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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59)  시도오 유즈미 (20)  미즈키 마토 (11)  후지키 사쿠야 (16)  츠지 키리나 (12) 
BabyAlone
유우히 & 아츠시 시리즈 1. 목소리를 들려 줘 (중)

[번역/시리즈]



                       목소리를 들려 줘 (4)

                    - 夕日&篤志 시리즈  1 -


                                              
                                        원작 : 츠지 키리나
                                                  junko@penpen.ne.jp
                                                
                                        번역 : BabyAlone
                                                  babyalone@orgio.net
                                                  babyalone@freechal.com




이 소설과 그에 이어지는 부수자료의 권리는
원작자인 츠지 키리나 상과 번역자인 BabyAlone에게 있습니다.

원작자와 번역자의 허가를 받지 않은 불펌은
절대 허락할 수 없음을 먼저 밝혀 둡니다.








4. 곁에 있고 싶어






 
금요일 저녁, 언제나의 맨션에서 우리들은 만나고 있었다.
변함없이 대화없이,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녀석은 내게 키스했다.
그리고 난 그것을 받아들인다.
길고 뜨거운 키스에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전신이 마비되었다.

이전 화요일, 난 이 녀석에게 바람맞았다. 그래서 만나는 건 1주일만이다.
그 때문인지 여느 때보다 쓸데없이 몸이 쑤셔,
키스만으로 무릎이 꿈틀꿈틀거려 무심코 녀석의 가슴에 매달렸다.
그는 그런 날 한동안 부축해 줬지만,
조금 쾌락의 물결이 물러난 걸 짐작하곤,
갑자기 몸을 떼어 놓고 재빨리 혼자 침대 방으로 걸어갔다.

완전 언제나의 패턴이다. 지긋지긋할 만치 의례적.
그에게 있어 내가 어떤 건지 금새 알 수 있다.
그렇다. 녀석에게 있어, 1주일 만날 수 없던 건 아무 고통도 아닌 것이다.
난 가슴에 찌릿한 아픔을 느끼면서 녀석의 뒤를 쫓아 침실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 날, 난 셔츠를 벗어 던진 녀석의 몸을 보고 놀라 버렸다.
녀석의 오른쪽 옆구리에 굉장히 큰 멍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출혈로 인해 보랏빛이 돼 있다.
외상은 없었지만, 도저히 일상에선 생길 수 없는 거다.
심상찮은 느낌이 들었다.
난 무심코 녀석에게 달려가, 그 상처를 들여다 봤다.

" 어떻게 된 거야, 이거? 지독한 멍……. "

녀석은 내 반응에 좀 놀라는 것 같았지만 담담하게 대답했다.

" 일요일 레이스에서 좀 굴렀어. 별일 아냐. "

" 레이스? "

" 아. 바이크의. "

" 그런 거…… 하고 있어? "

난 지긋이 녀석을 응시했다.
그의 입에서 그에 대해 듣는 건, 처음이었다.

" 괜찮은 거야, 이거? "

내가 걱정되어 묻자, 녀석은 약간 눈썹을 치켜 올리곤 태연하게 말했다.

" 일단 검사했지만, 뼈엔 이상없어. 단순한 타박상이다. "

" 그렇지만, 아프지…… 않아? "

" 손대면 아프지만 이 정돈 아무렇지도 않아. 몸에 배서. "

녀석은 특별히 일부러 숨기진 않고 술술 대답했다.
난 그걸 들으면서 왠지 모르게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그의 음성을 처음으로 제대로 들은 생각이 든다.
그 때까지 대화다운 대화를 했던 적이 없고,
인사조차 제대로 주고 받지 않았다.
녀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도 묻지 않았다.
아무 것도 물으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혹시, 물으면 대답해 주는 걸까? 자신의 이야기를.

" 저……말이지ㅡ "

난 흠칫흠칫 입을 열었다. 녀석이 똑바로 시선을 돌려준다.
눈동자가 <뭐야?> 라고 묻고 있다. 난 망설이며 입을 열려 했다.

그 때, 녀석이 벗어 던진 점퍼에서 날카로운 전자음이 울렸다.
핸드폰 호출음이다. 녀석은 걸어가더니, 그것을 꺼내 귀에 댔다.

" 예. "

한동안 누군가의 얘길 듣다가, 이윽고 녀석이 답했다.

" 아아, 알았어. 12시지. ……아아, 알고 있어. 아아. "

꽤 퉁명스런 대답이었다.
그럭저럭 녀석이 무뚝뚝한 건 나에 대해서만이 아닌 듯 싶다.
하지만 녀석의 다음 말을 듣고 난 아연해졌다.

" 아, 리카(理香). 니시로(新城) 씨에게 그거, 전해 줘.
   ……응, 그래. 아. ……그럼. "

( 리카…… 여자애의 이름이다. )

난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녀……일까. 녀석이 지금 전화한 건, 녀석의 여자친굴까?
그래. 이 녀석 잘생겼는 걸. 그녀가 있는 건 전혀 이상할 게 없어.
나와 이런 짓을 하는 쪽이 실로 부자연스럽지.
이 녀석에겐 어울리지 않아……. 나 따윈, 조금도 어울리지 않아.

