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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83)  공지 (1)  단편 (48)  장편 (3)  축설 (10)  행사 (21) 
ijen
2002년 겨울 이벤트 : In other words… I love you







In other words…I love you





















「 지환이 폰 아닌가요 」

보통의 질문하는 어조와는 다르게 말끝을 짧게 끊어 내린다.
그 말투에서 이건 '질문'이 아닌 '추궁'이라는 사실을 안 재인은
한숨이 새려는 것을 참으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 그럼 전화 받으신 분은 누구시죠? 」

"후배입니다."

「 …… 」

수화기 너머로 상대방이 침묵을 지킨다.

"전화 거신분은 어떻게 되십니까?"

「 나중에 다시 걸겠습니다 」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연결이 끊어졌다.
예의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핸드폰을 다시 충전기에 꽂았다.

약 1분 전, 충전중이던 지환의 핸드폰이 울렸다.
지윤은 방에서 자고 있고, 잠시 슈퍼에 다녀온다며 나간 지환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집안에서 유일하게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자신 뿐이었기에, 타인의 전화를 대신 받는다는 내키지 않는 상황에서도
손을 뻗을 수 밖에 없었다.

『 래연 』

액정에 뜬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상대방은 이름만큼이나 달콤한 목소리를 가진
여성일줄 알았다.
그러나,

「 지환이 폰 아닌가요 」

가늘긴 하지만, 확실한 남자의 목소리.
거기다 재인의 「여보세요」가 끝나고 한참동안 말이 없다가 느닷없이
'넌 누구야' 의 뜻을 담은 매서운 어조탓에 재인은 단번에 상대방이 싫어졌다.









"눈이 또 올것 같네."

지환이 현관문을 닫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어디 다녀오셨어요?"
"슈퍼에 갔다온다고 했잖아. 지윤이 깨워라, 술 마시자."

잘자고 있는 사람을 깨우고 싶지 않았던 재인이 핸드폰 이야기를 꺼냈다.

"참, 선배. 방금 전화왔습니다."
"뭐? 누구?"

하며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폰을 집어 들어서 수신번호를 확인한다.

"……뭐라고 하데?"
"지환이 폰 아니냐고 묻더군요. 맞다고 했더니 넌 누구냐고 묻길래
후배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나중에 다시 건다고 말하곤 끊더군요."
"……."

지환이 복잡한 얼굴로 머리를 뒷목을 만지더니
핸드폰 버튼을 누르고 통화를 시도한다.

자리를 비켜주는게 예의라 생각한 재인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자
한참후에 지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너 지금 어디야? 무슨 상관은! 너…공원이냐? 야, 제대로 대답해……웃기는게
누군데? ……네가 먼저 안된다며. 오늘 바쁜일 있다고 미루자고 했잖아."

마지막 목소리는 어딘지 체념조와 비슷했다.
드물게 지친 목소리를 하며 지환은 계속 상대방과 통화중인 듯 했다.

"장난하냐, 너 지금? 내가 초능력자야? 니가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야 해?
사람 화나게 하지마, 설래연."

이번엔 또 드물게 언성을 높인다.
재인이 기억하는 한, 지환이 저렇게 언성을 높인건 검도부에서 후배들을
혼낼 때를 제외하곤 딱 한번밖에 없었다.
그래, 딱 한번. 삼년 전 그 날.



"……만나자. 만나서 얘기하자. 지금 갈테니까, 거기 꼼짝말고 기다려.
……춥긴 뭐가 추워! 추우면 진작 들어가지 뭣하러 두시간씩이나 기다리고
있었냐? 두시간이나 참았잖아! 십분만 더 기다려!"


이내 재인의 방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예」 하고 문을 열자
코트에 팔을 꿰며 지환이 말한다.

"식탁에 술이랑 사뒀으니까 지윤이랑 마셔라."
"네. 다시 여기로 오실겁니까?"
"아니, 집으로 갈거야. 오늘 미안했다."

재인은 슬핏 미소 지엇지만, 지환은 굳은 얼굴을 하고 현관으로 나갔다.
먗초 후, 아파트 복도까지 따라나온 재인을 돌아본 지환이 말했다.

"재인아."
"예."
"넌 만약에……아니다."

재인은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았다.
대신, 여전히 웃는 얼굴로 「조심해서 가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래. 메리 크리스마스다, 좋은 밤 되라."
"복 많이 받으십시오, 선배."

