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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59)  시도오 유즈미 (20)  미즈키 마토 (11)  후지키 사쿠야 (16)  츠지 키리나 (12) 
BabyAlone
유우히 & 아츠시 시리즈 2. 펜스 저편에 (1)

[번역/시리즈]



                           펜스 저편에

                    - 夕日&篤志 시리즈 : 2 -


                                              
                                        원작 : 츠지 키리나
                                               junko@penpen.ne.jp
                                                
                                        번역 : BabyAlone
                                               babyalone@orgio.net
                                               babyalone@freechal.com




이 소설과 그에 이어지는 부수자료의 권리는
원작자인 츠지 키리나 상과 번역자인 BabyAlone에게 있습니다.

원작자와 번역자의 허가를 받지 않은 불펌은
절대 허락할 수 없음을 먼저 밝혀 둡니다.









1. 새로운 길                  


 
역 홈에 미끄러져 들어 온 전차는 변함없이 혼잡하고 이미 거의 만원 상태였다.
나,아이하라 유우히는 여기서 역 6개 정도 가면 있는
사립 아사히가오카 학원 남자 고등학교에 이번 봄부터 다니고 있다.
한가로운 교풍의 학교는 아주 맘에 들고 즐겁지만,
이 매일 아침의 러시만은 볼 때마다 곤욕스럽다.
그래서 한 때는 도착한 전차를 앞에 두고 후우 몰래 한숨쉬거나 했지만,
그러나 언제가부터 한숨 대신에 두근거림을 안고 난 전차를 기다리게 돼 있었다.

난 눈앞에 열린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 가,
상당히 무리해서 혼잡한 장소를 헤치고 언제나의 장소로 향했다.
세번째 차량의 앞쪽 도어 옆자리.그것이 나의 정위치다.
거기서 난 오늘도 아는 한사람의 얼굴을 찾아, 안도의 웃음을 떠올렸다.
날 기다려 주는 그 사람. 모리카와 아츠시. 케이세이 고교 2년생.
바이크를 좋아하고 아마추어지만 레이스 드라이버고, 그리고……
내 가장 소중한 존재로 가장 좋아하는 사람…….
그가 서투른 웃는 얼굴을 돌려주며, 툭 하니 말했다.

" 안녕. "

" 안녕,아츠시. "

그렇게 말하는 건 역시 아직 간지러웠다.
내가 그 이름을 알고서 이제 고작 2주가 지났을 뿐이다.
우리는 계속 이름을 모른 채(상대는 일방적으로 내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누구보다도 가깝고 누구보다도 먼 교제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것이 겨우 한발짝 진행되어 우리는 겨우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저 약간,그러나 그래도 확실히 이전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걸
우린 느끼고 있었다.

난 아츠시가 서 있는 옆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그의 가슴 속에 들어가도록 섰다.
아츠시도 그닥 체격이 좋달 건 아니었지만 몸집이 작은 나보단 훨씬 탄탄하고,
만원 전차의 혼잡 속에서도 남에게 밀려 비틀거리진 않았다.
우리가 제대로 사귀고 시작한 그 때부터
그는 아침,이렇게 날 지켜주게 돼 있다.
몰려드는 인파와 그리고 항상 날 괴롭히던 답답한 치한으로부터
단단히 가드해 준다.
그래서 난 이제까지처럼 필사적으로 차가운 은색 난간에 매달려 있지 않아도
사람의 흐름에 눌려 내리지 말아야 할 역에서 내리는 변을 당하지 않아도 되고,
매일 아침마다 습격해 오던 모르는 자의 손에 혐오감을 느껴
속이 메슥거리는 일도 없어졌던 것이다.

그 날도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주위로부터 날 감싸도록 몸을 가려줬다.
난 그 가슴 속에서 슬쩍 그 얼굴을 응시했다.
아름다운 얼굴이다.
쭉 뻗은 가는 콧날과 형태좋은 입술.
그리고 딱딱한 인상을 주는 길게 찢어진 눈동자.
무엇이든 내 마음을 뒤흔든다.
무뚝뚝하고 좀처럼 웃거나 하지 않는 구석도.
내가 완전 넋을 잃은 채 보고 있으려니
아츠시가 알아차리고 뭐야, 하듯 고개를 갸웃했다.
난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 저기,말야…… 오늘,만날 수 있어? "

그는 눈가에 부드러운 웃음을 띠고 끄덕였다.

" 아아,언제나의 장소에서 기다릴께. "

" 알았어. "

그렇게 답하며 난 뺨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쑥스러움과 기쁨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우리는 주에 2회 데이트한다.
화요일과 금요일 방과 후에 항상 이용하는 노선 중간 역에서 기다려
두사람끼리 만난다.
그것은 우리가 처음 만났던 무렵부터의 약속같은 것이었다.
그 외 날의 그는 오로지 아르바이트, 주말엔 바이크 레이스에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하고 있단 걸 안 건 아주 최근 일이지만.
그와 매일 아침 얼굴을 마주하게 되고 나서,
데이트 날엔 이렇게 확인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면 아츠시는 확실히 대답을 해 준다.
OK면 OK,안되면 안된다고 확실히 말한다.
그는 어중간하게 얼버무리거나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건 날 마음으로부터 안심시켰다.

