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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83)  공지 (1)  단편 (48)  장편 (3)  축설 (10)  행사 (21) 
하리
2002년 BabyAlone 생일 축하 : 세월 (하)



연진은 진우가 따라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아니 고개를 드는 것만이 아니라 무언가 제대로된 말 조차 꺼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울음 소리를 죽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힘겨웠기 때문에 연진은 거친 숨을
몰아 쉬며 서 있는 진우의 존재를 알면서도 무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던 진우가 옆에 앉아 슬그머니 내민 손수건을 받아든
연진은 문득 혜중의 모습이 떠올렸다.

아까 그 화장실에 주저앉아 울고 있던 혜중의 심정이 이런 것이었을까?
그도 자신과 같이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런 모습
따위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심정이었을까?

눈물에 젖어 무엇 하나 제대로 분간할 수 없는 그녀의 눈엔 그 손수건이 마치
아까 혜중에게 건냈던 자신의 것과 같이 보였고, 아주 조금 이렇게 울고 있는
이유나, 스스로도 납득할 수 없었던 묘한 감정상태에 대한 인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 선배님… 저 정말 바보인가봐요. 아니 애가 맞는 거 같아요.
   자기 마음 하나 제대로 모르는……. "

울먹이는 소리로 자신이 바보라고 말하는 연진에게 진우는 아무말도 해줄 수
없었다.
그녀의 심정을 자신이 똑같이 느낄 수 없는 상태에서 해주는 위로는 사탕발림에
지나지 않을 뿐었고, 그런 거짓을 뇌까리는 것은 그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 전 정말 단순하게 생각했어요. 그냥 내가 좋아하는 선배를 돕는 거라고…….
   아주 조금쯤은 혜중선배의 반응이 어떨지 보고 싶다는 호기심도 있었고…….
   그런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전 저 스스로에게 조금도 솔직하지 못했어요.
   그래요.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고해도 평소의 저라면 그런 일에 그렇게
   선뜻 나서지 않았을 텐데. 왜 전 그걸 단순히 호기심과 호의라고만
   생각했을까요……. 왜요? "

낮게 이어지는 연진의 이야기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알아듣기 힘들만큼
작은 소리였지만 지금 그녀가 내뱉는 말은 진우를 충분히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이미 황당하기 그지없는 상황에 더해진 혼란은 그의 사고체계를 더 정신없이
만들고 있었다.

"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돕다니 뭘 도와? 그리고 혜중이의
   반응이라니? "

" 하하… 제가 미쳤나봐요. 대체 선배를 붙들고 무슨 말을……. "

그냥 얼버무리고 싶었지만 이대로 어물쩡하게 넘어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연진도 알고 있었다. 아마도 이렇게 속내를 뱉어내버렸으니 지금까지의 모든
이야기를 다 털어놓을 수 밖에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녀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다 털어놔버리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애써 보려하지 않았던 숨겨진 진심을 더이상 외면할 수 없었고, 그리고 그것을
혼자 감당하기엔 그녀는 아직 나약할 뿐이었다.
주변에 많은 친구들이 있다고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을 만한 사람은
없었다.
아니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고 해도 쉽게 털어놓을 만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마도 그녀의 내면 어디쯤에선가는 진우라면 이런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을
거라고, 적어도 그라면 이 모든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뒤에도 결코 여기저기
떠벌이거나,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들어줄 거라는 그런 기대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경수와 혜중의 오랜 인연을 잘 알고 있는 진우라면…….

" 저… 경수 오빠와 애인 같은 거 아니예요. 전 단지 경수 오빠를 도와주기
   위해서 그런 척 했던 거죠. 우습죠? 다들 잘 속아 주시던걸요……. "

애인 같은 것이 아니라는 말 한마디로도 대충의 상황이 짐작이 가버렸다.
설마라고 조차도 생각해본적이 없었지만, 그리고 어쩌면 자신의 짐작이 틀린
것일지도 모르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전혀 충격으로 느껴지지 않는
자신도 그렇지만 그런 일을 무모하게 실행한 연진도 경수도 참으로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적어도 표면의 의식으로는 상상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지만 이런 상황짐작에
충격받지 않는 것은 아마도 그의 무의식 속에선 이미 그럴지도 모른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본심을 제대로 보지 못한 연진과 닮은 것이었다.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심리.

" 후우… 다 얘기 해봐. "
"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까요? 경수 오빠 부터? 선배님도 아시겠지만 오빠가
   후배들에게 인기가 많죠. 저도 오빠가 좋아요. 줄리엣을 맡았을 때도 많이
   도와주셨고, 대학에 가서도 오빠가 참 많이 도와주셨거든요. 진짜 오빠가
   있다면 이럴거라는 생각도 들고……. 나이 차이 같은 거 상관하지 않고 편하게
   대해주는 오빠랑 참 많은 얘기를 했었거든요. 그런데… 후우… 어느 날 오빠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어요. 솔직히 전 그 대상이 설마… 설마……. "

말을 맺지 못하고 주저하는 연진을 보며 진우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아마도 쉽게 꺼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연진의 입장이라도 이런 이야기를 쉽게 꺼내기는 힘들었을 것이
분명하니까.

" 그 대상이 혜중이었니? "
" …네……. 아주 오래도록 형제보다도 더 가깝게 지내왔기 때문에 쉽게 인정하기
   힘들었지만 어느 날 깨닫고 보니 혜중 선배님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했어요.
   그래서 참 오래 고민했데요. 어떻게 해야할지……. 분명히 혜중 선배에겐
   우정일 뿐일텐데 그런 감정을 어떻게 해야할지……. 그냥 자기만 정리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해보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됐나봐요. 결국… 혜중
   선배에게 다 털어놓고 프로포즈를 했나봐요. 그런데… 아시죠? 혜중 선배님이
   어떤 사람인지……. 오빠는 참 힘들게 털어놓은 이야기를 그냥 무덤덤하게 받아
   넘겨 버리고 아무것도 못들은 사람처럼……. 그게 견디기 힘들어서 여러 번
   자기 맘을 토로했는데도 혜중 선배님은 돌부처처럼 무반응이고……. 많이
   힘들었대요. 그러다가 우연찮게 저하고 그 얘기를 하게 된거예요. 솔직히 저도
   조금 놀라긴 했지만 왠지 그게 이상하다거나…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냥 이 사람들이라면 이런게 너무 당연한 거 같은 그런거요. 그리고 오빠가
   도와달라고 했어요. 혜중 선배가… 솔직해질 수 있게 해달라고…….
   저요. 정말 그땐 그게 단지 호기심이고, 그저 호의일 뿐이라고 생각했어요.
   혜중 선배님이 우리 둘이 사귄다고 했을 때, 그냥 웃어준 거… 솔직히 싫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렇게 같이 어울리면서 보여지는 반응은 그게
   아니었거든요. 왜 미리 알지 못했을까요? 이렇게 될거라는 거… 이미 알고
   시작한 일인데, 왜 제 마음은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