난 꼭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숙였다.

녀석이 전화를 끊고 가까이 왔다.
내 어깨에 손을 대고 자신 쪽으로 향하게 만들어,
고개를 숙인 내게 얼굴을 대 왔다.
난 입술부터 피하듯이 고개를 돌렸다.
녀석이 쫓아 온다. 그 몸을 손으로 막아 난 키스를 거부했다.
그는 의아한 표정을 띄운 채, 이내 말했다.

" 뭐야, 하고 싶지 않아? "

난 말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녀석은 눈썹을 찌푸렸다.

" 그럼, 어째서 도망치는 거야? "

내가 대답하지 않고 있으려니,
녀석은 낙담한 얼굴로 다시 한번 키스를 강요해 왔다.
이번엔 나도 도망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목에 양팔을 감고 강하게 끌어당겨
자신 쪽에서부터 혀를 깊숙이 집어 넣었다.

그가 놀란 듯 약간 몸을 물렀다.
한번은 거부하는 태도를 보이다,
갑자기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내게 당황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고, 녀석의 혀를 놓치지 않았다.
물러난 녀석을 쫓듯, 한층 더 강하게 들이마셨다.
그는 무리하게 내 입술에서 피하더니 곤혹스런 듯 중얼거렸다.

" 어이, 왜 그래……? "

난 아무 대답없이 오로지 강요했다.
그의 알몸이 된 가슴에 입술을 꽉 눌러 강하게 키스를 했다.
그리고 혀를 대, 근육질의 햇볕에 탄 피부를 돌아가며 핥았다.
작은 유두를 찾아 갓난아기처럼 빨아들이고, 그리고 강하게 깨물었다.
녀석이 작은 신음소리를 냈다.

" 읏……. "

팔이 뻗어 와 내 몸을 떼어놨다.
눈썹을 찡그리고 의아한 듯한 눈동자로 응시한다.
난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토해내듯이 말했다.

" 해, 빨리. "

녀석은 놀란 표정을 했다.
난 그런 녀석을 보면서 비명처럼 외쳤다.

" 빨리 해. 빨리 넣어! 빨리 날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줘!
   언제나처럼 울려 봐! 자아! "

망연해 있는 녀석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난 스스로 옷을 벗었다.
그리고 내내 서 있는 녀석의 가슴으로 힘껏 달려들었다.
갑작스런 일에 녀석은 막아내지 못하고 비틀거려
우리들은 얽힌 채 마루 위에 굴렀다.

" 으읏…… "

녀석은 일순 괴로운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난 깜짝 놀라 몸을 경직시켰다. 아까 본 그의 상처를 생각해 낸다.
당황해서 깔고 있던 그의 몸에서 반신을 일으켰다.
잠깐동안, 우리들은 서로 동작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서로 응시했다.

이윽고 그는 몸을 일으키더니 망연해 있는 내 뺨에 손을 대고
어딘가 걱정스런 시선으로 삼킬 듯 응시했다.
그 눈동자를 마주 보는 나의 눈에 눈물이 어려 흘러 넘쳤다.
그는 나를 껴안자 서로의 위치를 바꿔 내 몸을 마루에 밀어 넘어뜨리곤,
덮쳐 왔다.

입술이 겹친다. 따뜻한 키스.
뺏는 듯한, 여느 때의 그것이 아니라, 달래듯 다정하게 얽혀온다.
이윽고 뺨으로 옮겨 흐르던 눈물을 닦고 목덜미로 옮겨갔다.
난 녀석의 귓가에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

" ……빨리, 넣어. "

그는 무뚝뚝하게 답했다.

" 아직 아무 것도 안 했어. "

" 괜찮아, 그런 거. 빨리. "

" ……적셔져 있지도 않아. 상처입어. "

" 괜찮아. 상관없어. "

내가 우기자, 녀석은 얼굴을 들고 낙담한 표정을 띤 채 고개를 흔들었다.

" 안돼, 그런 거. "

진지한 눈을 돌리고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 그런 걸로 널 울리고 싶지 않아. 그런 눈물은 보고 싶지 않아. 싫다. "

그리고 녀석은 더 이상 말하게 하지 않고
내 다리를 들어 뒤에 혀를 댔다.
뜨거운 혀끝이 그곳을 더듬는다. 난 크게 몸을 젖혔다.

" 앗! "

전신에 전기가 달리는 듯한 쾌감이 앞질러 갔다.
무심결에 피하려고 몸을 꿈틀거린다.
하지만 단단히 녀석의 팔에 잡혀 저항할 수 없었다.
뾰족한 혀끝이 열을 띠고 침입하듯 공격해 왔다.
한꺼번에 쾌락의 물결이 습격해 온다.
나는 머리카락을 흐트리고 음란하게 몸부림치며 교성을 질렀다.

" 앗앗, 싫어……! 싫어! 아앗, 하아! "

이제까지 중 가장 격하게 느꼈다.
작은 일점(一点)이 낳는 쾌감은 내 전신을 타오르게 하고 미치게 한다.
믿을 수 없을 만치 기분이 좋다.

