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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59)  시도오 유즈미 (20)  미즈키 마토 (11)  후지키 사쿠야 (16)  츠지 키리나 (12) 
BabyAlone
유우히 & 아츠시 시리즈 2. 펜스 저편에 (4)

[번역/시리즈]



                           펜스 저편에

                    - 夕日&篤志 시리즈 : 2 -


                                              
                                        원작 : 츠지 키리나
                                               junko@penpen.ne.jp
                                                
                                        번역 : BabyAlone
                                               babyalone@orgio.net
                                               babyalone@freechal.com




이 소설과 그에 이어지는 부수자료의 권리는
원작자인 츠지 키리나 상과 번역자인 BabyAlone에게 있습니다.

원작자와 번역자의 허가를 받지 않은 불펌은
절대 허락할 수 없음을 먼저 밝혀 둡니다.









4. 철망의 반대편.

 

살짝 뭔가가 뺨에 닿은 기분이 들어 나는 눈을 떴다.
아직도 몽롱하고 머리에 안개가 낀 것처럼 사고가 희미했다.
여기는 어디고,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는 채,
멍하니 주위를 본다.
이내 그 시야에 아츠시가 들어왔다.

" 아츠시……. "

왜 그가 옆에 있는 건지,일순 이해되지 않았다.
그저 날카롭지만 상냥한 눈동자가 꼼짝않고 날 응시하고 있는 것만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한동안 침묵한 채 그를 다시 보고,
그리고 갑자기 자신이 처한 상황을 생각해 내어 허둥대며 일어났다.

" 지금 몇시? "

무심코 그렇게 외치고,주변을 힐끔힐끔 둘러봤다.
침대 옆 보조 탁자에 디지털 자명종 시계가 있고,
숫자가 밤 12시 반을 가리키고 있다.
난 그걸 보고 깜짝 놀랐다.

" 큰일났다! 시간이 이렇게. 돌아가지 않으면. "

안달해서 일어나려는 내 손을 아츠시가 뜻밖에 꼭 쥐고 만류한다.
너무나 당황하는 날 응시하면서,그는 툭 하고 말했다.

" 돌아가지 마. "

" ……에? "

" 자고 가,여기서. "

한순간 답할 말도 잊은 채 망연해진 나를
아츠시는 힘껏 끌어당겨 그 가슴에 안았다.
가늘지만 근육질인 팔이 날 굳게 붙들고 놓지 않는다.
낮은 소리로 응석부리듯이 그는 말했다.

" 돌려보내고 싶지 않아.자고 가, 오늘 밤은. "

" 아츠시……. "

난 당혹해서 중얼거렸다.
그것은 아주 기뻤지만 한편으로 곤혹스런 말이었다.
그야 가능하다면 나도 이대로 그의 가슴에 안겨서,
그의 옆에 아침까지 있고 싶다.
아츠시의 자는 숨소리와 고동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걸 자장가로 행복한 기분으로 잠들고 싶다.
그렇지만 난 집을 비울 수는 없다.
어머니는 매우 소심하시고 거기다 아주 몸이 약하시다.
무단외박 따윌 하여 조마조마 두근거리게 만들면 기절하실 게 분명하다.
난 잠시 말없이 아츠시의 가슴에 안겨 있었지만,
이내 조심스럽게 되밀치고 말했다.

" 돌아가야 돼.가족이 걱정하니까. "

" 유우히. "

작은 아이가 입을 삐죽이듯 화난 얼굴을 하고 아츠시가 째려본다.
하지만 나 역시 양보하지 않고,
바로 정면에서 그 눈을 응시하고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 돌아가야 돼……. "

두 사람은 침묵한 채 서로를 응시한다.
이윽고 아츠시가 꺾였는지, 후우 하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 바래다 줄게.옷 입어. "

여느 때 같지 않게 없게 힘 없는 음성.
난 마음 속 깊이 미안하게 생각하고 사과했다.

" 미안……. "

아츠시는 입가에 희미하게 자조적인 웃음을 띄고 답했다.

" 아니, 내 쪽이야 말로 무리하게 말했어…… 미안하다. "

그렇게 말하고,혼자 일어서서 거실 쪽으로 걸어갔다.
뒷모습이 왠지 굉장하게 쓸쓸해 보여,
난 무심코 뛰어가고 안아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교복을 입은 내게 아츠시는 옷장에서 얇은 윈드 브레이커를 꺼내 건넸다.

" 입어.밤 바람은 차니까. "

" 응.고마워. "

그 밤,그는 처음으로 나를 바이크로 집까지 바래다 주었다.
전철은 끊겼고 만일 택시로 돌아가겠다고 했어도
틀림없이 그는 들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아츠시는 아무래도 나를 자기 손으로 바래다 주고 싶었을 거라 생각한다.
밤 거리를, 몸을 딱 붙인 채 우리들은 달렸다.
빌려입은 헐렁한 윈드 브레이커가 펄럭펄럭 바람에 날린다.
역시나 한밤중의 바람은 차고
좀 전까지 따뜻하게 침대 안에서 졸고 있던 몸에는 뼈까지 스며들었다.
아츠시의 허리에 두른 양손이 얼어서 지잉하고 저려왔다.
그래도 난 이상한 안도감을 느끼고 아주 행복했다.
두사람끼리만 있는 시간.두사람끼리만의 세계.
지금 여기엔 누구도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이렇게 바람을 가르며 달리고 있는 것은 나와 아츠시 뿐이다
우리들은 하나가 되어 거리를 끝까지 달려나갔다.
그 일체감은 마치 섹스하고 있을 때처럼 강한 감각으로 나를 감쌌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이제 다시는 누구에게도 이 장소를 이 세계를,
넘겨주고 싶지 않다고 통렬히 느꼈다.
이윽고 여러 길을 달리고 여러 모퉁이를 구부러져 우리 집에 도착했다.
그렇다곤 해도, 역시 이 시간에 집 앞에서 부릉부릉 바이크 엔진 소리를
낼 수가 없어서 조금 떨어진 작은 공원 앞에서 내렸다.
모두 조용히 잠든 주택가에 울리는 엔진이 몹시도 시끄럽게 느껴진다.
아츠시는 일단 엔진을 끄고 나를 봤다.
나는 빌린 헬멧을 내밀면서 말했다.

