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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59)  시도오 유즈미 (20)  미즈키 마토 (11)  후지키 사쿠야 (16)  츠지 키리나 (12) 
BabyAlone
카이 & 다이치 시리즈 1. MELODY

[번역/시리즈]



                                   멜로디 (上)

               - 櫂(카이) & 大地(다이치) 시리즈 (1) -


                                              
                                              원작 : RURU(후지키 사쿠야)
                                                        cosumo@rc4.so-net.ne.jp
                                                
                                              번역 : BabyAlone
                                                        babyalone@orgio.net
                                                        babyalone@freechal.com




이 소설과 그에 이어지는 부수자료의 권리는
원작자인 후지키 사쿠야 상과 번역자인 BabyAlone에게 있습니다.

원작자와 번역자의 허가를 받지 않은 불펌은
절대 허락할 수 없음을 먼저 밝혀 둡니다.












" 응∼ 응-, 응, 응응∼… 앗, 기다려요. 방금 여기 역시, 이렇게 해서.
   응∼ 응-, 응응응응-… "

수화기로부터 흐르는 멜로디에 맞춰 오선지에 펜을 달리면서,
난 힐끗 벽시계를 봤다.

심야 2시 15분.
꽤 늦은 시간이다.

" 스톱, 카이(櫂). 오늘은 그만 여기서 끝내자. "

" 에? 아, 벌써 이런 시간이네, 죄송, 맞춰 주셔서. "

" 내쪽은 상관없지만, 카이는 내일도 일찍 일어나야 하잖아? 
   좀 자 두는 편이 좋아. "

" 응, 낼은 가요 프로그램 녹화가 있어. 아, 들어봐요, 타마키(玉城) 씨.
   그 사회를 맡고 있는 오자와(小澤)란 진짜 싫은 놈이 찰싹 달라붙어
   농을 걸어 와요. 근데, "

" …카이, 그 얘긴 나중으로 돌리지? "

길어질 듯한 예감이 와서 난 그의 이야기를 넌지시 잘랐다.

" 응, 그러죠. 나도 이젠 졸려. "

수화기 너머로 하품하는 게 들려, 난 카이의 그 모습이 눈 앞에 떠올라
쿡, 하고 웃었다.
그로서는 컴플렉스인 것 같지만, 나이보다 어리게 보이는,
내가 좋아하는 그의 동안이 확 하고 눈에 비친다.
벽에 붙여진 포스터 속, 그 얼굴은 극상(極上)의 미소를 띄우고 있다.
나이도 먹을 대로 먹은 남자가 방에 아이돌의, 것도 남자의 포스터를 붙이고
있단 사실이 기분나쁘게 비칠지도 모르지만 난 순수한, 그의 팬인 것이다.

" 그럼, 잘 자. 일, 힘내. "

" …응. 안녕히 주무세요, 타마키 씨. "

기분 탓일까, 내 이름을 부르는 그의 어조가 약간 아쉬운 듯 했다.  
오랜만의 전화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수화기를 내려 놓는 건 언제나 두사람이 동시였다.
두사람 사이에 그런 룰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언제건 마찬가지다.

난 그저 상대가 자신보다 먼저 전화를 끊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바로 수화기를 내려 버린다.
탁, 하고 전화가 끊어지는 소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마치 상대와의 관계까지 끊어져 버린 것 같아서.
그는 외로움을 잘 타고 응석받이라,
역시 상대가 먼저 끊는 걸 좋아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전화는 항상 마치 <하낫 두울-> 하고 세고 난 뒤
내려 놓는 것처럼 똑같은 타이밍으로 끝이 난다.

난 그것이 좋다.
하지만, 끊어진 전화 옆엔 오래 머물 수 없다.
그것이 이미 그와 연결돼 있지 않은 이상,
내게 있어 단순한 기계일 수 밖에 없어서 볼 마음이 사라지는 것이다.

" 잘 자, 카이. "

한데도 여기 없는 그에게 제일 가까운,
방금까지 그의 음성을 전해 준 기계를 향해, 난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수화기 너머의 그는 벌써 잠들었을까?