지환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않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발소리가 희미하게
사라질 무렵, 발걸음을 돌리며 재인은 조금 전 지환이 과연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했던걸까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환에게 흠씬 얻어맞았던 3년 전을 생각하며 저도 모르게 웃었다.












소리나지 않게 방문을 열었다.
방안은 환하게 불이 켜진 상태였고, 남자는 여전히 고른 숨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살짝 뺨을 더듬자 미미한 소리를 내며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린다.
시계바늘은 어느덧 열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성당에서 돌아온게 여섯시
무렵이니 네시간정도 잔 셈이 된다.

다시 뺨을 더듬었다. 이번에도 작게 잠투정을 했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 손가락으로
뺨을 쓸었다.
닫힌 눈꺼풀 위로 가볍게 입술을 내렸다. 그리고 속눈썹이 그림자를 드리운 곳에
쪽, 소리가 날 정도로 키스하자 지윤이 천천히 눈을 떳다.

뺨,
코 끝,
입술 위로, 계속 키스했다.
입술이 닿았다 떨어지는 소리가 BGM이 된 상황에서
지윤이 웃으며 재인의 뺨을 감쌌다.

"…너 왜 이렇게 얼굴이 차가워……?"

잠이 묻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재인이 상대적으로 더 따뜻한 지윤의 손목을 잡아, 거기에도 쪽, 하고 키스를 한 후
자신의 뺨에 부비며 말했다.

"지환선배 마중하느라 복도에 잠깐 나가 있었어요."
"형… 언제 갔는데…?"
"방금 전에요."

응… 하며 다시 눈을 감는 지윤의 입술위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아랫입술과 윗입술을 교대로 빠는 사이 지윤의 입술이 열렸다.
혀끝으로 가지런한 치열을 더듬고 천정의 골을 더듬자, 조금 간지러운 듯
지윤이 쿳, 하며 웃음을 흘린다.

혀와 혀가 얽히고, 축축하게 젖은 소리가 둘의 입술사이에서 음란하게 들려올 때
즈음엔 지윤이 단단하게 재인의 목을 껴안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음……으음, 응… 하아, 으응……."

키스를 하며 숨을 쉬는데 아직 익숙하지 못한 지윤이 결국 재인의 어깨를 붙잡고
조금 밀어냈다. 하아아…하며 크게 숨을 내쉬며 살짝 재인을 노려본다. 자신이
익숙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기 뜻대로만 밀어부친게 못마땅하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아랑곳않는 재인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혀끝으로 여기 저기를 누르자
「야, 그만둬」 하며 킥킥거리기 시작했다. 그 킥킥거림도, 재인이 지윤의 셔츠
단추를 하나 하나 풀어내리며 가슴깨에 키스를 하기 시작한 후로는 가느다란 신음
으로 바뀌었다.

"재인아…재인아, 불……."
"말씀하세요."

라고 하면서도 행동을 멈추지 않자 지윤이 울 듯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불 꺼줘……."
"왜요─."

그렇게 말하며 단단하게 선 유두를 혀끝으로 간지럽힌다.
힉-하며 터져나오는 신음을 손으로 눌러죽인 지윤이 제발…하며 사정한다.

"밝은거 싫단 말이야…."

목소리 끝에 울음이 섞여 나왔지만 재인은 「저 밖에 안봅니다」 하고
심술궂게 대답했다.

"장난하지 말고……빨리, 불 꺼줘…."

울 생각은 아니었지만, 재인의 「저 밖에 안봅니다」 하는 말투가 너무 매정해서
지윤은 저도 모르게 서글퍼졌다. 물론 괜한 심술을 부리는거라는걸 알고 있지만
이렇게 감정이 고조된 상태에선 아주 사소한 일로도 눈물샘이 자극을 받는다.

지윤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훌쩍이는걸 깨달은 재인의 얼굴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번졌다. 몸을 일으켜 방문 옆의 스위치를 누르고 다시 돌아와 침대에
걸터 앉으며 지윤의 손을 때어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침대 사이드 테이블에 놓인 스탠드를 켰다.
노란 불빛이 은은하게 떠오름과 동시에 재인이 말했다.

"스탠드 정도는 켜 두자구요. 선배 얼굴이 안 보인단 말입니다."
"싫어."