" 고마워.바래다 줘서. "

아츠시는 잠시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지면을 노려본 그대로 속삭였다.

" 괜찮아? 이런 시간에 돌아가고. "

그것은 왠지 묘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왜냐면 늦어버린 것은 이제 돌이킬 수 없고,
거기다 그렇다고 돌아가지 않을 수도 없다.
대개 책임의 절반은 아츠시에게도 있다는 것에.
나는 조금 이상해져서, 무심코 입가를 눌렀다.

" 야단맞겠지만 그래도 할 수 없어.괜찮아,어떻게 되겠지. "

아츠시는 언뜻 시선을 올려 나를 보고,그리고 다시금 눈을 내리깔았다.
발끝으로는 툭툭 지면을 차고 있었고,
핸들을 쥔 손은 스로틀 위를 빙글빙글 돌리고 있다.
언제까지고 돌아설 기미가 없었다.
왠지 여느 때의 아츠시답지 않다.
평상시라면 '또 보자'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경쾌하게 엔진소리를 울리며 내 앞에서 달려가버린다.
그것을 아쉽게 지켜보는 건 내 역할이었음에도.
이래서야 얼마가 지나도 나는 집에 돌아갈 수 없다.
조금 난처해서 별 수 없이 내쪽에서 안녕을 말하려고 생각한 찰나,
아츠시가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 이번 주엔 아침에 만날 수 없을지도 몰라.
   바이크로 다닐지도 몰라서. "

나는 조그맣게 끄덕였다.

" 응,알았어. "

뭐야,그 말 하려고 이렇게 돌아올가지 못하고 있었던 거야?
하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그것만은 아닌 듯 했다.
변함없이 아츠시는 전에 없이 어물쩡한 태도로 남아 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하고 생각하고 있으려니,
겨우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 유우히……,나,이번 일요일,레이스에 나가.
   그,시험 주행을 겸한 작은 미니 레이스지만. "

그는 일단 말을 끊고,
그리고 길게 찢어진 눈동자를 옆으로 돌리고는 나를 보았다.

" 너,보러……오지 않을래? "

두근, 하고 가슴이 울렸다.
그것은 나와 아츠시가 처음으로 전차에서 만났을 때,
그가 내게 돌렸던 것과 같은 눈길이었기 때문에.
날카롭고,하지만 깊숙히 마음을 찌를 뜻한 뜨거움이 있어,
그리고 약간 갈구하는 듯한 색을 머금고 있다.
마음이 흔들려 즉석에서 끄덕이고 말 것 같았지만,
단 하나 마음 속에 남아 있던 상념이 날 망설이게 만들었다.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 일요일? 몇시부터? "

" 예선 없이, 오후 1시 스타트. "

( 거기,리카 상도 와? )

그 한마디가 목 끝까지 나오려 했지만,나는 필사적으로 삼켰다.
그것은 결코 말해서는 안될 말처럼 생각됐고,
그리고 대답을 듣는 것이 무엇보다 두려웠다.
아니…… 대답 따위,듣지 않아도 당연히 알고 있다.
나는 단지,그것을 당연한 듯 말할 아츠시를 보고 싶지 않았다.
보기 흉한 질투로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 일이 없으면…… 갈게. "

나는 애매하게 대답했다.
아츠시가 달리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은 하나 가득이었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날아가고 싶는 마음도 가득했다.
만일 그것이 내게 용납되는 세계라면 말이다.
하지만 역시 나는 망설였다.
하지만 아츠시는 일단 납득했는지 입술을 슬쩍 깨물고는,
손을 뻗어 내 얼굴을 잡고 그 곁에 끌어당겼다.
비틀거리듯 다가간 내 입술에 살짝 얼굴을 뻗어 입을 맞춘다.
차가운 감촉에 가슴이 징, 하고 저렸다.
단지 닿을 뿐인 조심스런 키스 후,그는 살짝 나를 떼어내고 속삭였다.

" 그럼.기다릴 테니까. "

그렇게 고하고 만족한 듯 아츠시는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를 발진시켜 돌아갔다.
나는 홀로 그 장소에 서서 그의 모습을,
달리는 엔진 소리가 멀리 들리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입을 맞추고 간 입술에 슬쩍 손가락을 대어본다.
거기서 새어나온 건 가느다란 한마디였다.