                        



나와 카이의 관계를 한마디로 설명하는 건 조금 어렵다.
그걸 위해선, 내 반생을 요약해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 타마키 다이치(玉城 大地)는 나가노현(長野縣) 산속 마을에서 태어났다.
인구 7백명에도 못 미치는 작디작은 마을에서, 나의 아버지는
간호사인 어머니와 함께 마을의 유일한 의사로 일하고 있었다.
지금도 두사람은 사이좋게 살고 있을 것이다.
아버지가 올 때까지 그 마을은 무의촌이었다.

아버지 말씀으론, 그는 일류 의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의사였다고 한다.
그것이 사실인지 어쩐진 모르지만, 아버지가 우수한 의사였던 건 분명하다.
아버지는 돈벌이를 위해 의사를 지망한 건 아니었다.
집도 결코 유복한 건 아니어서 고생해서 장학금으로 간신히 의대를 나왔다.
대학 부속병원에서 3년간 의사로서의 훈련을 받은 아버지는,
거기서 간호사를 하고 있던 어머니와 결혼해 어머니가 태어난 고향인 마을이
무의촌인 것을 알자, 망설임 없이 대학병원 엘리트 의사의 길을 버리고
어머니와 함께 그 마을로 옮겨 왔다.

1년 후, 내가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매우 소박한 인간이었다.
어머니는 천성이 부드러운, 봄 햇살처럼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난, 태어났을 때부터
양다리의 무릎에서부터 아래가 움직이지 않았다.
선천적인 이상이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의료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내 장애를 슬퍼하는 일 없이 받아들여
일생 자신의 다리로 땅을 밟는 일이 없을 자기 아이에게
<다이치(大地 : 대지)>란 이름을 붙였다.

마을의 자연도 마을 사람들도 내게 상냥했다.
그 마을에서 난 장애자로서가 아니라 한사람의 인간으로서 자랐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필요 이상으로 내게 간섭하지 않았고,
지금은 폐교가 돼 버린 초등학교 동창들도 날 특별취급하지 않았다.

마을엔 중학교가 없어 난 이웃 중학교까지 다녔다.
그곳엔 처음 만나는 사람이 여럿 있어, 거기서 처음으로 난,
자신이 세간에선 <장애자>로 취급받는 존재임을 알았다.
보통학교에 다닐 수 있는 것조차,
나처럼 중증 장애를 지닌 사람에 있어선 행운이었다.
중학교에서 보낸 3년간, 내가 배운 건 장애자로서의 고독과 소외감이었다.

마을에 돌아가면 많은 동료가 맞아 준다.
그러나 그 폐쇄적인 공간에서밖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였던 난
약한 아이였다.
사회적 약자, 란 단어를 알고 그 말에 극심하게 상처입어,
신경질적이 돼 있었다.
날 이런 식으로 낳은 어머닐 원망하기도 했다.
보낼 곳 없는 상념을 부모님에게 토해낸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내 인생을 결정한 만남이 있었던 것도 그 중학시절이었다.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여성으로 음악 선생님이었다.
키무라(木村) 선생님이라 했다.
아직 막 대학을 나온 참인 젊은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내 가장 친한 친구였다.
쾌활하고 명랑한 선생님의 존재가 마음의 버팀목이었다.

키무라 선생님은 학교나 클래스에 적응하지 못하는
과묵한 휠체어 소년에게 음악듣기를 권했다.
클래식이나 재즈, 대중 음악에 록 뮤직까지, 아무튼 뭐든 다.
그리고 내게 악기를 가르쳐 준 것도 선생님이었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아도 다룰 수 있는 악기는 많았다.
클라리넷이나 플룻, 트럼펫, 색소폰, 바이올린, 첼로.
음악실에 갖추어져 있는 악기라면 뭐든 가르쳐 주었다.

중학 3년간은 음악으로 채색된 3년간이었다.
키무라 선생님은 음악으로 내 마음을 구원해 준 은인이었다.
그리고, 내게 절대 음감이 있는 걸 발견해 준 사람이기도 하다.

졸업 때, 난 자신이 작곡한 곡을 선생님께 감사를 담아 드렸다.
지금 생각하면 치졸하고 곡이라 부를 만한 물건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내가 처음으로 이 세상에 내 보낸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긴 음악가로서의 길에 디딘 첫 일보였다.