아니……, 지나치게 좋을 정도다.
지독한 쾌감에 어떻게 된 것 같다.
허덕이는 정도가 아니라 큰 소리로 외쳐 버릴 것 같아,
난 자신의 손가락을 씹으며 필사적으로 참았다.
아직 앞엔 손가락 하나 닿아 있지 않은데 그곳은 벌써 완전히 단단해져,
내가 얼마나 흥분되어 있는지 명백히 나타내고 있었다.
녀석은 손을 뻗어 거기를 만졌다. 하지만 난 강하게 거부했다.

" 싫어! 그런 거 됐으니까, 빨리 넣어! "

그는 당혹해서 눈썹을 찌푸렸다.

" 하지만. "

" 응…… 부탁이니까ㅡ "

내 눈동자로부터 눈물이 넘쳐 떨어졌다.
한심하고 천박한 애원에 진 그는 반신을 일으키더니
그대로 단번에 나를 꿰뚫었다.

" 우……아! "

몸 안이 흩어질 것 같은 정도의 충격이었다.
난 반사적으로 녀석의 팔에 매달려,
목 안에서 끓어올라 오는 비명을 삼켰다.

굉장하다. 이런 건 처음이다.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쾌락이 흘러 넘친다.
그가 침입해 온 순간부터 내 안의 모든 것이 느꼈다.

" 우……크읏, 응……! "

녀석은 너무도 내가 격하게 반응하고 있어,
조금 당황한 듯 날 내려다 보고 있었다.
깊이 들어오자, 일단 동작을 멈추고 가만히 응시한다.
나는, 다만 그가 들어 와 있는 것만으로 자꾸만 흥분해,
멋대로 미쳐 아무래도 개의치 않고 흐트러지고 있었다.

그렇다.
녀석과 연결되어 있다, 녀석과 하나가 되어 있단 사실이
날 이렇게나 느끼게 하는 것이다.
지금 이 때만은 누구보다 가까이 내가 녀석 곁에 있다.
그가 나를 보고 있다. 그가 내 안에 있다.
이 녀석은 지금…… 나 혼자만의 것이다!

난 그의 등에 손을 뻗어 그 몸을 끌어 당겼다.
긴장한 늘씬한 몸을 힘 주어 끌어 안았다.
녀석이 가늘게 중얼거렸다.

" 어이, 그렇게 매달리면 제대로 움직일 수 없어. "

그렇지만 난 그 말을 무시하고 계속 끌어 안았다.
이 손을 떼어 놓고 싶지 않다. 그를 떼어 놓고 싶지 않다.
적어도 연결되고 있는 동안만이라도 곁에 있게 하고 싶어.
널 사랑하게 만들고 싶어.

난 쾌락의 늪에 빠지며 생각했다.

( 그래, 난……, 좋아하는 거야. 사랑하고 있어, 이 녀석을. )

그 때 처음으로 난 그런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렸고,
그리고 그것을 인정했다.
나는 이, 이름도 모르는 사내녀석을 어쩔 수 없을 만치 사랑해 버린 것이다.

어째선진 모른다. 그 답은 없다. 다만 진실은 좋아한단 그것 뿐.
그렇지만 그 뿐인데, 어째서 이렇게 괴롭지?

" 아, 아, 응응……, 하아……! "

눈물이 뚝뚝 흘러 떨어졌다.
그것은 평소처럼 흥분이 극에 달해 오는 건지.
그러잖으면…… 부풀어 터질 것 같은 가슴의 아픔에선지.
나로선 알 수 없었다.

녀석이 내 안을 교란시킨다. 뜨겁고 활기찬 그의 물건을 느낀다.
자꾸자꾸 부풀어오르는 쾌락은 한계까지 올라가,
난 크게 몸을 젖히고 외쳤다.

" 아…… 싫어! "

일순, 새하얀 세계가 머릿속에 퍼졌다.
내 의식은 돌연 우주에 내던져져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을 감돌고,
그리고 심원으로 떨어져 갔다.
그가 사정했는지 어떤 지조차 난 눈치채지 못했다.

도대체 얼마나 의식을 잃고 있었던 것일까.
녀석의 음성과 어깨를 흔드는 손에 난 눈을 떴다.
녀석은 아직 멍하니 있는 날 걱정스러운 듯 응시하고 있었다.
내가 정신을 차린 걸 보고, 마음놓인 듯 한숨지었다.

" 초조하게 하지 마, 제길. "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몸의 힘을 빼고 내 위를 덮쳐 왔다.
난 아직도 마비되어 있는 몸에 그의 무게을 느끼고 있었다.

" 기절하는 녀석은 처음이다.
   이대로 일어나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 하고 생각했다구. "

그는 가슴 위에서 기가 막힌 듯 그렇게 말했다.
난 잠깐 무언으로 받아들이고, 그리고 툭 하니 중얼거렸다.

" ……하자. "

" 에? "

그가 놀란 듯 되물었다. 난 담담하게 다시 한번 말했다.

" 다시 한번 해. 아니, 몇번이라도 좋아. 더 해. 더 넣어 줘. "

그는 눈을 날카롭게 한 채, 날 응시했다.
난 그런 녀석의 목에 손을 두르고 입술을 대 키스했다.
그리고 오른손을 아래에 뻗어, 녀석의 물건을 만진다.
그는 내 손목을 잡아 그것을 차단했다.
낙담한 시선으로 의아한 듯 그는 물었다.