" 바보……. "

그것이 누구를 향해 한 말인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일요일은 빠져들 것처럼 푸른 하늘이 하나 가득 펼쳐져 있었다.
처음 방문한 서킷은 여러가지로 생소해서,
난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둘러보면서 여기저기를 걸어다니고 있었다.
아직 겨우 오후가 되었을 따름이어서,
레이스가 시작된다던 1시까지는 아직 조금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서킷 한가운데에서는 많은 바이크가 달리고 있어,
무서운 폭음이 주변에 울리고 있었다.
그것은 저 아츠시가 데려간 차고에서 들었던 소리보다도,
훨씬 굉장한 것이었다.
구경꾼들도 잔뜩 모여 있었다.
모두,즐거운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
젊은 남자에서 꽤 연배 있는 아저씨들,커플의 모습들도 간혹 눈에 띈다.
하지만 누구나 바이크가 좋아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다.
틀림없이 그것이 뭔지도 모르고 태평하게 온 건 나 뿐 아닐까?
그래도 오늘 레이스는 판매점이 주최한 작은 레이스여서,
그다지 두근두근거리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왠지 축제 같은 즐거운 무드가 감돌고 있어서,
보고 있어도 긴장이 전해지는 느낌은 아니었다.

" 어이,유우히.헤매지 말고,이쪽이쪽. "

사토루에게 불려 느긋하게 펜스 너머로 달리는 바이크를 보고 있던 난,
허둥대며 그 앞으로 달려갔다.
그렇다,오늘은 사토루와 함께다.
그와 함께 온 이유는 두가지.
하나는 내가 무심코 레이스에 대해서 언급하자,
바이크를 좋아하는 그가 무작정 보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이전에 사토루는 자신은 바이크로 달리는 것 자체를 좋아하고,
레이스나 경쟁에는 별로 흥미없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그건 그렇다고 해도,역시 실제로 얘기를 들으면
호기심이 돋은 듯 나보다도 훨씬 흥분한 모습으로
오늘을 마음 속으로 기다리고,지금도 또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내게 즐거운 듯 여러가지 설명을 해줬다.
그를 데려 온 또 한가지 이유는……,그것은 나의 약한 마음 때문이었다.
나는 혼자 여기 오는 것이 너무도 불안했다.
나만이 다른 세계의,뒤쳐진 존재가 되는 것이 두려웠다.
전에 몇번이나 아버지에 이끌려서 여기 온 적이 있다던 사토루는,
익숙한 모습으로 날 데리고 척척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함께 걸으면서,도대체 어디로 가는 것인지 물었다.

" 어디 가는 거야? 사토루? "

사토루는 잠시 기가 막힌 듯한 얼굴을 하곤 대답했다.

" 어디라니,야아.피트야.너,그 남자 만나고 싶잖아? "

" 에? 아니……그렇긴,하지만……그래두ㅡ "

" 괜찮아.너,그 자식한테 초대받았고 거기다 작은 레이스니까,
   말없이 들어가도 야단맞진 않을 거야. "

사토루는 그렇게 말하더니, 겁먹은 날 끌어당겨 걸어갔다.
메인 스탠드의 맞은 편에 피트가 늘어서 있었다.
피트라는 것은 레이스에 출전한 차를 정비하거나 대기시키는 장소를
말하는 것으로 각 팀마다 하나,작은 방이 할당된다.
그러면 레이스까지의 시간을 여러가지 세팅의 최종 조정을 하거나
타이어를 데우거나 하면서 기다리는 것이다.
레이스 한창 중에도,달리는 라이더에게 여러가지로 지시하거나,
때로는 고장이나 트러블로 돌아온 차를 수리하는 일도 있다.
요컨대,팀 각각 분장실이라는 느낌일까.
피트에는 많은 팀이 들어가 있고,
역시 구경꾼들과는 달리 긴장한 모습으로 각각 작업을 하고 있었다.
개중에는 역시 축제처럼 느긋한 분위기로 즐거운 듯 움직이는 곳도
있지만 몇개인가의 팀에는 진지한 공기가 떠돌고 있어,
아플 정도로 얼어붙은 긴장감이 전해져 온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아츠시가 있는 팀이었다.

『팀·LIGHTNING』이라고 그려진 간판이
입구 근처에 세워져 있었고, 그 안에서는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여러가지 바쁜 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 때 가게의 차고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물론,
본 적 없는 남자들도 몇명인가 모여 있었다.
그리고,그 속에 아츠시가 있었다.
앞가슴에 하얀 표식이 있는 까만 라이더 수트를 입고,
바이크 옆에서 점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처음 보는 레이서 모습의 그는 왠지 굉장히 멋있게 보였다.
검정 수트에는 옆에 있는 차체와 맞춘 듯
팔과 다리에 노란 라인이 들어가 있었고,
여기저기에 여러가지 메이커의 로고가 하나 가득 붙어 있었다.
레이스용 라이더 수트라는 것은 넘어져도 괜찮도록
어깨라든가 팔꿈치에 단단한 패드가 들어 있는 듯,
그것을 입은 아츠시는 여느 때보다 훨씬 늠름하고 날렵한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하고 있는 옆얼굴도 전에 없이 진지하고 심각하다.
마치 지금부터 전장에 가는 전사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나는 반드시 그런 건 아니었지만 말을 걸 수가 없어서,
그저 침묵한 채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우리들 곁을 누군가가 지나쳐 피트 안에 들어간다.
그 사람은 조금도 겁먹지 않고 안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말을 걸었다.

" 미안,늦었네요.네에, 음료숩니다ㅡ "

그것은 리카 상이었다.
그녀는 스텝과 같은 점퍼를 입은 채
팔 하나 가득 음료수 캔을 안고 밝게 웃고 있었다.
일하던 사람들이 모두 안심한 듯 표정을 풀고,
그녀의 손에서 마실 것을 받아들었다.
리카 상은 아츠시 자리까지 가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변명처럼 말했다.

" 미안,앗짱.포카리는 어떤 자판기든 품절이야.
   비슷한 걸 사오긴 했는데, 이걸로 괜찮아? "

아츠시는 싫은 표정 하나 보이지 않고,순순히 받아들었다.