난 마을을 나왔다.
내게 있어 편안한 장소인 그곳을 나와 부모님으로부터 떠나
도쿄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고교 3년간 음악의 기초를 배워,
그대로 음악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근처에서 자취 생활을 시작했지만,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는 다리에 익숙해진 탓에
혼자 사는 데도 그닥 지장은 없었다.

음대를 졸업할 무렵, 음악가로서 내겐 몇가지 길이 열려 있었다.
키무라 선생님에게 배워 가장 열중했던 건 바이올린으로,
도쿄에서 유명한 선생님에게 본격적으로 사사받아,
대학을 나올 무렵엔 솔리스트로서 손색없는 실력이 돼 있었다.
성악도 배워, 성악 선생님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성역이 7옥타브를 낼 수 있는 내 목은
프로로서도 충분히 통용될 수 있는 것이었다.

누구나가 내가 바이올리니스트나 가수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주위를 놀래키며 내가 선택한 건, 작곡가의 길이었다.

내 음악의 원점은 키무라 선생님과 함께 중학교 방과 후의 음악실에서,
자주 둘이서 악기를 연주하고 즉흥적으로 엉터리 곡을 만들어 연주했던
것이었다.
그 시간의 즐거움이나 행복. 그 이상은 없을 그 행복감이,
나로 하여금 음악의 길을 선택하게 했던 것이다.

졸업을 앞두고 선생님께 드릴 곡을 만들고 있었을 때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누군가를 생각하며 그 사람을 위해, 자신과 그 사람만의
음악을 만들어 내는 건 얼마나 행복한 작업인가, 하고.

난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된다면 음악을 만들어 내는 인간이고 싶다고
소망했다. 그리고, 장래의 약속된 바이올리니스트와 가수의 길을 버리고
작곡가로서의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던 것이다.



음악이 거기 있으면, 난 행복했다.
음악 세계에선 내 다리의 장애는 핸디캡이 되지 않았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아도, 일생 휠체어에서 지내도,
더 이상 그것이 불행한 일이라곤 생각지 않았다.
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음악과 만날 수 있었던 것이므로,
모든 것에 감사하고 싶을 정도였다.
<음악에 미친 놈>이라고 친구들에겐 놀림받았지만 확실히 그 말대로
난 음악에 미친 인간이다.

그런 남자와 아이돌 가수 이세사키 카이(伊勢崎 櫂)와의 만남은,
내가 26살, 카이가 16살 때.

한통의 편지가 계기였다.







작곡가로서 걷기 시작했지만 그것만으로 먹고 살게 되기까진
긴 여정이 있었다.
첫 2년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버렸던 바이올린과 목을 무기로 무대에 서,
수입을 벌지 않으면 안되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바빠서 곡을 만들 여유조차 없었다.

24살 때, 음대 시절의 친구로부터의 의뢰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간간이 활동하는 작은 오케스트라를 위해,
적은 인원으로 연주할 수 있는 곡을 두곡 작곡했다.
바쁜 나날 중 틈을 내서 차분히 가다듬어 올린 그 곡은 운좋게도,
작은 오케스트라의 멤버들에게 평판이 좋아, 퍽 사랑받았다.
오후엔 샐러리맨이나 OL로 일하면서 음악을 순수하게 좋아하고
주말에 시간을 내서 작은 홀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그들은
나와 같은 <음악에 미친 사람>인 무리들의 모임으로,
나 역시 그 오케스트라를 사랑했다.

그 오케스트라와 내 곡이, 어떤 계기로 세상의 주목을 끌었던 것이다.  
오케스트라 멤버 한사람이 근무하던 회사에 출입하던 레코드 회사 사람에게,
잡담식으로 자신이 소속하고 있는 오케스트라나 그곳에 곡을 가지고 오는
이름없는 작곡가 얘기를 했더니 그 남자, 사사오카 타케시(笹岡剛史)는
굉장한 흥미를 표시했던 것이다.
그리고 주말 연습을 견학하고, 내게 그가 와,
그 때부터 척척 얘기가 진행되어…

음악을 사랑하는 그들 오케스트라의 면면과 내 곡이,
큰 홀에서 빛을 보았던 건 그 반년 후의 일.
음악에 미친 놈에 의해 만들어지고 연주된 우리의 곡은,
역시 세상의 음악에 미친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다.
전문가들 사이에 평판을 받고 그것이 조금씩 퍼져,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내 앞으로 한 건, 또 한 건, 하는 식으로 작곡 의뢰가 오게 된 건,
그리고 나서 금방이었다.