왜냐면, 이전처럼 오는지 오지 않는지를 기다리고,
역 화장실 앞 복도에서 몇번이고 시계와 통로 저편을 교대로 볼 필요는
없는 것이니까.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안심함과 동시에 가슴이 아파오는 일도 없다.
그래,이것이 진짜 약속이란 것이다.
이제 이루어질지 어떨지 이것저것 생각하며 고민할 필요는 없는 거다.

이윽고 전차는 내가 내릴 역에 도착한다.
브레이크의 반작용을 버티며 서 있던 내 귓가에 아츠시가 작게 속삭였다.

" 나중에,유우히. "

달콤한 목소리다.심장이 꽉 죄여든다.난 뺨을 물들이곤 끄덕였다.
열린 도어로 난 서둘러 홈으로 띄어 내렸다.
돌아 본 뒤로 다시금 문이 닫힌다.
속에선 인파 저편에서 날 보고 있는 아츠시가 있다.
난 작게 손을 흔들었다.

이것이 나의 일상.매일 아침의 풍경.
이런 행복한 시간을 갖는 일이 가능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확실히 그것은 지금, 내 손 안에 있다.
그리고 난, 그 행복이 얼마나 무르고 깨지기 쉬운 건지도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교실은 언제나처럼 북적북적한 소란스러움 속에 둘러싸여 있다.
수업까지의 짧은 시간을 모두 즐거운 듯 향수하고 있다.
남고라서 여자애들의 높은 음성은 없었지만 대신
커다란 웃음 소리며 아이처럼 떠들고 있는 개구쟁이들의 모습이 여기저기 있다.
내가 자리에 앉자, 이내 친구인 사토루가 다가왔다.

" 좋은 아침, 유우히. "

그 거리낌 없는 웃는 얼굴에 끌려,나도 웃으며 인사했다.

" 안녕,사토루. "

" 뭐야,아침부터 기쁜 듯한 표정을 하고 있잖아. 좋은 일 있는 거야,유우히? "

" 에? 어, 없어, 그런 거. 언제나와 다름없어. "

난 안달해서 부정했다.
하지만 얼굴이 새빨개져,여실히 말과 진실과의 갭을 표시하고 있다.
사토루는 의미심장하게 쿡쿡 하고 웃었다.
사토루는 내 먼 친척이자 소꿉친구.거기다, 가장 친한 친구다.
우리는 옛날부터 마음이 아주 잘 맞았고,무엇이든 숨기는 일 없이 얘기해 왔다.
라곤 해도,역시 아츠시의 일은 말할 수 없어 계속 비밀로 해 왔던 것이다.
왜냐면 아무리 친해도 남자 연인이 생겼다고 태연히 고백할 수 없지 않은가?
그야 사토루니까, 그걸로 날 싫어하게 된다든지 바보 취급할 리는 없다고
믿고 있지만,그러나 절대 쇼크는 받을 거야, 하고 생각하면
좀처럼 커밍아웃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난 문득 어떤 걸 생각해 내고,사토루에게 물었다.

" 말야, 사토루? 저기, 바이크용 헬멧, 얼마 정도 해? "

" 하아? 헬멧? 뭐야, 갑자기. "

사토루는 갑자기 묘한 질문을 받고 눈을 동그랗게 한 채 날 봤다.
그래도 바이크를 좋아해서 여러가지에 밝은 그는 제대로 답해 줬다.

" 뭐 가격이야 여러가지지만.어떤 거? 디자인에 따라 틀리거든. "

" 어떤 거라니……
   모양이나 색은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우선 풀 페이스(얼굴을 완전히 덮는 것). "

난 머리에 떠오른 아츠키의 헬멧을 떠올리며 설명했다.

" 흐응.뭐 3·4만 정돌까? "

" 그렇게나 하는 구나. "

" 풀 페이스가 아니라면 2만이면 살 수 있을 걸?
   더 싼 것도 있겠지만 너무 싸면 내구성이나 뭐나 여러가지 문제가 있고.
   ㅡㅡ근데 갑자기 웬 헬멧? 너, 바이크에 전혀 관심없었잖아? "

" 에? 으,응.그냥,헤헤헤. "

난 허둥대며 웃어 넘겼다.사토루는 의아한 듯 눈썹을 찌푸렸다.
뭣 때문에 갑자기 그런 질문을 했는가, 발단은 이렇다.

전에 나와 아츠시가 만났을 때,
여느 때처럼 난 예의 역에서 내려 주차장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아츠시는 바이크에 올라 마중하러 와 줬다.
그리고 그 바이크에 둘이 타고 아츠시의 형의 것인 맨션까지 갔던 것이지만,
그 도중에 운 나쁘게 우리는 경찰관에 붙잡혀 버렸다.
이유는 간단.아츠시가 노 헬멧이었으니까.
아츠시는 언제나 자신의 헬멧을 내게 빌려주고 자신은 노 헬멧인 것이다.
아무리 사양해도 절대 양보치 않는다.
바이크로 사고가 났을 땐
뒤에 탄 쪽이 날아올라 큰 부상을 입을 확률이 크기 때문에……등
그럴 듯한 이유를 말하고 있지만, 이유는 별개 문제이고
그는 도로교통법 위반을 하고 있어 드디어 그 응보를 받게 됐던 거다.

아츠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것이 그에게 있어 뼈 아플 거란 사실은 짐작이 갔다.
왜냐면 레이서를 하고 있는 아츠시에겐 면허는 필수품으로
만일 면허 정지나 취소가 되면,
그것만으로 자신에게도 팀 전체에게도 폐가 될 테니까.
확실히 한번 노 헬멧에 걸린 것 정도론 바로 면허정지는 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후 언제 다시 그런 식으로 붙잡힐 지도 모르고,
쌓이고 쌓이면 역시 그 앞엔 큰 댓가가 기다리고 있을 거다.

