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완결방입니다. 누구나 글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21   1/  2   0
Category (83)  공지 (1)  단편 (48)  장편 (3)  축설 (10)  행사 (21) 
엘리카
2002년 여름 이벤트 : 한여름밤의 꿈


2002 바빌론 여름 이벤트 Six Gong Stories
E타입



한여름밤의 꿈



by 엘리카





" 하아. 정말 덥군. 이놈의 날씨란…"

이현은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미처 닦아내지도 못하며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이주만에 사랑하는 연인을 본다고 생각하니, 그의 마음은 조급하기만 했다.
자신도 수술이다 뭐다 해서 바쁜 2주간이었다. 오늘만 해도 어제 당직을 서고,
노력해서 겨우 얻어낸 하루다.

녀석은… 도착했을까? 다소 설레는 마음으로 이현은 맨션의 엘리베이터 안에서
연신 손가락을 까딱거리고 있었다. 초조할때면 나타나는 그의 버릇이었다.

땡- 하는 경쾌한 소리에 맞추어 이현은 급히 엘리베이터 안에서 달려나와
열쇠구멍에 열쇠를 집어넣었다.
손이 몇번이고 허공에서 헛돌았다.

" 이런 젠장할- "

낮게 으르렁거린 후 다시 침착한 손놀림으로 문을 열었다.
들어가자마자 두 눈으로 집안을 확인했다.
어디에… 어디에…
소파에 길게 누운 인영이 보였다. 이현은 자신이 찾던 사람을 발견하고는 살며시
그 옆에 다가갔다. 피곤했나보다. 이현이 온것도 모른채 평온한 얼굴로
잠들어있는 이 사람. 정연우. 바로 이현의 연인이었다.

조금… 말랐구나. 그간의 피로가 쌓였는지 몸이 약간 말라보였다. 이현은
마음아픈 듯이 누워있는 연우의 얼굴에 살며시 손을 가져다 대었다. 따스했다.
부드럽게 손가락을 미끄러뜨려 제자리에 붙어있는지 확인이라도 하듯이
만져보고는 실감했다. 연인은 자신의 옆에 있는 것이다. 이제 제법 길어져서
어깨 언저리까지 닿는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었다.

잃어버린 아이를 찾은 부모처럼, 그렇게 이현은 연우를 계속해서 어루만졌다.
그때 갑자기 튀어나온 손에 손목을 잡혀버렸다.

" 으응… 가만히 누워서 이렇게 대접받는것도 좋은데요, 선배. "

어느새 연우가 두 눈을 또렷이 뜬 채로 이현을 보며 싱긋 웃었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다 들켰다고 생각했는지 이현의 얼굴이 붉어졌다.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않고 애꿏은 벽만 째려보았다.

" 일어났으면 일어났다고 얘기해야지. "

다소 퉁명스럽게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쑥스러움을 감추려고 그리했으리라
연우는 움찔하는 기색도 없이 다시 웃으며 이현을 마주 보았다.

" 선배, 보고 싶었어요. 제일 많이, 가장 많이요. "

어린애같이 말하는 녀석. 이현은 언제봐도 이 녀석은 부끄러움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우는 항상 진심으로 말한다. 속마음을 이현에게만은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런점에서 기쁘기도 하지만 역시 얼굴이 두껍지 않은지라,
어색하기만 하다.

" 이주 밖에 안됐어. 새삼스럽게 뭘 그래. "

자신은 솔직하지 못하다. 연우처럼은 아니어도, 나도. 라는 한마디면 될 것을.
언제나 쑥스러워서 피해버리고 퉁명스럽게 말한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뻔뻔스러울 정도의 솔직함.

" 에, 거짓말! 난 선배가 보고싶어서 빨리 끝내고 오고 싶었는걸요. 지금
   스텝들은 아직도 도쿄에 남아 있다구요.
   난 선배가 보고싶어서 얼른 비행기 타고 달려왔는데. "
" 그래그래, 힘들었겠네. 네 마음 알아. "

이현은 뾰루퉁해진 연우를 달랬다. 평소에는 관대한 척은 다 하면서도 은근히
삐지는 구석이 많아 '삐돌이'라는 별명을 얻고 있는 연우였다.

연우는 모델이었다. 그냥 모델이 아니라 탑모델.
정연우, 하면은 세계에서 인정해주는 탑모델이었다.
이녀석은 그저 반반한 외모 하나로 모델이 된 녀석들과는 기본부터가 틀렸다.  
연우의 아버지는 파리에서 활동중인 저명한 디자이너이고, 어머니는 파리와
밀라노에서도 알아주던 모델이었다. 지금은 모델일 때의 경험을 살려
모델지망생들에게 교육을 시키고 계신다. 어머니가 영국인이었기 때문에
연우는 어머니에게서 파란눈과 흰피부를 물려받았다.

부모가 이렇다보니 자연 연우는 어릴 적부터 이 세계에 깊이 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결국 자신의 길로 삼았다. 부모의 백이 아닌, 자신의 힘이었다.
물론 부모가 일류인 만큼 연우도 그런 것을 보고 자란만큼 역시
물이 달랐다고 할 수 있겠다.
동양인다운 깔끔한 윤곽에 유난히 까만 머리칼.
그 머리칼과 대비되는 흰 피부. 물론 백인같이 하얀 건 아니었고 동양인치고는
굉장히 하얀 편이었다.
그리고 머리칼 사이에서 빛나는 파란 눈. 일단 외모부터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 개성과 실력까지 더했으니-.