젊은 신예 작곡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한 난,
일이 있을 때마다 취재를 받지 않으면 안되었다.

움직이지 않는 다리, 휠체어의 작곡가.
…그리고 본의 아니게, 다소 눈에 띄는 얼굴 탓에
작곡가로서의 평가보다 차라리 재미 반 호기심을 자극해,
마치 아이돌 같은 취급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텔레비젼 출연만은 완고하게 계속 거절했지만,
잡지 취재는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받았다.

내가 만든 곡은 몰라도,
내 얼굴이나 장애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세간에 넘치도록 많았다.
보내 오는 편지에 내 곡을 듣고 팬이 되었단 내용은 적고,
장애에 대한 격려나 내 삶의 방식에 감명받았다는 것 뿐…
초조함이 날 괴롭게 했다.

날 세상에 내보내 준 사사오카는,
그 때까지도 뭐든 내 뒤를 돌봐 주고 있었지만,
나의 그런 상황과 정신상태를 눈치채곤,
그 해 회사를 그만두고 내 전속 매니저가 돼 주었다.
그의 매니지먼트 덕분에, 난 수렁에 빠져 있던 상황에서 빠져 나와
작곡에 전념할 시간과 안정된 생활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때였다, 그 편지가 날아 든 것은.



< 어떻게 하면 음악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



흰 편지지에 쓰여진 건 그 뿐.
그 한줄만 씌어 있던 편지.
그 글씨는 검은색 볼펜으로 씌어져 있었지만,
상당히 힘을 줬는지 뒷면이 요철돼 있었다.
정중한 글씨였다.
아무 장식도 없는 보통의 흰 봉투 뒷면엔 주소는 없고,
이름만이 쓰여 있었다.

이세사키 카이(伊勢崎 櫂), 라고.

방에 틀어 박혀 작곡만 하고 있던 두더지인 난, 그 이름을 몰랐다.
공사 모두 최선의 파트너인 사사오카에게 그 편지를 보였을 때,
그가 가르쳐 줬다.
이세사키 카이가 지금 시대를 풍미하는 인기 아이돌 가수란 사실을.

난 그에게 답장을 썼다.
지금까지 말한 반생을 그대로 써,
업계에 아는 사람이 많은 사사오카에게 맡겼다.
몇명의 손을 거쳐 그것은 톱 아이돌의 손에 건네졌다.

그로부터 최초의 전화가 온 건 답장을 쓰고 난 일주일 후.
심야 1시, 전화가 울기엔 조금 비상식적인 시간에
꽤나 떨리는 음성으로 그가 한 첫 마디를 지금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 저, 친구가… 친구가 돼 주실 수 있겠습니까! "

이름을 밝히는 것보다도 먼저 긴장한 음성으로 그렇게 고한 상대가
이세사키 카이인 걸 난 금새 알았다.
난 무심결에 웃기 시작하고 말았다.

그 때, 카이는 16살. 아직 고교생이었다.
난 26살. 10살 연하의 친구가 뜻하지 않게 생긴 밤이었다.

자신의 노래를 사랑할 수 없다고 더듬거리며 소년은 말했다.
누군가에게 칭찬받을 때마다 매상이 올라갈 때마다,
자신의 노래가, 그리고 자기 자신이 싫어져 간다고.
고뇌하는 아이돌의 전화는 그 날 동틀 무렵까지 계속되었다.







카이는 음악으로 사랑받는 인간이다.
나도 긴 시간 음악 세계에 몸담아 왔지만
그렇게 만드는 사람관 그닥 만나지 못했다.

노래하는 걸 좋아한 소년이 예능계에 뛰어 들었다.
자신의 노래를 보다 많은 사람이 듣게 하기 위해.

노래는 팔렸다.
얼굴도 이름도 눈깜짝할 새 팔렸다.
달콤한 용모는 동년배 여성에게 화제를 모아
드라마나 영화의 이야기가 차례차례로 날아들어 배우로서도 인기를 얻었다.

누구에게든 사랑받는 아이돌이 된, 노래를 좋아하는 소년은
인기 절정 속, 빡빡한 스케줄을 진행하던 어느 날 문득 생각했다.