그 사이 조금 진정이 됐는지, 재인이 손을 때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손으로
얼굴 전체를 가린 지윤이 볼멘 소리를 한다.

"부추기지 말아요."

재인이 귓가에 속삭이며 다시 손을 때어내고, 그 손에 키스했다. 그리고 다시
가슴위로 입술을 가져갔다.





























아홉시를 훨씬 넘긴 공원에는 사람 그림자라곤 없었다.
작은 공원이었지만 두바퀴 정도를 돌고나자 숨이 턱에 찼다.
무릎을 손으로 짚은 상태로 헉헉대며 그래도 소싯적엔 체력 하나는 자신있었는데
하며 조금 서글픈 현실을 생각했다.

"그나저나 이자식 정말 집에 가 버린거 아냐?"

한숨을 쉬며 코트를 벗어서 손에 들었다.
땀에 젖은 몸에 찬바람이 닿자 순식간에 얼어붙는 기분이었지만
그대로 코트를 손에 든채 다시 공원을 걷기 시작했다.

상대방이 멋대로 정한 약속시간은 정확히 일곱시 삼십분 이었다.
「 아홉시 반부터 성당에서 성탄 전야미사가 있다 」 라고 말은 했지만
그렇다고 분명하게 '그 시간은 안된다' 라고 거절한 기억은 없다.
덕분에 성탄 전야미사에 불참하고 오후에 있던 중,고등학생 성탄 미사에 참여하고
돌아오는 중에 전화가 왔다.


「 오늘 만나지 말자 」

"뭐?"

「 오늘 만나지 말자고. 나 바빠. 너도 성당이나 가라.
    가서, 하느님이랑 데이트 하고 와 」

"야, 기다…,"



려- 라고 하기도 전에 상대방이 끊어버렸다.
황당한 기분에 잠시 멍했다. 그것도 잠시, 이번엔 언제나 이런식으로 제멋대로인
상대에게 화가 나 아예 전원을 꺼 버렸다.

"야, 나 오늘 니네집에서 신세 좀 지자."

뒷자석에 타고 있던 동생에게 말하자 "그래." 하고 쉽게도 대답한다.

"……넌 대답 참 쉽게도 한다."
"쉽게 하면 안되는 건가?"
"……아니."

핸들을 돌리며 아마도 크리스마스 전야, 자신의 동생과 둘만의 시간을
기대하고 있을 동생의 연인에게 동정과, 미안한 마음을 동시에 가졌지만

"전 괜찮습니다. 상관없겠지요."

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은 괜찮지 않을게 뻔한데,
옆에서 "셋이서 놀면 더 재밌지, 뭐." 하고 거드는 동생에게, 여전히 웃으며
"그렇죠." 라고 대꾸해주는 후배가 용하다고 생각했다.
그야, 속으론 화가 났겠지. 그녀석도.











결과적으로는 둘만의 시간을 돌려준 셈이 됐지만……


"제기랄. 사람을 있는대로 고생시키고."

화가나서 담배라도 한대 피울까 했지만 아무리 뒤져도 담배가 없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화가 나, 잠시 벤치에 앉았다.

"후…."

하고 모처럼 잘 셋팅된 머리를 마구 헝크는데, 바로 뒤에서 앙칼진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연예인이면 다냐? 재수없어!"

연예인……? 하고 뭔가가 연상 작용을 불러 일으키기도 전에,

"다다. 저리 꺼져."

하고 익숙한 목소리가 대꾸한다.

"뭐? 저리 꺼져어~? 웃기네! 그러고보니 너 이제 연예인도 아니잖아!!
그렇게 잘난척하더니, 기획사에서 쫓겨났다며? 흥, 꼴좋다, 병신!!"

여자는 되바라지게 내뱉고는 '흥, 재수없어!' 를 연발하며 빠른 걸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

지환은 바로 등뒤에 있는 약속 상대를 차마 어떻게 불러야 할지 고민이었다.
지금 이름을 불렀다간 방금 전 상황을 자신이 고스란이 지켜봤다는 걸 알게 될게
틀림없다. 그러면 가진거라곤 반반한 얼굴과 더러운 성질과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자존심밖에 없는 상대방은 또 멋대로 화를 내겠지.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 상태로
숨을 죽이고 있어야하나……
진퇴양난에 빠져 고민하고 있자니
등 뒤에서 작게 기침 소리가 들린다.
두번, 세번. 연달아 기침을 해대는 걸 보니 감기에 걸린게 분명하다.

