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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59)  시도오 유즈미 (20)  미즈키 마토 (11)  후지키 사쿠야 (16)  츠지 키리나 (12) 
BabyAlone
유우히 & 아츠시 시리즈 2. 펜스 저편에 (2)

[번역/시리즈]



                           펜스 저편에

                    - 夕日&篤志 시리즈 : 2 -


                                              
                                        원작 : 츠지 키리나
                                               junko@penpen.ne.jp
                                                
                                        번역 : BabyAlone
                                               babyalone@orgio.net
                                               babyalone@freechal.com




이 소설과 그에 이어지는 부수자료의 권리는
원작자인 츠지 키리나 상과 번역자인 BabyAlone에게 있습니다.

원작자와 번역자의 허가를 받지 않은 불펌은
절대 허락할 수 없음을 먼저 밝혀 둡니다.









2. 교차의 시기


 
그곳은 <오토 숍·Lightning> 이란 이름의 바이크 숍 뒤에 있는,
꽤 넓은 차고였다.
내가 아츠시에 이끌려 그곳에 도착했을 땐
벌써 이미 몇명인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바이크를 둘러싼 채 여러가지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그 중 한사람이 아츠시를 알아차리고 고개를 들어 말을 걸었다.

" 여,늦었잖아,아츠시. "

아츠시는 미안한 듯 작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 죄송합니다.조금 길이 막혀서요. "

그런 대화를 듣고 그 장소에 있던 전원이 손을 고정한 채 이쪽을 본다.
모두 우리보다 훨씬 어른인 남자들 뿐이었다.
전원이 기름 투성이인 작업복을 입고,
손도 얼굴도 까맣게 더럽히면서 일을 하고 있다.
아츠시에게 돌려진 그들의 시선은
당연히 바로 뒤에 있던 낯설은 손님인 내게 모였다.
그러나 그 눈동자에 경계심이나 악의같은 건 느껴지지 않고,
한사람이 흥미롭단 듯 물었다.

" 어이,그 뒤에 귀염둥인 누구지? 친구냐? "

아츠시는 힐끗 날 보더니,태연한 태도로 소개했다.

" 아아,그렇습니다.세팅하는 걸 보고 싶다고 해서요. "

" 흐응,드문 일인데,네가 친굴 데려 오다니. "

난 허둥대며 꾸벅 고개를 숙이고 인사했다.

" 아, 저,저는,아이하라 유우히라고 합니다.죄송합니다,갑자기 방해드려서. "

바이크 옆에서 누운 자세로 작업하고 있던 남자가 상냥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 아아,별로 신경 안 써.
   적당히 그 근처에 앉아 보지…… 이런,지저분해서 앉을 자리도 없나.
   이런 미인이 오는 줄 알았음,제대로 청소해 둘 걸. "

그 사람은 긴장한 내 마음을 풀어 주려는 듯 소박한 농담을 해서 모두를 웃긴다.
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의 그런 온화함을 마주하고,
조금 어깨 힘이 빠진 기분이 들었다.
아츠시는 내 몸을 살짝 손으로 밀어 오래된 타이어가 쌓인 벽 한쪽 구석에 데려 가
타이어 위에 앉을 장소를 만들곤 재촉했다.

" 여기 앉아. "

난 조그맣게 웃는 얼굴을 돌려줬다.

" 응,고마워. "

" 오일 냄새 같은 것에 기분이 나쁘면 밖에 나가 있어.
   익숙지 않은 것에 취해 치밀어 오를 수도 있으니까. "

" 응,알았어. "

난 순순히 끄덕거렸다.이런 때의 아츠시는 아주 상냥하고 안심이 된다.
언제나는 매정하고 무뚝뚝하지만,
이쪽이 불안하게 생각하는 걸 놀랄 만치 민감하게 꿰뚫어 보고
세세하게 마음을 써 준다.
그건 천성이 온화하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언제나는 언제나니까 역시 그런 모습은 시선을 끌어
수염을 기른 남자가 장난스레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 뭐야,아츠시.너무 다정하잖아. 그런 너, 첨 보는데. "

" 무슨 말씀 하시는 겁니까,카츠타 씨.놀리지 마세요. "

아츠시는 살짝 뺨을 붉히며 대답했다.
카츠타란 사람은 한층 재미있단 듯 말을 계속했다. 

" 아니,정말이야,지금 태돌 리카 짱이 보면 틀림없이 불타오를 걸.
   리카 짱한텐,넌 언제고 매정하게 반응하니까. "

두근하고 가슴이 뛰었다.
이름 하나가 우연히 그 장소에 나타난 일에 놀라고 또 당혹함을 느껴 버린다.
그 이름이 너무나도 자연스레 그 사람의 입에서 나왔단 사실이,
그것이 특별한 게 아니라,언제나 이 장소 이 사람들에게
그리고 아츠시에 있어 일상처럼 익숙해진 것이란 사실을 알고,
아픔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아츠시도 다시금 껄끄러움을 느꼈는지 화제를 돌리듯 말했다.