" 나, 이번에 디자이너 알랭씨의 옷을 입었어요. 굉장히 멋진거 있죠? "
" 알랭…? 알랭이라면 그 까다롭기로 유명한 사람이잖아. 옷은 멋지지만. "

연우가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 처음에 나를 보더니 뭔가 못마땅한 듯이 보잖아요. 자기가 골랐으면서. 그래서
   보란 듯이 카메라 앞에 서줬죠. 그리고 오만하게 쳐다봐줬어요. 이렇게- "

연우가 두 팔을 교차시키며 흉내를 내었다. 푸훗, 재미있다. 이현은 그런 연우의
행동이 귀여워보였다.
엉뚱한 점도 연우의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모델은 옷갈아입는 인형이 아니다.
이건 연우가 항상 내세우는 모토다. 그래서 모델을 인형 취급하는 디자이너를
가장 싫어했다. 아니 노골적으로 경멸했다.
이런 연우의 성격도 디자이너들에게는 오히려 높은 점수를 얻고 있는 듯 했다.

" 그래서? 알랭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데? "
" 하하. 휘둥그래진 눈으로 날 보더니 내손을 잡으며 말하더라구요.
   '정말 굉장해! 자넨 그저 이름만이 아니었군 그래! 그 오만한 표정, 바로 내가
   원했던 표정이야!' 라면서요.
   이번에 입은 옷이 클래식한 정장스타일이었거든요. 우~ 난 그 사람 보라고
   그런건데. 알아주지도 않고 말이죠.
   뭐, 그래도 일은 잘 끝냈어요. "

연우는 제스처를 취하며 말했다. 이현이 미소지었다. 연우는 이현의 이런 얼굴을
보며 역시 무리를 해서라도 일찍 오기를 잘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촬영 중에
힘들었던 일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렇게 이현의 얼굴을 보면 모두 풀리는 것을.

" 피곤하지 않아? 일끝내고 바로 왔다며.
   좀 쉴래? 아니면, 뭐라도 만들어 줄까? "

이현은 피곤할 연우를 생각해서 권유했다. 하지만 연우는 자신이 없는 사이
이현이 뭘 했을까가 더 궁금했다.

" 쉬는 것도 좋지만요, 선배. 선배는 나 없는 동안 어땠어요? 많이 쓸쓸했어요? "
" 쓸쓸하긴-. 맨날 옆에서 쨍알거리는 누구누구씨가 없어서 편하긴 하더군. 뭐
   요즘 일이 많아서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했지만. "

누구누구씨라는 말에 연우가 발끈해서 외쳤다.

" 누구누구씨라뇨! 선배 설마 절 두고 하시는 말씀은 아니시겠죠? "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투지에 타오르며 외치는 연우를 보며 이현은 반응이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어찌 보면 그나이만이 가지고 있는 신선함 같기도 했다.
도대체 나이는 어디로 먹는지.
이현은 피식거리며 말했다.

" 뭐 내가 말 안해도 누군지는 익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 자자, 뭐 먹을래? "

여기서 더 끌면 이제 삐진다. 일이 커지기 전에 얼른 발을 빼고 나오려는 이현의
행동을 연우가 눈치 챘을까.
하지만 연우는 태연히 말했다.

" 응! 나 정말 일본에서 생각나는거 있더라구요. 선배,해줄래요? "

뭐야. 김치타령은 아닐 것 같고. 뭔가 찜찜한 여운을 남기는 뒷마디에 개의치
않고 이현은 차분하게 물어보았다.

" 뭔데? "
" 선배요. "

방긋방긋. 그렇게 웃으면 누가 넘어갈거라고 생각했는지-.

" 싫어. "
" 왜요! "
" 내가 싫어. "
" 그러니까 왜요! "
" 싫으면 싫은 거야. 너 피곤하지? 한숨 자는 게 좋겠다. 나 때문에 깼으니까. "

이현은 매정하게 연우를 거절했다. 지금 연우의 말을 들어줬다가는 분명
후회할거다 라는 걸 오랜 경험으로잘 알고 있었다. 적어도 밤까지는 버텨야했다.
연우가 이주 만에 왔으니 오늘밤 잠은 다 잔거고.  
미리 잠이라도 자 놓아야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 너무해요! 이주만이라구요. 이주! "

넌 일본으로 가기 전날 밤이 생각 안나나 보지…? 얼마나 엉겨 붙던지-.
무섭기까지 했다.
이현은 집념과 망상으로 치면 연우를 능가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이 대 정신연령 대비도 마찬가지.
물론 연우는 자신보다는 분명 연하였지만 가끔 보면 정말 어린애 같았다.