결국 벤치에서 일어난 지환이 등을 맞대고 있던 상대방의 어깨를 짚었다.
대꾸도 없이 눈빛으로 「또 뭐야」 라는 오로라를 내뿜으며 상대방이 휙-
뒤를 돌아본 순간, 지환은 저도 모르게 「헉」 하고 숨을 멈췄다.

"너 얼굴이 왜 그래."
"……."

목도리를 칭칭 둘러, 입까지 완전히 가린 상태였지만 얼굴의 피부가 상당히
거칠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너 왜 이렇게 텄냐? 어제까진 안 그랬잖아."
"왜 이렇게 늦었어."

십분이면 온다며, 하고 목도리가 둘러진 탓에 조금 웅얼거리며 말한다.

"니가 약속장소에 안 있고 이딴곳에 있으니 찾을수가 있어야지."
"여기가 약속 장소야."


상대방이 벤치에서 일어나 서로 마주보며 선 채로 말한다.

"또 우기기 시작하지. 약속 장소는 안쪽이야. 가로등이 없는 곳. 밝은 곳은
사람들이 알아본다고 싫다고 한게 누구지?"
"……."

분명 자신이 한 말임을 깨달은 상대방이 잠자코 입을 다문다.

"작작 좀 해라."

한숨과 함께 내뱉듯이 말했다.

"만나지 말자며. 그래놓고 두시간이나 기다리고 있는 건 뭐냐?
이런식으로 사람 나쁜놈 만드는거 안 지겨워? 미리 말해두는데, 이번엔
내 책임으로 미룰 생각 하지마라. 네가 멋대로 정한 약속 시간에 맞추느라
꼬마들이랑 같이 미사드리고 왔다."

갔더니, 기타 반주자가 오질 않아서 전(前)학생미사 기타 반주자였던 지환이
정장을 입고 기타를 치는 우스운 짓까지 하고 말았다. 몇년만에 만져보는 기타에
코드는 엉망진창으로 틀리고, 오르간 반주자에게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그런걸, 이 제멋대로가 알리가 없지만.

"그런데 만나지 말자며. 그래서 안 나왔더니, 멋대로 두시간이나 기다리고.
따져보니까, 좀 알겠냐? 하나부터 열까지 네 잘못이라는거."

이런식으로 몰아붙이는건 체질이 아니었다.
아마 누군가 자신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사람이 이 광경을 본다면 지환이 너 어디
아프냐고 붙잡을거다. 늘 여유있고 침착한 모습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자신이
왜 이 소꿉친구를 상대로는 늘 감정적으로 나가게 되는건지 지환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미안."

다시 「헉」 소리가 날 뻔 했다.
이 녀석이 '미안' 이라는 단어를 알고는 있었던갈까, 하고 놀라는 사이
상대방이 빠른 걸음으로 자신에게서 멀어져갔다.

"야, 설래연!"

달려가 붙잡으며 소리쳤다.

"미안하다고 말을 한 것까진 대단한 발전인데, 이왕 할거면 제대로 해라.
미안하다고 할 땐 상대방을 보……,"

돌려세우고, 이번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너…왜 울어……."
"……."
"미안하다……."
"읏…."

사과함과 동시에, 상대방이 참고 있던 눈물을 터뜨렸다.

"읏…으윽… 흑, 으으흑! 흑! 흣,흑…!"
"미안하다니까. 야, 래연아. 임마, 울지 마."

어쩔줄 몰라하며 공원 입구로 데리고 나와 주차장에 세워 둔 차에 태울 때 까지
래연은 계속 울고 있었다.

"자, 휴지."
"흑…읏, 흑……힉!"

눈물을 닦은 뒤에도 계속 딸꾹질이 섞인 흐느낌이 새어나왔다.

"……나,와…줄……줄, 알았, 단 말야…힉."
"공원에?"
"그, 으,래…!"

빨간 눈을 해서 노려보는데 소름이 돋았다.
자기가 나오지 말라고 하고선, 또 나올줄 알고 기다렸다는건 도대체 무슨
머리에서 나온 생각일까.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럼 약속 장소에나 얌전히 있던가. 너 때문에 두 바퀴나 돌았잖아."
"……."
"그렇게 싫다고 하고선 왜 또 가로등이 천지에 널린곳에 앉아 있는거야."
"…찾,기…쉬,우라고 그랬, 지…"
"……."