대관절 얼마나 많은 인간에게 자신의 노래가 와닿는 걸까?
정말로 자신의 노래는 사랑받고 있는 건가?

한번 그를 붙들어 맨 의문은 오래도록 그를 괴롭히게 된다.

자신의 존재. 자신의 노래.
모든 게 만들어진 허상.
진정한 자신은 어디 있지? 
나는, 이세사키 카이는 대체 누구지…?

노래를 좋아하고, 노래를 부르면 행복했었다.
그랬던 소년은 예능계와 세상 사이에서 표류하고 있었다.
자신의 음악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 괴로움 속,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넘긴 잡지에서
소년은 한 음악가의 존재를 알았다.
그 남자는 세상 물정을 알았을 무렵부터 휠체어 생활을 당연한 듯 받아들여
고독과 소외감 속에서 음악과 만났다.
그리고 음악에 구원받고 음악을 사랑하게 돼
음악을 창조하는 길을 선택해, 지금 간신히 각광받기 시작했다.

다행히 카이가 읽은 건 강경파 음악 잡지로
주간지 같은 속된 기사가 아닌 덕택에,
카이는 내 반생이나 음악가로서의 인생을 거의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소년은 음악가에게 편지를 쓴다.
음악을 사랑하고 망설임 없이 자신의 음악을 계속 만들고 있는 그 남자에게,
자신을 붙들고 떨어지지 않는 의문에 대한 답을 가르쳐 주길 바라며.



나는 그에게 답을 줄 수 없었다.
그 답은 그 자신의 힘으로 찾아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음악은 나만의 것이고 그가 요구하는 음악과는 다른 것이다.  
그는 그가 선택한 음악을, 그 자신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음악을,
사랑하면 된다.

첫 한달, 전화는 매일같이 걸려 오고, 우리들은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다.
내 무엇이 그를 구할 수 있었는진 모르지만, 그는 나와의 만남을 통해
간신히 음악을 사랑하던 자신을 되찾았다.
그리고 본업인 노래외의 일에서 일절 손을 떼,
아이돌이 아닌 가수로서 이세사키 카이는 걷기 시작한다.







만나고 한해가 지났을 무렵,
난 처음으로 손수 작사 작곡한 곡을 그에게 주었다.
알면 알게 될수록, 난 이세사키 카이란 존재에게 매료되어 갔다.
음악으로 사랑받고, 순수하고 눈부시게 빛나는 그에게.

음악 프로듀서란 의식없이, 완전 사적으로 만들어 선물한 것이었지만,
사사오카의, 매니져로서의 혼은 그 곡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적중하고 말았다.
휠체어의 음악가와 톱 가수란 궁합의 화제성도 있었고
어디서 어떻게 전해졌는진 모르지만,
우리의 만남에서 교류에 이르기까지가 또 다시 화려하게 씌어져,
그저 다소 불쾌하단 생각은 어쩔 수 없었지만
어쨌건 주목을 끄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그 곡을 계기로,
우리들은 그 이후 둘이서 몇가지 음악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타마키 다이치와 이세사키 카이의 콤비가,
일본 음악계의 화제를 독점했다, 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년 지난 지금은 조금 가라앉은 듯 싶지만
우리들의 곡은 내면 반드시 팔렸다.
카이는 가수로서의 지위를 부동의 것으로 만들었고,
난 그의 프로듀서로서 명성을 얻었다.
물론 작곡가로서의 활동도 계속해 왔다.

수개월 전, 그한테서 상담을 받았다.
어떻게 해서든 스스로 곡을 만들고 싶다, 협력해 줬으면 한다, 고.
그 후, 내 일상엔 수화기에서 흘러 오는 그가 부르는 멜로디를
음표로 고쳐 악보에 옮기는 작업이 첨가되었다.

그는 본격적으로 음악을 배웠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기초의 기초부터 작곡을 가르치지 않으면 안되는 지라
그보단 이 방법이 빠르다고 생각했다.
잡담으로 시작한 수십분 간, 수화기에선 더듬거리는 멜로디가 흐른다.
시행 착오를 반복하며, 겨우 곡으로서의 형태가 잡혀 간다.