" 정연우. 네 나이는 몇? "
" ……스물 셋이요. "
" 그럼 내 나이는? "
" 스물 아홉이요… 선배 또 나이 들먹이지 말아요. "

나이. 연우는 늘 말했다. '선배와 같은 나이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같이 학교에 다니고 같이 공부를 하고. 같이 추억을 쌓고.''난 일찍 태어나지
못해 억울한 사람이에요. 나이 얘긴 하지 말아요.'라고 다소 민망한 대사를 늘
억울하다는 듯이 말하곤 했다.

" …네 집념은 정말 놀라운 거 같아. 그렇게 생각지 않아? "
" 집념은요. 이왕이면 정열이라고 불러주세요. "

그 정열 두 번만 받았다가는 온 몸이 남아나질 않을 거다.

" 선배… 정말 2주 만인데 이렇게 보내야 돼요? "

연우가 투정부리는 애처럼 떼를 썼다. 이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소파 밑에
주저앉아 카페트를 만지작거렸다. 이게 내가 선택한 사랑이다. 떄로는 아이 같고,
떄로는 어른스러운. 이런 사람이 내가 선택한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 선배 그런 얼굴, 하지마요… 내가, 뭐 잘못한 거예요…?
   내가 떼서서, 화났어요? "

화는 무슨. 이현은 작게 쓴웃음을 지었다. 가르릉 거리는 고양이 같은 녀석.

" 화 안났어. "

바닥에 앉은 채로 상체만 일으켜 소파에 앉은 연우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품안의
연우가 움찔하는 기색이 있었다. 자신의 작은 행동에도 지나치게 민감한 녀석.
어린애면 어린애답게 굴란 말이야.

" 정연우. "

이현이 낮게 이름을 불렀다.

" 네,선배. "
" 나 사랑하지? "
" 다, 당연하죠 선배! 제 사랑을 의심하시는 거예요? "

연우는 발끈하며 바둥바둥거렸다. 선배, 너무해… 내가 그렇게 내 마음을
보여줬는데, 기껏 한다는 말이 '나 사랑하지?' 라니. 그건 내가 너무
비참해지잖아.

" 나 지금 피곤해. 너도 피곤할거고. 자자. 응? "

다시 품속에서 불만 스럽다는듯이 꿍얼댄다. 보나마나  '선배 너무해.'
'비겁해'등등을 중얼거리고 있겠지.

" 나 샤워하러 간다. 너는 저쪽 방에 딸린거 써. 그리고 그 입, 계속 그렇게
   삐쭉대고 있으면 키스도 안해줄거야. "
" 너…너무해요, 정말! "

키스를 안해준다니까 연우는 화들짝 놀라면서 표정을 바꾸려고 애를 썼다. 정말
순진한건지. 나한테 대하는거 보다가 다른 사람들 대하는 거 보고 놀라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니까.
사실 연우는 좀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냉정했다. 일전에 연우와 일을 하면서
한눈에 반해 한국까지 쫓아온 밀라노의 황녀라 불리는 도도하기 그지없는 탑모델,
엘리자베스를 냉정하게 거절하고 눈길한번 주지 않았었다.
사실 그때의 연우의 표정은 이현 자신이 생각해도 얼음이 뚝뚝떨어지는
표정이어서 오싹하기만 했다. 오히려 자기 때문에 이현의 마음이 떠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그냥 어린 녀석 인줄만 알았던 연우가 새롭게 보인 계기이기도
했다.

" 어른공경. 토달지 말것. 어길 시에는 2주 이상 나 볼 생각 하지마. "
" 선배애애애애! "

욕실로 들어가면서, 등 뒤에서 울리는 상큼한 울림에 킥킥대며 녀석과 함께 할
내일을 생각했다.





" 선배, 선배. 일어나요. "
" ㅇ…응…"

시원한 손이 연신 이현을 흔들어 깨웠다. 뭐야…
이현은 미간을 찌푸린 채로 졸리운 눈을 겨우 떠 침대 옆 사이드 테이블 위의
시계를 보았다.
오후 6시였다.

" 뭐야… 6시밖에 안됐잖아… "
" 선배, 전화왔어요. 병원이라는데, 선배를 급히 찾는데요. "

병원? 어제 당직이었고 오늘 별다른 수술도 없고 해서 일찍 가도록 해주던데…
이현은 잠시 생각해보다가 달리 짚이는 데가 없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 네, 여보세요. "
" 정이현 선생님!!!! 도와주세요! "

동료의사인 김원진이었다. 이현은 두 눈을 크게 뜬 채로 놀라서 외쳤다.

" 무슨 일이죠? "
" 긴급환자가 들어왔어요! 상태가 심해서, 바로 수술 들어가야 하는데,
   심장은 선생님전문이잖아요! 선생님밖에 맡아줄 분이 없어요!
   빨리 병원으로 와주세요! "
" 알았어요. 지금 바로 갈게요. "

이현은 재빨리 침대에서 일어나 옷장 앞으로 달려 나갔다. 아름다운 뒷모습이
순식간에 옷 속으로 사라져갔다.
분주하게 왔다 갔다하는 그의 옆에 연우가 살며시 다가섰다.

" 선배. 급한 일이에요…? 응급환자…? "
" 어. 상태가 많이 안좋나봐. 내가 가봐야겠어. "

대충 준비가 끝난 이현이 현관으로 달려 나가며 말했다.

