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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루네드     http://notyet.ivyro.net
열정 3

3.

  나는 과사무실에서 죽치고 앉아 있었다. 후배들이 연달아 들어왔다 나가고, 복사기가 윙윙 돌아가는 소리가 그치지 않고, 혜영이는 과사무실에서 담배를 꼬나문 채 소파에 앉아서 아르바이트하는 후배에게 컴퓨터를 내주고 문서작성을 시키고 있었다. 보나마나 시험지나, 강의 프린트, 논문 참고자료 리스트 같은 거, 그런 거겠지. 수업시간이 되면 다들 우수수 빠져나가고 과사무실에는 정적이 감돈다.

  “커피 타 줘.”

  혜영이가 불쑥 말했다. 혜영이와 나, 딱 둘밖에 없다. 나는 무슨 소린지 잠시 감감했다.

  “나?”

  “그럼 너밖에, 누가 또 있니?”

  “내가 왜.”

  “그럼 대답해주지.”

  그녀가 코끝으로 웃었다. 귀신같은 계집애. 나는 투덜거리면서 순순히 커피메이커에 물을 부었다. 잠시 기다리면 부르르 물이 끓으면서 김이 올라오고, 곧이어 커피향이 퍼진다. 암암리에 도는 소문 중 하나가, 귀신같은 안조교가 그렇게 깐깐하게 굴어 아끼는 공금으로 최고급 커피를 산다는 의혹. 꽤나 신빙성 있는 소문이고, 반쯤은 사실일 거다. 하지만 과의 모든 소문을 꿰뚫고 심지어 교수님들의 약점까지 잡고 있는 안조교, 괜히 귀신이라는 별명이 붙은 게 아니다. 그런 혜영이에게 감히 공금 착복이 아니냐고 대들 사람은 없었다. 나는 혜영이에게 커피잔을 갖다 주었다.
  “물어 봐.”

  “대체 왜 강교수님이 알고 있는 거냐?”

  혜영이가 커피잔을 홀짝이면서 드디어 나를 쳐다봤다.

  “뭘?”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벌컥 화를 내며 말했다.

  “내가 중환이네서 쫓겨났다고! 집도 절도 없다고!”

  “어머.”

  혜영이는 태연했다.

  “그건 꽤 짜한 소문이라서. 모르는 사람은 1학년 애들밖에 없는데.”

  “애들이야 그렇겠지! 한데 왜 강교수님이 아냐고!”

  “교수님은 귀가 밝으신 분이거든.”

  혜영이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흘기는 듯, 표정의 변화 없이 눈동자만을 약간 치켜올라간 눈꼬리쪽으로 움직여 쳐다보는 저 표정은- 뭔가 감을 잡았을 때 특유의 표정이었다. 나는 불길해졌다.

  “그건 혹시, 교수님 턱이 부어오르고 뺨이 멍든 것, 네 주먹이 까진 것과 뭔가 관련이 있는 거니?”

  으윽. 나는 손을 보았다. 대체 언제 손이 까졌지?





  정신없는 키스였다. 서로의 입안에서 혀를 엉키며, 입술을 빨고 깨물며, 나는 입술은 내장의 말단이라는 말을 생각하고 있었다. 키스만으로도 돌아버릴 것 같은 쾌감이 온다. 키스를 잘하면 당연히 섹스도 잘한다. 키스에서 쾌감을 느끼면 당연히 섹스에서도 쾌감을 느낀다. 대체 이 자식 얼마나 놀아제낀 거야 완전 선수 아니냐 잘못 걸린 거 아닐까 아는 사람과 원나잇 스탠드는 불편한데 으읏- 너무 잘하잖아 등등 생각이 부지런히 뇌주름 사이사이 뉴런을 타고 번쩍번쩍 스파크를 튀기는 그 때에, 교수는 턱선을 입술로 훑으면서 귀를 찾았다. 귓불을 물고, 귀 전체를 잡아 삼킬 듯 이로 간질간질하게 자극하며 그가 속삭였다.

  “내 집으로 이사오겠어?”

  그 입김, 그 혀의 놀림, 나는 내장으로 쾌감이 직격하는, 삽입섹스의 그 아찔한 감촉을 그대로 느껴버리고 녹아내릴 것만 같은 심정을 이를 악물고 참느라고, 미처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에?”

  내 얼굴은 보나마나 말도 못하게 얼빠진 표정일 것이다. 잔뜩 빨개져서, 숨소리는 거칠어져서 달아오른. 하지만 그 말을 이해하는 순간 지끈거리던 아랫도리가 싹 식었다. 나는 교수의 팔을 뿌리쳤다. 교수의 해사한 얼굴을 바라보고, 그 말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님을 확인했다.

  “현준 군?”

  “교수님은 원래 이러십니까?”

  교수는 그 얼굴을 갸웃 기울였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비죽이 웃었다.

  “술에 취하면, 보이는 상대와 자고, 다음날 기억못한다며 사과하고.”

  “현준 군.”

  교수가 정색하고 나를 불렀다. 나는 입술을 말아올려 지은 웃음을 혀로 핥았다.

  “집에 들어오라고 하시는 것도 술주정인가요?”

  빠악! 턱이 돌아갔다. 반사적으로 발이 튕겨올라가는 걸 아슬아슬하게 참을 수 있었다. 나는 교수와 서로 마주 노려보았다. 단정한 얼굴이, 제법 화나 있었다. 하지만 화난 건 이쪽이다. 사람을 뭘로 보는 건가. 싸늘하게 노려보는 대치상태에서 교수가 먼저 손을 들었다. 교수가 긴 숨을 흘렸다.

  “미안하네. 하지만 그건 자네 오해야.”

  교수는 내 눈에서 시선을 내려 내 턱을 바라보았다. 어제에 이어 연타로 얻어맞았으니 곧 부어오르겠지.

  “자네, 지금 집이 없지 않은가?”

  그 말은, 가스 밸브에 던진 성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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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투가 좀 변했습니다.(시간이 시간인지라... 흠흠; <- 찔림;) 그러나 잡아두었던 스토리 라인 자체가 변한 건 아니에요. 그러니 이 발랄한 문체는 예정대로 맞습니다.


사실 저도 열정 쓰고 있었다는 걸 까먹고 있었... 농담입니다; 진짜 농담이에요-_-;
하지만 스토리라인은 기억해도 세세한 설정을 까먹은 건 사실...^^;

...따져보니까, 로느님; 첫회를 무려 2003년에 올렸더군요! 꺅!; 잊지 않으셨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해서 으샤으샤 한 편 올렸습니다^^;;;;

Yurica   2005/03/27

와아, 다음편이 올라왔군요*_* 저도 숨어서 지켜보고 있습니다[번뜩]

BabyAlone   2005/03/27

잊었을리가요. 조만간 감상란에 제대로 된 감상 올리겠습니다!

pana 2005/03/29

와아 문장 멋져요~ 가스밸브에 던진 성냥...파바박한 느낌입니닷! (담편 원츄추추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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