" 이제 됐다구요.것보다 저,뭘하면 됩니까? "

" 아,그럼,그쪽 머신의 캐블레이터(중화기 : 역자 주) 청소해 줘. "

아츠시는 순순히 그 말대로
그들이 둘러싸고 있는 것관 다른,또 1대의 바이크 앞에 앉아 일을 시작했다.
한번 시작하자,그 후엔 이제 나 따윈 잊어버린 것처럼 진지한 얼굴로
묵묵히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아츠시는 이제 곧 큰 레이스를 앞두고 있어 작업도 막바지에 다다랐다고 했지만
그에 비해선 차고에서일 뿐 그닥 긴박감이라고 말한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왠지 느긋한 공기가 떠돌고 있다.
하지만 수다스럽고 화기애애한 느낌도 아니고,
모두 진지하고 말수는 적었다.
필요 최소한의 말을 나누는 것만으로
이후엔 각자의 몫에 나름대로 열중하여 작업하고 있다.
물론 아츠시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런 속에선 아무래도 아츠시와 떠들 수 없어,
난 꼼짝않고 침묵한 채 그들의 작업을 보고 있었다.

가끔 넓은 차고 속을 둘러 본다.
거기엔 보통 보기 힘든 물건이 가득 넘치고 있었다.
벽쪽엔 지금 내가 의자 대신 앉아 있는 타이어가 잔뜩 쌓여 있고,
벽에도 여러가지 도구가 매달려 있다.
렌치나 스패너 정도라면 나도 알고 있지만
대체 어디 쓰는 걸까,싶은 공구도 산더미처럼 있다.
몇종류나 되는 철의 와이어나 가늘게 구부러진 이상한 모양의 파이프.
바이크 바깥쪽에 대는 플라스틱 커버라든가
작은 부품이 꽉 찼던 상자며 선반이며,어쨌거나 주변은 물품 투성이로
앉을 자리도 없다고 한 아까 분의 말은 분명 과장이 아니었다.
그리고 차고 속엔 이상한 냄새가 가득 차 있다.
오일 냄새라고 아츠시는 말하고 있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그 밖에도 여러가지가 섞여 있다.오일이며 신나며,그것에 내가 모르는 뭔가까지.
확실히 그것은 강렬하고 익숙해지지 않으면 머리가 아파 올 듯 했지만,
이상하게도 내게 있어선 그닥 불쾌하지 않았다.
그건 이따금 아츠시의 머리카락이나 몸에서 나고 있던 것과 같은 냄새였다고
깨달은 건 한참 뒤의 일이었다.

아츠시는 내 눈 앞에서 손을 새까맣게 오일로 더럽히면서,
캐블레이터라고 불리는 부분을 청소하고 있었다.
날카롭고 아름다운 옆얼굴이다.
그러나 그 눈동자는 언제나와 달리 반짝반짝거리고 있어,
마치 좋아하는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는 아이처럼 즐거운 듯 보였다.
틀림없이 내버려 두면 몇시간이라도 바이크 앞에서 떨어지지 않겠어,
따위 생각을 하면서 난 계속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때때로 긴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뺨이나 이마에 걸린다.
아츠시는 그 때마다 방해되는 듯 그것을 쓸어 올렸다.
몇번이고 반복하는 중에 손에 묻었던 오물이 뺨이나 이마 위에 들러붙어,
단정한 얼굴을 더럽혔다.
완전 진흙에서 놀다가 새까매져 버린 개구장이 같다.
내가 마음 속으로 몰래 킥킥 웃고 있노라니,
뜻밖에 아츠시가 고개를 들고 이쪽을 봤다.

" 유우히. "

갑자기 불려,난 깜짝 놀라 대답했다.

" 뭐,뭔데? "

동요하고 있는 나완 대조적으로,아츠시는 태연한 어조로 말했다.

" 내 진 포켓에 고무가 들어 있으니,머리 묶어 줘. "

" 에? 머릴? "

" 아아.방해되서. "

난 벌떡 타이어 의자에서 일어서 차고의 바닥에 앉아 있는 아츠시한테 가,
그가 턱으로 가리킨 오른쪽 뒷주머니를 더듬었다.
간지러운 듯한 그를 보면서 바스락바스락 더듬고 있으려니,
안에서 2개 정도 고무가 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머리 묶는 게 아닌, 보통 고무밴드였다.
난 무심코 의아하게 그것을 보면서 물었다.

" 이거? 이건 그냥 고무줄이잖아? "

" 아아. "

" 이걸로 묶는 거야? "

" 괜찮잖아,별로? "

잠시 불만스런 듯 입을 삐죽이 내민다.
난 별 수 없이 말한 대로 그의 머리카락을 손에 들고,하나에 모아 묶었다.
여자아이도 아니고 머리카락을 묶는 건 처음이다.
게다가 남의 머리카락이라 방법을 몰라 완성품은 지독한 것이 되었다.
그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푸석푸석하게 흩어져 있다.
하지만 아츠시는 아주 만족스러운 듯 입가에 조그맣게 웃음을 떠올리며
감사의 말을 했다.

" 탱큐. "

그 상냥한 눈동자에 이끌려 나도 무심코 빙긋 미소를 돌려줬다.
문득 깨닫자 왠지 모두 손을 멈춘 채 꼼짝않고 이쪽을 응시하고 있다.
이상한 듯한 그들의 시선 속에,난 귀까지 빨개져 고개를 숙였다.
아츠시도 잠시 쑥스러운 듯 화난 듯한 표정을 하고 모두에게 물었다.