물론 아츠시는 날 책망하진 않는다.푸념도 절대 하지 않는다.
내가 사과하면 신경쓰지 말라고 가볍게 답해줬다.
그렇지만 그 규칙위반의 본래 원인은 나란 사실을
나 자신 싫을 만큼 알게 되고부터 왠지 자기 혐오에 빠져 버린다.
내가 자신용의 헬멧을 준비하면,
그걸로 모두 해결될 수 있는 문제란 걸 알고 있으니까 당연한 일이다.

……그래.내가 헬멧을 사기만 하면 그걸로 끝나는 이야기인 것이다.
하지만 난, 좀처럼 결단이 서지 않았다.
4만이란 금액은 확실히 고교생에 있어선 결코 싼 게 아니다.
하지만, 전혀 불가능할 리도 없다.
그럴 마음이 들면, 저금을 찾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난, 자신의 헬멧을 사는 게 두려웠다.
언젠가 그것이 필요없는 것이 되고,
그럼에도 내 바로 옆에 있어 볼 때마다 눈물을 흘리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 두려웠다.
난,아직까지 아츠시와의 교제를 믿고 있지 않다.
언젠가 헤어지지 않을까 그런 걱정을 계속 마음 속에 품고 있다.
그에게 사랑받고 그 팔 안에 안기면서도 항상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다.
그건 역시…… 그에 대한 배반일까? 어째서 전부를 믿는 것이 불가능한 것일까?
이토록 아츠시를 좋아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예비 종이 울리고 날 현실에 돌려놨다.
난 후우 하고 한번 한숨을 쉬고 마음의 의혹을 부정했다.
오늘은 금요일.아츠시와 만날 수 있는 날.
그것만 생각하고 행복해지자.쓸데없는 건 생각지 말도록 하자.
이윽고 교사가 와서 하루 수업이 시작한다.
난 방과 후에 관해 생각하며 책상 위에 있던 샤프를 손에 쥐었다.







손목시계를 슬쩍 본다.
시간은 4시 55분.
이제 슬슬 올지 않을까……
기대를 가슴에 품은 채, 난 항상 그가 오는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아츠시는 시간엔 정확하다.빨리 오는 적은 있어도 늦은 적은 좀처럼 없다.
그리고 지금 와선 나도, 늦어서 그를 기다리게 하는 일은 없다.
왜냐면 그럴 필요 없는 걸.
난 망설임 없이 주저함 없이 그를 만나러 올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만날 수 있다면 1분이라도 오래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다.

곧 멀리 바이크의 모습이 나타났고, 이내 그것은 날 목표로 다가왔다.
난 무심결에 입가를 누그러뜨렸다.
완전히 귀에 익은 엔진 소리를 울리며,그가 달려온다.
아츠시는 내 눈 앞에 차체를 고정시키곤
풀페이스 헬멧에서 약간 찢어진 서늘한 눈매에 살짝 웃음을 떠올려 보였다.
나도 웃음을 돌려주며 문득 그가 든 물건에 시선을 돌렸다.
그것은 또 하나의 헬멧이었다.
그도 내 시선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그것을 내밀었다.
난 당혹한 채 그것을 받아 쥐었다.

" ……이거? "

아츠시는 어딘가 말하기 껄끄러운 듯 우물거리며 말했다.

" 잠깐…… 빌려 왔어.
   조금 작지만 너,머리가 작으니까 들어갈 거라 생각해서…… "

그렇게 말하면서,이내 시선을 돌린다.
난 그런 그의 태도를 이상하게 생각하며, 다시 손 안의 헬멧을 봤다.
확실히 아츠시가 쓰고 있는 언제나의 헬멧보다 조금 작았다.
핑크가 섞인 보랏빛에 은색의 천둥 모양 라인이 들어가 있다.
아츠시의 헬멧보다 퍽 화려하다.
대체 누구한테 빌려온 걸까,하고 생각하며 난 그것을 썼다.
그리고,바로 그 답을 찾았다.
안에 어렴풋이 화장품이 달콤한 냄새가 떠돈다.
이 헬멧 주인은 여자아이.……이것은 아마,리카 씨의 것…….

( 아…… )

나는 조금 충격을 받았다.아니, 조금 따위 거짓말이다. 꽤 쇼크였다.
날 위해 빌린 것이 리카 씨의 것이란 사실.
그녀가 당연한 듯 자신의 헬멧을 갖고 있단 사실.
그리고 그것을 내게 내민 아츠시…….그건 잔혹한 다정함일 터…….
그런 내 심정을 헤아린 건지,아츠시가 변명처럼 중얼거렸다.

" 미안,그거…… 나한텐 빡빡해. "

씁쓸한 듯 그렇게 말하고 아래를 본다.
……아아,그런가.그도 잘 알고 있다.그것이 분명 날 상처입히는 행위란 걸.
하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리카 씨의 헬멧은 아츠시에겐 작고 그가 사용할 순 없으니.
날 달콤한 냄새가 나는 헬멧 속에서 한번 숨을 깊이 쉬고,
열심히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 고마워.이걸로 이젠 안 잡히겠다. "

난 아츠시가 씁쓸하게 대답하기 전에 재빨리 뒤에 타 허리를 붙들었다.
여느 때보다 아주 조금 힘을 집중시켜.
아츠시가 답하듯 내 손에 자신의 손을 겹치고,
그리고 여느 때처럼 낮게 중얼거렸다.