이건 그렇게 기막힐 일도, 황당할 일도 아니었다.
적어도 혜중과 경수가 동성이 아닌 이성이었다면 절대 황당할리 없는 일이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아주 흔히 일어날 수 있는 감정의 엊갈림에 불과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연진의 입장이 되고 보면 그것이 이성 사이에서 일어난
일어도 참 가슴 아픈 일이터인데, 이성이 아닌 동성의 두 사람 사이에 끼어서
자신이 돕고 싶었던 사람에 대한 진심을 알고 나면 아마도 스스로 어떻게
해야할지 갈피를 잡기 힘들었을 것이다.

" 전…… 아까 혜중 선배를 데리고 가는 오빠를 보면서, 아니 술에 취한 혜중
   선배를 보면서 이제 제가 할 일이 더이상 없다는 걸 알았어요. 제 역할은 딱
   여기까지라는 거요. 그제서야 깨달은 거예요. 오빠를 돕겠다고 했던 마음.
   그건 단순한 호의나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거요. 저 어떻게 해요. 진우
   선배? 나 어떻게 해야하죠? 이제 와서 이런 거 깨달았다고 나서서 말릴 수도
   없잖아요. 내 마음이 이러니까 받아달라고 할 수도 없잖아요. 사랑이 쟁취하는
   거라고 해도.. 그건 그냥 말일 뿐이잖아요. 저… 정말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가
   없어요. 이런 자신이 싫어서 견딜 수가 없어요. 내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아서…
   미워 죽겠어요. "

말 끝에 다시 울음을 터트리는 연진을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당장 무슨 말을
꺼내야할지 알 수 없었다.
이건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정말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 그런 상황이었다.

" 경수 녀석… 정말 나쁜 놈이다. 그런 부탁 같은 걸……. 후… 하필 그녀석을
   좋아하게 됐냐. "

경수를 탓하는 진우의 말에 연진이 수그렸던 고개를 힘껏 흔들며 부정했다.

" 아니예요. 경수 오빠가… 경수 오빠가 아니예요……. "

경수가 아니다.
황당하게 시작되서 이젠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힘든 상황으로 치닿던 이야기는
아예 기도 안찬 결론으로 끝이 나고 있었다.
경수가 아니라면 혜중?

" 너……. "
" 저도… 저도 몰랐어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혜중 선배님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었는데……. 혜중 선배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들은 것 말고는 없는데……. 기껏해야 까마득하게
   먼 선배일 뿐인데……. 그런데… 저 경수 오빠 옆에 늘 변함없는 얼굴로 서
   있는 혜중 선배를 보고 있었나봐요. 무덤덤한 얼굴로 경수 오빠의 옆에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서 있는 혜중 선배를 계속 보고 있었던 가봐요.
   그랬나봐요. 오빠를 도우면서 계속 혜중 선배님의 반응을 살피는 거, 돕는
   입장이니까 너무나 당연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그런데 그거 아니었어요.
   타인에 대해서 무심하지는 않지만 그렇게까지 예민한 성격 아니예요… 저…….
   그런데도 유난히 혜중 선배님의 반응은 아주 쉽게 느끼고, 보이고
   그랬던거……. 단지 경수 오빠를 도와주기 위해서라고… 그래서 그런거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내가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사람이니까요. 혜중 선배라는 사람… 내가 아무리
   절실하게 마음에 담아둔다고 해도 나를 돌아볼 사람이 아니라는 거 알고 있었을
   거예요. 그래서 애써 진실을 외면 했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경수 오빠… 너무
   좋은 사람이잖아요. 정말 친오빠처럼 그렇게 좋아하는데…… 그런 사람에게서,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혜중 선배를 뺐는 일 같은 거 저 못해요.
   그런 일… 할 수 없는데… 알면서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픈 거죠?
   선배……. 나 지금 가슴이 너무 아파요. 태어나서 이렇게까지 아팠던 적이
   없어요. 숨 쉬는 것도 힘들만큼… 그렇게 가슴이 아파요… 아파요……. "

애끓는 울음 소리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일까?
들어본적 없는 울음 소리였다. 통곡을 하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봐 왔지만 그가
여태껏 알았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느낌의 것이었다.
마치 이대로 세상이 끝날 듯이, 심장을 터트리고 창자를 온통 난도질 해서
끊어내려는 듯이 그렇게 울고 있었다.
진우는 여자가 우는 것을 제일 싫어했다. 딱히 어떤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지만
여자들의 울음소리는 늘 악어의 눈물처럼 그렇게 가증스러움이 저변에 깔려있는
것만 같아서 결코 듣고 싶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 옆에서 고통스럽게
터져나오는 울음 소리는 그가 아는 여자들의 눈물과는 아주 다르게 들렸다.
설령 자신이 사랑을 잘 모른다고 해도 연진의 마음이 어떠할지…….
어떻게도 할 수 없는 그 마음이 어떠할지 어렴풋이나마 알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젠 아예 무릎에 고개를 파뭍고 통곡과도 같은 울음을 내뱉는 연진을 바라보던
진우는 깊은 연민과 최고의 위로를 담아 그녀의 등을 두드려주는 것 말고는 다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이건 정말 시간만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저 그 시간이 가능한 길지
않기만을 바래줄 수 밖에 없는…….
최소한의 시간으로 그녀의 아픈 가슴이 치유될 수 있기만을 바랄 수 밖에는…….