" 아아,괜찮아.스포츠 드링크라면 뭐라도. "

그렇게 말하고,그녀의 눈앞에서 그것을 마셔 보인다.
그것은…… 아주 자연스런 광경이었다.
어제 오늘 시작된 것이 아닌,훨씬 전부터 계속되어 온,
깊이 연결된 관계.
게다가 두 사람은 지금 동일한 세계에 서 있는 것이다.
내가 들어가 본 일이 없던 아츠시의 세계에…….
내가 멍하니 침묵한 채 보고 있으려니,
옆에서 사토루가 걱정스런 듯 팔꿈치로 찔렀다.

" 어이,말 안 걸 거야? "

나는 힐끔 그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그런 분위기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런 내 기분에 반해,
그 안의 한사람이 나를 알아차리고 소리를 질렀다.

" 어어? 아츠시의 친구라던 아이 아닌가? 관전하러 온 거야? "

그 소리에,아츠시가 놀란 듯 고개를 돌렸다.
바로 날 찾아낸 듯,이쪽을 향해 걷어왔다.
그와 동시에 내 곁에 있는 사토루도 알아차리고,
조금 의아한 눈길을 돌린다.
그래도 내 앞까지 오더니 왠지 기쁜 듯이 중얼거렸다.

" 왔어? "

나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 응. "

아츠시는 만족한 듯 표정을 풀고,그리고 나서 힐끗 사토루를 보았다.
아무래도 처음 만나는 그가 신경쓰이는 것 같았다.나는 서둘러 소개했다.

" 아, 그는 내 친구인 쿠와다 사토루.전에 얘기했지?
   친척인 소꿉친구가 있다고.
   바이크를 좋아해서 레이스 보고 싶대서 같이 온 거야. "

사토루는 입가에 붙임성 있는 미소를 띠며 고개를 숙였다.

" 반가워.언제나 유우히가 신세지고 있지. "

그 말을 듣고,난 얼굴에서 불이 날 것처럼 붉어졌다.
그 말은 사토루가 우리들에 관해서 전부 알고 있다는게 명백하지 않은가.
그것도 왠지 지독히 의미심장하게.
나는 두근거리면서 아츠시를 슬쩍 올려다봤다.
하지만 그쪽은 그런 걸 신경쓰는 기색도 없이,
그저 불쾌한 듯 눈살을 찌푸리고,
그럼에도 일단은 가볍게 목례를 돌려주며 인사했다.

" 반가워. "

목소리가 낮고 차다.역시 어딘가 불쾌한 모양.
나는 사토루를 데려오면 안되는 걸까, 하고 생각하면서
머뭇머뭇 말을 걸었다.

" 저……아츠시,힘내.그리고 조심하고. "

아츠시는 이내 입가를 누그러뜨리고,자신 있는 듯 미소했다.

" 아아,오늘의 레이스는 물론 낙승이야.
   나오는 놈들도 대단한 게 없고 이쪽도 어차피 준비연습 같은 거니까. "

" 그래? "

" 아아.포인트도 안되는 로컬 레이스니까.
   우선 나간다면 절대 이길 거지만. "

그렇게 말하는 아츠시의 얼굴은 지금까지 본 어떤 그보다도 강하고,
그리고 독해 보이는 것이었다.
뻔뻔스러울 정도로 자신이 넘치고 있다.
새로운 그를 내가 말없이 주시하고 있으려니,
안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 아츠시,슬슬 엔진을 걸지. "

아츠시는 돌아가겠다는 신호를 하더니 내게 말했다.

" 피트에서 봐도 좋아.알겠어, 잘 봐.
   누구도 따라붙지 못할 정도로 달려줄 테니까. "

내 반응도 듣지 않고,그는 몸을 돌려 돌아갔다.
그가 가버린 후,사토루가 문득 중얼거렸다.

" 굉장한 자신감이군. "

나는 힐끗 사토루를 봤다.정말로 그대로다.저런 그는 처음 본다.
보통 때는 격하지만 스스로 자신을 어필하는 타입은 아니다.
어느 쪽인가 하면 허전할 정도로 자신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는다.
침묵한 채 나에게 기대는 타입도 아니지만
스스로 싸움을 걸 것 같은 인간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오싹할 만큼 공격적인 느낌이 들었다.
이윽고 오토바이에 본격적으로 엔진이 걸렸다.
바앙, 하고 몸이 흔들릴 것 같은 굉음이 나고,
레이서 특유의 낮게 땅을 뒤흔들 것 같은 배기음이 펼쳐진다.
사토루가 흥분한 듯 중얼거렸다.

" 우와,대단해. 참을 수가 없군.
   이 엑조스트 노트(배기가스 냄새).느글거려. "

사토루는 완전히 빠져들어 눈을 반짝이면서 삼킬듯이 응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기분은 잘 알 수 있다.
그것은 바이크에 전혀 무지한 나조차 흥분시킬 것 같은,
영혼을 뒤흔드는 소리였다.
그것에 매료되어 주체할 수 없이 빠져드는 그들의 심정은
너무나 이해가 갔다.
그 중,여기저기 피트에서도 닮은 듯한 소리가 울렸다.
슬슬 스타트 시간이 가까워 온 것이다.
이곳 피트도 이내 분주해지고,주변을 감싸고 있던 긴장감이 증대했다.