" 뭘, 생각하는 거야? "

난 싸늘하게 되물었다.

" 안 해? "

그는 잠깐 주저하더니 어렵단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 오늘은 이제 그만하자. 너 어떻게 된 거야. "

난 무표정하게 그걸 듣고 있었지만, 눈을 깔고 시시한 듯 답했다.

" 뭐야, 안 하는 거야…… "

의아한 듯 내려다 보는 그의 몸을 젖히고 몸을 일으켜,
주위에 흩어져 있던 옷에 손을 뻗었다.
녀석이 말을 건다.

" 어이? "

난 그것을 등 너머로 듣고 차겁게 반응했다.

" 안 하면 돌아 가…… "

그리고 아직도 벙쪄 있는 녀석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끌어 모은 옷을 손에 들고 일어서려 했다.
하지만 바로 그 때 허리에서 힘이 빠져
비틀비틀 한심하게 마루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녀석이 당황해서 다가 와, 걱정스러운 듯 얼굴을 들여다 봤다.

" 어이, 괜찮아? "

난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아까의 여운이 아직 확실히 남아 있어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무리도 아니다.
왜냐면 처음으로 난 뒤로만 느끼고,
그리고 정신을 잃을 정도로 격렬하게 가 버렸던 것이다.
녀석은 설득하듯 상냥하게 말했다.

" 이제 조금 쉬어. 그렇게 서두를 거 없잖아? "

내가 불만스런 표정으로 마주 보자, 그는 기막힌 듯 한숨을 쉬었다.

" 알았어. 돌아가고 싶으면 보내 줄께.
   그러니까 무리해서 서둘러 갈아입지 마. 천천히 해. "

그렇게 말하고 내게 손을 뻗는다.
하지만 난 그 손을 난폭하게 뿌리치고 차갑게 단언했다.

" 다정하게 굴지 마. "

녀석은 망연하게 갈 곳 없는 손을 끌어 당겼다.
곤란한 듯한 녀석의 얼굴.
격하게 관계를 요구하면서도 그를 거부하는 날,
뭐가 뭔지 모르겠단 표정이다.
하지만 난 그런 녀석의 망설임을 무시하고 재빨리 옷을 입었다.

그렇다. 녀석은 모른다, 내 기분 따위.
내가 어떤 생각으로 곁에 있는 지, 요만큼도 알 생각이 없으므로.
녀석에게 있어 난, 성욕의 배출구에 지나지 않으므로.

그것도 그녀가 있는 녀석에겐 분명 단순한 변덕.
그 날 전차에서 유희로 손을 대니 감쪽같이 걸려와서 안았다,
그것 뿐인 것이다, 분명.

생각하면 할수록 슬프고 괴롭고, 그리고 분했다.
한데 녀석이 좋았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까지도 곁에 있고 싶다고 원할 만큼…….

휘청거리는 몸으로 옷을 갈아입는 걸 끝내고 가방을 쥐고 현관으로 향했다.

녀석이 말없이 쫓아 왔다. 나도 말은 없다.
입 따위 열지 않는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왜냐면 몸만 요구되는 내게 아무 것도 물을 자격은 없지 않은가?

구두를 신고 먼저 나오려는 날, 녀석은 갑자기 어깨를 잡고 멈춰 세우더니
눈썹을 찌푸리고 가만히 응시했다. 그리고 한마디, 툭 하니 중얼거렸다.

" 이제 그만 두고 싶어? "

난 무언인 채 마주 쏘아 주었다.

내가 뭘 말할 수 있겠어.
그만 두고 싶다니, 생각할 수도 없어.
난 몸도 마음도 이 녀석에게 미쳐 있는 걸.  
이 녀석을 좋아하는 거다, 진지하게.

하지만 이런 허무한 관계를 계속해서 어떻게 된단 건가.
몸만 요구해 오는 이 녀석에게,
아무 것도 바라는 걸 가질 수 없는 관계에,
어떤 기분으로 임해야 되는 건데? 
차라리 나도 육욕 만을 바라고 있었다면,
아무 괴로움 없이 쾌락에 잠길 수 있었으련만.

난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울기 시작할 듯한 기분으로, 녀석의 얼굴을 응시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한동안 서로 침묵하고 있었지만,
이윽고 그가 크게 한숨을 쉬더니 희미하게 말했다.

" 가자. "

난 입을 다물고 뒤를 따라갔다.
주차장에서 여느 때처럼 그의 뒤에 앉으려 하자, 녀석이 상냥하게 말했다.

" 집까지…… 바래다 줄까? "

난 조용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입을 다물고 그걸 받아 들였는지
바이크를 출발시켜 그 역까지 날 데려갔다.

난 한마디도 묻지 않고 바이크에서 내려
그대로 돌아 보지도 않고 걷기 시작했다.
등에 녀석의 시선을 느꼈다.
여느 때라면 바로 가 버리는데, 왠지 쭉 그 자리에서 날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난 한번도 돌아보는 일 없이 역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구내에 들어가 플랫폼으로 향하는 동안에도, 절대로 뒤를 보지 않았다.  
발밑만을 노려 보며 계속 걸었다.