" 가자. "

그 소리를 신호로 바이크가 발진했다.
우리는 하나가 되어 바람을 가르며 거리를 스쳐갔다.







맨션에 들어가자,방은 여느 때보다도 흐트러져 있었다.
소파의 등에 세탁소에 보내야 할 낡은 티셔츠가 걸려 있고,
바닥에 잡지가 몇권이나 흩어져 있으며,
보니 부엌엔 빨랫거리가 산처럼 쌓여 있다.
내가 놀라 주위를 둘러보자,아츠시가 쑥스러운 듯 변명했다.

" 여기서 한동안 살았어.잠시 바이트를 한 탓에 바빠서. "

아츠시는 바지런한 남자다.
어릴 때 어머닐 잃어,
청소고 세탁고 자신에 관한 것은 스스로 처리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듯 싶고,
대개 언제 와도 방은 깔끔하게 정리돼 있다.
그런 그의 성격을 아니까
형이란 사람도 그에게 방 관리를 맡길 수 있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의 모습은,분명히 관리 불량이다.
난 쿡 하고 작게 웃고 말했다.

" 우선 정리부터 할까? "

아츠시는 퉁명스레 대답했다.

" 됐어,그런 건.내가 나중에 할테니까. "

" 그러나 나도 신경쓰여.같이 하자.
   나,세탁할 테니까.아츠시는 방을 정리해. "

내가 대꾸할 여지도 없이 지시하자,
아츠시는 할 수 없단 듯 떨떠름하게 지시를 따랐다.
이런 점이 너무 귀엽다.
아츠시는 남의 요구나 고집이나 그런 것엔 기본적으로 약한 것 같다.
웬만하면,대부분 들어준다.
그런 주제에 자기가 생각한 건 거의 말하지 않기 때문에,
그건 정말이지 손해되는 성격이다.

난 좁은 부엌에 서서,커피 컵이며 접시를 씻기 시작했다.
난 독자지만 어머니가 몸이 약해 잠들어 버리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이런 정도의 집안 일은 문제없다.별로 힘들다고 생각지도 않고.
세탁하는 중,난 문득 생각했다.

( 리카 씨나…… 와서 돕거나 하지 않나? )

보통 여자아이라면 그를 돌보고 싶어 불타 오르련만.
혼자 살지 않는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아츠시가 형 맨션에서 자는 건 분명 알고 있을 테고,
와서 청소하거나 요리를 만들어 주거나,그런 거 안하는 걸까?
이 방에서 만나거나 하진 않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려니,이내 가슴이 아파왔다.
여느 때엔 그닥 생각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이 머릿속에 다시 살아난다.
아츠시와 리카 씨의 관계…….

( 바보,뭘 새삼스럽게…… )

내가 찻잔을 씻는 손을 고정시킨 채 멍하게 있으려니,이내 옆에서 말을 걸어왔다.

" 유우히? "

난 깜짝 놀라 아차하면 손 안의 접시를 떨어뜨릴 참이었다.
두근두근거리며,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뭐야? "

내 웃는 얼굴을 보고,그는 당황한 듯 웃음을 떠올렸다.

" 아니…… "

" 청소 끝났어? "

" 뭐 그럭저럭.청소기는…… 아,나중에 돌릴래. "

" 정말? "

" 제대로 한다니까. "

아이처럼 입을 내민 그를 보고,난 밝게 웃었다.
그리고 나서 아츠시는 날 위해 커피를 타 줬고,
어쨌건 일을 끝낸 우리는 소파에 앉아 천천히 그것을 마셨다.
따뜻한 김이 오르는 커피는 아주 풍미가 좋았다.
티타임 동안 난 혼자서 이런저런 일을 지껄이고 있었다.
내용은 뭐, 중요치 않은 잡담거리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선생 중에 싫은 놈이 있다든지,그런 것.
그리고 난 가끔 자신에 관한 걸 이야기한다.
취미나 좋아하는 영화나 음악,가족의 이야기,그런 걸 그에게 들려준다.
그는 말없이 듣고 있다.따스한 눈동자를 지긋이 내게 둔 채.

이런 한 때가 나는 좋았다.
몸만 얽혀 있던 우리 사이에 조금씩 다른 길이 자리잡는 것 같아
마음이 부드러워져 간다.
우선, 아츠시는 변함없이 별로 자신이 말하는 적은 없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름도 모르고 사귀고 있던 그 무렵도
아츠시는 특별히 나에 대해 무뚝뚝했던 건 아닌 듯 싶었다.
요컨대 그것이 본디 모습인 것이다.
물으면 착실히 대답해 주지만,자기 쪽에서 얘기하는 적은 없다.
그런 남자인 것이다.

문득 대화가 끊기고,우리는 입을 다물었다.
아주 잠깐의 온화한 침묵 뒤,아츠시의 손이 뻗어 와 내 어깨를 끌어당겼다.
난 순순히 그 손에 몸을 맡겼다.그리고 달콤한 키스…….
무심한 일상에서 뜨거운 시간으로 이행하는 그 한순간 바로 전이
날 뭣보다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아츠시의 입술이 부드럽게 꽉 눌리고,이윽고 혀가 부드럽게 침입해 온다.
난 그에 응해 자신의 혀를 얽었다.
녹을 만큼 달콤한 타액이 서로의 입속에 퍼져 우리를 타오르게 했다.
처음엔 소프트했던 그의 혀가 점차 격함을 가지고 내 입안을 더듬는다.
그에 맞춰,난 이내 흥분해서 뜨거운 숨을 토했다.
그런 중 그 입술이 내 입술에서 떠나 뺨을 타고 가고 목덜미로 옮기져 갔다.  
귀 아래의 부드러운 부분을 빨아, 난 참을 수 없어져 소릴 질렀다.