원하지 않아도 자연은 세상사와는 상관없이 정해진 순환의 바퀴를 거침없이
돌려버린다.
어느 새 뿌옇게 밝아오는 하늘을 올려다 보며 진우는 대체 인간의 인연이라는
것… 그것이 어떤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는 입장. 더욱이 인간사에 대한 글을 쓰는 입장이고 보니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 그 얽히고 섥히는 관계에 대해서 나름대로는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가 알고 있는 것은 너무나 조악하고 얕은 깊이의
것들일 뿐이었다.
단순한 것이 좋아서 감정으로 깊이 얽히는 것을 거부해왔고, 좀더 깊이 있는
만남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온 그의 주관은 틀려도 한참 틀린 지나치게
아집으로 똘똘뭉친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삶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 많이 아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 딱
떨어지는 답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렇게 맥없이 등이나
두들겨주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았을 텐데…….

친한것도, 잘 아는 것도 아니지만 인간적으로 연진의 상황에 대해서 연민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그녀를 편들어주거나 가벼운 충고 따위를 해줄 수는
없었다.
어쩌면 이렇게 말없이 그녀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일지도
모른다.
거기다 자신의 친한 두 친구 녀석 사이에 벌어질 일 또한 어쩌면 앞으로 아주
힘든 싸움이 될지 모르니까.
그 모든 일을 자신이 나서서 해결할 수 없는 거라면 그냥 곁에서 지켜보아주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그저 침묵한채로 묵묵히 지켜 보는 것.
어쩌면 연진이 별로 친하지도 않은 그를 붙들고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은
적어도 그라면 이런 이야기를 어디서든 떠버리지 않을 거라는 것 때문일 것이다.
엄청난 입담으로 유명하지만 반면에 들은 이야기를 쉽게 떠버리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그랬다. 한번 발동이 걸리면 사흘밤낮을 떠들어댈 수 있는 그였지만, 누군가
자신을 믿고 털어 놓은 이야기를 실수로라도 떠버리는 일 따위는 없다는 것이
그이 장점 중 하나였고, 친구들에게, 동료들에게 인정받는 이유 중 하나였다.
아마도 앞으로 살아가면서 또 하나, 기억 깊은 곳에 담아두고 자물쇠를 채워야할
것이 더해진 것일지 모른다.
살아가다 언제쯤엔가는 두 녀석과든 아니면 연진과 혹은 네 사람이 같이
이 이야기를 걸릴 것 없이 편하게 이야기할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아주
오랫동안 그는 오늘 들은 모든 이야기를 듣지 않은 것처럼 잊고 살아야 할
것이었다.
그리고 경수와 혜중의 곁에서 지금까지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들이 모든
것을 이야기해줄 때까지 그렇게 조용히 침묵한채 지켜 보아야 할 것이다.

울어서 퉁퉁부었지만 조금쯤 편해진 얼굴로 버스에 오르는 연진을 배웅한 진우는
이제 환하게 밝아진 가을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너무나 파래서 손을 내밀면 파란물이 뭍어날 것만 같은 하늘이 왠지 서글퍼
보였다.

" 휴우……. 멀었구나. 이 진우… 멀어도 한참 멀었다……. "








차에 오른 뒤에도 한참을 앞뒤가 맞지 않는 말로 중얼거리던 혜중이 자신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고 잠이 들어버리자 경수는 참았던 한숨을 내뱉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 절대 옳은 방법이 아니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혜중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저지른 일이었지만 그가 이런 모습을 보이게 만들
생각은 없었는데……. 게다가 남겨진 연진의 표정도 마음에 걸렸다.
싹싹하고 밝은 연진의 성격은 남자 형제 뿐인 경수에겐 이런 여동생 하나 얻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할만큼 유쾌하고 즐거운 것이었다. 게다가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가 되버린 자신의 마음으로  인해서 괴롭기 그지없던 경수에게 연진은 그런
상황을 잠시라도 여유있게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는 청량제와도 같았던 것이다.
어떤 상황에도 고민 따위는 하지 않을 것처럼 밝기만한 연진의 얼굴에 뭔가
상당히 불편한 표정이 어린 것을 보지 못했다면 모르지만 봐버리고 나니 내
문제만으로도 골치가 아프다는 핑계로 어물쩍 넘어갈 수 없었다. 애초에 아무리
편하고 성격좋은 연진이라고 해도 이런 부탁 따위는 하지 말았어야 했던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제야 하는 자신의 우매함이 화가 났다.
그녀의 얼굴에 그런 표정이 떠오른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자신이 그녀에게
부탁한 일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바보가 아니고서야 모를 수 없으니까.

대체 어쩌다 이런 상황까지 왔을까…….

그저 혜중의 마음을 어떻게든 자신에게 향하도록 만들고 싶다는 열망 외엔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보려하지 않은 것이 잘못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혜중의 마음을
얻으려는 방법 자체가 틀렸던 걸지도 몰랐다.
삼십일년을 살았고 그 세월 중에 삼분에 이가 넘는 이십오년이란 시간을 항상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던 혜중이 어떤 인물인지 잘 알면서 이런 얄팍한 수를
생각해낸 스스로가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그의 성격이 타고나게 무덤덤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감정이 없는 것도 아니고 단지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무반응으로 당황을 감추는 것이 혜중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왜 그리 성급했던 건지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정작 필요한 것은 시간이었는데…….
혜중에 대한 감정은 경수 자신에게도 처음엔 당황스럽기 그지 없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아무리 둘도없는 오랜 친구라 해도 그들처럼
가까울 수는 없는 것이다. 나와 너라는 경계가 모호할만큼, 형제라도 이렇게까지
서로를 잘 알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할만큼 너와 내가 불분명한 두 사람의 관계는
그렇게 귀결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그가 받아들였듯이, 혜중도 결국은
그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성급함, 하루라도 빨리 그의
마음을 자신에게로 돌리고 싶다는, 자신의 마음을 그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이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이었다.

