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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노래한다 1

사랑을 노래한다



석우헌
최현민
김형신
전자욱


1.

  나는 현민을 기다렸다. 나는 기다림에 익숙하지 못하다. 오랫동안 기다렸지만, 기다린 시간이 기다리지 않은 시간의 몇 배이지만 여전히 익숙해질 수 없다. 발밑에 담배가 쌓여간다. 던힐은 맛이 더러워. 하지만 다른 걸 피우면 이상하게도 던힐 생각만이 난다. 던힐이 기준이 되어, 던힐보다 거칠어, 던힐보다 순해, 던힐보다 미끈거려……. 기다림에는 니코틴만한 동료가 없다. 벌써 한 갑이 비었다. 나는 케이스를 접어 주머니에 넣는다. 그리고 바닥에 쌓인 담배꽁초를 치우기 시작했다. 이 허름한 빌라에 드나든 건 고작 두 달이지만 그 사이에 나는 공용 청소도구가 어디있는지 알게 됐다. 현민은 복도와 계단 청소를 하지 않는다. 현민의 차례에 청소해주는 건 나다. 현민이 내놓은 쓰레기봉투에 꽁초와 재를 버리고 입구를 꽉 묶어 전봇대 밑에 가져갔다. 대걸레를 밖의 수도에서 빨아와 계단을 닦는다. 계단도 복도도 전부 닦고 다시 빨아 창고에 가져다 둘 때까지도 현민은 나타나지 않았다. 점점 주머니 속이 무거워지는 듯하다. 들어가서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내가 보고 싶은 건 집으로 돌아오는 현민의 얼굴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 어깨의 움직임, 늘어뜨려진 팔과 손의 모양새, 표정.

  며칠 전 제임에게 전화를 했다. 현민이 집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아무런 말 없이. 출장도 아니었고 취재원과의 술자리도 아니었다. 아침에 들어온 현민의 주머니에서 루나의 라이터가 나왔다. 그래서 제임에게 전화를 걸었다. 말해두지만. 제임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현민이가 바람핀 거라고 생각하면 곤란해. 그에게로 혼자의 시간을 줘. 내가 말했다. 혼자? 혼자의 시간은 충분히 줬어. 이만하면 난 오래 기다린 거야. 제임은 흥, 코웃음을 쳤고 말했다. 넌 너무 지나쳐. 고작 2주 기다렸어. 기다린 것도 아니지. 가는 곳마다 알아내어 전화하고 찾아다니며 뭐하는지 알아냈잖아? 내가 말했다. 우리가 커플링한지 얼마나 됐는데? 두 달이야! 석 달도 아닌 두 달! 벌써 권태기니까 봐주라는 거냐? 제임이 말했다. 현민이가 질린 것도 당연해. 나는 말했다. 닥쳐, 제임스. 전화는 끊겼다.

  나는 문을 따서 들어갔다. 고무장갑을 끼고 쌓여있는 설거지부터 해치웠다. 걸레를 빨아서 집안을 깨끗이 닦았다. 현민의 집은 내 집보다 작다. 거실도 방도 작고 좁다. 욕실은 더더욱. 쓸 것도 없었다. 신문지를 구기면서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 거울은 내가 사준 것이다. CD꽂이도, 책장과 컴퍼넌트도, 사기 재떨이와 슬리퍼도. 사각 은색 테두리의 거울은 낡았다. 모서리의 칠이 벗겨져 날카로운 금속의 속살이 드러났다. 후우 숨을 내뿜고, 거울에 김이 서린다. 거울을 닦는다. 뽀득뽀득 소리가 났다. 사랑해. 거울 속에서 내가 웃었다. 사랑해, 최현민.

  현민이가 어떤 모습으로 있든 나는 알아볼 수 있다. 정신을 잃고 팔과 다리를 늘어뜨린 채 업혀 있어도. 그림자가 현민을 업고 빌라로 들어갔다. 창에 불이 켜졌다. 거실에, 그리고 욕실에. 방에도 불이 들어왔다. 새벽 세 시였다. 얼마 후 그림자들이 빌라를 빠져나왔다. 술에 취해 드러누워 있을 현민.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아랫배가 찌르르 울려온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손잡이는 차가웠다. 가죽장갑너머로 냉기가 전해져왔다. 문은 부드럽게 열렸다.

  “현민아.”
  “언제 왔다갔지?”