" 무슨 일입니까? " 

처음 날 마주했던 사람이 의외인 듯한 말투로 답했다.

" 아니,네가 다른 사람한테 몸을 만지게 하다니 드문 일이라고 생각해서. "

그 한마디에 난 심장이 파열될 것처럼 놀랐다.
왠지 우리의 관계를 간파당한 기분이 들었다.
설마 알 리 없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낯이 화끈거릴 만치 창피해,
난 그것을 감추려 허둥대면서 그 장소를 떠나 타이어 의자로 돌아왔다.
아츠시도 다소 동요한 것 같았지만,
그 뿐일 뿐 언제나의 무뚝뚝함에 숨기고 불만스런 투로 대꾸했다.

" 그렇습니까? 그런 거 아닙니다, 별로. "

" 하지만 너,레이스 때 외엔 만지는 거 싫어하잖나?
   내가 머릴 쓰다듬으면 바로 도망치잖아."

" 그거야, 점장님. 꼬마가 아니니까…… "

아츠시는 기막힌 듯한 시선을 돌리곤, 차갑게 응답했다.

" 요즘 머릴 쓰다듬으면 좋아할 고교생이 어딨습니까? 보통은 도망치겠죠. "

뿌리치듯 매정하게 잘라 말한다.
어쨌든 이 상점의 점장인 듯한 사람은
그런 아츠시의 무례한 말투에도 익숙한 것처럼 태연하게 대꾸했다.

" 그런가? 너한테 애교가 없는 거 아냐? "

" ……죄송하군요,애교가 없어서. "

이야기는 어느 샌가 진지함이 희박해지고,왠지 만담같은 분위기가 돼 있다.
난 화제가 빗나간 것에 안도하는 한편,마음 속으로 쿡쿡 웃으면서
난 아츠시가 머릴 쓰다듬는 거 좋던데……,따위를 느긋이 생각하며,
두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걸 계기로 그 때까지 침묵한 채 작업하던 사람들이,
한숨 돌리고 손을 멈춘 채 대화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 뭐,아츠시한테 그런 걸 기대해도 소용없는 건 모두 잘 알고 있다구. "

" 그래그래.
   이 자식의 웃는 얼굴 따위,레이스에서 이겼을 때 정도밖엔 본 적 없으니. "

" 그러니까 외려 골리고 싶어지는 거야. "

아츠시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이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으려 한다.
아츠시는 허둥대며 몸을 젖히고 도망쳤다.

" 그만 두시라니깐요,에이토모 씨! 그 손! "

" 아, 알고 있었어? "

새까맣게 더러워진 손을 저으면서 그 사람은 웃는다.모두 함께 웃었다.
방금 전까지의 조용한 공간이 단숨에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따뜻한 분위기로 변한다.
난 옆에서 보면서 불가사의한 감동 같은 걸 느끼고 있었다.

어쨌거나 이들 사이에선 아츠시는 가장 연하로서
그 만큼 귀여움 받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속에서 아이 취급을 받고 토라진 것처럼 시무룩한 표정을 하고 있는
아츠시는,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그와 다른 새로운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런가.이런 아츠시도 있구나.
내 앞에서 보이는,어른스럽고 과묵하고 쿨한 그완 또 다른 아츠시.
약간 귀여워…… 라고 생각하게 된다.그런 말을 하면 분명 그는 화내겠지만.
그렇다.그에겐 내가 모르는 부분이 아직도 하나 가득 있어,
난 그것을 하나 하나 발견하고 더욱 그가 좋아지게 된다.
내 안의 아츠시가 점점 커져 간다.
아츠시가 가득해져 간다…….
그렇다면,아츠시 안에서 난 어떤 식으로 변해가고 있는 걸까?
아츠시는 처음 만났을 무렵보다 날 좋아해 주고 있을까? 
난 네 안에서 대관절 어느 정도의 존재인 거야?

" 아츠시,그렇게 머리카락이 방해되면 자르면 되잖아. " 

한사람이 문득 그런 말을 했다.다른 누군가가 웃으며 답한다.

" 아,안돼 안돼.
   이 자식,긴 머릴 날리면서 여자애들한테 주목받으며 달리는 걸 좋아하니까. "

아츠시는 차갑게 곁눈질로 노려보며 대꾸했다.

" 저,그런 말,한마디도 한 적 없습니다만,호쿠(北) 씨. "

" 그럼,뭣 땜에 자르지 않는 거지.언제나 귀찮아 하는 것 같던데. "

그 때,아까 아츠시를 놀린 카츠타란 사람이 재미있단 듯 참견했다.