" 미안. 늦더라도 집에는 들어올께. 먼저 자. 저녁 챙겨먹고. 알았지? "

막 뛰어나가려는 찰나, 뒤에서 이현의 팔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 선배, 안가면…… 아니에요. 잘, 다녀와요. "

연우가 정말 서운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이현은 의사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환자의 생명이 달려있다.
어쩔 수 없는일이었다. 자신도 이런 긴급상황이 터질 줄 알았겠는가.

" 미안해. 다녀올께. "

이현은 서운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연우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해주며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오늘따라 왜 녀석이 유난히 서운한 표정을
짓는 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이현의 사고회로는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는 순간,
병원에서 기다릴 환자 생각으로가득 차버렸다.





환자의 상태는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병원에 남아있는 사람이라고는, 새까만 인턴부터 레지던트 2년차 정도밖에 없어서
손을 쓸 수 없었다.
게다가 자신의 전공이 심장외과였으니… 4시간에 걸친 수술이 끝나고 이현은
수술실 밖으로 나왔다.
정신없이 달려드는 환자의 가족들에게 상태를 말해주고, 레지던트에게 간단한
뒷마무리를 맡겼다.

확실히 실력으로 인정받는 이현다웠다. 스물아홉에 전문의로 이런 수술을 집도할
정도면 빠르다고 할 수 있다. 남들은 이 나이 때 인턴이나 레지던트 하고 있을
때이지만 이현은 18살에 검정으로 의대를 들어와 5년만에 졸업해 미국으로 가서
박사학위를 딴 소위 수재였다. 그러다가 작년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이 병원에
취직하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오게 된 데에는 연우의 영향이 컸다.

" 정이현 선생님,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어제 당직이라 피곤하셨을텐데…
   한시름 놓았네요. 뒷수습은 저희에게 맡기시고, 이제 퇴근하세요. "

인사성 좋은 김원진의 인사를 받고는 이현도 웃으면서 답례했다.

" 뭘요, 저도 오늘 무리하게 일찍 갔는데… 김원진 선생님도 수고하셨습니다.
   뒷수습, 부탁드립니다. 그럼 전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

이현은 서둘러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에 병원을 빠른 걸음으로 나섰다.
가만있자… 김진숙 환자의 수술일이 언제더라… 이현은 병원을 나서려는 찰나에
생각난 환자의 수술일을 알아보려 자신의 스케줄표를 들여다보았다.
음… 8월 2일이군. 오늘이 7월 27일이니까… 7월 27일?!!!
이현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7월 27일!

정신없이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시계는 1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제길-. 이현은
낮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7월 27일. 이날은 바로 연인의 생일이었다. 미처
생각지 못한 자신의 무신경에 스스로 화를 내며 뛰기 시작했다.

병원에 가지 않으면 안되냐는 서운한 표정.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연인은
돌아오지 않는 자신을 생각하며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오, 맙소사.

이현은 차에 시동을 걸고 미친 듯이 엑셀을 밟았다. 중간에 누군가의 고함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지만 무시하고 그대로 계속 밟았다. 시야에 보이는 가로수들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달칵-. 문이 열렸다. 뛰어오는 자신의 발소리를 들었는지 이현이 문을 채 열기도
전에 연우가 현관으로 나왔다. 이현은 숨을 내뱉으며 그대로 자신보다 한 뼘은 더
높은 연우의 목을 끌어안았다.

" 앗, 선배…! "

갑작스러운 이현의 행동에 연우도 내심 놀란듯했다. 둘은 그대로 엉거주춤하게
현관에 서있었다.

" 선배, 대채 왜… "
" -미안해. 미안해. "

무언가 말하려는 연우의 말을 자르고 이현이 되풀이해서 말했다.

"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가 무심했다… 미안."
" 선배 대체 무슨일이에요? 병원에서 안좋은 일이라도… "

연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배가 왜 이러지?
아까 날 두고 병원에 간 것 때문에…? 그럴리는 없는데… 도대체가…

" 나, 없는동안 많이… 서운했지? 미안해. 네 생일인데도 나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잊고 있었나 봐……. 실망…했지? "

이현은 진심으로 사과했다. 연우는 무리하게 도쿄에서 와줬는데. 단순히
2주간이나 만나지 못해서 일거라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생일을 나와 보내고
싶어서 그랬겠지. 하… 이런 무신경한 연인이라니.

" 선배, 무슨…! "
" 미안. 내게 화를 낸다 해도 어쩔 수없어. 혼자 내버려둬서 미안. "

연우의 얼굴에는 뚜렷하게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생일? 지났다고?

" 선배, 정신 좀 차려 봐요! "

어느새 패닉 상태에 빠진 이현을 붙들고 연우가 큰 소리로 말했다.
이현이 흠칫하며 놀라자 연우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 선배 우선 좀 들어와요… 현관에서 뭐하는 건지… "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현의 손을 잡고 소파로 데려가 앉혔다. 고개를 푹 숙인
모습이 안돼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귀여워 보인다는 생각에 연우는 씩 웃었다.