중간에 엇갈리는 사람들이 가끔 의아한 듯 날 봤다.
난 사람들 앞임에도 거리낌 없이 뚝뚝 눈물을 흘리면서,
저녁 때의 러쉬 아워를 맞이한 인파 속을 걸어갔다.



                                                                                              계속.





최근 마츠 다카코가 좋아졌습니다.
어찌 그리 귀여울 수가 있는 건지ㅡ

[2001/06/07] 알렙 아...썰렁한 얘기지만, 저도 최근에 마츠 다카코를 좋아하게 됐어요^^;;  





[번역/시리즈]



                       목소리를 들려 줘 (5)

                    - 夕日&篤志 시리즈  1 -


                                              
                                        원작 : 츠지 키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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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과 그에 이어지는 부수자료의 권리는
원작자인 츠지 키리나 상과 번역자인 BabyAlone에게 있습니다.

원작자와 번역자의 허가를 받지 않은 불펌은
절대 허락할 수 없음을 먼저 밝혀 둡니다.







5. 녀석의 이름                       






 
다음 날, 나는 최악인 기분인 채 학교에 있었다.
수업 따윈 전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쉬는 시간이 돼도 한마디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으려니,
사토루가 다가와 앞 자리에 앉았다.

왜 그러느냐곤 묻지 않았다.
그런 말을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풀 죽은 표정을 하고 있을 것인데,
아무 것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단 말을 기억하고 있는 건지,
굳이 모르는 척 해 주고 있다.
그런 자그마한 마음 씀이, 지금의 내겐 고마웠다.

사토루는 상냥하게 미소짓곤 말을 걸어 왔다.

" 저, 유우히. 너 내일 무슨 할 일 있어? "

" 별로 없지만…… 왜? "

" 그럼ㅡ 응. 자, 굉장하지ㅡ "

사토루는 그렇게 말하곤 뭔가 티켓을 2장 꺼냈다.
손으로 집어서 보니, 그건 지금 화제인 공포 영화의 예매권이었다.

" 와, 어떻게 된 거야, 이거? "

" 헤헹, 좋겠지. 신문 가판대에서 받았어. "

" 헤에, 좋겠네. "

" 그렇지? 그러니까 내일 가자구. "

사토루는 싱글벙글 만면에 미소를 띄우면서, 날 응시했다.

" 너, 이거 보고 싶다고 전에 말했었잖아? "

난 잠깐 말없이 사토루를 응시했다.
그런가, 그런 건가.
정말로 그걸 신문 가판대에서 받았는지 어떤 지는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건 사토루가 힘껏 내 기운을 북돋우려 하는 거다.
혼자 멋대로 떨어져, 아무 것도 얘기하려 하지 않는 날 위해서.
난 가슴이 뜨거워져서, 희미하게 웃곤 말했다.

" ……좋아. 가자. "

사토루는 기쁜 듯 눈을 가늘게 하고 끄덕였다.

" 좋아, 그럼 낼 S역에서 만나는 거다. 시간은 나중에 전화할게. "

" 응. "

그의 배려가 가슴에 스며들었다.
사토루는 정말 좋은 녀석. 진심으로 날 소중히 해 준다.
이 상냥함의 몇분지 일이라도, 녀석에게 있었다면…….
그런 무의미한 일을 무심코 생각하다 난 비밀스레 자조했다.

완전 내 머릿속은 언제건 녀석으로 가득하다.
그런 자신이 너무도 한심해 난 다시금 탄식했다.
사토루가 입술에 미소를 띄우곤,
하지만 눈으론 확실히 걱정이라고 말하면서, 입을 다물고 날 보고 있었다.
난 눈을 내리깔고 책상을 노려보면서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 저……말야. "

" 응? "

" 핸드폰에…… 전화가 걸려 와서,
   상대의 이름을 부를 때 경칭을 생략한다든지 하는 사이에서,
   만날 약속같은 걸 하면 역시 그건 교제한단 걸까? "

난 망설이며 그렇게 물었다.
상대가 어떤 녀석이라든지 어떤 관계에 있다든지, 일체 건드리지 않은 채.
그러니 사토루는 분명 내가 여자애에 대해 얘기하고 있을 거라
생각할 것이 틀림없다.
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지만, 바로 눈썹을 찡그리고 진지하게 생각했다.
  
" 응, 그렇다고 단언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
   그저 단순한 사이도 경칭 생략 정돈 할 수 있는 거잖아? "

과장해서 눈썹을 들며 빙긋 웃는다.

" 이봐, 만화에 자주 있는 패턴 아냐?
   연인일까 하고 생각하면, 실은 형이었다든가 사촌형제였다.
   아직 분명히 연인 선언한 건 아니겠지?
   마음대로 믿고 풀죽지 않는 게 좋다 생각하는데. "

" 아무도, 내 얘기라곤 안 했어. "

" 아, 그런가. 그렇군, 하하. ……그래, 어느 학교 애야? "

" 그러니까 아니라고 했잖이. 이제 묻지 마, 아무 것도. "

" 알았어 알았어. 화내지 마. "

사토루는 아니나 다를까 오해하고 놀리는 듯한 시선으로 보며 웃었다.
그래도, 내 고민의 원인이 여자애에 대한 짝사랑의 탓이라고 납득했는지,
아까까지 보이던 걱정스런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그런 문제라면 그 정도로 걱정할 게 없다 생각했을 것이다.

