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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루네드     http://notyet.ivyro.net
열정 6

6.


  2주 가량이 지났을 때 나는 꽤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다.
  교수는 요리를 좋아하며, 또 잘한다. 단 간식류만. 쿠키라든지 케이크나 빵을 굽는다든지 커피나 차 종류를 탄다든지 스테이크라든가- 간식류라기보다는 음, 서양식에 가까운 요리는 잘한다. 그러나 국이나 찌개는 전혀 못한다. 설탕도 넣지 않는데 북어국이 김치찌개가 된장국이 어떻게 달 수 있지? 밑반찬도 과자처럼 만들어버려 맛이 없다. 결국 그런 주식류는 내가 만들게 되었다.
  컴퓨터 앞에서 교수는 계속 바쁘게 왔다갔다 움직이며 연구를 한다. 컴퓨터 앞에서 자판을 한참 두들기다가 커피마시러 가고, 커피마시러 온 김에 쿠키를 굽고, 그걸 들고 돌아와 자료 서적을 뒤적이다가 미비한 게 있어 메일을 두들기고 구글신에게 문의하다가 어느틈에 웹서핑의 무한루프에 빠져 있다. 그의 연구는 그런 식이다. 나는 그가 그렇게 반은 놀며 반은 연구하는 동안 옆에서, 잔다.

  그는 의외로 괴롭히는 섹스를 즐긴다.

  교수는 내가 밤 노가다를 뛰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즘같은 성수기에는 거의 일주일에 하루 정도만 쉬면서 두세시까지 노가다를 뛰다가 들어온다. 몸은 힘들지만 상관없었다. 내가 왜 그렇게 일을 하는지 교수는 단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대신 전혀 다른 방식으로 피드백이 돌아왔다.
  교수는 안경을 쓰고 컴퓨터를 두들기면서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배고픈 나를 붙잡고 동이 틀 때까지 놔주지 않는다. 고단한 몸이라도 교수가 자극해버리면 나는 유혹에 넘어간다. 하드섹스의 늪에 빠져서 다음날 퀭한 눈으로 학교로 간다. 그리고 레포트가 쏟아진다. 쪽지시험도 예고했다.
  애들이 왜 이렇게 빡빡해졌는지 모르겠다고 울부짖는 와중에서 나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나는 공사판에서 돌아와 적당히 배를 채우면서 교수의 유혹을 꿋꿋하게 참아넘겼다. 공부를 핑계로 용케 밤새도록 섹스를 거절하고 앉아 있었다. 교수는 새벽에야 포기하고 이를 갈며 잠들었다.
  다음날은 토요일이었다. 나는 모처럼 집에서 쉬었으나 교수는 세미나라며 가방을 꾸려 어디론가 차를 몰고 나갔다. 집에 택배가 왔다. 내 사이즈에 맞춘 옷과 구두가 한 상자였다.
  자존심이 상한다는 말은 이런 때 쓰는 것이다.
  돌아온 교수 앞에서 나는 집을 와장창 뒤집어놓았다. 역시, 싸움은 섹스로 넘어갔다.

  그러다보니 훌쩍 2주가 지나 있었다.
  
  “또 싸웠니?”

  혜영이가 툭 말을 건넸다. 나는 턱을 만졌다. 이만하면 표시가 안 난다고 생각했는데 대체 쟤는 왜 저렇게 눈썰미가 귀신같은 거냐.
  흘긋 시계를 보던 혜영이가 기묘한 웃음을 지었다. 배부른 표범같은 표정으로 그녀는 웃었고 나는 불안해졌다. 쉬는 시간이 되었던 모양이다. 복도가 시끄럽게 울리더니 우르르 애들이 밀려들어왔다.
  요즘교수님너무해요혜영아조교님누나언니어떻게, 좀, 해줘요!!! 애들은 한바탕 성토를 쏟아놓고 나와 복사기의 혼을 빼놓은 다음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파도에 묻어왔던 거품이 하나 덩그라니 남아 머뭇거리고 있었다. 혜영이가 드륵,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킨다. 더운 공기가 왈칵 밀려들어왔지만 어찌됐건 담배 냄새는 빠지고 있었다. 그녀는 에어컨디셔너를 껐고 사무실은 조용해졌다.
  
