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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a
멀고 높고, 보이지 않고, (1)

멀고 높고, 보이지 않고,

<< 모든 것에는 신이 깃들려 있단다.
길가의 작은 돌 하나에도, 하늘에 떠도는 구름과 그 구름을 이끄는 바람에게도… 나무의 풀잎 하나하나에도 신이 깃들려 있고, 우리 인간들에게도 신이 깃들려 있단다.

네 안에도 신이 있으며, 내 안에도 신이 있단다. 우리와 함께 있지. 신은 언제나 너와 함께 있단다. >>









character1 등장인물 하나




처음 만나본 삼촌은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는 웃으며 내게 [안녕] 이라고 말했지만, 그가 내게 다가오는 거리만큼 나는 뒤로 달아나 아버지 뒤로 숨었다. 그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그 반응에 왠지 모를 미안한 감이 들기도 했지만, 역시 무서웠다. 단순히 처음 만난 낯선 사람이어서는 아니었다. 어디가 그렇게 느껴진 거였을까. 큰 키에 위압감이 들었던 걸까… 흠잡을 곳 없이 단정하게 그려진 턱 윤곽이라던가, 서늘한 콧날, 부드러운 곡선이지만 날카롭게 살짝 올라간 눈 꼬리라던가… 빛조차 반사되지 않는 새까만 검은 눈동자와 착 가라앉은 검은 색 머리카락의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에게서 무서움이 느껴졌다. 웃으면 화사할 거 같은데… 웃어도 웃는 느낌이 아니었고, 그 사람의 호흡에도, 주변을 감싸고 있는 공기와 그 공간을 메우고 있는 원자하나하나에도 악(惡)이 느껴졌다. 그리고 보여진다. 무엇을 하든 나쁘게 될 것이라는 그 무언가가 보였다. 쉽게 말해 길가다 앞으로 넘어져도 뒤통수가 깨질 것이고,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질 상황이 쉽게 보였다.

그가 우리집에 와서 머무르는 며칠 내내 대체 저 사람은 언제 떠날 것인가로 전전긍긍했다. 삼촌 주변을 감싸고 있는 불길한 느낌이 우리집으로 옮겨올 것만 같은 기묘한 불안감이 들었다. 삼촌이란 사람과 함께 같은 지붕아래서 지낸 며칠간은 잠자리도 편칠 않았다. 악몽의 연속이었고, 가위 눌리는 일이 예사였다. 그렇게 불안한 몸과 마음으로 저 사람이 언제 떠날까를 기다렸고, 삼촌이 한국을 떠나 일본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속으로 만세를 외쳐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삼촌은 같이 지내는 일주일동안 처음 만난 조카와 조금도 친해지지 않았음에 무척 서운해 했고, 그렇게 떠났다. 그가 그렇게 서운해 함에는 진심이 느껴졌지만 그렇다고 그가 무서워지지 않은 것은 아니었던 지라, 나는 끝까지 그를 달갑게 대할 수가 없었다.

그가 일본으로 출국하고 한 달이 지난 즈음 아버지는 일본에 삼촌을 만나러 갈 일이 있다고 하면서, 굳이 나를 끌고 가셨다. 할아버지를 만나러 간다라고 겉으론 그리 말씀하셨지만,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면 자연적으로 삼촌도 보게 되리란 걸 알았다. 그래서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랬었지만 결국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아…네, 저기 안녕하세요.”

다행히 전에 한국에 왔던 그 삼촌은 보이질 않았다. 할아버지는 일제시대 때 일본으로 건너와서 광복 후에도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셨다고 했다. 아버지 홀로 한국으로 나와 사업을 하면서 결혼도 하고 정착해 가정을 이룬 거였다. 하지만 대개 친족들이 일본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심심치 않게 일본을 드나들고는 하셨는데 나를 데려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처음 만나게 된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과 고모들이 나를 반겨줬다. 아버지와 비슷하게 닮은 얼굴들이어서 그런지 친숙한 기분이었고, 다들 좋게 대해주셔서 들뜬 기분이 됐다.

