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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루네드     http://notyet.ivyro.net
열정 4

  “그래서 어쩔 건데?”

  “미쳤냐?”

  나는 커밍아웃은 하지 않는다. 게이 바로 들어가면 그게 바로 커밍아웃이지 뭐겠는가. 헤테로들이 커밍아웃 할 필요가 없듯이 호모도 마찬가지, 왜 굳이 커밍아웃을 해야 되나. ......솔직히 이런 얘기는 왜 커밍아웃을 하지 않냐고 남이 물으면 대답해주려고 준비했던 말이고, 단 한 번도 말해본 적이 없는 건 당연하고, 실상은 그저 귀찮아서다. 숨기는 게 편하니까.

  뭐, 나같은 인간이 게이가 되기에는 가장 편하겠지.

  그러니 혜영이에게 커밍아웃은 당연히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 얘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나는 교수와 잔 이야기도 하지 않았고 그저 술에 떡친 교수를 데려갔더니 자기 집에 묵으라고 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꾸몄지만, ...내가 들어도 어딘가 어설픈 말이었고, 혜영이는 평소와 같은 포커페이스였지만 그 속으로 믿는지 안 믿는지는- 이제 눈빛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절반쯤만 믿고 있다! 정말 다 아는 거 아냐? 왜 이렇게 가슴이 저혼자 떨리냐?

  “어차피 과에 소문이 퍼졌어.”

  뜨끔뜨끔.

  “뭐, 뭐라고 퍼졌는데?”

  혜영이는 담배에 불을 댕겼다. 핏기없이 거의 보랏빛에 가까운 입술로 담배연기를 내뿜으면서, 다리를 우아하게 겹쳐 앉았다.

  “너와 교수님이 한 판 붙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그에 따른 온갖 추측이 널뛰고 있다고 해두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몹시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너 턱도 부었고 손은 까졌고 교수님은 입술이 터졌고 뺨도 자세히 보면 멍든 것 같은 걸, 화장도 안하는데 모를 것 같니?”

  “아아…….”

  맙소사. 나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중환이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라고 하더군.”

  나는 손으로 눈을 덮으면서 피식 웃었다.

  “사과도 자꾸하면 지겹다고 전해줘.”

  “그럼 걔한테 가서 얼굴 보여줘. 나도 그 새끼 땅파는 거 지겨워.”

  혜영이는 여전히 냉정했다.

  “내가 무슨 예수냐? 난 군대서도 교회 안갔어! 미안하면 내 눈앞에서 제발 꺼져달라고 전해줘. 연지와 보란 듯이 붙어다니는 인간이 미안하다고 전해달라고?”

  애초에 중환이가 날 쫓아내지 않았다면…… 아아, 관두자. 점점 추잡스러운 인간이 되어간다.

  “지금 어디서 자냐고 물어봐달라던데.”

  나는 일어서서, 웃었다.

  “그 새끼가 내 앞에서 그렇게 물으면 죽여버린다고 전해.”

  “아니까 나한테 물어봐달라고 했겠지.”

  혜영이는 여상스럽게 눈을 뜨고, 일어선 나를 올려다 보았다. 나는 쓴웃음을 짓고 과사무실을 나섰다.

  군대에서 제대한 이후, 나는 그동안의 저축을 모두 털어 전세금을 만들었다. 큰아버지가 파산하지만 않으셨다면 아직까지 그 집에 살고 있었겠지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때까지 나를 키워주신 분이시다. 나는 전세금을 빼내 큰아버지께 드렸고, 그러나 소용없었다. 큰아버지는 종적이 묘연해지시고- 큰어머니는 사촌들과 함께 단칸방으로 옮겼다. 나는 별 수 없이 중환이네 같이 생활비를 주며 살고 있었지만- 놈이 연지와 동거결정을 한 걸 내가 뭐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당연히, 놈도 내가 짜증내는 걸 뭐라고 할 수는 없는 거다.