스스로 경솔함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자신에게 이런 경솔한
면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일이 아니었다.
꼬일대로 꼬여버린 것일 수도 있고, 운이 좋다면 그가 바라는대로 일이 귀결될
수도 있었지만 분명한 것은 혜중으로 부터, 그리고 다른 친구들로 부터 엄청난
비난을 듣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물론 혜중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면 그런 비난
같은 것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는 것이지만 연진에게 주었을 상처와 앞으로
연진이 감당해야할 일들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속편하게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고 뒤로 미뤄버리고 싶지만 그러기에 경수라는 사람은
고지식할 만큼 솔직하고 성실한 인간이었으니까…….

잠든 혜중을 안은 채로 고민 속에 빠져 있던 경수는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기사의 말에 생각 속에서 빠져나와야 했다.

" 혜중아. 유 혜중. 일어나. 집에 다 왔다. 임마… 일어나. 죄송합니다 기사님,
   얼마죠? "
" 이만원 입니다. "
" 여기요. "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혜중을 추스르며 요금을 지불한 경수는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진 혜중을 힘들게 들쳐엎고 그들이 살고 있는 원룸 계단에 올라섰다.
유난히 높은 곳을 좋아하는 혜중의 성격 때문에 제일 꼭대기 층에 집을
얻었을때는 그냥 그러려니 했지만 이렇게 아주 가끔 술에 취해버린 혜중을 엎고
올라가야할 때는 악소리가 나올 만큼 높은 곳을 좋아하는 그의 취향이
못마땅했다.
그냥 자신처럼 적당한 층에서 살면 안돼냐고 다음 날 술에서 깨어난 혜중에게
퉁박을 주곤 했지만, 지금은 그런 힘겨움 조차도 고맙기 그지없었다. 이렇게
몸이라도 혹사를 하지 않으면 머리 속을 오가는 불편한 생각들이 그를 더 괴롭게
만들것이 분명하니까.

정신을 놓아버린 사람의 몸처럼 무거운 것은 없었다.
비슷한 덩치이기 때문에 맨정신이라면 이렇게 엎고 계단을 오르는 것이 과히
힘들게 느껴지지 않겠지만 정신을 놓아버린 사람은 그 무게가 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계속 옆으로 늘어지는 혜중을 힘들게 추스리며 꼭대기 층까지 올라간 경수는 대체
6층짜리 원룸, 그것도 땅 값 비싸기로 유명한 동네에 지어진 원룸에 엘리베이터
하나 없다는게 말이 되냐고 중얼거리며 미리 꺼내들고 있던 열쇠로 힘들게 문을
열고 들어가 아직도 인사불성인 혜중을 침대에 떨구고는 그대로 바닥으로 주저
앉고 말았다.
한참을 숨을 고르며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던 경수는 혜중이 내뱉는 괴로운
신음소리에 지친 몸을 일으키고 침대 가에 올라 앉았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도 그냥 죽은 듯이 잠이 들뿐 이렇게 괴로운
신음소리를 내는 일이 없던 혜중은 얼굴까지 잔뜩 치푸린채로 무언가 중얼거리며
힘겨운 숨을 내뱉고 있었다.

" 싫어……. 이런…… 욱…… 하아…하아… 가 버려…… 싫어……. "
" 후우… 혜중아… 뒤채지 마. 옷 벗겨줄께. 좀 가만 있어봐. "
" 하아… 하아… 경수야… 하아……. 죽을 거 같아……. 하아… 하아……. "

그냥 그대로 옆에 뻗어 눕고 싶은 몸을 애써 추스르며 경수는 먼저 혜중의 옷을
벗겨 냈다.
술에 취했을 때 몸을 조이는 옷가지가 얼마나 거추장스럽고 짜증스러운지 잘 알고
있었다.
평소처럼 혜중의 옷가지를 대충 벗겨낸 경수는 아직은 더위가 채 가시지 않아
후덥지근한 방 안의 공기를 바꾸기 위해 창문을 열고, 땀에 젖은 자신의 옷가지도
벗어 버렸다.
다른 때였다면 이런 일련의 행위들이 그다지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을테지만
마음에 부담을 가지고 있는 지금은 사소한 일 조차도 버겁게 느껴졌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라더니…….
땀으로 끈적이는 몸을 씼고 싶었지만 몇 걸음만 가면 되는 욕실까지 가는 것도
귀찮게 느껴질 만큼 경수는 지쳐 있었다.
마음의 부담도 부담이지만 경수 역시 술을 많이 마셨고, 게다가 술을 마실때의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어서인지 슬슬 취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이대로 늘어졌다간
그냥 골아떨어질 것 같아 늘어지려는 몸을 이끌고 욕실로 들어간 경수는 차가운
물줄기 아래 몸을 맡기고 나서야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얼마나 오래 차가운 물 아래 서 있었을까.
슬슬 한기가 들기 시작하자 대충 비누칠을 하고 몸을 씼은 경수는 아무렇게나
꺼내들고 온 혜중의 옷을 입고 타올을 찬물에 적셔서 욕실을 나섰다.
땀을 흘린 것 같지는 않지만 저렇게 술에 취해 있으니 분명히 차가운 물수건으로
대충이라도 열기를 식혀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았던 것이다.

한숨을 내쉬며 욕실을 나와 침대를 바라본 경수는 분명 거기에 누워 있어야할
혜중이 보이지 않는 것을 깨닫고 놀라 집 안을 둘러 보았다. 그리고 작은 베란에
나가 주저 앉아 있는 혜중을 발견했다.
단 한번도 본적없는 처량하기 그지없는 자세로 난간에 매달려 주저앉아 있는
친구의 모습이 경수의 마음을 한층 무겁고 괴롭게 만들었다.
그가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자신의 짧은 생각 때문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단 한번도 타인에게 취한 모습 따위 보여준 적이 없었던 혜중이 오늘 그렇게
취해버린 것도, 취해서 괴로운 숨을 몰아쉬게 만든것도, 그리고 저렇게 그답지
않은 처량한 모습으로 주저앉게 만든 것도 분명 경수 자신이었다.

" 혜중아……. 왜 여기 이러고 있어. "

조용히 베란다로 나가 그를 불렀지만 혜중은 그의 부름을 듣지 못한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 야… 유 혜중. 일어나. 속옷 바람에 뭐 하는 거야. "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일어나라고 채근하며 손을 붙들던 경수는 괴롭게 흘러나오는
혜중의 말소리에 그만 얼어붙어 버렸다.

