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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      http://www.cyworld.com/is_hari_babylonia
소천 & 동희 시리즈 3. Life is... (15)

                            마음가는 대로 - Life is...


                                     by 하리




“정식으로 인사 해. 여긴 이마이 마쯔오. 내 동생.
인사해라 여긴 내 동반자 김동희.”

동반자. 길동무....

보통 소천이 다른 사람에게 동희를 소개할 때 쓰곤 하는 표현이었다.
그리고 그 어떤 표현보다도 가장 감동적인 표현이었다.
글쟁이라고 불리는 동희 자신도 이렇게 표현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사랑하는 사람’ 이라거나 ‘연인’ 따위의 상투적인 표현으로 그를 소개했지만
소천의 입에서 동반자라는 표현이 나온 후론 늘 서로를 소개할 때는 같은
표현을 써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표현이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굳건히
다져 주고 타인들의 시선 속에서 그들을 더욱 당당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깍듯이 허리를 꺾어 인사하는 청년의 태도에 왠지 어색해졌지만 나이로 치면
어차피 동생뻘이라는 생각에 애써 어색함을 버리고 마주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나눴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지나치게 예의 차릴 거 없어. 자 이쪽은 내 다른 동생들.
너랑 피는 안 섞였지만 나한테  동생이니까 너한테도 형제가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인사해.
이쪽이 김현수. 올해 서른이 됐으니까 마짱 너 보다 한 살이 아래구나.
그리고 이쪽은 김소양. 이제 갓 스물이 됐어. 자 인사들 해.”

여전히 깍듯하기 그지없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태도는 자칫 인간미라고는 전혀
없는 로봇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마쯔오 라는 이름을 가진 사내에게서
그나마 인간이라는 느낌을 받는 것은 아마도 그가 소천과 피를 나눈 형제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서로 소개를 하고 인사를 주고받자 다시 어색한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그는 일단 어머니를 모시고 오긴 했어도 천이 한 달 간 비워두었던 겔러리며 서울
쪽에 벌려놓은 일을 대신 관리하기 위해서 온 것이 때문에 어차피 내일이면
서울로 올라갈 사람이어서 굳이 인사까지 주고받을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을
잠시 한 동희였지만 소천의 생각이 무엇이든 그가 서로 인사를 시키는 것엔 무언
가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굳이 이 어색한 자리를 마련 한 것이었다.

어머니가 오셨다는 말에 피곤한 몸을 일으켜 병원으로 달려온 소천이 때라도 맞
추듯이 같이 들어오는 소양과 현수를 발견하고는 동희에게 마쯔오를 불러달라고
했고, 그리고 즉석에서 무슨 상견례라도 하듯 이렇게 어색하게 인사를 주고받는
자리가 마련 된 것이었다.

다행히도 마쯔오 라는 친구가 어눌하나마 한국말을 할 줄 안 덕에 어색함이 조금
덜어지기는 했지만 소천이라는 매개체 이외엔 어떤 접점도 없는 사람들끼리 마주
앉아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어색함에도 아랑곳없이 소천은 그들을 서로에게 소개하고 있었던
것이다.

“굳이 서로 인사를 시키려는 이유가......”

마치 동희의 그런 의문 -아니 동희 뿐 아니라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 모두가
가지고 있는 의문이겠지만- 을 훤히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소천이 입을 열었다.

“어떤 인연으로 이어진 것이든 양쪽 다 나에겐 평생 함께 할 형제이고, 가족이라는
인연으로 맺어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그렇기 때문에 서로를 알 수 있는 기회
가 생겼을 때 알 수 있기를 바래.
물론 지금 당장 서로 친해지길 바라는 건 아니야.
하지만 앞으로 서로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길 거야.
가능하면 내가 양쪽을 생각하는 것과 똑같은 생각으로 서로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 현수나 소양이 말고도 나에겐 형제가 아주 많아.
마쯔오 넌 혼자여서 이렇게 형제가 많은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지?
때론 숨이 막히게 답답하기도 하지만 또 그만큼 든든한 울타리가 되기도 한다.
너한테 그걸 주고 싶어. 형으로서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일 거야.
그리고 소양이나 현수도 다른 형제들처럼 그렇게 편하게 받아들여 줬으면 해.
그래줄 수 있겠지? 나나 동희를 받아 들여 준 것처럼 말이다.”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외모가 전혀 닮지 않았다고 해도 왠지 모르게 느껴지던 그 위화감과 같은 느낌은
어쩌면 철없던 시절 다른 사람들이 천에게서 느꼈던 그 단절감과도 닮은 것일지도
모른다.
과묵함의 도가 지나쳐서 주변과 조금 거리를 두고 있는 듯했던 과거의 소천과 아주
많이 닮은 것이었고, 소천은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일지도.

아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고독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소천이기 때문에 자신과 피를 나눈 형제
인 그가 그 고독에서 빨리 빠져 나올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일지도......

“그리고 동희는, 그래 내 동반자야. 이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쭉 그럴 거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 모두 동희를 나처럼 여겨주길 바래.
혹시라도 내가 없을 때 내가 필요한 일이 생기면 동희가 있으니까.
똑같이 생각해 줘.
동반자라는 건..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것을 보고, 같은 삶을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해. 그렇기 때문에 나나 동희나 똑같을 수밖에 없어.
소양이나 현수는 이미 동희를 전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내가 굳이 이런 부탁
하지 않아도 그렇게 생각해주겠지만 마쯔오 너는 동희를 잘 모르니까..
이 자리를 빌어서 얘기하는 거야.
어색할지 모르지만 동희를 그냥 형인 나의 애인으로만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어쩌면 나 보다 훨씬 너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몰라.
아주 깊고 넓은 생각과 마음을 가진 사람이야.
그러니까 나한테 하듯이 그렇게 어리광 부려도 돼.”