" 왜 웃고 그래. 사람 더 미안하게. "

이현이 인상을 썼다. 선배… 나 정말 태어나길 잘했죠…

" 선배. 지금 선배는 오해를 하고 있어요. 알아요? "
" 무슨…? "
" 지금, 내 생일이 된지 이제 1시간 반 됐어요…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요…? "
" ?! "

이현은 뭔가 짚히는 데가 있었다. 아까 병원에서 시계를 봤을 떄 12시가
넘었었고, 병원내의 전광판 시계에 7월 27일이라고 되어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7월27일 1시 반경…?!

" 아하하~ 선배, 너무 귀여워요. 어떻게 그런……. 아하하하. "

연우가 정말 재미있다는 듯이 크게 웃었다. 이현은 멀쑥해져서 아무말도 못한 채
있었다. 정신이 없었던 탓에 날짜만 보고 흥분했다니…… 이런 바보 같은.

" 최, 최고의 생일선물이에요. 선배. "
" 웃지마!!!! "

이현은 샐쭉해서 소리 질렀다. 어쩐지 바보취급당하는 기분. 분명 자신보다
6살이나 어린 녀석인데……. 제길, 제길, 제길!!!!

" 선배. 안고 싶어요. 안아도 돼요? "

어느새 연우는 웃음을 멈춘 채로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그냥 수긍하는 것도 자존심 상해서 이현은 샐쭉하며 대답했다.

" 네가 안긴다면 생각해보지. "
" ! "

크큭… 지금 네 표정, 혼자보기 아깝군 그래. 탑모델 정연우가 이런 표정도 지을
수 있다니 말야.
이현은 승리했다는 미소를 지으며 어느새 여유를 되찾았다.

" 너…너무해요 선배! 나 생일이잖아요, 나 생일선물 준다고 치고 안겨주면
   안돼요? 응? 나 착한 애인이잖아요. 오늘 같은날까지 선배 이러기에요? "

그래, 바로 그 표정이 너다워. 이현은 작게 웃으며 생각했다. 그게 너야. 정연우.
6살이나 어린주제에. 어른 행세는 안어울려. 애원하지 않으면 도무지 들어줄
생각이 없었는 듯 이현은 어느 새 연우의 반응을 즐기고 있었다.

" …최고로 모셔. 안그럼 관둘거야. "
" 당연하죠, 선배! "

적반하장인지, 주객전도인지. 분명 생일선물을 받은 사람은 연우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도권은 이현의 손에 있으니… 정연우. 23세. 최고의 생일선물이었다.





" 하아…"

부드러운 선배의 어깨선을 따라 손가락을 놀려본다. 다소 조급하게 느껴지는
손가락. 날씬한 허리선을 쓰다듬어 보고 가슴에 입술을 대어 가볍게 눌러보았다.

" 저…정연우. 너… "

항의는 듣지 않을 거야. 사랑한다는 말만 들을 거야. 연우는 이현의 항의는 듣지
않고 입술로 막아버렸다. 벌리운 입술 사이로 소리가 삼켜졌다.

입술에 가벼운 베이비 키스.
섬세한 목덜미를 따라 쇄골로. 가슴으로. 배로. 다리로.
이현의 몸은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이라도 하듯 그렇게 붉은 꽃으로 수놓았다.

이현의 팔을 들어 손바닥 안쪽 깊숙히 입술을 대었다. 이현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래요. 나, 선배를 원하고 있어. 원하고 있어요.

" 정…연우. 너… 하아… "

맘에 들지 않아. 사랑한다고 말해줘요. 내 이름을 불러 봐요.
달콤하게. 부드럽게. 선배가 불러준다면 어떤 이름이라도 좋아.

" 선배… 그거 알아요? "

연우가 조르듯이 이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 아……뭐…?"

이현이 눈을 가늘게 뜨고 되물었다.

" 선배는, 날 항상 정연우라고 불러… 이름을 불러줘요. 정연우가 아니라,
   연우라고. 거리감 느껴져… 정연우가 아니라 연우라고. 불러봐요. "

그렇게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이다니… 반칙이야.
사실 이현도 알고 있었다. 녀석이 처음에 '이현'이라고 부르고 싶다고 했을 때
맞먹는다고 화를 냈었다. 그럼 '이현형'은 어떻냐고 했을 때는. 자신의 이름이
연우에게 불리 운다는 것만으로도 그저 부끄러워져서, 싫다고 도리질했다.
그래서 결국 처음의 호칭 그대로, 연인이 된 지금까지 이현에 대한 호칭은
'선배'였다. 같은 이유로, 이현은 연우에게 항상 성을 붙여서 '정연우'라고
불렀다.

" 싫어……. 민…망하잖…아."

이현이 띄엄띄엄 말을 이었다.

" 불러줘요……. 이현. "

자신의 이름이 연우의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순식간에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몸에서도 들뜬 열이 계속되었고 얼굴에서도 열기가 흘러나왔다.

" 싫… "

항의하던 입술을 순식간에 연우가 붙잡았다.