난 후우 하고 조그맣게 한숨지었다.
확실히 사랑의 고민이라면 그대로지만,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닌 것이다.
왜냐면 우리들은 좋다든지 싫다든지 그런 걸 배제한 채,
바로 육체 관계를 가져 버렸으니까.
게다 남자끼리다. 이런 건 절대 이상하다. 어딘가 잘못되어 있다.

그리고, 그걸 잘 알고 있으면서 난 녀석과의 관계를 끊을 수 없다.
녀석을 만나고 싶고 그 가슴에 안기고 싶어, 괴롭고 안타깝다.
적어도 보통의 짝사랑이라면,
사토루에게 전부 털어 놓고 조금은 편해질 수 있었을 지 모르는데…….

생각하니 무심결에 눈물이 어려, 난 당황해서 그걸 숨겼다.
다행히 사토루는 눈치채지 못해, 난 약간 마음이 놓였던 것이었다.







일요일의 영화관은 무척 혼잡했다.
낮 타임을 목적하고 간 우리들은 결국 한회를 단념하고,
그 이후 걸 보기로 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 영화관에 돌아오자,
2시 후 상영시간까진 아직 시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꽤나 사람이 모여 있었다.

TV로도 꽤나 선전한 데다 공포인 탓도 있어,
커플의 모습들이 꽤나 눈에 띄었다.
반 이상은 젊은 애인끼리란 느낌이다.
나와 사토루처럼 남자끼리가 조를 이룬 팀도 몇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모두 어깨를 움츠리고 구석 쪽에서 점잖게 얘기하고 있었다.
내가 시간이 남아 벽에 걸린 예고 포스터를 보고 있자니 사토루가 물었다.

" 그럼, 난 음료수를 사 올게. 너, 뭐가 좋아, 유우히? "

" 에ㅡ 그럼, 우롱차. "

" OK, 알았어. "

" 아, 나도 같이 갈까? "

" 괜찮아, 여기서 기다려. "

그는 명랑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하곤, 혼자 매점 쪽으로 향했다.
인파를 고생하며 빠져 나간다.
난 그 뒷모습을 감사를 담은 채 전송하곤 다시 포스터에 눈을 돌렸다.

로비는 소란스러웠다.
상영이 끝나는 걸 기다리며 많은 사람들이 수다를 떨고 있다.
문 저편에선 희미하니 음악이나 효과음이 울려,
왠지 모르게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 때, 뒤에서 여자아이의 귀여운 음성이 귀에 날아들어 왔다.
약간 혀가 짧은 듯 하지만 응석부리듯 코에 걸린,
아무래도 여자애란 느낌의 목소리다.

" 어머, 어째 이렇게 혼잡하지? 이래서야 절대 앉을 수 없잖아. "

여자아이는 순진하게 불평을 입에 담았다.
우선 그건 화나 있다기 보다 누군가에게 응석부리고 있단 느낌의 말투였다.
아마 일행인 보이 프렌드에게도 그러는 거겠지.

" 저, 자리잡지 못하면 역시 서서 봐야 해? 싫다. 다리 아플 거야.
   모처럼 힐 신고 왔는데에ㅡ "

제멋대로인 면이 가득한, 그렇지만 어딘지 미워할 수 없는 말투로,
그 목소리의 여자아이는 불평을 늘어 놓았다.
난 그 대화를 등 너머로 들으면서, 무심결에 입가를 느슨하게 했다.

여자아이는 사랑스럽다.
반드시 이 아이는 오늘 데이트를 위해
익숙하지 않은 구두를 신고 멋부리고 왔을 것이다.
그런 솔직함이 부럽다.
생각한 대로 소리내서 응석부릴 수 있는 구석도.

하지만 그런 나홀로 감상은 그녀의 다음 대화로 부서졌다.

" 응응, 영화 관두고 딴 데 갈까? 앗짱? "

그러자, 그 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대화 상대인 듯한 남자가,
기가 막히단 소리로 답했다.

" 어이. 보고 싶다고 한 건 너잖아, 리카. 멋대로 말하지 마. "

난 전신을 경직시켰다.

( 이, 목소리……! )

그것은, 틀림없이 녀석의 음성이었다.
좀 낮고 거친 소리. 그리고 억양이 없는, 퉁명스런 말투.
절대…… 녀석이다.