지환이 할말을 잃었다.

"니,가…너무 어,두,워서… 못 찾을까봐, 힉, 나, 찾,기… 쉬우라,고…
그래서, 거기, 있,었단 말,야…."

그렇게 말하고 래연이 휴지로 코를 푼다.

"몇, 명이나 말, 걸고, 싸인, 해, 달라, 그래서…, 다,시… 약,속, 장소로,
돌아갈, 까 했는데…, 그런데, 니,가 나, 발견, 못 할까, 봐… 힉, 계속,
거기, 있, 다가…, 미친년, 한테, 병,신 소리나, 듣고…."

울면서도, 여전히 사나운 입버릇.
생각하자 그 자존심에 화가 나는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아아……쫓아가서 뺨이라도 날리지 그랬냐…."

아마 래연이 그 자리에 없었다면, 자기가 그 여자를 때렸을지도 모른다.

"추,워서…, 꼼,짝도 못,하겠, 더란,말…야."
"미안하다……."

자신이 미안해 할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환은 또 먼저 사과해 버렸다.
늘 이런식이다.

"손 줘봐."

휴지 뭉치를 쥐고 있는 손을 당겼다.
빨갛게 얼어붙은 손을 보자, 괜히 또 미안해졌다.

"장갑 안 들고 왔냐?"

고개를 젓는다.

"주머니에 손 넣고 있던가."
"내, 잠바, 에…, 주,머니, 없, 어…."

훑어보니, 과연 얄팍한 레몬색 점퍼가 예쁘긴 하다만
주머니도 없고 전혀 따뜻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스타일도 좋지만…… 이 겨울엔 실용성을 먼저 생각하는게 좋을 듯 싶다."

차 안에 비치되어 있던 핸드크림을 발라주며 말하자, 또 눈을 흘긴다.

"시,끄러, 워…."

색감이나 디자인이 아무래도 여성용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사실이라해도
바득 바득 우길게 분명해 말을 꺼내지 않았다.
여성용을 입어도 무방한 체격에,
오히려 여성용이 더 어울릴법한 얼굴.

어릴땐 그렇게도 여자같다는 소릴 싫어하더니, 이제는 자신을 돋보이게 해 줄만한
의상과 소품은 여성용이든 뭐든, 먼저 차지하고 본다.
연예인의 습성인가…

지환이 머리를 긁적이자, 물끄러미 바라보던 래연이 아직 울음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말한다.

"머,리에…, 힘 줬, 네…."
"누구 때문에 모처럼 힘 줬다가, 그 누구 때문에 또 다 헝클어버렸다."
"너, 정장, 입,은거, 처음, 봐…."
"성탄 미사에 그럼 티셔츠에 청바지 쪼가리 입고 갈까. 애도 아니고."
"멋, 지다."
"아, 그래……."

머쓱해진 지환이 운전석 옆에 떨어진 담뱃갑을 주웠다. 한대 꺼내서
물려고 하는 찰나

"담,배… 연기, 싫다고 했, 잖아…."
"……."

얌전히 집어넣어서, 운전대 위에 내려놓았다.
그 사이, 딸국질이 느슨해졌는지 래연이 몇번 숨을 참았다 뱉았다.

"하아…."
"멈췄냐?"
"음…그런것 같다."

하지만 오랫동안 큰 소리로 울었고, 또 크게 딸꾹질을 하는 바람에
말하는데도 힘이 드는지 텀을 길게해서 천천히 말한다.

"자, 선물."

가방에서 부스럭 거리며 꺼낸건 케이스에 넣어진 녹음용 공CD였다.

"선물이면, 선물답게 포장이라도 좀 해오던가."
"싫음 내놔."

하고 내미는 손에 핸드크림을 얹어주며 '제대로 다시 발라' 하고 말했다.


시디를 집어넣고 플레이 시키자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라…."

래연이 직접 부른 Fly me to the moon 이었다.
재즈풍이 아닌, 유명한 애니메이션의 TV시리즈 엔딩곡 버전의.
래연의 가느다라면서도 높은 부분에선 힘있게 올라가는 미성이
제법 그 버전의 노래를 부른 여자와 비슷했다.