" 그건 어이,리카 씨의 요청이 아닌가? 리카 짱,노릭의 팬이니까.
   헬멧 아래로 뻗은 머리칼이 멋있다고 말했거든.그치, 아츠시? "

아츠시의 표정이 팟 굳어진 걸 느꼈다.
그는 발끈한 것처럼 입을 다물고 낮은 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 ……모릅니다,저.……전 단지 게으를 뿐입니다. "

그의 말투에서 불쾌함을 느낀 건지,모두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 때까지의 농담섞인 대화를 벗어난 어정쩡함이 장소를 지배해
왠지 어색한 공기가 감돈다.
놀린 카츠타 씨 자신도 지나쳤단 느낌으로 굉장히 미안한 표정을 하고 있다.
그런 중,아츠시가 언뜻 내 쪽을 보듯 시선을 돌렸다.
……그런가.그,날 신경쓰고 있구나.
여러번 리카 씨의 이야기가 나와 내가 신경쓰고 있지나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아츠시가 화난 건 나에 대한 배려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가 날 걱정하고 있다…….
난 그 자리의 긴장을 찢고,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 저……노릭이라니 누굽니까? 여,연예인? "

모두 일제히 내 쪽을 본다.
모두 놀란 것처럼 눈을 휘둥그레 뜨고,그리고 이내 한꺼번에 웃었다.
조금 기가 막힌 표정을 하고 있다.
바이크에 관심을 갖고 왔다기엔 너무도 초보적인 질문,
게다 이상한 말을 해 버리니,
점장님이 이상한 듯 웃으면서 그래도 상냥하게 설명해 주었다.

" 노릭이란 말이지,로드 레이스 월드 그랑프리에 참가하는 라이더의 이름이야.
   아베 노리시(阿部 典史)라는 일본인이지만.
   노릭이란 애칭으로 불리는데,그가 아츠시처럼 머리가 길지. "

" 그게 아니라,아츠시가 흉내내서 기르고 있는 게지. "

딴 사람이 재빨리 말참견했다.아츠시가 찌릿 하고 노려본다.

" 아니라고 했잖아요? " 

그렇게 대답하는 아츠시는 이미 언제나의 그였다.
묘하게 얼어붙어 있던 공기는 사라져,그 자리는 부드러운 공간으로 돌아왔다.
모두가 계속해서 담소하는 속에서,난 일이 수습된 것에 잠시 안심하고 있었다.

" 한데,점심까진 이제 일을 정리하지. "

점장님의 한마디에 모두는 수다를 멈추고 또 각자 일하기 시작했다.
온화한 정적이 그 장소를 지배한다.

문득 깨닫자,아츠시가 꼼짝않고 날 응시하고 있다.왠지 불가사의한 눈길이다.
뭔가 말하고 싶은,뭔가 전하고 싶은 눈동자.
하지만 뭘 말해야 할 지 몰라서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웃음을 돌려주자,
그는 조금 쑥스러운 듯 눈을 피하곤 그대로 작업을 시작했다.
옆으로 돌린 뺨이 약간 붉게 물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한시간이 지났을까 할 무렵,
누군가의 <배 고파> 한마디로 점심시간이 됐다.
모두가 기지개를 켜거나 어깨를 꿈틀꿈틀 돌리던 속에,
아직도 앉아서 작업을 계속하는 아츠시에게 점장님이 말을 걸었다.

" 어이,아츠시,밥 먹지. "

아츠시는 고개를 들고 답했다.

" 아, 저,이 녀석과 어딘가 나가 먹으려고요. "

" 그런가.그럼,우리 숍 쪽에서 먹을 테니까.먼저 간다. "

그렇게 말하더니,그들은 함께 우르르 차고에서 나갔다.
난 그 광경을 보면서 조금 미안한 기분이 들어 버렸다.
분명 아츠시는 보통 땐 그들과 함께
바이크나 레이스 이야기를 하면서 밥을 먹겠지.
한데 오늘은 내가 있기 때문에 일부러 따로 행동하는 거다.
다시 그에게 마음쓰게 만들고 있는 게 되나.

" 미,미안해,아츠시…… "

내가 조심스레 말을 걸자,아츠시는 이상한 듯 되물었다.

" 뭐가? "

" 그…… 신경쓰게 해서.보통 땐 다른 사람들과 먹잖아? "

" 별로 정해 논 건 아냐. "

아츠시는 아무 상관도 없단 느낌으로 답했다.
하지만 역시 미안한 기분이 들어 내가 고개를 숙이자,
그는 내 눈앞까지 와 더러워진 손 대신 팔꿈치를 써서
상냥하게 내 얼굴을 들어올렸다.
얼굴을 가볍게 눌려 고개를 들자,거기에 그의 얼굴이 팟 부딪쳐 온다.
서로 콧등이 닿을 만치 가깝게 그의 얼굴이 있고,
그것이 상냥하게 날 응시하고 있다.

" 어째서 그런 걸 사과하는 거지? 이상한 녀석이야. "

그대로 입술이 다가 와,살짝 내 입술에 닿았다.
날개가 닿은 듯한 키스였지만 심장 소리가 들릴 것처럼 두근거려 버렸다.
두사람만이 돼 버린 차고에서의 은밀한 키스.
친구가 아니라 연인 사이가 되어 접촉한 한순간.
멍해진 날 내버려 둔 채,
아츠시는 오일에 더러워진 손이며 얼굴을 천으로 닦고 대충 깨끗이 하더니,
크게 기지개를 켜고 말했다.

" 그럼,밥 먹을까? 배 고프다. 유우히,뭐 먹을래? "

난 아직도 멍한 채 답했다.