  피곤에 찌든 목소리였고, 벌겋게 충혈된 눈이었다. 나는 가져간 숙취약을 입가에 대주었다. 현민은 손으로 받아서 마셨다. 알약도, 물도 먹고 다시 털썩 누웠다. 나는 곁에 앉아서 가만히 바라보았다. 가만히 숨쉬면서 누워있던 현민의 입술이 실룩거렸다. 코가 벌어지고 눈이 깜박였다. 그리고는 내게서 등을 돌린 채 등을 웅크렸다. 그 등이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근육만이 성실한 운동량을 증거하듯 드러난 등과 육감적인 허리선. 꽉 조인 엉덩이. 나는 현민의 와이셔츠 단추를 풀면서 목덜미를 손끝으로 더듬었다. 어깨가, 근육이 떨렸다. 유두를 부벼주고 배꼽을 간지럽히고 털을 쓸어올렸다.
  
  “하지 마… 읏… 하지 마, 우헌씨……. 응-.”

  점차 부풀어오르는 페니스의 무게. 잘 구워진 빵이 푹신한 감촉같은 향기를 풍기듯 몸을 비트는 현민은 끈적이는 살갗과 달콤하게 조이는 애널의 향을 뿜고 있었다. 난 바텀 취미 없어. 내 눈을 똑바로 쏘아보면서 말하던 너. 이렇게 굉장한 여기를 갖고서 바텀이 싫다니. 나는 웃으면서 현민의 브리프를 끌어내렸다. 심장이 두근, 크게 뛰었다. 엉덩이로 손을 가져가니 현민이 조르듯 엎드렸다. 한 손으로 엉덩이를 받쳐올려 입술을 갖다댔다. 베이비 키스.

  “흐응….

  눈앞에서 엉덩이가 사랑스럽게 떨린다. 러브젤을 바르는 손놀림에 맞추어 흔들린다. 이렇게 너를 사랑하는데. 한 손으로 콘돔을 끼웠다. 너도 나를 사랑한다고, 변치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현민의 것을 손으로 건드리면서 우리는 익숙한 리듬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숨이 가빴다. 네 안은 여전히 변함없는데. 현민의 신음소리가 흐느끼었다. 너를 사랑하는데 너는 어째서 떠나려고만 하는 거야? 현민이 부르르 떨면서 한껏 몸을 휘었다.

  “사랑하지 않으면 그렇다고 말해.”

  콘돔을 빼어 비닐 봉지에 넣으며 말했다. 현민이 돌아앉았다. 그의 시원스런 얼굴이 일그러졌다.

  “차라리 그렇다면 좋겠어.”

  입술은 웃고 눈과 이마는, 눈과 이마는…… 괴이하게 우그러들듯이…….

  “당신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럴 일이 없겠지. 연인이 있을 때가 솔로일 때보다 지옥같은 일 따위, 당신이 아니라면 없어.”

  나는 현민의 머리를 끌어당겨 입술을 핥았다. 섹시한 냄새. 끈끈한 욕망이 더없이 섹시한 냄새. 나는 현민의 목을 누르며 그를 넘어뜨렸다. 뒤로 넘어져 머리를 부딪친 현민의 눈동자가 몽롱하게 풀렸다.

  “넌 날 사랑하지 않은 거야.”

  내 다리 사이에서 현민이 꿈틀거렸다. 손바닥 아래로, 다리 사이로 꺼져가는 생명이 그대로 느껴졌다. 좀전에 정액을 내놓았던 페니스가 재차 굳어가고 있었다. 소리없이, 내 손바닥아래에서 소리는 그의 목을 빠져나오지 못했고 현민은 눈동자를 토해낼 듯 몸부림치다가 죽었다. 나는 잠시 그의 이마를 쓸었다. 수건을 가져와 아직도 땀이 묻은 이마와 목, 상반신을 닦았다. 여전히 솟아올라있는 유두, 러브젤이 미끈거리는 애널, 정액의 끄트머리가 묻어있는 페니스. 만져도 너는 반응하지 않아…….
  나는 비닐봉지를 들고 빌라를 나왔다. 새벽녘, 길을 걷다 누군가 내어놓은 쓰레기 봉투 속에 콘돔이 든 봉지를 쑤셔넣고 제대로 여며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위로 미화원이 봉투를 집어던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던힐을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너는 어째서 나를 사랑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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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페노이아 시리즈 2탄.

보실분은 이미 다 보셨겠지만^^;

열정을 완결보면 2회 올라갑니다.
...이것도 꽤 오래된 글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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