" 가지마. 경수야… 그렇게 가버리지마. 연진이한테 가버리지 마… 제발…….
   제발……. "

술에 취해서도, 잠결에 하는 말도 아닌 분명한 의사의 전달이었다.
울먹임이 섞인 혜중의 독백과도 같은 읊조림이 경수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 혜중아… 난……. "
" 말 하지마. 안된다고 하지마. 제발..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니. 어떻게 하면
   돌아와줄거니? 내가 가라고 해놓고 이제와서 돌아오라고 하는 거 정말 뻔뻔한거
   아는데… 가지마, 경수야. 그렇게 다른 사람한테 가버리지 마. 나 이제서야 내
   마음이 어떤지 알았어. 너무 늦었다고 하지마. 부탁이다. 너무 늦은게 아니라고
   해줘. 부탁해……. "

뭐라고 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그를 끌어안고 자신은 어디도 가지 않는다고, 애초에 다른 곳으로
간적도 없었다고 해야하는데, 그런데도 경수는 한마디도 꺼낼 수 없었고, 어떤
행동도 할 수가 없었다.
혜중의 고통스러운 말들이 그를 올가미처럼 얽어메서 꼼짝도 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 경수야. 나…… 알고 있었어. 내가 널 단지 친구로 좋아하는게 아니라 사랑하고
   있다는 거… 알고 있었어. 알면서 그걸 인정하지 않았던 거야. 그러면 널
   잃어버리게 될까봐서 두려웠던 거야. 너 말고… 그래 너란 놈 말고 누가 나같은
   놈을 친구라고 해주겠어. 너 말고는 누구도 편하게 대할 수 없어서, 행여라도
   내 마음 같은거 인정하게 되면 널 잃어버릴거 같아서… 니가 없으면 난
   안되니까… 그게 두려워서… 경수야. 제발 말해줘. 늦은거 아니라고 해줘. 너
   아직 연진이한테 다 가버린 거 아니라고……. 지금이라도 내가 용기를 내면
   다시 널 되돌리 수 있다고 제발… 부탁할께. 니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어떤 짓이라도 할께. 그래… 연진이한테 무릎을 꿇고 빌라고 하면
   그렇게도 할 수 있어. 평생 집 밖에 나가지 말고 너만 보고 있으라고 해도 나
   할 수 있어. 널 연진이한테서 되찾아 올 수 만 있다면 나 뭐든 다 할께.
   연진이한테 줄 상처, 그 대가 내가 다 받을 수 있어. 그 짐 내가 혼자 다
   짊어져야 한다고 하면 그렇게 할께. 그러니까… 그러니까… 제발……. "
" 아냐… 그런거 아니야. 혜중아… 니가 그럴 필요 없어. 그러지 마. 그런게
   아니야……. "

무너지듯 혜중의 뒤로 주저앉아 그의 몸을 끌어안은 경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혜중의 고통스러운 말을 끊어 버렸다.
그게 아닌데… 이렇게 괴로운 말을 털어놓을 사람은 그가 아닌 자신인데…….

" 경수야… 나……. 잘 할께. 뭐든… 다… 할테니까…… 제발…. "
" 아니라니까…!!!!!!! 그만 해. 너야말로 그만 해. 그런게 아니야. 이 바보야.
   그런 거 아니란 말이다. 니가 이러지 않아도… 이러지 않아도 난……. "

울먹이던 혜중은 이제 서럽게 울고 있었다. 등 뒤로 자신을 감싸안은 경수의 품
안에 몸을 묻고 정말 서럽게 울고 있었다.
서른도 더 먹은 남자가 이렇게 우는 일 따위.. 누구인들 쉽게 상상할 수 있을까.
남자에게 눈물은 아주 귀한 것이라고, 유교적 전통이 뿌리깊게 인식된 사회에서
자라난 사람이라면 먹을만큼 나이 먹은 사내가 이렇게 우는 것 따위는
장난으로라도 생각할 일이 아니었고, 또 울 일이 있다고 한들 쉽게 눈물을
뽑아내지 않았다.
더군다나 유 혜중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매사에 무감동 그 자체인 그가
이렇게 우는 것은 경수도 본적이 없는 일이었다. 어떤 일이든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없는 친구가 이렇게 무너져 우는 모습을 바래서 한 일이 아닌데, 그저 그의
마음을 얻고 싶었을 뿐 이렇게까지 그를 무너트릴 생각은 없었는데…….

경수는 괴로움으로 쪼그라드는 마음을 표현하기라도 하듯 몸을 웅크려 더 깊이
혜중을 끌어 안으며 그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 바보야. 그런거 아니야. 널 울리려고 이런게 아니야. 니가 이러지 않아도 나
   어디도 가지 않아. 어디도 갈 수 없어. 아니… 가본적도 없어. 아주 오래전부터
   난 네 옆에 있었다고……. 너 밖에 없는데 내가 어디로 갈 수 있겠냐.
   미친놈처럼 너 말고는 안보이는데 어디로 간다고 그래. 어디로…….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너한테 이러면 안되는데……. 알고 있었으면서, 그냥
   지금까지처럼 기다렸어야 하는데… 조급했어. 왠지 기다리기가 힘들었어.
   내 마음 인정하고 나니까 기다리는게 두려워지기 시작했어.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언제까지고 넌 그렇게 변하지 않고 있을것만 같아서… 그렇게 기다리다
   널 잃게될거 같아서 겁이 났던거야. 그래서… 바보같은 짓을 저질렀다.
   그러면 안되는거 알면서도 모르는척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다고…….
   이러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고 거짓말을 했어. 연진이한테도 못할짓 한건 니가
   아니라 나야. 착한 녀석인데……. 그 녀석 그 좋은 마음 내가 이용했다.
   같이 너 속여 달라고, 어떻게든 니 마음 좀 잡게 해달라고… 내가 그랬어.
   니가 아니라 내가 나빠. 그러니까.. 이러지 마. 니가 이러지 않아도 나 어디
   안가. 가라고 해도 못가. 너 아니면 나 갈데가 없어. 너처럼 나도 너 아니면
   안되는데……. 안가…… 안가… 나 안가니까. 그렇게 울지마. 정말
   고통받아야할 사람도, 울어면서 용서를 빌어야할 사람도 난데…… 니가
   그러지마……. 부탁이다. 울지마 혜중아… 울지마……. "