" 어이,타이어워머 제거해.슬슬 나가자고. "

" 아츠시,
   시작은 5000에서 7000 정도 사이에서 조금 오차가 있을지도 몰라.
   헤어핀으론 가능한 한 회전을 떨어뜨리지 마라. "

" 누군가 코스 상황을 듣고 와.아까 어떤 팀이 전복한 것 같아.
   오일이라도 샜음 곤란하다구. "

엔진의 굉음에 지지 않을 정도로 큰 소리가 여기저기 난무하고 있다.
타닥타닥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횡하니 얼어붙은 공기.
드디어 싸움이 시작된다.아무리 작은 규모라도 레이스는 레이스.
이기는 자와 지는 자가 반드시 존재한다.
그리고 참가하는 누구나가 그 정점을 노리고 달린다.
레이스에서는 결과가 전부라고 전에 아츠시가 말했다.
혹독한 말이지만 그대로인지도 모른다.
함께 달리고 함께 골인하는 사이 따위 불필요한 세계다.
아츠시는 열려 있던 수트 앞을 잠그고, 양손에 레이싱 글러브를 꼈다.
인상이 더욱 험악해지고, 마치 뾰족한 나이프처럼 번뜩이고 있다.
리카 상이 잽싸게 헬멧을 건넸다.

" 여기, 앗짱. "

아츠시는 침묵한 채 받아들었다.고맙다는 말도 없다.
그것이 당연한 듯한 행동이었다.
틀림없이 언제나 레이스에서, 준비를 끝낸 아츠시에게
마지막으로 헬멧을 건네는 것은 그녀의 역할일 것이다.
아츠시는 오른손으로 머리를 쓸어올리고는,
병사가 투구를 쓰듯 푹 헬멧을 썼다.
그리고 잠시 하늘을 우러르는 것처럼 천정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한번 크게 심호흡하는 것처럼 어깨를 들어올렸다 내리고는,
단호히 말했다.

" 갑니다. "

그리고는 동료들이 매달려 있던 바이크에 타 핸들을 틀어쥔다.
점장님이 옆에서 큰 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 알겠나, 아츠시.오늘 레이스는 어디까지나 시험주행이니까.
   잘못돼도 열내서 위험한 짓은 하지 마라.절대 머신을 부수지 마. "

" 예. "

" A·팩토리하고 레드 존 두 팀만 체크해.나머진 쓰레기다.
   이상한 트러블에 휘말리지 않도록 조심해. "

" 예. "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어깨를 점장님이 펑, 하고 크게 두드렸다.

" 좋아, 이기고 와. "

그 말을 신호로,아츠시를 실은 바이크가 미끄러지듯 피트를 나갔다.
오일 타는 냄새가 그 언저리에 남아,아쉬운 듯 가버린 머신을 전송했다.
피트 속은 무사하게 보낸 것이 한 순간만 안도의 공기가 떠돈다.
하지만 이내,앞으로 시작된 싸움을 향해 새로운 긴장감에 둘러싸였다.
뒤에서 멍하니 서서 보고 있던 우리에게,
전에 차고에서 본 남자가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었다.

" 어이,자네들.좀더 이쪽에 와서 보지 그래.
   어차피 오늘 레이스는 중간 작업도 없을 것 같으니. "

하지만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 아뇨……,전 스탠드 쪽에서 보겠습니다. "

" 괜찮겠어? 상관없는데? "

마음써서 해 주는 말을 정중히 물리치고,
나와 사토루는 피트를 떠나 스탠드 방향으로 돌아갔다.
도중,걸으면서 사토루가 중얼거렸다.

" 저, 괜찮아? 피트에서 보라고 했잖아? "

나는 아스팔트 지면을 응시하면서 조그맣게 답했다.

" 괜찮아. 저기 있으면 방해되잖아?
   어차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

"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

사토루는 미련이 남은 듯 돌아, 눈을 반짝이며 뒤를 봤다.
사토루로서는 거의 기회가 없을 피트에서의 관전이라는 멋진 찬스를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난 저기 있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저 피트 출입구 바로 앞에서,중간에서 한발 나서는 것이 불가능했다.
아무래도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 같아서.
메인 스탠드에 도착했을 때엔 정확히 워밍업 런이 끝나서,
각 머신이 각각의 출발점에 도착한 참이었다.
작은 레이스라선지 예선없이 제비뽑기로 결정된 출발점이다.
아츠시의 머신을 찾으니, 꽤나 뒤쪽에 있었다.
각각의 차체가 부웅부웅하며 낮은 굉음을 울리고 있다.
서킷 장소에선 아나운서인 듯한 사람이
경쾌한 음성으로 중계를 시작이고 있었다.
모두가 지켜보는 속,코스 옆 종렬로 늘어선 램프가 붉은 빛으로 물든다.
그것이 하나씩 꺼져가고 최후의 램프가 꺼진 것과 동시에,
전부가 그린(녹색등)에 점화한다.
그리고 머신은 굉음을 한꺼번에 울리면서 스타트했다.
와아, 하고 스탠드로부터 환성이 터졌다.
싸움이면서 카니발인 레이스가 시작된 것이다.
스타트 직후에 뒤쪽에서 굉장한 기세로 출발해,
순식간에 선두집단에 가까워진 머신이 있었다.
노란 카울에 검은 차체ㅡ 아츠시다.
아츠시는 뒤죽박죽으로 북적대는 후방집단에서 단번에 빠져나와,
제1코너를 구부러질 무렵에는 이미 다섯번째 위치까지 올라와 있었다.
터무니 없는 스피드다.
멋진 로켓 스타트에 감탄의 술렁거림이 일어나는 중,
휘익하고 차체를 기울여 지면에 비비듯이 경사를 만들어 코너로 진입한다.
그리고 날카로운 브레이킹으로,
한순간에 안에서 들어가 눈 앞의 2대를 앞질렀다.
훌륭한 퍼포먼스에 관객들이 기뻐하며 열광했다.
아나운서가 부추기듯 칭찬하고 소리지르고 있다.
레이스는 초반에서 중반으로 치닫고 있었다.
나는 말문을 잃은 채 망연히 응시하고 있었다.
난생 처음 보는 레이스는 생각 이상으로 박력이 있고 나를 압도했다.
아니, 무엇보다 나는 아츠시에게 압도되었던 것이다.
근사하단 말 따위로 표현할 수 없다.
그것은 내가 알고 있던 아츠시가 아니었다.
한사람의 레이서.게다가 훌륭한 기술을 가진 재능있는 레이서다.
나는 초보자였지만,
지금 달리는 그가 주변 어떤 사람들도 발끝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유달리 빠르다는 사실은 잘 알 수 있었다.
확실히 레벨이 틀린 레이스라고 그 자신도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그는 빠르다.빠르고 능숙하다.
틀림없이 그가 이전 들려주고 준 그의 꿈도
결코 단순히 꿈 같은 이야기는 아닌 것이다.
그것은 열심히 하면 손에 넣을 수 있는 정도로 현실에 가까운 것이다.
사토루가 옆에서 감탄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 굉장해…….저 자식,지독하게 빠르군.정말 눈에 띄잖아. "