난 천천히 돌아봤다.
내게서 2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재떨이와 쓰레기통이 세트로 놓여 있고,
거기에 녀석이 서 있었다.
여느 때의 점퍼에 선이 가는 진을 걸치고,
긴 머리카락이 무방비하게 흔들리고 있다.
역시 담배는 피우지 않았지만,
곧게 다문 입술을 어딘가 한가한 듯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

난 아연해서 녀석을 응시했다.
설마 이런 곳에서 만나 녀석을 만나다니.
만나고 싶다고 바라곤 있었지만,
이건 운명의 상냥한 지휘봉인가, 그렇지 않으면 잔혹한 장난인가,
내게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조금 싫증난 듯 마루를 노려보고 있었다.
우리들 사이엔 그 밖에도 사람이 있었고,
덧붙여 녀석은 반은 등을 돌린 듯한 형태가 돼 있었기 때문에,
내가 있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리고, 녀석의 앞에 한명의 여자아이.
아까부터 내가 듣고 있던 귀여운 목소리의 주인이다.
아니, 목소리만이 아니다.
동그란 얼굴에 초롱초롱 큰 눈동자에, 붉은 입술이 사랑스럽다.
작은 키지만 날씬하고 유행하는 쇼트 커트가 굉장히 잘 어울렸다.

그것은 정말로 멋진 커플이었다.
약간 무뚝뚝하고 거친 느낌의 남자에, 웃는 얼굴이 귀엽고 명랑한 여자아이.
지나치리 만큼 어울린다.
녀석은 변함없이 무표정하고 덤덤하게 있었지만,
여자아이는 그런 것에도 익숙한 건지
태연하게 즐거운 듯 이야기하고 있었다.

" 아, 저기, 나, S 공원의 아이스가 먹고 싶어.
   앗짱, 바이크에 태워 줘. 거기 가자. "

그 아이는 응석부리듯 입술을 쑥 내밀었다.
녀석은 살짝 그녀의 얼굴을 보더니 꿈쩍도 않고 답했다.

" 영화 어떡할 거야? 티켓이 아깝잖아. "

" 괜찮아, 별루. 어차피 오빠한테 받은 거구.
   게다 앗짱, 무서운 거 싫어하잖아.
   전에 공포게임 해서 잠을 못 잤다고, 카츠타(勝田) 씨가 말했어. "

" 바보, 그런 걸 믿냐. "

" 아ㅡ, 정말은 무섭지ㅡ? 역시 관두자, 영화. 딴데 가자. "

" 리카. 너 말이지…… "

녀석은 기가 막힌 듯 눈썹을 찡그렸다.
하지만 그 시선은 어딘가 단념한 듯한,
그 아이의 악의없는 멋대로의 행동을 알고 받아들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난 깨달았다.
그건 사토루가 말했던 남매사이라든지 사촌 형제 등의 보통 관계는 아니다.
두사람은 연인 사이다. 그 아이는 정말로 녀석의 그녀인 거다.
내가 잘못된 생각을 한 게 아니고…….

난 스윽 하고 핏기가 가시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런 장면을 보다니 쇼크로 가슴이 메었다.
마치 심장을 꽉 붙들린 듯한 느낌이다.
가슴이 아프다는 건, 정말로 그곳에 아픔을 느끼는 거란 사실을 알았다.

" 어, 미안. 늦어서. "

사토루가 양손에 음료수와 팝콘 컵을 들고 돌아왔다.

" 우롱차 품절이야. 커피로 참아. 그리고 팝콘. "

사토루는 내가 대답도 않고 내내 서 있는 걸 보고,
의아한 듯 눈썹을 찡그렸다.

" 어이, 왜 그래? 유우히? "

난 꿈틀, 하고 떨었다. 자신의 이름이 매우 크게 울려 들렸다.
녀석의 얼굴이 천천히 돌아본다.
내 이름을 듣고, 그것은 눈앞에서 슬로우 모션처럼 움직여,
날카로운 눈동자가 날 붙들었다.

녀석은 일순 숨을 들이켰다.
역시 놀란 듯, 그 얼굴에 경악의 표정이 떠오른다.
녀석은 아연한 듯 날 응시했다.
설마 이렇게 만나리라곤 그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소리없이 내내 서 있다.

난 말없이 그의 눈동자를 마주 봤다.
마치 시간이 거기서만 멈춰버린 것처럼 우리들은 서로 응시했다.
그걸 부순 건, 저 응석부리는 듯 높고 귀여운 목소리였다.

" 앗짱? 누우구? 친구? "

여자아이는 이상한 듯 녀석의 얼굴을 올려 보며 말을 걸었다.
난 그 소리에 자신에게 돌아갔다.
그와 동시에, 전신에 떨리는 듯한 오한이 달렸다.
가슴이 끓는다. 몸 안에 소름이 끼친다.
난 녀석에게서 눈을 떼고, 고개를 숙이곤 떨리는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 ……기분 나빠. "

사토루가 귀가 밝게도 알아듣고 되물었다.

" 에? "

" 미안, 사토루. 나 돌아갈게…… "

그리고 난 뒤도 보지 않고 출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한층 더 혼잡해진 인파를 무리하게 헤집으며,
그 자리로부터 피하듯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한시라도 빨리 여기서 멀어지고 싶었다.

뒤에서 사토루가 당황해 쫓아 와,
걱정스러운 듯 눈썹을 찌푸리며 얼굴을 들여다 봤다.