" 뭐든 괜찮아. "

" 이 근처라면 라면집과 스시집과,또 좀 더러운 술집 정도 밖에 없어.
   낮부터 술집에 갈 수도 없고 초밥을 먹을 만큼 돈도 없고.라면으로 괜찮겠어? "

" 응. "

그럼,하고 나가려 한 우리였지만
난 아츠시 옆에 서서 걷다가 무심코 걸음을 멈추고 중얼거렸다.

" 아츠시…… 오일 냄새…… "

그는 잠시 눈썹을 찡그려 보였다.

" 그야 할 수 없잖아.계속 작업했으니.너도 분명 냄새 뱄을 걸. "

" 이런 냄샐 풍기며 식당에 가면,우리,굉장히 폐가 될지도…… "

아츠시는 난처한 듯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입을 다물었다.
여느 때라면 모두와 함께 숍에서 먹었을 테니,
거기까지 기분을 쓴 적이 없었을 거다.
난 마음쓰듯 말했다.

" 아, 저기,모퉁이에 편의점 있잖아? 거기서 뭔가 사먹지 않을래? "

" 그런 걸로 돼? "

" 응.그쪽이 맘 편하니까.아, 내가 사 올까? 뭐가 좋아,아츠시? "

아츠시는 잠시동안 말없이 날 응시하고 있었다.또 저 불가사의한 눈동자다.
뭔가 말하고 싶은 듯한,어딘가 안타까운 듯한,하지만 따스한 눈길.
그는 뭘 전하고 싶은 걸까?
이윽고 아츠시는 입가에 쑥스러운 듯한 미소를 떠올린 채,조용히 중얼거렸다.

" 같이 가자. "

" ……응! "

난 생긋 웃고 끄덕였다.







그리고서 우리는,빵과 주먹밥과 마실 걸 사고,
차고 밖 타이어 위에 앉아 식사를 했다.
맑게 개인 오후 햇살이 눈부시리만치 우릴 밝게 비추었다.
왠지 매우 행복한 기분이었다.

낯선 곳에 날 동반해 온 책임감에선지,
그러잖으면 아주 좋아하는 바이크의 세계라 편한 건지,
그 날의 아츠시는 전에 없이 말을 많이 했다.
레이스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
그가 항상 달리는 코스에 관한 거라든가 다른 라이더들의 이야기라든가,
전번엔 골 직전에 미스를 범해 3위가 되서 분했단 것 따위를,
그는 즐거운 듯 이러저러하니 들려주었다.
이따금 끼어드는 내 초보스런 질문에도 정성스레 답해 주고,
이전 실패담을 웃으며 알려주기도 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그는 꿈을 이야기했다.
지금은 아직 풋내기지만,장래엔 좀더 상위 클래스로 나가,
장래엔 전일본 레이스에 참가해 보고 싶다고.
그 뒤엔 물론 세계가 있고,거기에 도착하기까진 아직도 멀지만,
단념하지 않고 분발하고 싶다.
그리고 그 때문이라도 지금은 하나라도 더 많은 레이스에서 이겨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눈을 빛내며 얘기해 줬다.

난 그저,뜨거운 눈을 하고 말하는 아츠시를 꼼짝않고 옆에서 응시하고 있었다.
이렇게 그가 스스로 자신에 관해 얘기하는 건 좀처럼 없는 일이다.
게다 그 내용이 장래의 꿈 이야기라니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저,아츠시.
그건 누구한테나 가벼이 할 얘기가 아닌,특별한 얘기지?
그건,내게 마음을 터놓은 증거지?
그거…… 내가 네게 특별하단 거야? 난 조금은 자만해도 되는 걸까? 
난 네게 있어,바이크 다음 정도론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그렇게 믿을 수 있을까?
저어,아츠시……·.
그런 생각을 하면서,난 그의 이야기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아츠시가 즐거운 것 보였기 때문에 나도 함께 들떠 있었다.
얼마나 근사한 일요일일까,같이 와서 잘됐다 하고 그 땐 생각했다.  
진심으로…….

이윽고 모두 숍에서 돌아와,다시금 작업이 시작됐다.
오후로 접어들어 다시 1시간 정도 조용한 작업이 계속된 후,
그 때까지 꼼짝않고 숨죽이고 있던 바이크에 엔진이 걸렸고,
굉장한 소리가 차고 가득 퍼졌다.
보통 바이크 엔진 소리 따위완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박력이다.
거기에 독특한 코를 찌르는 냄새가 떠돈다.
오일이 타는 냄새라고,아츠시가 가르쳐 줬다.
난 왠지 들떴다.
바이크에 흥미는 없었지만 역시 진짜 레이스용 머신이고 보니,
그 박력에 압도되어 두근거린다.
여기에 아츠시가 타고 달릴 거라 생각하자,더욱 그 매력에 끌려들었다.
그 아츠시는 점장님이나 다른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진지하게 얘기하고 있다.
굉장한 소음 속이라 모두 자연스레 큰소리로 고함치듯 얘기하고 있다.