" 아……,응…… 아츠시. "

이미 몸 안이 뜨거워지고, 숨이 거칠어졌다.
그의 손이 옷 위에서 내 몸의 위를 더듬고,
가슴이나 옆구리, 허리에서 다리를 쓰다듬으면
그것만으로 느껴 꿈틀꿈틀 떨린다.
답답한 애무에 난 안타깝게 몸부림쳤다.

" 응……응…… "

조르듯 코를 울리자, 그는 살짝 입술을 떼고 귓가에 속삭였다.

" 어디서 할래? 여기? 그러잖으면 침대로 갈까? "

난 꽉 그에게 매달려 꺼져 들어갈 듯한 소리로 답했다.

" ……침대까지 기다릴 수 없어ㅡ "

아츠시는 쿡 하고 웃고, 그대로 날 소파에 쓰러뜨렸다.
그닥 크지 않는 소파기 때문에 둘이서 뒹굴기엔 무리가 있다.
분명히 말해, 좁다.
몸집이 작은 나조차 다리를 뻗을 수가 없어 무릎을 세우자,
그 다리와 다리 사이에 아츠시는 자신의 한쪽 무릎을 넣고
다른 한편은 바닥에 내린 채 내 위에 걸쳐 왔다.
좁아터진 곳에 무리해서 두사람이 겹쳤기 때문에,
싫어도 꽉 몸을 맞대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
그대로 아츠시는 다시 한번 내게 키스했다.
그리고 상반신을 일으키고 내 교복 셔츠 앞을 천천히 끌러 가슴을 전부 드러냈다.
작게 물결치고 있는 그곳에 입술을 누르고,혀끝으로 부드럽게 맛본다.
그가 닿은 순간,난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혀가 내 유두를 건드린다.난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 싫어…… "

하지만 그런 말관 반대로 그곳은 이내 딱딱해져 아츠시의 혀를 조르듯 밀친다.
춥춥 하고 끝을 간질러 와, 난 버틸 수 없어 소리를 질렀다.

" 앙……! 응…… 싫…….아니…… "

난 가슴에 약하다.
아츠시가 해 줄 때까지 자신의 몸에 그런 감각이 있다곤 생각도 못해 봤지만,
거기를 애무받으면 귓속이 꿈틀거리며 아무리 해도 자제할 수 없게 된다.
몸 중심이 일시에 뜨거워지고 어디건 민감하게 돼 버린다.
그럼에도 안타깝고,괴롭고,폭발할 수 없는 쾌감이 몸 안에 쌓여간다.

" 아츠시,아츠시……,시,싫어…… 안돼ㅡ "

아츠시는 잠깐 입술을 떼고,기가 막힌 듯 코로 웃었다.

" 느끼고 있잖아? "

" 싫…… 가슴,싫어.괴로워…… "

그렇게 말했음에도,아츠시는 일부러 다시금 입을 대고 강하게 빨아 올렸다.

" 앗! "

몸이 크게 휘어졌다.그와 동시에 눈시울이 뜨겁게 젖어 눈물이 넘쳤다.
허둥대며 감추려 손등으로 덮었지만,
그것은 한줄기의 물방울이 되어 뺨을 타고 흘렀다.
아츠시는 만족스레 그것을 보며,이상한 듯 말했다.

" 한번 가슴만으로 가게 해 볼까? "

난 새빨개져 입을 내밀었다.

" ……바보. "

" 유우히라면 갈 것 같아…… "

얄미운 말을 하면서,그는 집요하게 가슴에의 애무를 계속했다.
난 아츠시의 부드러운 긴 머리카락에 손을 집어넣고 응하듯 더듬었다.

" 아츠시…… 아, 응……우ㅡ "

소리가 억누를 수 없을 만치 입에서 흘러 나왔다.
난 이럴 때 그의 이름을 말할 수 있단 행복을 느꼈다.
얼마 전까진,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 없었던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
그것을 말할 수 있단 게 이렇게나 멋진 일이었다니.

" 저…… 싫어,이제 안돼…… 아츠시,이상해질 것…… 아아…… "

내가 드디어 항복하자,겨우 그는 입술을 떼고 위에서 날 내려다 봤다.
날카로운 눈동자.그것이 파고 들듯 응시하고 있다.
그 시선 한가운데 있노라면 난 홀린 것처럼 넋을 잃게 돼,
몸 하나 꼼짝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그 손가락이 내 바지 벨트를 풀고,지퍼를 내리고,
천천히 속옷을 몸에서 벗기는 걸 고분고분 놔두고 있다.
셔츠도 벗고 알몸이 된 날,아츠시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내려보고 있다.
난 수치심으로 몸이 오그라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앞에서 이런 모습을 속속들이 드러내는 건 새삼스런 일이 아니지만,
몇번 경험해도 익숙해지질 않았다.
창피하고 창피해서 귓불까지 붉어져,난 시선에서 피하듯 얼굴을 돌렸다.
어째서일까? 틀림없이 저 눈 탓이다.
전부 간파해 버릴 듯 날카로운, 아츠시의 눈 탓이다.
저 눈이 처음부터 날 미치게 했었으니까.