" 어이, 어떻게 된 거야, 유우히? 괜찮아? "

난 아무 대답도 않고, 오직 걸어나갔다.
한마디라도 하면 필사적으로 참고 있던 뭔가가 부서져 버릴 듯한
기분이 들었다.
새파랗게 얼굴을 경직시킨 채 걷는 날,
사토루는 곤혹스런 눈으로 응시하고 있었지만,
그 이상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그저 한번만 살짝 뒤를 돌아 보곤,
그리고 나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영화관을 나와 어디로 향하는 것도 모르는 채 거리를 나아갔다.
일요일 오후라 길에도 사람이 가득 흘러넘치고 있어,
고개를 숙이고 걷는 내 어깨에 몇번이나 부딪친다.
부딪친 사람들의 차가운 욕지거리를 받으며,
그런데도 난 땅을 노려 보며 계속해서 걸었다.

떠들썩하니 거리가 웅성거린다.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 상점 앞에서 흐르는 음악, 왕래하는 차의 엔진음.
많은 소리가 세상을 채우고 있다.

그렇지만 내 귀에 울리는 건, 그 때 녀석을 부른 높은 음성 뿐이었다.

ㅡㅡ앗짱.

ㅡㅡ앗짱.

그것은 몇번이고 몇번이고 되풀이 되어 내 머리를 전부 메웠다.
내가 모르는, 녀석의 이름. 그것을 그 아이는 그런 식으로 부른다.
너무나 가볍게, 너무나 친근하게, 애정을 담아 부른다.

그 애는 녀석에 대해 여러가질 알고 있는 것이다.
녀석이 좋아하는 것, 녀석이 싫어하는 것, 녀석이 어떻게 살고 있는 지,
매일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 지, 많고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난 아무 것도 모른다. 뭐 하나 듣고 있지 않다.
사랑하고 있고 외로워 하고 있어도 혼자 이름을 입에 담는 것도
용납되고 있지 않다. 난, 아무 것도 모른다…….

ㅡㅡ저기, 앗짱.

( 제길…… )

난 이를 꽉 물었다.
그 아이의 음성이 떠나질 않았다. 녀석을 부르는 말이 떠나지 않았다.
녀석의 이름이 알고 싶다, 계속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알고 싶었던 게 아냐!
난 그의 음성으로, 그가 하는 말로, 듣고 싶었던 거라구.

" 크윽…… "

다문 입술에서 작게 신음이 샜다. 고통스럽고, 안타까워, 어쩔 수 없었다.
그러자 그걸 우연히 들었는지 그 때까지 입을 다물고 내 뒤를 따라 온
사토루가 옆에 다가 와 걱정스러운 듯 말을 걸었다.

" 유우히, 아직 기분 안 좋아? 저, 어디서 쉴까? "

사토루는 그렇게 말하더니,
내 팔을 가볍게 당겨 자신이 앞서 걷기 시작했다.
큰 길을 지나 작은 뒷골목으로 들어간다.

좀 걸어 사람들로 북적대는 상가에서 빠져나와 사무실 거리로 들어섰다.
그곳은 그닥 왕래가 없고 한산했다.
비싼 빌딩에 막힌 가느다란 길 한 모퉁이에서
사토루는 발을 멈추고 돌아서서 미소했다.

" 좀 쉬어 가자. 이거 마실래? "

그는 계속 손에 들고 있던 캔 커피를 내게 내밀었다.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다만 걱정스런 눈을 하고 상냥한 미소를 입술에 띄운 채 날 보고 있었다.
그런 사토루를 보고 있으려니 내 안에 뜨겁고 괴로운 것이 끓어 올라 와,
견디지 못하고 목 안쪽을 기어 올라 왔다.

난 캔을 내민 그의 손을 피해
사토루의 어깨에 매달려 그의 점퍼를 꽉 붙들었다.
이마를 누르자, 참고 있던 눈물이 뚝뚝 뺨을 타고 떨어졌다.

" ……우, 아, ……우우ㅡ "

이제 멈출 수 없었다. 난 사토루의 등에 대고 한심하게 오열을 흘렸다.

" 유우히……! "

사토루가 놀라 날 보려고 몸을 비튼다. 그걸 난, 떨리는 소리로 만류했다.

" 미안, 잠깐…… 이대로…… "

말은 끝까지 소리가 되지 못하고 꺼져갔다.
그러나 사토루는 잘 헤아려 주어,
그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침묵하고 있어줬다.

" 우웃…… 흐, 윽…… "

그의 상냥함에 응석부리며, 나는 혼자 계속해서 울었다.
조용한 빌딩의 골짜기 사이에서 내 희미한 울음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매우 애절한 음악이었다.
 


                                                                                                  계속.              




이 <목소리를 들려 줘> 뿐이었다면 번역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 속편인 <펜스 저편에>는 길고(ㅜ.ㅜ) 그리고 근사합니다.
오토바이 서킷 등이 소재로 등장해서 퍽 박진감이 넘칩니다.
소재 자체는 역시나 눈에 익은 겁니다만 묘사가 잘 돼 있죠.
물론 속편도 번역합니다. 속편을 하고 싶어서 시작했는걸요.

P.S
아츠시(공)를 너무 미워하지 말아 주시와요.
이전에 번역했던 <시선>의 레이도 그랬지만,
알고 보면, 다 애틋한 녀석들이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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