  불행히도, 다음 강의는 교수의 것이었다. 나는 튈까말까 상당히 고민했다. 내가 받고 있는 장학금은 성적장학금은 아니라도, 일정 이하 성적이 나오면 탈락된다. 지금 내형편에 장학금이 끊기면 난 학교 못 다닌다. 교수는 이미 내 얼굴을 뻔히 외우고 있을 거고, 안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나는 억지로 발을 떼었다.

  형선배술사줘요얼굴보여줘요레포트어려워요시험도있대요중환이형이랑싸웠대매요쟤실연당했대요차였어요술푸러가요사줘요밥사줘요배고파요술고파요밥술밥술밥술

  교수가 들어왔다. 후배놈들 악다구니에서 간신히 풀려나서, 책을 펼치고 칠판 앞에 선 교수를 쳐다보았다.

  밝은 빛 속의 그는 단정하고, 예의바르다. 비교적 어두운 빛의 피부는 매끄럽고, 얼굴 생김도 해사하여 그의 꽤 마른 듯 다져진 체격이 눈에 쉽사리 들어오지 않는다. 얇은 입술은 차가운 인상을 주지만 늘상 띠고 있는, 규격화된 예의의 웃음이 인상을 누그러뜨린다. 저 입술이, 흐트러지면 어떤 인상이 되는지 알고 있다.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교수와 시선이 마주쳤다.

  담백한 눈빛이었다.

  상념에 잠겨 있는 나는 더없이 음란한 듯, 그는 담백하게 나를 쳐다보고 눈길을 내 옆으로 옮겨갔다. 얼굴에 열이 올랐다.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어째서 그는 이렇게 사람을 서늘하게 만드는가.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저 맑은 얼굴을 보고 있는 동안 욕망이 꿈틀거렸다. 빛 속에서 그 표정을 보고 싶다. 스스로를 내버려두는 얼굴, 무방비한 얼굴, 그 얼굴에 한가닥 기대가 서리는 얼굴을. 그런 감정을 버릴 수 없는 자신에 대한 슬픔을 드러내는 그에게 키스해주고 싶다.

  “잠깐만, 현준 군. 나 좀 보지.”

  강의를 마치고 나가는 그가 잠시 고개를 돌려 말했다. 강의실 전체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 쏠렸다. 2,3학년이 같이 듣는 강의다. 강의실에 정적이 깔렸다.

  “네.”

  나도 모르게 대답에 한숨이 섞여나온 걸 깨닫고 나는 흠칫 움직였다. 교수가 나가자마자 모두들 우르르 내게 몰려들었다. 몰라몰라, 나는 손으로 마구 내저어 애들의 파도를 헤치면서 어거지로 걸었다. 그 순간 누가 턱 내젓는 내 손목을 잡았다.

  “뭐야?”

  손목을 빼내다가 그리 쉽게 놔주지 않는 아귀힘에 인상을 쓰면서 쳐다보니 중환이놈이었다. 나는 고개를 모로 비틀며 웃었다.

  “왜?”

  그 곁에 연지가 있었다. 불안한 듯 나와 중환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꺼져.”

  짐짓 묵직하고 심각한 양 무게잡고 중환이가 물어봤지만 나는 일축했다. 잠시 손목을 더 붙들고 있던 놈은 손을 풀었다. 우리의 심상찮은 분위기 덕분에 내 주위에 새까맣게 깔렸던 후배놈들이 좌악 흩어졌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갈라선 사열종대 사이를 행진했다.

  “교수님.”

  연구실 문을 두들기니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책이 양 벽을 가득 메웠다. 가운데에는 어설픈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다. 교수가 앉으라고 손짓했다.

  “괜찮은가?”

  머리꼬리 자른 말에 무슨 말인지 눈을 껌벅이고 있으려니 교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프지 않은가?”

  나는 웃었다.

  “아, 예.”

  “나는 다섯시에 퇴근할 거야.”

  “네?”

  “내일 열쇠를 복사해줄 테니 오늘은 다섯시 이후에 들어와.”

  “교수님!”

  나는 벌떡 일어섰다. 교수도 따라 일어섰다.