" 내주 즈음에 코스에 나가 달리려면 세심한 체크가 필요해. "

" 그렇군요.
   새로 교체한 캡의 상태나 사스의 조정을 더 손질보지 않으면. "

" 타이어도 새 타입의 물건이 도착했으니까.조금 그립 정도도 조사하고 싶고. "

" 호쿠 씨,서킷의 사용 허가 받아 둬.가능하면 긴 시간으로. "

소음 속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나로선 알지 못할 전문적인 내용 뿐이었다.
말투도 방금 전의 한가로운 느낌관 전혀 달리
모두 진지하고 긴장감으로 넘치고 있다.
아무래도 그런 건 아니자만 내가 말참견한 분위기가 아니라서,
난 방해되지 않도록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 아, 그러나 점장님,내주 말엔 확실히 판매점 주최의 작은 레이스가 있으니
   코스를 쓸 수 없을 겁니다,분명. "

" 아,그러고 보니 뭔가 연락이 왔었지.
   음…… 아츠시,평일에 달릴 수 있어? "

아츠시는 잠깐 눈썹을 찌푸리며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 뭐…… 요일에 따라선.알바도 부탁하면 쉬게 해 줄거라 생각하고요. "

난 옆에서 들으면서 문득 그와 항상 만나는 화요일과 금요일에 관해 생각했다.
주에 이틀만,게다 그저 2-3시간의 데이트 따위
내게 있어선 어딘가 부족한 일순간의 한때였지만,
어쩌면 아츠시에게 있어선 바쁜 매일 속에 무리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기쁜 듯 미안한 듯한,복잡한 기분이었다.
왜냐면 난, 가능하면 그의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
왠지 무거운 짐이 되면,그가 내게서 떠나버릴 듯한 기분이 들어서.

" 우선 평일에 연습 주행 예정을 짜는 방향으로 움직여 보고,
   그리고서.괜찮으면 다른 서킷으로 해도 되고. "

" 그렇군요.뭐,아직 시간은 있으니까요. "

그런 진지한 대화 속,뜻밖에 긴장감을 단숨에 부술 듯한 사건이 있었다.
바이크 옆에 서 있던 아츠시 뒤에서 하얗고 가는 손이 뻗어 와,
그 눈을 가리더니 동시에 높은 소리가 울렸다.

" 누구게? "

방울을 굴리는 듯한 귀여운 음성.여자아이의 소리다.
아츠시가 재빨리 불쾌한 듯 대꾸했다.

" 그만 둬,리카.까불지 마. "

눈을 가린 가는 손을 떨쳐내더니,화난 듯한 얼굴을 뒤로 돌린다.
거기에 있는 건 내가 전에 꼭 한번 만났던 적이 있는,
쇼트 커트가 귀여운 소녀였다.
동그랗게 큰 눈을 한,작은 키에 명랑한 듯한 여자아이.
즐거운 듯 웃는 얼굴이 매우 인상적이고 틀림없이 누구한테도 사랑받을,
그런 챠밍한 아이.
아츠시의,그녀…….
리카 상은 아츠시가 노려봐도 아무렇잖은 모습으로
도톰한 입술을 내밀어 불평했다.

" 재미없어.금방 눈치채니까.잠깐 생각해 주는 척 하면 안돼? "

" 바보,이런 시시한 짓을 하는 거,너 밖에 없잖아? "

" 시시한 짓을 해서 미안하군요,앗짱 바보. "

두사람의 악이 없는 대화가 눈 앞에서 전개된다.난 그 광경에 굳어졌다.
주위 사람들이 친근하게 리카 상에게 말을 건다.

" 이야,왔어,리카 짱. "

" 여,리카 짱, 오랜만.건강해? "

" 응,카츠타 씨도 안녕하셨어요? "

" 안녕안녕……하고 말하고 싶지만,
   최근 리카 짱이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 쓸쓸해서 풀이 죽어 있었지. "

" 뭐야,카츠타 상은ㅡ.입만은 건강하시네요. "

갑자기 나타난 그 소녀는 마치 오래 전부터 여기 모두와 함께 있었던 것처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이내 그 자리에 섞여 들어갔다.
오랜만,하고 말하고 있는 걸 보니,
어쩌면 리카 상은 그닥 자주 찾아오는 건 아닐 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교적 뜨겁게 환영받는 저 분위기는,
그녀가 그들에게 얼마나 큰 존재감을 갖고 있고 애정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인지
저절로 엿볼 수 있는 것이었다.
실제 그녀가 나타났을 뿐인데 장소가 밝고 화사해져,
모두의 표정이 밝아진 기분이 들었다.
그런 속에서,아츠시만이 언제나의 무뚝뚝함에 시동을 건 듯,
언짢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아마,내 기분을 배려해서겠지.그는 불쾌한 듯한 어조로 차갑게 물었다.

" 너,무슨 일로 온 거야? "

리카 씨는 엷게 색을 칠한 입술을 내밀고 불만스럽게 답했다.