" 거부는 듣지 않아. 좋다는 얘기만 들을 거야. 이현. 사랑한다는 말만 들을
   거야. 내가 당신보다 어리다는건 알아. 6살이나 어리다는 것도 알아.
   내가 같은 나이 였으면… 당신은 불러줬을까?
   달콤하게, 당신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내 이름을 들을 수 있었을까. "

어느새 연우는 말을 놓고 있었다. 어지간히도 한이 되었는 듯. 이현은 작게
속삭였다.

" 그래도… 부,끄…럽자…ㄴㅎ…아. 하아… "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느낌. 익숙한 연우의 손길.

" 당신의 마음을… 완전히 여는 거야… 그게 내겐 최고의 선물이야…….
   부끄럽지 않아… 내겐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고… 환희라고……. "

이현의 마음이 흔들렸다. 여기서 연우의 이름을 부르면, 자신도 멈출수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별거 아닌일 같아도 자신은 왜 이렇게 부끄러운지.

" 여…ㄴ…연우… "

목덜미에 파고든 입술이 더욱 집념을 가지고 파고 드는게 느껴진다.

" 한번 더요… 이현… "
" 연우…… 여…연우…"

힘들게 나온 말인 만큼 한번 나온 후에는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온몸에 넘치는
환희와 쾌락. 그 무엇으로도 형언할 수없는 말이었다.

" 사랑해요… 사랑해, 이현. 당신만을 사랑해…."

더욱 집요하게 녀석의 손이 온몸을 배회한다. 거부할수 없는 정열이 기쁨이 되어
되돌아왔다.
연우가 자신의 몸속으로 파고 들었을때, 이현은 멈출수 없는 쾌락과 갈증에
시달려 정신없이 연우의 목에 매달렸다.

" 사…랑…해… 연우… 정말로……. "

연우의 몸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느끼며, 이현은 의식의 끈을 놓았다.







- 외전 - 연우의 변명



난 신을 믿지 않았었다. 내가 믿을 수 있는 것은 내 자신, 내 실력이었다.
나에게 접근해오는 수많은 사람들. 역겹고 지겨운 날파리들.

[ 날 네 아버지께 모델로 써달라고 말해주지 않을래? ]

12살 때, 신인모델인 기억도 나지 않는 여자가 날 그렇게 유혹했었다.
하, 12살짜리 애를 유혹해서라도 그렇게 내 아버지의 무대에 서고 싶었나?

욕지거리가 났다. 그 여자도 싫고 내 아버지도 싫었다. 그리고, 나도 싫었다.

원래 6살 때부터 아역모델을 해왔었다. 배우로서의 제의도 들어왔지만, 부모님이
거절하셨다. 그리고 오늘까지-. 나는 모델 정연우로서 살아왔다. 탑모델 정연우.
그 때의 숱한 경험 탓인지, 여자는 아무리 예뻐도 눈에 들어오지가 않았다.
고깃덩어리들.

19살 때, 그 사람을 만났다. 평생 잊을 수 없는 그 사람. 내 영혼. 내 사람.
정이현을 말이다.





" 스테이지에서는 조심해야지. 정연우군. 모델은 몸이 생명이야. "

스테이지에 깔아놓은 실크 천을 밟고 미끄러진 탓에 발목을 삐었었다.
연습이라서 다행이지, 실제 쇼에서 그랬다면 그걸 어떻게 감당하나.

그때 날 봐준 사람이 가까이에 있었던 정이현이었다. 조명담당이었던 권혁수씨의
친구라고 했다. 미국에 있다가 잠시 한국에 들렀는데 모처럼 있는 기회가
아니라고 권혁수씨가 불러서 왔다고  했다. 자신의 전문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의사.

" 고맙…습니다. 폐를 끼쳤습니다. 실례지만 성함이…? "
" 아아, 정이현. 미국에 있다가 잠시 한국에 들렀지. 정연우군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죠. "

정연우군. 하고 부르는 그의 목소리. 연우군 이라고 불러줬으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처음 만난 사람인데.

" 그러고 보니 성이 같은 정씨네요. 조상이 같을지도 모르겠군요. "

어느새 그와의 공통점을 찾고 있는 나에 대해 다시 한번 놀랐다.

" 그럴지도. "

시니컬하게 웃는 그의 얼굴에서, 나는 눈을 떼지 못했다. 이..이놈의 심장이
미쳤는지 쿵쿵거린다. 그는 나보다 6살 많았고……. 25살.
그리 많은 나이도 아닌데 실력이 대단한가보다.

나도 파란 눈 때문에 눈에 띄는 외모지만 그의 느낌은 특별했다. 나보다 7센티
정도 작은 180센티의 키.
결코 작은 키가 아니었지만 키에 비해서는 왜소해보였다. 부드러운 크림색 피부는
두 손에 감겨들 것 같았고 유난히 시원스럽게 뻗은 손가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저 사람을 안으면 어떤 표정을 할까. 나는 처음으로 만난 남자를 보며
이런 생각에 잠겨들었다.

정연우 19세. 처음으로 특별한 사람을 만났다.
나, 결정했어. 당신에게 내 마음을 줄 거야. 내가 정했어. 당신은… 내 거야.





하지만 그는 나를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당연한 일.
6살이나 어린, 그것도 남자가 와서 사랑한다고 당돌하게 말하는데 거절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것도 노말이.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포기할 수 없었다.
처음 봤던 그날 당신의 그 눈동자가 나를 사로잡았어. 당신은 그때 내게
잡힌 거야. 벗어날 수 없어.