그런 우리들의 관계는 너무나 너무나도 미묘한 것이어서,
4년간 우리를 연결해 준 건 전화 뿐이었다.
단 한번도 직접 얼굴을 맞댄 적은 없다.
서로 TV나 잡지로 그 얼굴을 알곤 있어도 일절 면식이 없다.
그런 사실이 불화설로 이어지는 듯 하지만,
실제 우리는 싸움 한번 한 적이 없다.

왜 만나지 않는 거지.

물어도, 난 대답할 수가 없다.
어느 쪽도 만나잔 말이 나오는 일 없이,
완전히 타이밍을 잃어 버린 듯 하다.



만나지 않아도 난 그를 TV로, 잡지로, 언제건 볼 수가 있었다.
20살이 돼 남자다움을 더한 정돈된 얼굴 윤곽도,
더욱 더 연마되어 온 투명한 가성도 전부 알고 있다.
계속 그의 성장을 보아 왔다.
만나지 않아도, 만날 수 없어도, 난 카이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를 너무나 소중히 생각한다.
그는 음악으로서도 개인적으로도 내게 있어 최상의 파트너이다.
10살의 나이 차를 걱정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 되겠지만,
가식없는 그의 태도가 그 고민을 지워 준다.

…난, 어쩔 수 없을 만치 카이가 사랑스럽다.
그를 위해서라면 뭐라도 해 주고 싶다 생각하고,
그가 행복하면 난 그것만으로도 충만해진다.
비할 순 없지만 음악과 같은 정도로 카이라는 존재는
내 안에서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난, 가족처럼, 남동생처럼, 친구처럼,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을 정도로……


    
                                                                    to be continued…





<역자 후기>

그냥 별 생각 없이 손에 잡았습니다만… 좀 놀라셨습니까.
잠시 손 떼겠다고 해 놓고 결국 또 이렇게 올리고 맙니다.
척수장애는 저 자신, 한번 진지하게 써 보고 싶던 소재라
저로선 처음부터 관심을 가지고 읽어 내려갔던 글입니다.

실은 이 작품, 헤르만 헤세의 <게르트루드>를 읽어 보신
분들이라면 그와 상당히 유사한 것을 발견하셨을 겁니다.
휠체어에 탄 내성적인 젊은 작곡가…
자신의 음악에 고뇌하는 젊은 가수…

그렇다곤 해도, 이 글은 충분히 자체의 오리지널리티를
갖고 독자를 감동시키는 요소를 지녔단 생각을 합니다.
BL물이 이런, 감정과 감정의 플라토닉한 전개만으로도
매력적인 한편이 된다는 걸 보여준 작품이기도 하고요.

아직 이 시리즈 자체는 완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선,
시리즈 첫편인 <멜로디> 하나만 올려 볼 생각입니다.
<멜로디>는 (상)(중)(하) 3편으로 완결입니다.
천천히 느긋하게 기다려 주십시오.  







[번역/시리즈]



                                    멜로디 (中)

               - 櫂(카이) & 大地(다이치) 시리즈 (1) -


                                              
                                               원작 : RURU(후지키 사쿠야)
                                                         cosumo@rc4.so-net.ne.jp
                                                
                                               번역 : BabyAlone
                                                         babyalone@orgio.net
                                                         babyalone@freechal.com




이 소설과 그에 이어지는 부수자료의 권리는
원작자인 후지키 사쿠야 상과 번역자인 BabyAlone에게 있습니다.

원작자와 번역자의 허가를 받지 않은 불펌은
절대 허락할 수 없음을 먼저 밝혀 둡니다.











목요일 밤 9시.
최근 음악 프로그램은 꽤나 스타일이 바뀐 탓에,
게스트와의 토크 시간이 그 반 이상을 차지하는 일도 있다.

그 프로도 그렇게 토크를 중시하는 것 중 하나로,
왠지 쓸데없이 큰 소릴 내서 어거지로 부추키듯 말하는 사회자가 불쾌하고,
그 소란스런 태도가 절대 좋아지질 않는다.

카이가 출연하는 주일 외엔 절대 보지 않는다.
카이가 나오는 프로그램은 전부 TV부터 라디오에 이르기까지,
전부 체크해 두므로 놓치지 않는다.
나로서도 좀 부끄러운 짓인 건 안다.
하지만 전화 이외의 그를 알 소중한 기회인 그것들을 놓칠 순 없었다.
그 날도 물론 하다 만 일을 젖혀 두고 9시 정각에 TV를 틀었다.