아츠시는 자신도 잽싸게 옷을 벗더니,다시금 내 위로 몸을 걸쳐왔다.
맨살이 닿는 게 기분 좋다.
오싹하니 찬 그의 몸이 달아오른 내 몸을 기분좋게 식혀준다.
하지만 이내 그 입술이 내 위를 더듬자,육체는 다시금 뜨겁게 타올랐다.
이미 한심할 만치 단단해져 있는 나의 물건에 아츠시의 입술이 살짝 닿았다.
난 순간 전기가 달리는 듯한 감각에 습격당해 전신을 한껏 경직시켰다.

" ……! "

혀가 상냥하게 핥아 올린다.눈물이 찔끔 흘러 나온다.

" 아…… "

한숨같은 나의 소리.입술을 꽉 물고 넘치는 소리와 눈물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그 쾌감은 억제할 수가 없었다.
마치 끓어 오르는 온천처럼 점점 몸 안에서 부풀어 오른다.
난 그 애무를 발으면서 소파 손잡이를 꽉 쥐고,
소리지를 듯한 자신과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다.

" 응응……! 크으…… 아아,아츠시…… 아아앗ㅡ "

그러자,이내 그가 날 놓고 몸을 뗐다.
난 갑작스레 놓아진 놀라움과 불쾌함에 닫혀 있던 눈을 뜨고 그를 봤다.
아츠시는 망연해 있는 내 팔을 잡고 일으키더니
슥 몸을 바꿔 이번엔 자신이 소파에 앉았다.
다리를 내던지듯 퍽 얕게 앉아 있다.
단단하게 선 그의 물건이 내 눈에 날아들어 와,
내가 무심코 그걸 뚫어지게 보자 그는 내 팔을 잡고 부드럽게 유혹했다.

" 와,유우히. "

" 에……? "

" 네가 위야. "

난 놀라움과 당혹함에 답할 말을 잃었다.
내가 올라간다니,……그거,승마위란 것?
그러나 남자끼리 그런 게 가능해? 진짜로?
깜짝 놀라 침묵하고 있으려니,아츠시는 초조한 듯 한번 더 말했다.

" 유우히.자ㅡ "

자…… 라고 해도…….
처음 있는 일에 난 아무래도 불안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싫다고도 할 수 없어,
잠깐 시간을 벌기 위해 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얼굴을 가져갔다.
그리고 쑥스러운 듯 약간 웃고,그의 물건에 입술을 댔다.

" 기다려.잠깐. "

난 그렇게 말하곤,그의 물건을 입에 머금었다.
꿈틀하고 아츠시가 몸을 떨었지만 안된다곤 하지 않았다.
입속까지 머금어 천천히 혀를 대고, 그리고 또 천천히 뺀다.
그러나 끝까지 떼지 않고,다시금 같은 일을 반복한다.
난 몇번이고 그런 행동을 계속했다.
단단한 그의 물건이 더욱 단단하게 굳어져 가는 걸 알 수 있다.
아츠시의 손이 내 머리카락 안에 파고 들어 와, 상냥하게 머리카락을 흐트렸다.

( 아츠시…… 좋아해…… )

난 마음 속으로 몇번이나 그렇게 중얼거리면서,사랑하는 사람의 몸을 탐했다.
그러는 중 자신의 몸 속에도 일단 엷어졌던 불길이 다시 타오르기 시작한 걸
느꼈다.
그를 애무하고 있는데,자신까지 기분좋게 취해간다.
하나가 되고 싶다고 몸이 갈망한다.
이윽고 아츠시가 재촉하듯 내 머리를 가볍게 끌어당겼다.
난 입술을 떼고 일어서서 천천히 그 위에 몸을 걸쳤다.
아직 조금 무서웠지만,그러나 더 이상 망설임은 없었다.
나 자신이 그와 연결되고 싶다,그를 이 몸에 받아들이고 싶다고
갈망하고 있었으므로.
그에 끌려 난 조심스레 허리를 내렸다.
끝이 내게 닿을 때 일순 놀라 몸을 끌어 당겼지만 다시 한번 시도했다.
아츠시의 물건 앞에서 투명한 물방울이 넘쳐,
난 그것을 윤활유 대신으로 조금씩 조금씩 몸을 묻어갔다.

" 하읏……!"

그가 들어와, 난 크게 숨을 들이켰다.
여느 때 그를 받아들인 것관 전혀 다른,불가사의한 감각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의사로 그에게 몸을 맡기고 있단, 강한 굴복감인 것 같기도 하고
또 역으로 그를 삼키고 있단 지배적인 느낌인 것 같아,
아무래도 표현이 불가능했다.
그 전부를 받아들인 순간,
난 언제나와 다른 긴장감 탓에 하아하아 거칠게 어깨 숨을 쉬고 있었다.
연결된 부분으로 뜨거운 쾌감이 퍼져,
가만 있어도 몸 안에서 불길이 퍼져간다.
난 눈썹을 찌푸리고 몸을 쓰러뜨린 채 아츠시의 어깨에 매달렸다.

" ……앗ㅡ "

잠깐 몸을 움직였을 뿐인데,전신에 저릴 듯한 쾌감이 달렸다.
굉장해.내 안에 아츠시가 있다.내 안이 전부 아츠시로 묻혀 있다.
전부 그에게 지배받고 있다…….