  “제가 그러면 아, 네, 좋습니다 넙죽 받아들 줄 아셨습니까? 사람 우습게 보는 것도-!”

  나는 정말 몰랐다. 교수가 키스로 입을 막을 줄은, 정말 몰랐다. 벌린 입술로 순식간에 혀를 들이대며 입술을 깨무는 그 테크닉은 정말 절묘했지만 그것에 느낄 계제가 아니었다. 문도 잠그지 않았다. 누가 들어올지 모른다. 식은땀이 등에 흘러내렸다. 알려지면 교수도 끝이고, 나도 당연히 끝이다-! 난 여기서 무사하게 학점받고 장학금받고 졸업해야 된다고!

  “무- 읍! 문도 안 잠갔-!”

  교수가 잠깐 입술을 떼었다. 그렇게 키스하면서도 여전히 눈빛은 담백하고 냉정했다.

  “들어와.”

  “내가 왜!”

  교수는 또다시 내 소리죽인 외침을 입술을 입으로 막았다. 어깨를 밀치려는 내 손을 어느 틈에 잡아서 봉쇄시키고, 허벅지를 내 다리 사이로 밀어붙이면서 교수는 눈빛을 번쩍였다. 밖에서 여자의 구두소리가 또각또각 울렸다. 점점 커지는 그 소리,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정말 들킬지도 모른다. 이 대학생활, 난 돈도 없다! 여기서 쫓겨나면 내 학력은 끝이다! 두려움 때문에 등이 축축하게 젖는데 교수가 자극해오는 숨결 그대로, 젠장- 나는 느끼고 있었다! 입술이라도 깨물면서 참고 싶었지만 교수의 혀가 입안에 가득 들어차 있었다.

  “대답.”

  이 두려움, 이 흥분, 이 것이 쾌감이라는 게 도통 믿겨지지가 않아서, 더구나 아직까지 남아있는 자존심 때문에 나는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교수는 내 대답을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다리 사이로 거침없이 손을 내려 움켜쥔다. 나는 머리끝까지 타올랐다. 조금씩 발기하고 있던 걸 완전히 들켜버렸다. 그 와중에도 구두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나는 결국 견디지 못하고 항복했다.

  “들어갈게요.”

  억눌린 소리로 낮게 말했지만, 나도 듣고 교수도 들었다. 생각보다 더 애원하는 듯 흘러나온 목소리라서 나는 몹시 당황했다. 교수는 손을 놓고 물러섰다. 구두소리가 멈춰서고, 똑똑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옆 연구실이었다. 무릎이 풀려서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 아직까지 심장이 방망이질치고 있었다.

  “아니면 미리 열쇠를 줄까?”

  “됐습니다. 알바있어요.”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뚫어져라 쳐다보는 교수의 시선을 느꼈다. 숨을 가다듬으려고 의자에 앉는데 묘하게 열렬한 시선이었다. 나는 다시 교수를 쳐다봤다. 교수는 아무렇지도 않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낯빛으로 말했다.

  “그거, 불편하지 않은가?”

  “됐습니다!”

  벌컥 소리지르면서 나는 연구실을 뛰쳐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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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르기가 애매해서 한편으로 올렸습니다만,
솔직히 원래 편당 이 정도로 잡고 있었던지라^^;
짧은 분량에 너무 익숙해져 있나봐요;


흑흑, Yurica님, pana님, 리플을 보고 다시금 으샤으샤 했습니다T_T
보고 계신단 말씀보다 더 에너자이저가 되는 건 없어요^^

로느님, 감상 기대하고 있습니다, 에헷~ ^^;


Yurica   2005/04/02

우훗, 이 교수님이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가는군요*_*!!!

엘루네드   2005/04/02

옛, 초안보다 교수님이 더 적극적이시고, 에로씬이 더 많이 들어가고 있어서 당황하고(즐기고) 있습니다^^;

블루밍   2005/04/24

자주 쓰셔서 올려 주셨으면 하는 소망을 품으며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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