" 너어무해,무슨 일로라니? 오면 안돼? "

" 그렇지만…… 여긴 오일 냄새가 나서 싫다고,보통은 들르지 않는 주제에… "

아츠시는 시선을 떨구고 말하기 껄끄런 듯 중얼거렸다.
내게도 그녀에게도 눈을 맞추려곤 하지 않았다.
뭐,당연할 지도 모른다. 지금 여기서 가장 괴로운 기분인 건 아츠실 지도 모른다.
설마 그라도 그녀가 올 거란 걸 알았다면 날 초대하진 않았겠지.
그러나,나도 이 장소에 있는데 대한 참을 수 없는 괴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와 아츠시가 나란히 있는 걸 목격했기 때문이 아니다.
난…… 그와 리카 상이 나누는 대화 속에 있는,특별한 매듭같은 걸 느끼고
괴로웠다.
그것은 아마 아츠시 자신도 모르고 있는 것…….
아츠시는, 리카 상관 왠지 사귀고 있는 듯 주위가 생각하고 있지만,
그러나 정말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저 존경하는 선배 라이더의 여동생이고,  
옛부터 친한 사이로 묘하게 따르고 있다라고만 얘기해 줬다.
별로 특별한 관계도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지만, 툭툭 거리낌 없이 대화를 나누는 저 서로의 말투 속엔,
틀림없이 단순한 친구 이상의 관계가 존재하고 있었다.
아츠시에게 있어,리카 상은 역시 특별한 여자아이다.
그것이 어디까지의 감정인가는 제외하고 말이다.
옆에서 들으며,난 그것을 피부로 느꼈다.
아마,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두사람을 연인 사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그것을 모르는 건,아츠시 뿐일 지도 모른다.

난 두사람으로부터 눈길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가슴이 두근두근한다.들떠서 크게 울리는 게 아니다.
어떡하면 좋을 지 몰라,기분이 지독히 동요하고 있었다.
난 이럼 안된다는 기분에 시달렸다.
이 장소에,두사람 앞에,그들의 세계에,
……아츠시의 마음 속에 존재해선 안돼,그렇게 느껴 버렸다.
아츠시가 진지하게 날 좋아하고,특별하다고 말해 주었던 건 알고 있다.
우린 벌써 이름도 모르는 관계가 아니라,
착실히 마주보고 사귀고 시작한 연인 사이란 것조차 이해하고 있다.
한데도…… 난,그와 리카 상 앞에 있는 것에
어쩔 수 없는 죄의식과 패배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난,<리카 상>이란 존재에 이기지 못하는 걸까?
어째서 이 두사람에 질 것 같은 걸까?
왜 난,이토록 여기서 도망치고 싶은 걸까……?

풀이 죽은 날 내버려 두고,모두는
마스코트를 둘러싸듯 리카 상을 주축으로 즐거운 듯 담소를 계속하고 있었다.
리카 상은 조금 으쓱하며 턱을 들더니,아츠시를 봤다.

" 저기,오늘은 정말로 볼 일이 있어 온 거야.오빠 심부름으로. "

아츠시의 표정이 싹 바뀌어 그 때까지의 불쾌한 눈동자에 빛이 돌아왔다.
어쨌든 그녀의 오빠란 사람을 존경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순간 나에 관해선 싹 잊은 눈을 하고,그는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 신시로(新城) 상이? "

" 응. 오늘,불고기 파티할 거라서 모두 부르러 왔어.물건 사러 온 김에. "

재빨리 주위가 반응한다.

" 뭐야,녀석 일본에 돌아 온 거야? "

" 곧 또 가버린다지만요.오랜만이니까 모두를 만나고 싶다고.
   지금쯤 뜰에서 고기를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을 걸요,분명. "

리카 상이 그렇게 말하자, 모두 기쁜 듯 표정을 고쳤다.

" 좋잖아,불고긴가.먹고 싶다 먹고 싶다. "

" 뭐야,너,막 밥 먹은 주제에. "

" 라면 하나론 배가 모잘라.저,점장,오늘은 이쯤 해 두고 빨리 가죠? "

그들이 탄원하듯 제안하자,점장님은
일단 마지 못해 그렇게 한단 태도를 드러내면서도 바로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 어쩔 수 없군.그럼,빨리 정리해.난 상점 쪽을 맡기고 올 테니. "

모두가 각자가 즐거운 듯 정리를 시작했다.
내가 갑자기 설 장소를 잃어버리고 한심하게 우뚝 서 있으려니,
점장님이 친절하게 말을 걸어줬다.

" 아,너도 가지 않을래? 동료들끼리의 연회라서. "

난 허둥대며 양손을 흔들어 거절했다.

" 아니, 전 이제 돌아가겠습니다. "

" 그래? 별로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데? "

" 아뇨,저…… 오늘은 감사했습니다.굉장히 재밌었습니다. "

내가 그렇게 말하고 인사하자 ,
그 때껏 말없이 옆에서 듣고 있던 아츠시가 이제서야 끼어들었다.

" 그럼,저,잠깐 얘…… "

바래다 줄 테니까…… 하고 말할려 했을 테지.
하지만 그 말은 어이없게 중간에 끊겼다.

" 저기 저기,앗짱.오랜만이니 바이크에 태워 줘.오늘도 타고 왔겠지? " 

리카 상이 가는 팔을 아츠시의 팔에 얽더니 거리낌 없이 졸랐다.
너무나 익숙하고 자연스런 그 행위.
틀림없이 항상 당연한 듯 전개되는 광경일 것이다.
아츠시는 그녀의 요구엔 당혹하면서도
그 행위 자체엔 안달하는 모습을 뵈지 않은 채 그저 못마땅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 그렇지만……,그래도 나,친구를 바래다 줘야 하니까. "

" 친구우? "

리카 상의 시선이 처음 정면으로 내게 돌려진다.두근, 크게 가슴이 울렸다.
그 때 내가 생각한 건,
그녀에 대한 분노도 질투도 아니고, 물론 라이벌 의식 따위도 전혀 없는,
그저 오로지,도망치고 싶다,도망치고 싶단 생각 뿐이었다.
그리고 내 입에서 넘쳐나온 건,
자신도 한심할 만큼 약한,깨끗이 패배를 인정한 자의 대답이었다.