나로서는 대꾸할 말도 없었다.누가 봐도 아츠시는 빠르다.
내게 콩깍지가 씌인 건 아니다.
레이스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아츠시는 이미 세바퀴째에는 화끈하게 톱에 나섰고 추월을 허용치 않았다.
사토루의 말로는 그다지 열심히 공략하고 있는 건 아니고
꽤 여유를 가진 주행법이라지만,
그래도 그 뒤로 추월해 오는 사람의 모습은 없이 완전하게 독무대였다.
우리 앞에 앉아 있던 젊은 사람들이 큰 소리로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었다.

" 저 노란 놈,굉장히 빠르잖아.뭐라더라,모리카와던가?
   저 자식,나올 데는 틀림없이 나오지 않아? "

아무래도 아츠시 얘기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옆 사람이 기가 막힌 듯 답했다.

" 뭐,그런 것 같아.저 자식,지역 레이스에 나가는 놈이라고.
   그것도 종합에서 톱을 노리는 놈 중 하나잖아? "

" 그래? 어째서 그런 놈이 이런 놀이 레이스에 나온 거야? "

" 다담주 S서킷에서 전 일본 제9전을 하잖아?
   거기 스포트로 나간다는 소문이야.
   그걸 노리고 머신을 달구는 주행이라도 하려는 거 아닐까? "

" 우와,얄미ㅡ.그럼 첨부터 승리는 정해져 있는 거 아닌가.
   딴 놈들이 불쌍하잖아. "

하하하, 하고 큰 소리로 웃는다.
말하는 내용의 절반 정도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어쨌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만치
아츠시는 그 나름대로 이름이 알려진 레이서였던 것 같다.
사토루가 꾹 팔꿈치로 찌르며 의미심장하게 씨익 웃었다.

" 굉장하잖아.저 자식,굉장한 유명인이었어. "

자랑스럽게 말하며,사토루는 웃고 있었다.
하지만 난 그에게 되돌려 준 미소가
진심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나는 멋진 아츠시를 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에 감격하고 있었지만,
그 배 이상으로 풀이 죽어 있었다.
펜스 저편, 서킷의 검은 코스 위를 탄환처럼 달려 추월해 가는 그.
그것을 스탠드에서 보고 있는 나.
그 세계는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다.
펜스 저편에 있는 것은 나로서는 손이 미치지 않는 아츠시였다.
멋있고,훌륭한 재능을 감춘 기대주 레이서.
아무 쓸모도 없는 나 따위가 곁에 있을 필요도 없는 사람.
그리고 그런 그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철망 저편에서 함께 서 있는 사람들이다.
말없이 이쪽에서 관전할 수밖에 없는 나 따위가 아니다.
난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 굉장해……,굉장해,아츠시.멋져…… )