" 아, 아츠시…… "

안타깝게 소리내자, 그가 응해 양손으로 내 볼을 잡고 바로 정면에서 응시했다.
땀으로 빰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상냥하게 쓸어 올려준다.
그리고, 살짝 키스했다.
그와 동시에 아래서 징 하고 압력이 가해져, 난 크게 몸을 젖혔다.

" 아아읏!"

무심코 비명을 올렸다.
하지만 그건 쾌락의 외침이다.환희에 취한 음란한 비명이다.
몇번이고 몇번이고 압력이 가해져,
난 아츠시의 몸 위에서 얌전치 못하게 흐트러져 갔다.

" 앗,아앗,우아, 하……하아! "

머리카락이 흐트러지고,수치심도 잊은 채 격하게 허덕였다.
첫 행위는 참을 수 없이 음란하고 자극적이었다.
나란 것의 전부가 사라져 버리고,
그저 다만 쾌감을 탐닉할 뿐인 육체가 돼 버린 듯한 느낌이 들어,
끓어 오르는 욕정을 억제할 수 없다.
난 절반쯤 몽롱해진 채,
그래도 쾌락을 표시하는 소리만은 쏟아질 듯 입에서 흘러 나왔다.

" 아츠시,아츠시! 아니, 우아…… 아아아,후,우아ㅡ "

중간에 소릴 질렀는지 울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거의 울음에 가까울 듯한 소리를 지르며,난 쾌락에 빠졌고 미쳐갔다.
대체 언제 극한에 이르렀는지,언제 자신이 절정을 맞이했는지도 모를 정도
전부를 잊고 빠져 들어갔다.
그리고…… 정신이 들자 난 그를 받아들인 채,완전히 그 가슴에 안겨 있었다.
전신에서 힘이 빠진 내 몸을 아츠시가 건장한 팔로 단단히 안고 있다.
난 크게 숨을 쉬었다.
귓전에 아츠시의 소리가 들렸다.

" 정신이 들었어? 유우히. "

난 아직도 몽롱한 채 대답했다.

" ……응. "

" 허리,잠깐 들어줄래? "

내가 어떻게든 조금 허리를 들자,거기서 슬쩍 그가 떠나가는 걸 느꼈다.
쾌락의 여운에 일순 찌릿 전신이 떨렸지만,이내 다시금 탈진감이 습격한다.
아츠시는 날 옆으로 안도록 하여 무릎 위에 태우곤,
아이를 안듯 가슴 속에 안아 주었다.
난 그에게 안겨서,꿈속을 떠도는 듯한 기분좋은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아츠시가 살짝 속삭였다.

" 미안.심했어? "

난 희미하니 눈을 뜨고 그를 봤다.

" ……응,왠지…… 잘 모르겠어.너무 느껴서…… "

" 기분 좋았어? "

" 죽나부다 생각했어…… "

아츠시가 이상한 듯 쿡쿡 웃었다.이런 식으로 웃는 그라니 흔치 않다.
나,그렇게 이상한 말을 한 거야?
다시금 드물게 계속해서 그는 기분좋은 듯 얘기하기 시작했다.

" 유우힌,터무니 없이 감도가 좋군.이렇게 느끼는 녀석은 첨이야. "

난 그 말을 들으면서,내심 조금 발끈했다.
아츠시,기분좋은 건 상관없는데 자신이 무덤을 파고 있단 건 전혀 모르고 있다.
난 싸늘하게 물었다.

" 흐응.그래? "

" 아아.여자라도 이렇게 느끼는 녀석은 별로 없잖을까. "

무덤 마무리를 확실하게 하는군. 난 싸늘한 소리로 심술궂게 물었다.

" 그건 몇명 정도하고 비교한 거야? 아츠신 그렇게 많이 했나부지. "

" 에? "

새삼스레 자신이 한 말의 의미를 깨달았던 건지 아츠시는 한껏 당황한 듯 보였다.

" 아, 아니, 그…… 그렇게 한 건…… 아니, 에ㅡ 그러니까ㅡ "

언제나의 쿨함을 어딘가 놓고 온 듯 아츠시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난 왠지 조금 가엾어져,빨리 구조함을 보냈다.

" 됐어,별로.과거 따위,아무래도 좋은 걸. "

그렇게 말하면서도,난 살짝 그의 뺨에 손을 댄 채 조르는 듯 눈을 돌렸다.

" 하지만…… 지금은 나뿐이지? "

이내 아츠시가 꽉 하고 강하게 안으며 답했다.

" 당연하지. "

조금 화내는 듯한,퉁명스런 답변.
그것은 그답게 성실하고 직설적이고,
그리고 어쩔 수 없을 만치 서투른 애정표현이다.
난 그 몸을 마주 안아줬다.
그를 사랑한다.
아츠시도,날 좋아해 준다.
난 그것을 진심으로 믿고 있다.
하지만 그런 마음 다른 한쪽에선,
아무래도 사라지지 않는 별개의 생각이 존재하고 있다.

( 리카 씨도 …… 이런 식으로 안는 걸까……? )

난 녀석의 가슴 속에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어쩔 수 없을 만치 싫었다.