"어디서 녹음 한거야?"
"녹음실."
"녹음실?"
"친한 작곡가 형네 집에 있는 녹음실. 잠시 빌려달라고 해서 녹음했어."
"노래…… 불러도 되냐?"

래연이 내려간 목도리를 다시 입까지 끌어올리며 「언제는 안 불렀나, 뭐」 하고
다시 웅얼거리며 대답한다.

"노래 부르면 목 아프다고 하지 않았냐?"

동아리 회식 자리에서 분명 그렇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한, 두곡 정도는 괜찮아. 그건 거기서 노래 부르기 싫었으니까 그랬던거고."

웃으며 대답하는 얼굴에 많이 화색이 돌아온다.
하지만 여전히 눈가에 피부가 일어난건 여전했다.

차가운 공기에 눈물이 마르고, 또 젖고, 마르고 해서 피부가 튼게 틀림없다.
가슴이 저릿해져 지환이 핸드크림을 쥐고 래연의 얼굴 가까이 다가갔다.

"왜, 왜……?"
"가만히 있어 봐. 너 피부가 엉망이잖아. 아무리 연예인 생활 쫑났다고해도
이렇게 내버려두면 쓰냐. 봐줄만한건 얼굴밖에 없는게."

뭔가 항의 하려고 하는 듯 했지만
지환이 손가락 끝에 크림을 덜어 눈가에 바르기 시작하자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씻고 발라야 하는건데…… 일단은 그냥 발라줄게. 집에가서
따뜻한 물에 잘 씻고, 피부연고같은 걸로 마사지 하듯이 발라줘라.
너 피부가 예민해서 좀 오래 갈지도 모르니까, 꾸준하게 잘 발라줘."
"응…."
"너 피부가 애기 피부같다."

지환이 웃으며 던진 한 마디에 래연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지만,
지환은 모르는 척 했다.

그 사이, 노래가 끝나고 다시 Fly to the moon의 앞부분이 시작된다.

"이거 한곡밖에 안 들어있는거야?"
"…니가 이 노래 좋다며."
"야, 아무리 그래도… 이왕 선물 할거면 좀 다양하게 넣어 오던가."
"싫으면 내놓으라니까."

말을 말자, 며 지환이 자동차 열쇠를 넣고 시동을 걸었다.









차가 도로를 달릴 무렵까지 두 사람 다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차 안은, Fly me to the moon 을 부르는 래연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불쑥, 지환이 말했다.

"옛날 생각난다."
"응?"
"너 어릴때 우주 비행사가 꿈이라고 그랬잖아. 이 노래 듣고 있자니
갑자기 그 생각이 나네."
"아아…."

래연이 웃었다.
그러고보니 그런 때도 있었지.





초등학생 무렵, 서로 이웃집에 살 때였다.
지환은 한참 검도에 재미를 붙여 장차 검도 사범님이 되겠다고 했었고
자신들보다 한살 어린 지환의 동생은 형을 따라 자신도 검도 사범님이 되는게
꿈이라고 했었다.
그 때 래연은 지금은 기억도 안나는 만화 영화를 보고 자신은 우주 비행사가
될거라고 난리를 쳤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는 내가 우주 비행사가 되면 지환이
너는 절대 안 태워줄거라고 거드름을 피우곤 했었는데.
그러다 5학년이 될 무렵에 교통 사고가 났다.
옆구리에 흉칙한 상처가 생겼고, 지금까지도 없어지지 않는 흉터 때문에
'난 이제 우주 비행사가 될 수 없어' 라고 울었던 기억도 난다.
그 흉터 때문에 수영장에 가는 것도 꺼리게 되었다.
어릴 당시에, 아이들이 놀리는 바람에 큰 컴플렉스가 되었고, 유일하게 지환이
그 상처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는게 당시엔 큰 고마움이었다. 그렇게
친했는데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이었던가…… 래연이 이사를 가면서 소식이
단절 되었다.

"……."

하긴 뭐… 굳이 상처가 없었더라도, 우주 비행사는 조금 말도 안되는
꿈이긴 하지.

생각하자 피식 피식 웃음이 나온다.





어쩌다 뮤지컬 극단에 들어 학생 단원으로 활동을 하다가,
또 어쩌다 연예인까지 되었는지 지금은 알수가 없다.
그러다 성대에 이상이 생겨 기획사와의 계약이 파기가 되었고, 지금은 그냥
평범한 대학생이다.


그리고 대학에 와서 만난 옛 소꿉친구.