흥분으로 가슴이 흔들렸다.
감동과 함께 어쩔 수 없는 쓸쓸함이 끓어올라,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흘러넘칠 것 같은 눈물을, 눈을 깜박여서 나는 필사적으로 저지했다.
이윽고 압도적인 강함으로 아츠시가 1위로 골인했다.
스탠드에서 큰 박수와 환성이 끓어 오르고,
그것에 답하듯 아츠시가 오른손으로 승리의 포즈를 취해 보인다.
그런 모습도 여느 때의 그로서는 상상도 못할 것인데,
그럼에도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후속차가 아직 달리고 있는 코스를 천천히 한바퀴 돌아,
마지막으로 피트에 돌아갔다.
피트에서는 동료들이 만면에 웃음을 떠올린 채,
매우 기뻐하며 그를 마중나가고 있었다.
아무리 작은 레이스라도 1위를 한 것은
역시 그들로서도 레이서로서도 기쁜 것이다.
아츠시가 헬멧을 벗고 그들에게 응한다.
멀리에서였지만 그도 굉장히 기뻐하고 있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늘어선 사람들에게 하이터치로 인사하고,
제일 마지막으로 점장씨와 악수한 뒤,
사람들이 뒤적거리며 거칠게 그의 머리를 헝클어트리고 있었다.
그것은 언제나 그들의 풍경이었다.
바이크 레이스란 세계에서 함께 싸우며
이해와 신뢰를 서로 나누는 동료들의 풍경.
그리고…… 그 속에는 리카 상도 있다.
이 이상은 아니랄 정도로 기쁜 듯이 웃고,
아츠시 곁에서 행복하게 떠들어대고 있다.
나는 말없이 그들을 보고 있었다.
피트 정면의 스탠드에 서서,
철망의 펜스 1개 사이에 가로막힌 이쪽의 세계에서
꼼짝않고 아츠시를 응시하고 있었다.
축하한다고 마음에서부터 기꺼이 기뻐해 주고 싶지 않은,
그런 자신을 뭣보다 혐오하면서 비참한 생각에 얽매여서…….
그런 중에 레이스가 끝나고,바로 간단한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정식대회가 아니기 때문에 매우 간단한 식이었지만,
그것은 그 나름대로 편안하고 즐거운 분위기로 가득차 있었다.
아나운서가 경쾌한 진행으로 분위기를 업시키고 있다.
코스 옆에 급하게 만들어진 간단한 시상대에 소개받은 라이더가 올라간다.
물론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츠시였다.
커다란 트로피가 건네지고,뭔지는 모르지만 큰 상자에 든 부상을 받자,
아츠시는 팔 하나 가득 그것들을 안고 기쁜 듯이 웃고 있었다.
저런 아츠시의 웃는 얼굴은 그리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와 있을 때에는 거의 볼 수 없는 표정이다.
마음 속에서부터 기뻐하고 그것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고 있다.
나는 그런 그를 보면서,가슴이 찌릿하고 아파왔다.
만약…… 만약 내가 그들의 동료라면……,나는 틀림없이
저 웃는 얼굴을 보기 위해 전부를 던져도 좋다고 생각할 테지.
저 웃는 얼굴을 위해서는 뭐라도 할 것이다.
어떤 작업도,어떤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만약 내가 저 세계에 있을 수 있다면,
나도 그를 위해 뭔가를 해 줄 수 있다.
그리고,함께가 되어 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역시 나는 이렇게 철망의 이쪽 편에서 보고 있을 수밖에 없고,
함께 손을 잡고 승리를 기뻐하는 것은 허용되어 있지 않았다.

" 오옷,귀여운 레이스 퀸의 등장이군요.
   여기서 한번,우승한 그에게 승리 키스라도 해주려는 걸까요? "

뜻밖에 그런 아나운서의 소리가 들려,나는 깜짝 놀랐다.
보니,팀 동료나 다른 팀 사람들에게 밀려서
리카 상이 쑥스러운 듯 시상대 쪽으로 향하고 가는 참이었다.
주변 관객이 왁자지껄 흥을 돋구는 중에서,
에,싫어,따위 귀여운 소리를 흘리면서 손에 작은 꽃다발을 갖고
별 수 없다는 듯 걸어간다.
그래도 그 얼굴은 매우 기쁜 듯 결코 싫은 것은 아니었다.
시상대까지 가자 방긋 웃으며 아츠시에게 꽃을 건넸다.
뒤에서 모두가 시끄럽게 떠드는 걸 난처한 듯 입술을 내민 채 돌아보고,
그래도 별 수 없다는 듯 몸을 구부린 아츠시의 얼굴에 입술을 가져가서,
살짝 뺨에 키스를 했다.
와아 하고 환성이며 야유가 터지고,성대하게 박수가 터져 나온다.
쑥스러운 듯 메롱, 하고 혀를 내밀고 웃고 있는 리카 상.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아츠시는 손을 내미는가 했더니
휙 하고 시상대 위에 올려서 자기 옆에 서게 했다.
더욱 높이 환성이 오른다.
그것은 마치 외국 레이스의 시상식을 보는 듯 생소하고,
하지만 멋진 광경이었다.
보는 사람 전부를 즐거운 축제 분위기로 만드는 듯한 퍼포먼스였다.
하지만, 나만은 그것을 보고 웃는 일이 불가능했다.
문득 옆에 있던 사토루가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 ……뭐야 ,저거. "

언뜻 그를 보자,사토루는 화난 듯 험악한 얼굴을 하고
불만스런 듯 입술을 다물고 있다.
왠지 당장이라도 달려나갈 것 같은 분위기다.
나는 사토루의 옷소매를 슬쩍 끌어당겨 속삭였다.

" 가자,사토루. "

" 유우히……. "

나는 그대로 레이스장에 등을 돌리고 출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내 따라온 사토루가 내 손을 잡아 세우더니,분연한 모습으로 말했다.

" 너,괜찮은 거냐,저걸로? "

" 뭐가? "

" 뭐냐니……! "

나는 흥분해 있는 사토루를 차분한 눈으로 응시하며 답했다.

" 좋지도 싫지도,뭐라고 말할 문제가 아니잖아?
   아츠시가 이겨서 그걸 축하하는 거잖아. "

" 그게 아니라,저 여자……. "

" 그녀도 동료인 걸.같이 시상대에 서는 건 이상한 게 아냐.
   별로 이상하다던가……. "

그렇게 말하면서 가슴이 꽉 조여들듯이 아파온다.
스스로 입에 내면서도 마음과 다른 점에 압사할 것 같았다.
나는 무심코 말을 멈추고,그대로 침묵한 채 고개를 숙였다.
틀림없이 지금의 나는 너무나 추한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질투나 선망,패배감,거기에 어찌할 수 없는 자기 혐오와 비참함이,
가슴 속에서 빙글빙글 맴돌고 있다.
입을 열면 더러운 말이 튀어나갈 것 같아,꾹 하고 굳게 입술을 물었다.
사토루는 잠시 못마땅한 얼굴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지만,
이윽고 한번 한숨을 쉬고 슬쩍 어깨에 손을 댔다.