안가.
다른 말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안간다는 말 외엔 다른 말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어깨에 파묻힌 경수의 입을 통해서 억눌리채 흘러나온 수 많은 말들중에
혜중의 귓속을 파고든 말은 안간다는 말 단 한마디였다.
이젠 너무 늦어버린 거라고 반쯤 채념해버렸지만 보내야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그가 가는 거라면 그렇게 완전히
보내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그렇게
가슴 아픈데 도무지 자신의 마음을 감추고 아무렇지도 않게 친구라는 이름으로
곁에 남아있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연진을 먼저 내보내고 펑펑 소리내어 울면서 이제 너무 늦어버려 돌이킬 수 없는
거라면 차라리 깨끗하게 털어놓고 완전히 보내버려야겠다고 결심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취한 모습을 보여주는 일 같은 것은 그를 보내는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사람에 대한 욕심 따위는 눈씼고 찾아봐도 없는
사람이 자신이었고, 경수가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은 그저 길가에 널린 돌맹이나
다름없기에 그런 행동으로 자신의 이미지가 망가지는 것도, 우스워지는 것도
별의미가 없었다.
그저 되돌릴 수 없이 되어버린 일이지만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털어놓지 않는다면
경수를 연진에게 완전히 보내줄 자신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연진이 좋은 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어쩌면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할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보다 우정 하나 잃는다고 해도 평생을 함께하며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과 맺어지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의 인생을 위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애써 자신을 다독이면서 그런 거라면 아예 보내버려야 한다고…….

사람에 대한 욕심도 미련도 없는 자신이지만 경수에 대한 감정은 그렇게 아무런
미련도 욕심도 없이 훌훌 털어버릴 자신이 없었고, 이런 감정을 속에 감춰두고
그를 대할 자신도 없었다. 누구에게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을 자신이 있었지만
경수에게만큼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마도 한동안은 그런 감정을 잘 숨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분명 얼마 안가 자신의
그런 감정은 그에게 드러날 것이 분명했고, 그런 불편한 감정 따위로 친구의
행복할 앞날에 껄끄러운 걸림돌이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유치한 희생정신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혜중은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경수를 다시 되찾을 수 없다면 차라리 등을 돌리는 것 말고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혜중에겐 그를 되돌릴 가능성 따위는 제로상태로
보였다.
그래서 술 기운을 빌어 취한척 자신의 감정을 털어버리고 완전히 보내버릴
작정이었다.
가란다고 쉽게 등돌리고 친구의 인연마저 끊어벌릴 녀석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에 대한 이런 감정을 품고서도 전처럼 편하게 친구로 머물 수 없다고
한다면 얼마든지 자신이 원하는대로 가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떠나서 경수는 늘 그랬으니까. 자신이 원한다면 영영 등을
돌려야 한다고 해도 그렇게 해줄 녀석이었으니까…….

그런데 안간다고 한다.
울고 있는 혜중을 끌어 안고 그만큼이나 괴로운 목소리로 안간다고 한다.

더는 제대로 된 생각 따위를 할 수가 없었다.
경수가 한 일이 잘한 일이 아니라는 것, 욕을 먹어 마땅한 일이라는 것을
희미하게 남아 있는 이성은 인식하고 있었지만 이미 혜중의 이성은 가물가물하게
마음의 깊은 수렁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머리 속과 가슴 속은 온통 그가 가지 않는 다는 사실, 그 안도감으로 터질듯
충만하게 차오르고 있을 뿐이었다.

" 경수야……. "
" 안가. 혜중이 너 두고 다른 어디도 안가… 안갈거야. 울지마. "

품 안에 몸을 비트는 혜중을 더욱 깊이 끌어 안으며 경수는 안간다는 말만을
되풀이 하고 있었다. 경수 역시도 이미 이성 따위는 마비되버린 지 오래였던
것이다.
가지 말라며 우는 혜중 말고는, 그가 서럽게 울고 있고 어떻게든 그 울음을
그치게 해야 한다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 경수야……. 나 좀 봐. 니 얼굴……. "

마치 혜중이 생명줄이라도 된다는 듯이 결사적으로 끌언안고 있는 경수의 품
안에서 몸을 비틀며 불편한 자세로 그의 얼굴을 보려고 바르작대는 혜중을 돌려
앉힌 그는 눈물로 젖어 있는 친구,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바라 보았다.
아주 오래 보아서 익숙할대로 익숙해진, 어쩌면 자신의 얼굴 보다도 더 익숙한
그의 얼굴은 그 익숙함 만큼이나 새롭게 느껴지고 있었다.
자신의 성급한 욕심으로 흘리게 만든 눈물로 젖어 있는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도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이런 눈물에 젖은 얼굴은 그를 알고 처음 보는 것임에도
낮설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스럽게 보이는 것을 보면 사랑의 힘이라는 것이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이었다.

뚫어져라 자신을 바라보는 경수의 얼굴을 마주보며 조심스럽게 그의 뺨을
두 손으로 더듬어 붙잡은 혜중은 약간 경직되 보이는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살며시 가져다 대었다.

" 사랑해……. "

경수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댄채로 사랑한다고 말하고 나니 그제서야 이것이
현실이라고 느껴졌다.
말은 굉장히 커다란 힘을 지니고 있다는 말은 결코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말 한마디 하는 것도 재삼 재사 숙고 하고 해야하는 거라고, 한번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은 반드시 현실로 이루어지는 거라시던 조부의 그 말씀은 정말
지당한 말씀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마음이 아무리 간절하다고 한들 그것을 입 밖으로 소리내어 말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눈물로 축축하게 젖어있는 혜중의 입술은 달콤하기만 했다.
둘도 없는 친구로 지내오면서 익숙한 얼굴 만큼이나 그의 몸 중 어느 곳도
경수에게 낮선 곳이 없었지만 이렇게 입술을 마주대고 그 입술을 달콤하게 여기는
날이 올거라고 과거의 누군가가 말했다면 아마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랑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모르지만 서로의 마음을 인정하기 전까지는
이런 달콤함 따위는 말도 안되는 일이었을 테니까.