자신은 단번에 알아봤는데, 그쪽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 해서 굉장히
서운했었다.


하지만 지환은 자신을 기억하고 있었고,
동아리 여름 엠티 때, 여전히 흉터가 컴플렉스인 자신이 물에 들어가길 꺼려한다는
사실을 알고, 스스로 함께 남아주었다.







생각해보면, 좋아하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친절하니까.
다정하니까.
그냥 옆에 있으면, 마음이 놓이니까.

그 감정이
굉장히 좋아하는, 다만 '친구'에 대한 감정과 혼돈한 것이라고 한다면
자신은 그럴지도 모른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수 밖에 없었다.

그 정도로 불확실했던 그 감정에 확신을 가진것이 그 노래방, 에서의
사건 때문이었다.
동아리 회식이 끝난 후, 평소완 다르게 술을 많이 마신 지환이 먼저들 가라고
모두를 보낸 후, 혼자 노래방에 남아있었다. 이미 아침까지의 계산이 끝난 탓에
누구하나 뭐라 할 사람은 없었고, 혼자 두기엔 걱정이 된 래연이 함께 남아있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운전을 못하겠다. 눈 좀 붙였다가 내일 가야겠다.'
'택시비 줄게.'
'돈은 나도 있어. 너야말로 빨리 집에 가라.'
'…….'


그리고 잠든 지환을 두고 혼자서 심심해진 래연이 이 노래를
불렀었다. 그 때, 자고 있는 줄 알았던 지환이 중얼거렸다.

'좋다….'

놀랐지만, 칭찬을 받아 조금 들뜬 기분으로 물었다.

'노래가? 아니면 내 목소리가…?'
'응… 좋아……좋아해….'

좋다는건 노래인지, 아니면 자신의 목소리인지 래연은 모른다.














"노래 좋군."

느닷없는 목소리에 래연의 심장이 두근 거렸다.

자신의 목소리지만,
여전히 생소한 목소리가 여전히 차안의 두 사람을 감싸고 있었다.












Fly me to the moon and
Let me play among those stars
Let me see what spring is like
On Jupiter and Mars

In other words, hold my hand
In other words, darling kiss me



나를 달로 데리고 가 주세요.
별들 사이에서 연주하게 해 줘요.
목성이나 화성에서는
봄이 어떠할런지 보고 싶어요.

다른 말로 하자면... 내 손을 잡아줘요.
사랑아, 키스해 주세요.














그 날 새벽, 몰래 지환의 입술에 자신이 키스했다는 사실을
래연은 평생 비밀로 하자고 마음먹었지만,













Fill my heart with song and
Let me sing for ever more
You are all I long for
All I worship and adore

In other words, please be true
In other words, I love you





노래로 내 마음을 가득 채워 주세요.
더 많이 노래하고 싶어요.
당신은 내가 갈망하는 모든 것이죠.
내가 경배하고 찬양하는 모든 것이어요.

다른 말로 하자면… 제게 진실하게 대해줘요.
당신을 사랑합니다.













밤 새 한숨도 못잔 지환이 자신의 입술에 래연의 입술이 닿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대로 껴안아 버리고 싶은 심정을 간신히 억누르느라 굉장한
인내력을 발휘했다는 사실을 래연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In other words, please be true
In other words, I love you


다른 말로 하자면… 제게 진실하게 대해줘요.
당신을 사랑합니다.













차창 밖을 통해 바라본 까만 하늘에, 달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In other words, I love you

당신을… 사랑합니다….
























======================= 후기 ^^* ========================

작년 겨울 이벤트 소설이었던 'kissing you' 의 정확히 5년 후의 이야기입니다.
(에반게리온에 또다니 버닝- 중인 요즘이 눈에 보이는 한편이군요..그치만
Fly me to the moon은 너무 좋아요...레이 버전도..ㅜ.ㅜ)
앞부분의 지윤이와 재인이 이야기는 서비스(?) 랄까요 ^^;
제 글에서 굉장한 미형, 으로 나오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에 래연이 얼굴을 즐겁게
상상하며 쓸 수 있어서 좋았어요. (거기다 연예인;)

기회가 닿으면 본편으로 길게 써보고도 싶지만...무리겠죠 ^^;;


행복하고 따스한 겨울 되세요 ^^


덧 래연언니..이름 도용(;)해서 죄송합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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