  “너, 교수님이랑 같이 산다면서?”

  중환이놈이 말했다. 나도 모르게 혜영이를 쳐다보았다.

  “나 아냐.”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당연하다는 듯 그녀는 담배를 문 채 불분명한 발음으로 말했다. 놈도 거들었다.

  “혜영이한테 들은 거 아냐.”

  나는 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잘 먹어서 그런지 뺨에 윤기가 돌며 살이 찐 것 같다. 그러나 눈빛이 꺼칠했다. 알 게 뭐야. 나는 대답대신 질문을 돌려주었다.

  “연지는?” “연지를 왜 물어?”

  놈이 울컥해서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느긋하게 일어섰다.

  “네 옆에 없으면 궁금하더라구. 왜 그럴까?”

  입을 앙다문 놈에게 피식 웃어주면서 나는 사무실을 나섰다.

  오늘은 교수가 회의 때문에 늦어진다 말했다. 나도 집에 들어갔다가 저녁먹고 바로 일하러 가야 한다. 밥은 언제나처럼 냉동실에 얼려 있다. 국을 데우고 돌려 먹으면 된다. 집밥을 먹는 일은 언제나 행복하다. 된장국이니까 대충 상추랑 이것저것 넣고 비벼먹을까 흥얼거리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골목 모퉁이를 돌아서 나는 바로 멈췄다. 대문 앞에서 핸드폰을 든 채 누가 서 있었다. 여자였다.
  그처럼 특이한 인상이 있을까-. 그녀는 마치 철사로 만든 여자 같았다. 조각을 위해 철사를 세우고 감아 만든 뼈대 그대로인 여자. 목이 가늘고 어깨도 작았으며 손발이 길고 가늘었다. 머리카락 빛깔이 흐렸다. 바랜 갈색같은 빛깔이었다. 머리카락의 숱이 적은 것 같다. 작고 둥근, 타원형의 두상이 고스란히 보였다. 퍼머라도 하면 저 빈약하면서도 단단해보이는 인상이 좀 나아보이지 않을까? 이상할까?
  그녀는 대문 앞에서 핸드폰으로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짧은 대화를 나누었으며 곧 전화를 끊었다. 명료한 동작이었다. 그리고 핸드백을 뒤지더니, 열쇠를 꺼내어, 대문을 열었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누구일까. 친형제? 애인? 아니면, 아내? 물론 나는 교수의 손에서 결혼반지 같은 것은 보지 못했다.
  기묘한 일이었다. 가슴이 활짝 열려, 심장으로 바람이 불어들어오는 듯했다. 이 바람이 머리로도 들어왔으면 좋겠다. 머리는 몹시 어지러웠다.
  
  교수는 나를 좋아한다.
  나를, 사랑한다?
  그러나 분명히 교수는 나를 좋아한다. 교수 자신은 그걸 사랑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이렇게 동요하지 않아도……. 나는 멈칫, 들어가려던 발을 멈췄다.
  난 비겁하다. 나는 내버려두고, 나는 생각하지 않고, 나를 정리하지도 않은 채 교수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그러니 이렇게 동요할 자격같은 건 없다.

  나는 그녀가 닫은 대문에 열쇠를 꽂았다. 거실의, 마당으로 난 전면유리창으로 놀란 그녀가 돌아보는 것이 보였다. 나는 열쇠를 달랑거리면서 대문을 닫았다. 나는 그녀와 유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았다. 충격이 그녀의 눈에 스쳐 사라졌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서로 놀람을 주고받았다. 나는 현관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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