“이야, 아가들은 역시 하루가 다르게 크는 구나!!”

모두가 모인 방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환하게 웃으며 들어오는 낯선 사람에게 나도 모르게 같이 따라서 웃게 됐다. 그 자리에 모인 삼촌들과 고모들이 막내 삼촌왔다~ 인사해라 라고 나를 떠밀었고, 몇 시간전 공항에서 만난 친족들에게 했던 어색한 인사와는 달리 막내삼촌이라는 사람에게는 손쉽게 친숙한 느낌의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그렇다해도 평범할 거 없는 내 인사에 그는 크게 기뻐했다.

“우왓! 웃었다!!”

“??”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있는 나를 그는 덥썩 끌어안고는 머리를 흩트리며 맘껏 부비부비를 시작했다. 너무나 친밀한 그의 행동에 어리둥절해 있는 와중에 마침 안으로 들어오시던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녀석, 한 달전에는 그렇게 설게 굴더니…”

“그쵸? 큰형님! 이 녀석 내숭이었나봐요. 이야~ 우리 조카 여기 있는 동안 이 삼촌이 실컷 주물럭 거려볼까?!!”

이게 무슨 소리인가… 이 사람 분명 처음 만나는 삼촌인데… 무슨 소리야? 나의 궁금함을 눈치 챈 삼촌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눔아! 내가 한달전의 그 삼촌이닷!”

그럴 리가… 그 삼촌이 이 삼촌이란 말야? 그 때 그 사람이 이 사람이란 말야?? 말도 안돼…
그때의 그 무서운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착각했던 건가… 꿈이라도 꿨던 걸까…
그는 밝게 활짝 웃는 사람이었고, 그가 웃으면 주변 공기가 달라졌다. 그가 가는 곳마다 뭔가 밝은 빛이 그를 따라다니는 것만 같았다.

그가 너무나도 좋았다.




삼촌은 연극배우였다.
고등학교시절부터 일찍이 연극을 시작한 삼촌은 몇 년 지나지 않아 조금씩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인지도가 서서히 올라갈 무렵 한국 내에서도 그에게 손을 뻗쳐왔다. 한 달 전 우리집에 왔던 건 당시 그 일 때문이었다고 했다.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하지?”

다음날 삼촌을 따라 극단 구경을 간다고 나섰을 때의 일이었다. 그는 뜬금없이 주어없는 의표를 찔러왔다. 사무실에 들어선 삼촌은 그 안의 직원에게 무언가를 얘기하더니 그 직원은 곧 동그랗게 말린 종이 한 장을 가져다주었다. 종이를 펴자 펼쳐진 건 극단 포스터였다.

“지난달에 했던 연극이야.”

“…”

그것을 보는 순간 눈이 크게 떠졌다. 한 달 전에 봤던 그 얼굴이 포스터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삼촌의 얼굴이었다. 포스터안의 사람은 삼촌이기도 했지만 한 달 전의 만났던 그 무서운 사람이었다.

“한 달 전에 네가 나를 멀리 했던 이유는 이거야.”

나는 가만히 그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나는 그때 …음 한마디로 말하자면 천하에 다시없을 정도로 악하고 재수없는 녀석을 연기하고 있었어… 그리고 나는 그 역에 완전히 몰입된 상태였지.”

“????”

뭔 말을 하는 건가.

“너는 그걸 본거야. 에헤~ 너 지금 모른 척 하고 있는 얼굴인데?”

체신머리없이 가벼이 말하는 그의 모습은 소년 같았다.

“나는 알아. 네가 보고 들을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애매하게 말끝을 흐리고 있었지만 그의 표정은 단호했다. 그리고 뒤이어 말하길, 너와 나는 같아- 라고 즐겁게 말했다. 뭐가 즐거웠던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그런 줄 알고 살았었다. 내가 볼 줄 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사람은 나의 아버지였다.