진지하게 소천의 이야기를 듣던 동희는 어리광이라는 단어에 순간 눈이 동그래졌다.
그리고 그건 소양이나 현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체 저 진중하기 그지없는 태도와 그야말로 남자 그 자체의 얼굴을 가진 큰 덩치의
남자가 어리광이라니......
상상조차 불가능한 단어였다.
그런데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리광이라는 단어가 소천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예. 형.. 그렇게 할게요.”

상당히 느린 말투로 이어지는 소천의 말에 역시 느린 말투로 던져진 마쯔오의 대꾸는
나머지 세 사람의 커다래진 눈을 더욱 크게 만들기 충분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어리광 부려도 된다는 말까지 포함해서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 분
명한 대꾸는 너무나 성실하고 진지하기 그지없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이것이 시트콤의 한 장면이었다면 엄청난 폭소를 유발했을 것이 틀림없지만
이 자리에 앉아있는 어느 누구 하나 웃을 생각 따위는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건 시트콤이 아니니까.

“어.. 공치사가 너무 지나치다. 음.. 이마이씨 라고 해야하나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냥 편하게 생각해 주길 바래요.
이런 거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는 거 알지만....
그냥 형 친구라고만 생각해도 되고.. 하하.. 영 어색하네..
편하게 마음가는 대로 대하면 되요. 천이가 하는 말 너무 신경 쓰지 말았으면 해요..”

잔뜩 어색한 표정으로 황당함을 얼버무리는 동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마쯔오가
싱긋 웃으며 그의 말에 대꾸를 해왔다.
하지만 그의 대꾸보다도 그 싱긋 웃는 웃음이 동희를 더욱 놀라게 만들었다.
역시 핏줄은 속일 수 없다 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에.
외견상으로는 전혀 닮은 구석이 없는 두 사람의 분위기가 뭔지 모르게 닮은 것처럼
마쯔오의 그 미소 역시 소천의 그것과 아주 많이 닮아 있었던 것이다.

“쉽고 어렵고를 따질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선택은 형이 한 것이고 받아들이는 것이 저의 몫이지만
전 그런 문제에 대해서 그다지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형이 동반자라고 말씀하셨으니까, 그리고 형처럼 대하라고 하셨으니까
앞으론 그렇게 생각하겠습니다.
그게 말씀하신 대로 편하게 제 마음가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뭔가 딱딱하게 느껴지는 말투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었다.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자신의 감정이나 의사를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은 언어의 천재이거나 아니면 어려서부터 그 언어를 모국어와 같이 습득 했다면
모를까 어쩔 수 없이 어색해지고 딱딱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야말로 어투 보다 그 말 자체에 의미를 두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 마쯔오를 얼이 빠진 얼굴로 바라보던 동희는 그의 표정과 말에서 전해
지는 진심을 느끼고 그도 편한 마음으로 마주 웃어 줄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구요.”

편하게 마주 웃는 두 사람을 보면서 어색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던 소양과
현수도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연을 맺고 알아간다는 것은 어찌 보면 아주 단순하고
쉬운 것일지 모른다.
누가 보기에도 평범하지 않은 관계로 이어진 그들이지만 조금만 마음을 열고
그리고 넓은 시야로 바라보면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란 없는 법이니까.

“그럼 셋이 이야기 나누고 있을래? 동희랑 난 병실에 가볼까 하는데.
괜찮겠니?“

“응. 다녀오세요 오빠. 마쯔오 오빠는 우리가 잘 챙기고 있을 게요.”

스스럼없이 오빠라는 호칭을 달아주는 소양의 태도에 마쯔오도 다른 사람들도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소천만은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소양의 대꾸
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그럼 부탁한다. 동희야 가자.”

가자는 소천의 말에 얼결에 따라 일어서긴 했지만 돌아가는 상황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 동희는 계속 미적거리며 셋만 남겨진 뒤를 돌아다보았다.

“걱정하지 마. 애들도 아니고 알아서들 잘 할 거야.”

“어... 걱정하는 건 아니고.. 그냥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김동희. 여우에 홀린 얼굴이야. 바보 같아 보여.”

이것 또한 동희에겐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한 변화였다.
한 달 전 처음 이곳으로 내려왔을 때의 소천과는 아주 많이 달라진 모습.
한결 여유 있고, 편안해진 듯한 모습이었다.
이런 일이 있기 전처럼 간간이 농담을 던지기도 하는 천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동희 역시 은근히 안심이 되긴 하지만 그럼에도 그 밑에 깔려 있는
슬픔을 느끼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이렇게 겉으로나마 담담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다행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미리 알고 준비하는 것이라고 한들 하루하루, 일분일초가 마치 살얼음판처럼
그렇게 긴장되고 두려워지는 것을 동희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데....
그라고 오죽할까.

하지만 둘 다 애써 그런 긴장감과 두려움을 견뎌내고 삭혀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아니 그들 뿐 아니라 가족 모두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
정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죽음을 향해 더 가까이 나가는 모습을 그저 지켜만 보아야하는
것은 그야말로 피가 마르고 숨통이 조금씩 조여드는 것과 같은 것이었지만
누구 하나 그런 것을 내색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들 자기의 자리에서 생활에 충실한 모습으로, 담담하게 사실을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그렇게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 이제 곧 끝나리라는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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