" 아…… 돼,됐어,아츠시.나,전철로 돌아갈게. "

아츠시가 꽉 눈썹을 찌푸렸다.
눈동자가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라고 말하고 있다.
놀라움과 분노가 깃든, 날카로운 눈을 돌린다.
난 그 눈이 무서워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그런 우리에게 한사람이 말해 줬다.

" 아아,그럼 내가 얠,역까지 차로 바래다 줄게.아츠시는 그냥 리카 짱과 가. "

그것은 순수하게 친절에서 나온 것이었겠지.
하지만 그 말은 결정적으로 아츠시에게서 그 후 선택권을 빼앗아 버렸다.
아츠시는 자기 의사를 무시하고 정해져 버린 예정에 불쾌한 듯한 표정을 떠올리곤
침묵한 채 날 매섭게 쏘아봤다.
난 견딜 수 없는 기분으로,그런 그의 시선에서 벗어나도록
방금 전까지 앉아 있던 타이어가 있는 장소까지 가서
하나의 물건을 갖고 돌아왔다.
그리고,조심스레 그것을 리카 상에게 내밀었다.

" 저…… 이거. "

그녀는 크고 동그란 눈을 더욱 동그랗게 뜨고 놀란 얼굴로 그것을 봤다.

" 어? 이것,리카 헬멧……? "

이상한 듯 그것을 응시하고,그리고 다음으로 아츠시의 얼굴을 들여다 본다.
이윽고 만면에 웃음을 떠올리더니,쿡쿡 웃었다.

" 뭐야,이 때까지 갖고 있다 했더니 이 사람한테 빌려주기 위해서였구나.
   난,다른 여자애한테 빌려주는 건가 하고 생각하고
   앗짱 바람둥이 하고 화났었어ㅡ "

힐끗 변명의 여지없이 아츠시를 보고,조그맣게 낼름 혀를 내밀어 보인다.
얼마나 귀여운 반응인가.
전혀 아무 것도 억측하지 않는,
정말이지 소녀다운 순수한 불평과 변명을 거리낌 없이 입에 담는다.
난 그 말이 가슴에 꽂혔다.
그녀를 속이고 있단 가책.
거기에…… 그녀의 아무 것도 의심치 않는 부러울 정도의 자신감을 보자,
몸을 찢는 듯한 비참함을 느꼈다.
난 억지 웃음을 작게 입가에 떠올리고 중얼거렸다.

" 아, 고마워…… "

그렇게 말하고 헬멧을 내밀자,
리카 상은 천만에요 하고 말하듯 킥 하고 웃으며 받았다.
귀여운 웃는 얼굴.정말로 성격이 좋구나,이 아이.
이것이 터무니 없이 성격이 나쁘고 기가 막힐 정도로 싫은 애였다면,
틀림없이 이토록 괴롭진 않았을 텐데.

이윽고 아츠시는 아직 정리하고 있는 사람들보다도 한발 먼저,
뒤에 리카 상을 싣고 바이크에 탔다.
날 바래다 준다고 한 사람에게 인사하더니,
그대로 내겐 아무 말도 없이 달려 가버렸다.
출발하기 전,지독히 날카로운 시선을 내게 던지고.
그것은 날,그 후 계속 깊은 후회의 바다 속에 가라앉혔다.
그 마음을 짓밟아버린 것,후닥 고통에서 도망쳐 버린 것에,
난 어쩔 수 없을 만치 후회했다.
돌아오는 길,혼자 전철에 타는 중 계속 더러운 바닥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눈부시게 창으로 비춰 보이는 저녁 놀에 눈을 돌릴 수가 없어서…….



계속.

* BabyAlone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4-08-20 23:39)

월하 2007/03/29

아아 뭐야아. 이건 전적으로 유우히 보단 아츠시의 배려가 부족한거잖아. 뭣땜에! 저렇게 이쁘고, 착하고, 귀엽고, 게다가 열렬히 사랑해 주기까지 하는 유우히 에게 신경써주지 못하는거냐! 아츠시!! 솔직하게 네 입으로, 사랑한다 좋아한다.. 몇마디 살짝 말해주는게 그렇게 힘듭니까ㅠ 리카따위는, 당신이 예전부터 먼저 명확하게 짤랐어야지, 이제까지 옆에 성가시게 놔둬놓구선, 왜 유우히를 탓하냐구. 그는 바보스러울정도로 순진한데다가, 너만 바라보고 있는구만! ....아아, 그래요. 물론 작가님이 시키셔서, 게다가 그렇게 되지 않으면, 둘이 엇갈리지 않으면 스토리 진행이 안된다는걸 알아요. 그러나 저는.. 저번 소리편부터 해서, 아츠시가 상당한 벌점포이트를 요구하는 행동들만 상.냥.하게. 해대니까.. 조금 쌓이고 있다고나 할까.(후우) 그러니까, 작가님도.. 나를 이렇게까지 빠지게 하시는지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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