" 돌아갈까……. "

그렇게 말해주는 그의 온화함이 기뻤다.
우리들은 침묵한 채 나란히 하고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금 걸었을 때,갑자기 뒤에서 불러 세워졌다.

" 유우히! "

심장이 두근하고 크게 울리고,한순간 숨이 막혔다.
아츠시의 목소리다.
나는 천천히 돌아봤다.
저편에서 아츠시가 라이더 수트 차림으로 달려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우승의 흥분이 아직도 가라앉지 않은 느낌으로 고양된 표정으로 달려온다.
아츠시는 우리 옆까지 오더니,
옆에 있는 사토루는 무시하고 나만 보고 입을 열었다.

" 뭐하는 거야,유우히.찾았잖아. "

나는 조금 당황했지만,입술에 무리해서 웃음을 만들어 보였다.

" 우승 축하해,아츠시.굉장했어. "

아츠시는 싱긋 웃었다.

" 아,뭐,한 수 아래 상대로 질 수는 없는 레이스였으니까. "

이기는 게 당연한 느낌으로 대답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역시 기쁜 듯한 분위기가 배어 있다.
내가 말없이 응시하고 있으려니,
아츠시는 잠시 불안한 듯 눈썹을 찌푸리고 불만을 표시했다.

" 그것보다 너,어째서 피트에서 보지 않았지?
   거기에 있으라고 아까 말했……. "

그 때 아츠시의 말을 가로막고,
옆에 서 있던 사토루가 망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 당신 말야,도대체 뭘 생각하고 있는 거야? "

" 에? "

갑자기 말을 가로막자,아츠시는 깜짝 놀란 듯 사토루에게 눈을 돌렸다.
그 때 처음 제대로 그를 의식한 듯 격한 눈동자를 돌리고 노려본다.
그렇지만 사토루도 지지 않고,찌릿하고 마주보고 말을 시작했다.

" 모리카와 상이죠? 당신,확실히 멋있어.빠르고, 잘하더군.
   내가 봐도 반해버릴 정도로 대단해.
   외모도 근사하고 인기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여기저기에서 잘 알려진 얼굴이라고
   용납할 수 있는 게 아니지. "

아츠시는 갑자기 그런 이야기가 나오자,당연한 듯 당혹하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냐는 얼굴로,망연히 사토루를 마주보고 있다.
대답조차 잊은 것처럼.
하지만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갑자기 사토루가 그런 말을 한데 놀라서,말조차 잊고 있었다.
그런 우리의 시선 한가운데에서,사토루는 분연히 말을 계속했다.

" 당신,유우히가 어떤 기분으로 좀 전의 시상식을 봤는지 모르는 거야?
   당신,이 녀석의 아픔을 알고 있는 거야? "

마치 당장이라도 덤벼들 것 같은 기세로,사토루는 아츠시에게 대들었다.
좀 전에 내게 보였던 불만을
이번에는 가슴에 두는 일 없이 공공연히 드러낸다.
나는 어찌해야 좋을 지 몰라서,
그저 갈팡질팡하면서 조그맣게 중얼거릴 따름이었다.

" 사토루… 그만둬. "

하지만 그런 부탁은 사토루의 귀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사토루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감정대로 생각을 죄다 털어놓았다.

" 뭐야,저 여자.저게 당신의 여자친구면,이놈은 뭐야?
   당신,유우히와 사귀고 있잖아? 진심이라고 했잖아?
   그럼, 어떻게 저런 여자와 헤죽거리고 있냐구?
   그것도 이 녀석의 눈앞에서,이 녀석이 있는 걸 알면서…….
   당신,이 녀석이 태연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유우히가 항상 아무 말도 않고 가만 있으니까,
   그걸로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에? "

그것은 사토루의 솔직한 분노였다.
사토루는 아까 보고 느꼈던 분노를,나에 대한 동정을,
그대로 입에 낸 것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그것을 받아들인 아츠시는,
지독히 놀란 듯 아연하게 듣고 있었다.
한마디도 대답하지 못한 채,그저 말없이 내내 서 있다.
그런 아츠시 앞에서 사토루는 나를 숨기듯 가로막고 외쳤다.

" 나…… 별로 당신들을 방해할 마음은 전혀 없어.
   하지만,유우히를 울리는 건 용서 못해.
   그런 자식한테 이 녀석을 줄 수 없어! 절대로! "

" 사……. "

" 가자! 유우히! "

사토루는 그렇게 말을 남기곤,
내 팔을 잡고 재빨리 출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계속.



천재소녀 님께 보냅니다.

* BabyAlone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4-08-20 23:41)

월하 2007/03/29

으하하하하 유우히! 사토루와 사겨버려!
저딴 자식 차버려~
그냥 리카에게 줘버려!(미안 리카.. 딱히 네게 악감정이 있는건 아니다;;)
사토루 뭐하는거냣! 첫사랑이라면서! 좋아했다면서! 소중하다면 잡아버렷!!!!!(이러지마..)

유우히 2007/07/12

월하님~넘 귀여우세요..^^
저도 아츠시가 밉네요.. 유우히맘이 확 와닿네요...ㅜㅜ

우르키오라 2008/01/09

다운받아보는것은 여기서부터 끊겼어요ㅜ
그래서 엄청 찾고있었는데 결국 찾았네요 ^^

달곰 2009/01/13

매 회 달려있는 월하님 댓글이 더 재밌어...(덜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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