마주 닿은 채로 사랑한다고 되뇌이는 혜중의 입술의 감촉을 느끼던 경수는
조심스럽게 달싹거리는 입술을 혀 끝으로 더듬어 봤다.
키스 같은 것이야 수도 없이 해본 것이었지만 이렇게 상대의 입술을 달콤하게
느껴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그런 느낌은 경수 혼자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오랜 시간 생활을, 그리고 그 생활에서 연유되는 감정을 함께 공유한
두 사람이기에 서로가 느끼는 사소한 것 조차도 마치 내가 느끼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처음 입맞춤을 해보는 사춘기 소년처럼 조심스럽게 서로의 입술을 염탐하던
두 사람은 어느 새 정신없이 상대의 입술을, 혀 끝을 맛 보고, 맛 보여주고,
그렇게 그들 사이에 자리잡은 새로운 감정을 주고 받았다.
그것은 마치 새로운 신천지에 발을 딛는 개척자의 환희와도 같았고, 힘겹게
날개짓을 배워 첫 비행에 나선 어린 새의 설레임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미 겪어본 경험 따위는 다 사라져버리고 이것이 처음인양, 그렇게 설레이는
일이었고 생전 느껴본 적이 없는 기쁨이었다.
자신이 있어야할 자리, 머물러야할 곳을 향해서 아주 멀리 돌고 돌아 겨우 안착한
여행자의 안도감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서로의 입술을 맛보기에 정신없던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더 무언가를 진행시키기엔 경수도 혜중도 너무 지쳐 있었다.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서 너무 힘든 싸움을 치른 병사처럼 지치고 피곤했다.
무언가를 행하는 것도,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도 지금 그들에겐 무리였다.
오직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는 것, 그 안도감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뒤로
미루어도 되는 거라고,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해야 한다.
지금이 아니어도 그들이 짧은 휴식을 취하고 깨어나면 아주 많은 일을 겪어야
할것이고, 또 지금과는 아주 다른 삶을 위해서 모든 힘을 다해야할 것이기에…….
뜻하지 않게 상처를 주었을지 모를 연진에게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용서를 빌어야할 것이다. 그녀의 용서와 이해를 얻을 수 없다고 해도 아마
두 사람이 함께 그녀에게 미안함을 고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에게 미안한
만큼 더 열심히 서로를 지켜야한다.
용서와 이해를 얻던 얻지 못하던 그녀를 위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니까.
다른 사람들에게도, 특히 두 사람의 가족들에게도.
숨기려고 한다고 숨겨질 일은 아니지만 숨길 마음도 없는 그들이기에 아마도 죽을
힘을 다해 가족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할것이었다.
아마 친구들 역시도 편견으로 가득한 세상 만큼이나 그들에겐 넘어야할 높은 산이
될 것이 분명했다.

살아온 시간만큼, 어쩌면 그 보다 더 긴 시간을 살아내야할지 모른다.
그리고 그 세월은 살아온 시간 보다 훨씬 힘들고 험난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도 뒤로 미루기로 했다.
지금은 잠시 쉬어야할 시간이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자신의 마음을 인정할 수 있었던 이 커다란 행운에
감사하면서 잠시 안도해야할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휴식이 끝나면 두 사람은 지금까지 보다 더 치열하게 그들의 인생을
살아갈 것이 분명했다.
줄리엣과 로미오로 무대에 섰던 그때… 아니 철없는 아이 시절에 만났던 그때
이미 운명은 결정되었을지 모른다.
함께 해야할 사람은 어떤 역경을 거치더라도 반드시 함께 하게 되는 거라고…….
이정도로 함께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행운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 힘들게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어야 할지도 모르고, 또 어쩌면 돌이킬 수 없이
늦어져 마음 속에 커다란 쐐기를 박은 채로 고통스럽게 주변을 맴돌거나
외면해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편안한 표정으로 서로를 품에 안고 잠든 두 사람의 발치로 새벽빛이 조심스럽게
스며들었다. 마치 서두르면 그들이 깨어날까 두려운 듯…….
세상을 어렴풋이 알만큼 살아온 그들이지만 함께 잠든 두 사람의 모습은 어린
시절의 그 어느 날인가 투닥이며 놀다 지쳐 엉켜잠이 들었던 그때와 같이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서두르지 않아도 시간은 흘러가고 엊갈린 길은 언젠가 마주쳐 제자리를 찾기
마련이다.
정해진 운명의 수래바퀴는 그렇게 시간과 함께 오랜 세월을 흐르고 또 흐르는
것이다.





[ 진우선배님.
   어제 두 사람을 만났어요.
   마치 죽을 죄라도 지은 사람들 처럼 백배사죄하는 모습에 뭐라고 대꾸를
   해야할지 알 수 없더군요. 솔직히 전 경수 오빠도, 혜중 선배님도 용서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따지고 보면 그 두 사람의 잘못도 아닌데… 사람의 마음이라는게 그런
   모양이죠.
   누가 시켜서 바라보게 된것도 아닌 것을 대답해주지 않는다고 원망하게 되는게
   바로 사람인가 봐요.
   그런데 참 쉽더라구요.
   죄인처럼 앉아 있는데도... 둘이 함께 있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지는 그
   분위기가 괴로워 보이던 경수 오빠의 눈빛이나, 혼란스러워 보이던 혜중
   선배님의 눈빛이나 아주 똑같이 평안해 보이는 것을 보니까.....
   그런 유치한 원망 따위 그냥 햇살에 눈이 녹듯이 스르르 녹아버리더라구요.
   아직은 그 원망이 녹아내린 자리에 질척한 잔재가 남아 있긴 하지만 그런건
   아마도 조금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증발해서 없어지는 거겠죠?

   두 사람을 보면서 생각했어요.
   선배님이 그러셨죠? 사랑하는데 있어서 그 대상이 부적절한 상대라면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조절해야하는 거라고.....
   맞아요. 제 감정은 저 스스로 다스려야할 문제인거죠.
   그걸 다른 사람에게 탓을 돌릴 수도 없는 거고, 누가 대신 정리해주는 것도
   아니라는 거... 이젠 가슴으로 느낄 수 있어요.
   혜중 선배님에 대한 제 감정... 경수 오빠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라는 것도.    또 제가 아무리 이 감정을 간절하게 붙들고 키워나간다고 한들 오히려
   제 상처만 더 커질거라는 것도... 잘 알아요.

