔-.






그는 더 이상 내 사람이 아니다.

내게도 매력적인 접대용의 미소, 그 뿐.

이젠 내게 웃어주지 않는다.

나는 특별하지 않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조금은 쓸쓸하다- 혼자 남겨진다는 것은.

나는 가만히 몇 십 번째일지도 모를 한숨을 쉬었다.







투둑-투둑-




환한 하늘아래 여우비가 흩어졌다.

느릿하게 움직이던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가게 앞 처마에 몸을 숨긴 채 비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눈이 아니어도 사실 상관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든 비든, 실은 처음부터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저, 마주볼 수만 있다면- 그저, 가까이에서 만져볼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 뿐.










비 때문에 한산해진 거리를 크게 가로질러 그에게 간다.

여전히 매력적인 미소.

누구에게나 보여주는 미소를 여우비에도 상관없이 짓고 있는 그에게로,

젖은 코트에 신경 쓰지 않고 바짝 다가갔다.

놀라지 않는다.

그는, 역시 알고 있었던 거다.

내겐, 그에겐- 비든 눈이든 상관없었다는 걸. 약속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걸.

천천히 눈을 감고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비 때문인지, 무척이나 차갑다.

빗물이 머리에서, 눈에서, 턱에서 뚝뚝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아무리 입술을 부벼도, 그의 입술은 차갑기만 했다. 그래서, 슬퍼졌다.








어느 날 네가 날 버렸을 때도 슬프지 않았어.

거리에서 웃고 있는 널 봤으니까.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아무에게나 웃어줘도, 네가 이 곳에 아직 남아 있다는 게 좋았어.

날 완전히 떠나지 않았다는 게 좋았어.

하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넌 껍데기뿐인지

지금 닿는 느낌이 너무, 차가워.








그대로 주르륵 주저앉았다.

하지만 일으켜 주지 않는다.

고개를 숙이고 웅크린 내게 친절한 사람들이 말을 건넨다.








“왜 가게 앞에 웅크려 계세요?”


“...쇼윈도가 너무 차가워서요.”








...그가 너무 차가워서요.

딱딱하게 굳어버린 그가 너무 차가워서요.

마네킹이 되 버린 그가, 떠나더니 그렇게 돌아온 그가, 너무 차가워서요.

...여우비가 너무 차가워서요.

이젠, 잊어야 하는 게 차가워서요.





겨울 여우비가 차가운 이유에 대한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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