먼저 샤워를 마치고 준비를 끝낸 난,
아츠시가 긴 머리를 적신 채 나와 물방울을 툭툭 어깨에 떨어뜨리며 옷 입는 걸,
말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변함없이 몸 여기저기 멍이 가득 들어 있다.
이전에 생긴 것부터 막 생긴 것까지 가지가지다.
보고 있자니 아플 것 같아 무심코 눈썹을 찡그려 버린다.
뭐, 본인은 익숙해져 전혀 신경 안 쓰고 있는 것 같지만.
난 그를 보며,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 저기,말이야…… "

아츠시는 고개를 들고,뭐야 하고 말하듯 날 봤다.난 주저하며 말을 계속했다.

" 저……이번 일요일,비어 있지…… 않,지? "

그가 잠시 의외인 듯 눈을 크게 뜬다.
이렇게 약속 날짜 이외에 물어 본 건 처음이기 때문에,깜짝 놀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내 미안한 듯한 표정이 그 얼굴에 떠올랐다.
난 허둥대고 부정하듯 손을 흔들어 보였다.

" 아, 됐어.잠깐 물어봤을 뿐이니까.아츠시가 바쁜 건 알고 있구. "

아츠시는 모양좋은 눈썹을 찌푸리고,미안한 듯 변명했다.

" 미안…….주말엔 머신의 세팅이 있어서…….
   담 달에 레이스가 있어.그것 땜에 지금, 조정중이라ㅡ "

" 응,정말 괜찮아.나야말로 미안.알면서 멋대로 말해서.
   글구 별로 할 일도 없어.그냥 아무 생각없이 물어봤을 뿐야…….
   호,혹시 한가하면 영화라도 보자구 생각했지만,
   그렇지만 특별히 보고 싶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
   거기다 생각해 보니 이번 달치 용돈도 다 떨어져 가…… "

내가 안달해서 쓸데없는 변명을 늘어놓고 있으려니,
아츠시가 가까이 와 갑자기 내 어깨를 끌어당겼다.
살짝 긴 머리카락이 뺨을 간질이고,살짝 가슴에 안는다.
상냥한 음성이 귓가에 들렸다.

" 미안해. "

그 소리를 들은 순간,가슴이 쿵 했다.이 얼마나 강렬한 문구인가.
단 한마디로 세상의 모든 걸 용서할 듯한 기분이 되고 만다.
나는 그 등에 손을 돌린 채,침묵한 채,꽉 마주 안았다.
아츠시…… 정말 좋아해.
어째서 이렇게 좋을까 하고 생각할 만큼 좋아해.
그래서 일초라도 더 같이 있고 싶다 생각해 버릴 만치 멋대로인 내게,
넌 성실하게 답해 주었어.
그리고 난 더욱 더 네게 끌려 가.내 마음이 너로 가득 차고 있어, 아츠시…….
문득 아츠시가 내 몸을 떼어놓고,정면에서 얼굴을 보며 말했다.

" 유우히…….너,같이 갈래,세팅? "

생각지도 못한 말에,난 잠시 당황해서 눈을 휘둥그레 뜨고 그를 다시 봤다.
그리고 조심스레 되물었다.

" ……그치만,괜찮아? 데려가두? "

" 괜찮을 거라 생각하지만…… 하지만 분명 재미없을 거야.
   이번 준 달리는 게 아니라 그저 차고에서 작업할 뿐이니까.
   봐도 지루할 뿐이야. "

" 음,그렇지 않아.보고 싶어,나. "

내가 몸을 내밀며 그렇게 말하니,그는 조금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 하지만 유우히,바이크엔 관심없잖아? 쉬는 날, 괜찮아? "

" 응,나 가고 싶어.정말 같이 가도 돼? 데려가 줄 거야? "

내가 너무나 눈을 빛내며 그에게 가니,
아츠시는 입가에 약간 당황한 듯한 미소를 떠올려 보였다.

" 아아,좋아. "

난 기뻐서 그의 목에 매달렸다.
정말 기뻤다.
왜냐면,난 계속 레이스 세계 속의 그를 건드리는 건 용납되지 않을 거라
믿고 있었다.
내게 허용되는 건,
아침 전철 속에서의 한 때와 이 맨션에서 만나는 주 2회의 시간 뿐.
그 외의 그는 날 원치 않아,그의 세계 속에 함부로 들어가는 건 안돼,
하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므로 그 자신이 문 저편에서 불러주어
나도 그 세계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단 사실이,기쁘고 기뻐서 견딜 수 없었다.
아츠시는,어째서 내가 그렇게 기뻐하는지 알 수 없단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웃는 얼굴을 돌려줬다.

" 그럼,일요일 10시에 그 역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

" 알았어. "

난 만면에 웃음을 떠올리며 끄덕였다.
아츠시는 아직 왠지 이상한 듯 했지만,
그래도 내가 기뻐하는 걸 보고,그도 다시 기쁜 듯 미소지었다.
마디가 굵고 큰 손으로,내 머리를 헝크러뜨린다.
날카롭지만 다정한 눈동자가,꼼짝않은 채 날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 그를 마주 응시했지만,
난 다시금 또 하나 우리 사이에 새로운 길이 이어진 걸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가늘고 구부러진,앞이 보이지 않는 길이었다.



계속.

* BabyAlone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4-08-20 23:39)

블루키스 2006/10/04

우연하게 보게된 목소리를 들려줘을 보고 다음편이 무척 궁금했는데 여기에서 보게되어 무척 기뻐요 정말 감사합니다.

이미테이 2008/01/16

정말 재밌어요 ㅠㅠ!

은아 2008/12/03

소리를 들려줘도 정말 재미있고요
이것도 정말 재밌네요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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