   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혜중 선배님에 대한 제 감정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어쩌면 오빠는 뭔가 눈치챘을지 모르지만 굳이 제 입으로 그걸 말할 마음은
   안생기더군요. 그냥 그렇게 잘 된 일이라고, 두 사람 좋은 모습 볼 수 있어서
   저도 기쁘다고 했어요. 그건 솔직한 제 마음이었는걸요.
   제 감정이 어떤 것이든 닮은 눈빛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좋아 보였던
   것도, 그것이 기쁘게 느껴졌던 것도 다 진심이예요.

   하지만 솔직히 한동안은 두 사람을 편하게 대하기 힘들거 같네요.
   그 질척한 잔재들 다 증발하기 전엔 아무렇지도 않을 자신이 없어요.
   선배님 말씀대로 저 아직은 어린애인걸요.
   그런 감정의 잔재를 능숙하게 숨길 자신이 없네요.
   아마도 두 사람 앞으로 참 많이 힘들겠죠?
   아직까지 사회의 편견은 그대로 남아 있으니까요.
   그런 두 사람한테 뭔가 힘이 되어주고 싶지만... 그건 좀더 나중으로
   미뤄야할거 같아요.
   저 그래도 되는 거겠죠? 그정도 쯤은 괜찮은 거죠?
   대신 진우 선배가 두 사람 곁에 있어주실 거라고 믿어요.
   누가 뭐래도 진우 선배는 좋은 사람이고, 또 둘에겐 없어서는 안될 훌륭한
   이해자가 되어 주실게 분명하니까요.
   주제넘지만 부탁드려요.
   힘겨운 고비를 많이 넘겨야할 경수 오빠와 혜중 선배의 곁이 되어주시길...
   저도... 언젠가... 시간이라는 치유제로 제 작은 상처를 치유하고 나면 진우
   선배처럼 두 사람의 곁에 서줄거니까요.
   그래주실 수 있죠?  

   감사해요 선배님.
   제 이야기 들어주신 것도, 또 듣고도 모른척 해주신 것도, 단순한 말들이었지만
   제길을 찾을 수 있는 말을 해주신것도...
   무엇보다... 섣부른 충고나 위로를 하지 않고 말없이 들어주신거...
   아마 곧 저도 훌훌 털고 다시 이 연진다운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예요.
   주저앉을 만큼 크게 상처를 받은 것도 아니고, 무너질 만큼 절실하게 혜중
   선배를 사랑한 건 아니었으니까요.

   음...... 선배님.
   저 염치없지만 한가지만 더 부탁드릴께요.
   자주는 아닐거고, 아주 가끔... 혼자서 감당하기 벅찰땐 선배님을 부를 수 있게
   해주세요.
   그때처럼... 그냥 말없이 들어주시는 것만으로도 전 잘 견뎌낼 수 있을
   거니까요.
   그렇게 해주실 거죠? ]


목소리만큼이나 맑은 글씨채로 정성스럽게 적은 편지를 받은 진우는 입가로
스멀스멀 미소가 퍼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방송국 로비에 앉아 이러고 헤벌쭉 웃는 그를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볼 것이 분명했지만 그런 것 쯤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적어도 최소한 자신이 우려한 만큼 크게 상처받은 것이 아닌 후배의 모습과
정직하게 현실을 받아들이는 그녀의 용기가 참 가상하고 이쁘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는 지금까지처럼 두 친구의 곁에서 변함없는 모습으로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렇듯이 이 어린 후배에게도 그런 모습으로 남아줄 수 있을
것이다.
인연이라는 것만큼 소중한 것은 없기 때문에…….
그것이 호연이던, 악연이던… 한번 맺어진 인연은 모두다 소중하게 지켜야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편지를 갈무리해 가방에 넣은 진우는 홀가분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눈이 소복하게 쌓인 거리로 나섰다.
겨울 햇살에 쌓인 눈이 반짝거렸다. 예전이라면 무심하게 지나쳤을 그런 사소한
것이 문득 소중하게 느껴졌다.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일 것이다.
구르고 부딪혀 상처가 나면서도 제 길을 찾아 열심히 헤메다가 끝내 제 자리를
찾아서 비어진 아귀에 맞춰지는 것…….
이빠진 동그라미가 세상을 굴러 그 빠져나간 조각을 찾아 가듯이…….
혹은 지그소퍼즐을 맞추듯이…….
그렇게 주어진 인연으로 제 짝을 찾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인생일 것이다.



끝.



 
 83
  그는 돌아오지 않는다
지나가다    2004/09/13   2187 
 82
  難治病
▩멜리사    2004/09/02   1780 
 81
  변명(부제: Normal Blood)
kuroasa    2004/08/30   1679 
 80
  눈을 감으면 보이지 않는다.
하리    2004/09/01   1582 
 79
  2002년 겨울 이벤트 : Kiss
멜리사    2004/08/31   4392 
 78
  2002년 겨울 이벤트 : 기다림의 마침표를 찍다
atlantis    2004/08/23   2655 
 77
  2002년 겨울 이벤트 : 너는, 기다림
앤쏘    2004/08/23   1245 
 76
  2002년 겨울 이벤트 : 미련한 결정
엘루네드    2004/08/23   1415 
 75
  2002년 겨울 이벤트 : 미소짓는 언젠가
엘리카    2004/08/23   1329 
 74
  2002년 겨울 이벤트 : 눈 오는 날 [1]
ijen    2004/08/23   1829 
 73
  2002년 겨울 이벤트 : In other words… I love you
ijen    2004/08/23   2210 
 72
  2002년 겨울 이벤트 : 세월 - 함께 살아가기
하리    2004/08/22   1330 
 
  2002년 BabyAlone 생일 축하 : 세월 (하)
하리    2004/08/21   1691 
 70
  2002년 BabyAlone 생일 축하 : 세월 (상)
하리    2004/08/21   1486 
 69
   [12]
ijen    2003/11/26   17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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