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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겨울 이벤트 : 기다림의 마침표를 찍다


기다림의 마침표를 찍다.



                                                         - by Atlant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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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 하얗게 눈이 내려 발을 내리기 조차 미안한 그 길을
함께 걸었었다.
아직 해는 푸르스름한 산녘에 걸려있어.
추운 공기속으로 내뱉는 입김이 더욱더 하얗고 하얀 아침이었다.


그 산길을 걷는 시간들을 사랑했었다.
그와 함께 아무말도 하지 않고
서로의 발자국 소리만이 산에 조용히 울리는 그런 겨울아침을 사랑했다.


그는 여전히 내가 걷고자 하면
말없이 손을 잡고 걸어준다.


내가 10살이 되던해, 나의 옆집으로 이사를 온 그는
이상하리 만치 나와는 다르게 차분하고 아이답지 않아.
주위의 또래친구들과 어울리지 않는 그런 아이였다.

하지만, 어째서 나와 그렇게 오랫동안 아무탈없이 잘 지낼수 있었는지는
아마도 그건, 그가 많이 참아주기 때문일꺼다.
마치 샌드백같아서 내가 아무리 때리든 차든 원상복귀되어
다시 내게로 돌아오기 때문은 아닐까.

나는 너무 제멋대로에 외골수라 누구도 내게 머물지 않았었다.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녀석만은 1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의 손을 잡아준다.


그것은 너무나 포근하고 따뜻해 손이 떨어지는 순간 그 손을 따라
곧잘 멈칫멈칫 망설이게 했었다.


언제나 그와 걷는 아침은 처음만난것처럼 낯설어서
무슨 말을 할지 망설이고 망설여서 혹여 말을 꺼내서
이시간이 망가져 버릴까 작게 고개를 떨구고 걷는것에만 집중하게 했다


하지만, 오늘만은 말해줘야 한다.


지난 세월 내가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사랑이라는 말이 너무 흔해 그것보단 더한 표현은 더 없을까라고
늘 가슴이 답답하게 했던 그 마음을
오늘은... 말해줘야 한다.



그는 말수가 적다.
묻는 말에 대답하기를 좋아하며 나에게 뭔가를 물어볼 때에는
너무 조심스러워서 대답하기가 미안해질 정도다.

마치 오래전부터 내 곁에서 그렇게 지켜보고 있었던 사람인양,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가 하는 말과 행동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거 마냥 그렇게 말없이 곁에 있어주었다.


"사랑해"


되도록 작게 말했다.
설령 못 들었을지라도 그냥 웃어 넘길 수 있도록
그렇게 말했다.


그가 발을 멈췄다.
들었다.
그 작은 소리의 나의 고백을 그는 들었다.


갑자기 그는 하얗게 눈쌓인 산길 한가운데에서 나의 손을 잡고 무너지듯
가라앉았다.


그리고 나에게 그 말을 기다렸었노라고.
너무 오랫동안 기다렸었노라고 말해주었다.


"니가 나를 알기 전부터 너를 사랑했었어.
너무나 오랜시간 너와 함께이기를 바랬어.
설령, 니가 나를 못 알아본다 해도 그렇게 기다리기로 했어"


그도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왠일인지 그는 내가 알아듣지 못할 말들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조심스레 무슨 이야기인지 차근차근 이야기 해달라고 했다.


그는 숙였던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기쁨이 드리운 눈물이 고여있었다.




아주 기나긴 이야기라고
어째서 자신에게만 그것이 기억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째서 나는 자신을 알아볼 수 없는지를 알 수 없지만.

                 .
                 .
                 .
                 .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자신들이 살고 있는곳이 어딘지도 모를
그런 오랜옛날부터 자신과 나는 늘 함께였다고.


그의 말에 의하면
나는 눈이 먼 소녀였다고 했다.


어릴적 굉장한 병을 앎았었다고
그 병은 소녀의 목숨은 가져갈 수 없었지만 그녀의 맑은 눈만은
그녀에게서 가져가 버려 그녀는 다시는 그 눈동자로 세상을 볼 수 없었다고


늘 공허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했었다고 .



그리고...
자신은 떠돌이 개였다고 했다.
주인없이 길을 떠돌다 때론 사람의 손을 타 심하게 타치고 상처받아
사람들을 늘 피해다녀야 했었다고.
어느 사람이 그랬는지도 모르게 다리를 다쳐
그렇게 평생을 절뚝이는 걸음으로 걷는 그런 떠돌이 개였다고 했다.