억지로 그를 안았다. 싫다고 바둥대는 그를 억지로 안았다.
어쩔 수 없어. 이렇게라도 해서 당신이 나를 보도록 만들겠어.
미칠 듯한 갈증 속에서 나는 쾌락을 느꼈다. 지금껏 그 어떤 여자에게도 느껴본
적 없는 쾌락을.
그 때 창밖에는 보름달이 떠있었다. 달빛이 주는 마력에, 나는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상처입은 그를 보고 후회했다. 아니,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나를 보는 눈동자를 더이상 나를 담고 있지 않았다. 그때 나는 신이 주신 기회를
스스로 차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으로 신에게 빌었다. 아주 간절하게. 염원을 담아. 그가 다시 나를 보게
해달라고. 내가 모두 잘못했다고. 그에게 빌었다. 신에게 빌었다.
되돌릴 수없는 시간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가 내가 다시 오던 날. 나는 또다시 신에게 빌었다. 신에 대한 감사의 기도.
그에 대한 감사의 기도. 나를 버리지 않았던 그에 대한 기도.
그리고… 지금 그와 함께 하고 있다는 데 대한 감사의 기도.

일전에 선배가 내게 물었었다. 자신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나는 웃었다. 그렇게 귀여운 고민을 해주는 선배가 정말 사랑스러웠다.
가끔씩은 회의가 들 때도 있을 것이다. 내가 선택을 제대로 했는지에 대해.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는 내가 최초로 반한 사람이자 최초로 사랑한 사람이다. 후회가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신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선배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말이다.







" 제길…… 정연우… 죽었어… "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놓고 어디로 숨은 거야…
이현은 이를 갈며 연우의 모습을 찾아 헤맸다. 오늘은 병원에 일찍 가 봐야하는
날인데… 시계는 이미 오후 1시를 가리켰고, 당사자인 연우는 집에 없다.

이현은 침대 옆 사이드테이블위에 놓인 전화를 힘겹게 들어올려 병원에 콜했다.

" 네…  요즘 날씨가 덥다고 너무 춥게 잤는지… 열이 많이 올랐네요… 네…….
   오늘 특별한 수술도 없고……. 하루만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

거칠게 수화기를 내려놓은 이현이 신경질을 냈다. 이 녀석 오기만 해봐라…
어른공경은 못할망정 이렇게 만들어놓고 감히 사라져? 두고 보자.

이현은 투덜거리며 욕실로 들어갔다.



달칵-.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경쾌한 발소리가 침실로 향하더니 다시
거실 밖으로 나왔다.

" 선배, 욕실에 있어요? "

이 자식, 어디 나갔다 이제 오는지… 죽었어. 이를 갈며 이현은 대답했다.

" 그래… 거기 그대로 있어라… 정연우… 곧 나간다…."

욕실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자 연우가 방싯거리며 이현을 맞았다.

" 선배, 몸은 좀 어때요? 우리 좀 있다가 동해로 가요. 기차표 예약해놨어요. "

동해? 동해? 이 여름에 동해?!!!! 분명 사람이 넘쳐흐를 동해!!!
이현은 사람들이 우글우글한 바다를 생각해보고는 잠시 끔찍한 상상에 빠졌다.
도대체가 이 녀석은 이럴 때만 아이같이 제멋대로 구는거냔 말이다…!!

" 누구 맘대로 동해냐? 사람 많은 곳따위 질색이다. 너나 가라. "
" 선배애애~~~ 무슨 말을 그렇게 섭하게~!!! 오늘은 내 생일이라구요오오오~~ "

그래… 너 그럴 줄 알았다. 어느새 코소리까지 내면서 되지도 않는 애교를
떨어본다. 야야… 너 무서워… 187의 거구가 그러면 정말 못 견디지…….

" 선배애애~~ "
" 알았다, 가면 될거 아냐……. 그건 그렇고, 너 아까 어디 갔었어? "

가준다는 소리에 다시 헤벌쭉. 정말 단순한 녀석이다. 이현은 볼을 꼬집어 주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퉁명스럽게 물어보았다.

" 아, 맞아. 선배 잠시만요. 여기 그대로 앉아 계세요. "

연우는 부엌 쪽으로 가는가 싶더니 뭘 열심히 꼼지락 거렸다. 뭐길래…? 이현은
내심 궁금해졌다. 늘 엉뚱한 행동을 하는 연우인지라 조금 의심스럽기도 했지만,
일단은 궁금함이 앞섰다.

" 짜잔~!! 노래불러줘요!! "

오 맙소사… 녀석이 손에 들고 온 것은 다름 아닌 커다란 케이크였다.
자기가 자기 생일에 케이크 사는 사람은 아마 저 녀석밖에 없을 거다.
이현은 옆에서 노래를 불러달라고 조르는 연우를 보고는 쓴웃음을 지으며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 너는 어떻게 스물이 넘어가도… 10대일 때랑 똑같냐. 에너지가 남는구나.
   역시 젊은게 좋은 건지도……. "
" 어물쩡 넘어가지 말아요, 선배! 노래 불러줘요~ "

연우는 어느새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노래불러줄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현은
잘못 걸렸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봤지만 처음부터 이현에게 불리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오늘은 연우의 생일. 거절할만한 이유가 없지 않은가.
결국 이현은 한숨을 쉬며 백기를 들었다.