“우리 준영이…, 음… 슈퍼맨 알지? 슈퍼맨은 말이다… 그냥은 아빠처럼 회사에 다니다가 악당들이 나타나면 악당들을 혼내주잖아. 근데 말야, 그냥은 사람들이 슈퍼맨이 슈퍼맨인 줄 몰라. 그건 말이지… 악당들이 슈퍼맨이 어디있는 줄 알면 슈퍼맨 몰래 나쁜 짓을 저지르고 다니기 쉽고… 에 또, 또… 나쁜 악당들이 같이 편을 짜고 슈퍼맨을 골탕 먹일 지도 몰라… 그러니까! 너도 슈퍼맨처럼 평소에는 네가 보이는 걸 안 보이는 척 해야 하는 거야!!”

아버지는 질질 끌면서도 뭔가 장황하게, 그리고 핵심을 알 수 없는 얘기를 더듬더듬 이어나갔다. 근데 왜 그래야 하는 걸까. 어째서 보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척을 해야하고, 들리면서도 듣지 못한 척 해야 하는 걸까. 아버지의 설명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아버지 나름대로는 어린애가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하려고 슈퍼맨을 들어서 얘기를 한 거겠지만… 그게 더 헷갈리고 이해를 더 복잡하게 만든 것 같았다. 그냥 그러려니 몽롱하게 듣고 있었다.

“그러니까아~ 세계평화와 지구의 안전!! 우주의 대평화를 위해! 파이팅!!”

버엉하게 듣고 있는 와중에 아버지는 혼자서 주먹까지 불끈 쥐고 허공을 향해 휘두르는 마무리까지 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요지는 그거였다. 절대 아는 척 하지 말 것. 그리고 비밀로 할 것…
그렇게 덮어둔 것이 5년이 지났다. 나를 낳은 엄마도 모르는 일이었고, 오로지 나 자신과 아버지만이 알고 있던 일이었다. 그는 어린 내게 더듬거리며 여운이 많은 당부를 했었다. 그날 아버지의 당황한 표정과 함께 그 말들은 삼키지 못한 긴 망설임 같은 무거운 돌이 되어 길다고도 볼 수 없고 짧다고도 볼 수 없는 5년의 세월로 내 가슴을 눌러왔다.

“모른 척한다고 모르는 걸로 그게 덮어지나…, 잘만 쓰면 의외로 편리한 거니까 굳이 그렇게 답답하게 살 필요는 없어. 이를 테면 너는 재수없는 사람과 재수좋은 사람을 단번에 구분할 수 있다는 거잖아.”

그러던 것을 나의 막내삼촌이라는 사람은 아주 손쉽게 교통정리를 해버렸다.

“많이 보이고, 많이 아는 만큼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거야. 보인다고 해서 무서워하거나 겁낼 필요는 없어. 너 자신을 바로 세우면 이 세상에서 너를 당할 존재는 아무도 없어.”

그는 어린 내게 빛이었다.
.
.
.
계속...되겠지요?




ps 지금 제 정신이 아닌게죠. 네 그런거죠;
    아직은 프롤로그 격입니다.

케로   2004/09/04

어엇- 기대되옵니다. 뭐가 보이고 들리는지... 알 것 같지만, 모르는 척 하고(...) 기대하겠습니다. +_+

Michelle   2005/01/06

많이 알면 좋을것같은데, 그렇지도 않을수도 있겠어요.. 옛날에는 천기를 누설하면 큰벌을 내린다는말도 있듯이 알아도 모르는척, 아니면 알아도 입을 열지않았다고..., 재수있고없고, 사람을 보아서 이사람은 어떤사람이다라는것을 알면, 정말삶을 사는데 도움이 될텐데요.. 기대가 많이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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