그녀는 우연찾게 그 개를 얻게 되었다고.
아마도 말벗이 없는 그녀에게 그의 부모들은 그 떠돌이 개를 데려다 줬을것이라고


그 소녀는 곧잘 웃고 곧잘 우는 그런 아이였다고
그리고 보이지 않는 눈으로 동네 산을 오르기를 좋아하는 그런아이였다.
그 보이지 않는 눈을 대신해 언제나 그 떠돌이개는 그녀와 함께 그 산을 올랐었다고


그녀의 공허한 눈동자속에 떠돌이개가 비칠때면
가슴이 아팠다고
그래서 떠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었다고



살을 에이는 어느 추운 겨울날 그녀와 함께 오른 정상에서
내린 첫눈에 그는 그녀를 알아둘을 수 있도록 크게 짖었었다고


'봐, 눈이 오고 있어. '


그럴때면 마치 그 말을 알아듣고 있는양,
"눈이 오고 있어. 니 말대로 눈이 오고 있구나."


그리곤 둘은 한참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내리는 눈이 발 언저리에 소복히 쌓이도록 떠나지 않았었다고.


소녀는 떠돌이 개에게 말해주었다고.

"다음에 만나면 그땐, 그땐 친구로 만나자.
너는 두발로 나와 함께 걷고
나는 너를 두눈으로 너의 모습을 하나하나 비춰보면서
그렇게 함께 이 길을 걷자"

떠돌이 개는 그녀의 말에
크게... 크게 그녀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산에 메아리쳐 다시 돌아올만치
크게 짖어되었다고.


'약속해.. 꼭 함께 태어나서 이길을 함께 걷자.. 약속해....'

그렇게 약속했었다고


허나 소녀는 그 다음해의 겨울을 보지 못하고 죽어버렸다고.
떠돌이개를 남겨두고 죽어버렸다고.
기나긴 시간 떠돌이개는 그녀가 묻힌 언덕무덤에서 울어짖었다고
그리고 그해 겨울 그 무덤옆에서 잠이들었다고


그걸 말하는 그의 눈은 너무 진지하고 상기되어있어
그것이 설령 거짓일 지라도 나역시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많이 아팠겠다고 위로해 주고 싶었다.


"몇번의 생애를 거쳐 다시 널 만난거야.
그 몇번에 생애에서 우린 만나기도 했고 서로 다른 세상에서 태어나 서로가
모르는체 그렇게 사라진적도 있어.
그리고 다시 만난거야. 이번에야 말로 정말 너를 찾은거야.

그 몇번에 생애에서 나는 너를 항상 기억하고 있지만
너는 단 한번의 생애에서도 나를 기억한 적이 없었어.
불공평하지."


작게 쓴웃음을 지어 보이는 그의 입가에는 그간의 그리움이 베어나올정도로
쓰디써서 차마 말을 꺼낼수 없었다.


"사랑해. 이제야 말할수 있게 되었어.
동준(憧竣)아 사랑해...."


"응. 설령 너의 말이 진실이 아니더라도
그래도 그런 인연의 끈이 있었다는것 만이라도 다행이야.
고마워. 기다려줘서. 고마워."

작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도 나에게 작게 미소지어 주었다.


하얗게 눈이 내린 어느 아침
그도 나도 서로가 얼마나 기나긴 시간의 그리움에서 만났는지 알게되었다.
그리고 다시 그 산길을 두 손을 꼭 잡고 내려가고 있었다.
다신 놓지않아도 떨어져있어도 춥지 않은 손을 맞잡고.....




먼후일 나는 그에게 물었었다.
그 기나긴 시간동안 어떻게 자신을 기다릴수 있었냐고


그가 대답했다.

"너와 나의 눈동자속에 서로의 미소를 보며
그렇게 함께 이 눈오는 길에 오를 수 있기를 기다렸어.
공허하지 않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미소짓는 너를
두손으로 꼭 잡아주는 것만으로
그 시간들을 기다릴 수 있었어.


봐, 이제 절대로 놓지않을꺼야. 이제야 기다림에 마침표를 찍은거야."


그말을 하고 바라보는 눈속엔 분명 내가 들어있었다.
새하얀 눈길 위에 분명히 그의 눈앞에 서있는 내가 있어서

아주 조금.


그에게 그리고 나에게 감사했다.
그와 함께 이 눈길을 걸을 수 있어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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