" 노래, 못 불러. 못 부른다고 타박마라. "

흠흠. 잠시 목을 가다듬어보았다. 하지만 역시 본업이 가수가 아닌 탓에 걱정이
되었다.

"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정연우 생일 축하 합니다~! "

사랑하는…의 부분에서 잠시 흐트러졌다가 다시 커지는 기묘한 생일축하노래.
연우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 으아~ 역시 지금까지 안 불러준 이유가 있었던 게야~ "
" 시끄러! 안 부른다고 했잖아! "

어른공경도 안하는게……. 이현은 가볍게 연우를 노려보았다. 연우의 머리카락이
잠시 움찔하는 듯했다. 이현은 작게 코웃음을 쳤다.
어느 새 연우가 케이크를 치우고 소파에 앉은 이현의 발치에 앉아 더없이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 하지만… 선배가 아니면 의미가 없어요. 알죠? "

어느새 이현의 삐쭉거리는 생각이 봄눈 녹듯이 싹 녹아버렸다.
아이같이 투정부리다가 다시 연인으로서 속삭이는 남자. 내가 선택한 사람.
그래… 그렇지. 너와 나는 그런 사이지. 나도 네가 아니면 의미가 없어.
정말 시작부터가 평행선같은 관계였다. 결코 만날 수 없는 관계.
하지만 평행선은 같은 쪽을 바라보는 선상에 있었다. 그 간격을 좁힌 것은 녀석의
자신을 향한 마음. 길은 멀어도 마음만은 항상 솔직하게, 그대로였던 녀석.

조금 후의 동해 행을  생각하면서 이현은 작게 미소 지었다. 이 녀석과 함께라면
한없이 유치해지는 자신을 바라보며. 이 녀석과 함께할 수 있는 자신에게
감사하며.
지금까지 사랑해왔다.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을 사랑해왔다. 그리고 사랑할 것이다.
이현은 솔직하게, 맨 정신으로 연우에게 말했다.

" 연우야. 사랑해. "

이렇게, 오늘도 삐걱대는 연우와 이현의 사랑은 계속된다. 언제까지냐는 불확실한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그저, 사랑할 뿐이다.

" 정말요? 와아~ 기뻐요! 태어나길 잘했어요! "

어쩌지 못하는 푼수 한명을 놔두고.
오늘도… 연우와 이현의 사랑은 계속된다.



- End -





<작가후기>
네~ 저로서도 삐걱거리는 글이었습니다.
그냥 성격대로 능글능글하게 쓸 것을… 하면서 머리 쥐어뜯고 후회했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다소 유치하게, 다소 가볍게 써봤습니다.
귀여움의 근본은 유치함에서 나온다…라는 뜻모를 소리를 중얼거리면서 말입니다.
부담 없이 편히 읽을 수 있으셨다면 좋겠네요. 끝
으로 이런 이상한 글…을 실어주실 로느님께 미안함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이상, 헛소리를 마치겠습니다. 감상은 필수에요~

<BabyAlone의 1줄 코멘트>
속편 요망. 주인공들에게 빠져 버렸습니다ㅡ!

* BabyAlone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4-08-21 18:33)
* BabyAlone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4-08-21 18:59)



 
 21
  2002년 겨울 이벤트 : Kiss
멜리사    2004/08/31   4590 
 20
  2002년 겨울 이벤트 : 기다림의 마침표를 찍다
atlantis    2004/08/23   2877 
 19
  2002년 겨울 이벤트 : 너는, 기다림
앤쏘    2004/08/23   1465 
 18
  2002년 겨울 이벤트 : 미련한 결정
엘루네드    2004/08/23   1602 
 17
  2002년 겨울 이벤트 : 미소짓는 언젠가
엘리카    2004/08/23   1530 
 16
  2002년 겨울 이벤트 : 눈 오는 날 [1]
ijen    2004/08/23   2046 
 15
  2002년 겨울 이벤트 : In other words… I love you
ijen    2004/08/23   2400 
 14
  2002년 겨울 이벤트 : 세월 - 함께 살아가기
하리    2004/08/22   1593 
 13
  2002년 여름 이벤트 : 무천화(無舛花) [1]
Jaywalk    2004/08/21   970 
 12
  2002년 여름 이벤트 : 나의 애완견
히즈    2004/08/21   1165 
 11
  2002년 여름 이벤트 : 장마
아르헨    2004/08/21   869 
 10
  2002년 여름 이벤트 : 마음으로 살고 싶다
atlantis    2004/08/21   841 
 9
  2002년 여름 이벤트 : 카페 이야기
coolmoon    2004/08/21   1007 
 8
  2002년 여름 이벤트 : 부비트랩
root9    2004/08/21   934 
 
  2002년 여름 이벤트 : 한여름밤의 꿈
엘리카    2004/08/21   855 
 
  1 [2]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Chan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