첫 게스트는 내가 싫어하는 젊은 신인 아이돌이었다.
코맹맹이 소리와 야무지지 못한 말투와, 그리고
뭣보다 음표를 그대로 읽는 듯한 노래가 싫었다.
난 카이 외엔 평가가 혹하다고 사사오카가 웃은 적이 있지만…
그 의미는 아마도 내 음악의 파장과 카이의 파장이 잘 맞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의 노래는 내게 있어 편안하고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카이가 나왔다. 변함없이 잘생긴 남자다.
신곡의 - 물론 내가 만들었다 - 이미지에 맞춰,
길었던 머리카락을 시원하게 잘라 조금 와일드한 느낌을 준다.
건강하게 탄 옅은 갈색 피부에 센스가 돋보이는 은빛 액세서리가
잘 어울린다.
정돈된 남자다운 얼굴 윤곽은 웃으면 묘하도록 소년처럼 순수하게 보인다.
웃는 얼굴만은 정말 언제까지고 만났을 무렵 그대로다.

사회자가 흔히 하는 보편적인 질문을 몇갠가 던진다.
그는 정중하고 착실하게 거기에 답하고 있다.
그 대답 하나하나에 왠지 얼굴이 느슨해져 버린다.

" 한데 말이죠, "

허물없는 말투로 사회자가 화제를 바꾸었다.
카이도 그 남자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었다.

" 이봐요, 카이 군. 왠지 여자 관련 소문이 적잖아? "

그런 화제를 꺼낼 거라곤 생각지 못했던 걸까,
카이가 일순 망설이는 표정을 드러낸다.

" 그건 어때? 음, 먼젓번 신인 여배우와의 열애 발각! 난리였잖아. "

그래, 기억에 새로운 카이의 열애 발각 소동.
상대는 2개 연하의 막 팔리기 시작한 여배우.
카이에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대.

" 헛소문입니다, 그건. "

카이는 곤란한 듯 웃으면서 말했다.

" 아, 역시? 카이 군은 그런 타입은 아닌 것 같았어∼ "

그래, 본인도 분명, 단 한번 여럿이서 식사하러 갔던 것 뿐이라 했었다.
우연히 둘만 남게 된 적이 있었던 지도 모르지만,
정말이지 주간지들이란 전부터 남에게 폐만 끼치는 존재들이다.

카이는 인기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이제까지 그런 가십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 때마다 이쪽에서 뭔가 묻기 전에, 카이가 먼저 열심히 부정하지만.

" 근데, 정말은 어떤지? 있는 거죠∼, 사귀는 사람. "

" 없습니다. "

" 또, 또. 색남이 잘도 거짓말을--- "

카이가 곤란해 하고 있다.
난 빌어먹을 사회자에게 돌이라도 던져 주고 싶었다.

" 그럼, 좋아하는 사람은? 있는 거죠, 역시? "

카이는 왠지 말문이 막혀 하는 모습이다.

" 아, 역시 있구나∼. 와, 누구죠? 여기서만의 얘기니까, 가르쳐 줘요--- "

그런 말을 해 봤자, 여기서만의 얘기로 끝날 리가 없다.
이 프로그램은 생방송이기 때문에 만약 여기서 카이가 이름을 말해 버리면,
내일 삼류 신문이나 주간지를 요란하게 장식하게 될 것이다.
그래, 이름을 말해 버리면…

카이, 네겐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거야?
그런 얘기, 한번도 들은 적 없는데.
내게도 말할 수 없는 상대라니…

" 이름은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에게 폐가 되니까요.
   하지만 뭐, 있는 건 확실합니다. "

수줍게 웃는 얼굴로 카이가 말했다.
호감도가 확 상승할 듯한, 순수하고 소년처럼 웃는 얼굴.

" 뭐야 뭐야, 그것 뿐? 적어도 좀 더 자세한 걸 들려 줘야--- "

" 좀 봐 주십시오. "

카이가 고개를 든다.
곤란한 듯한 얼굴로 살짝 눈을 내리깔고 있는 모습이,
성인 남자를 느끼게 만든다.
사랑을 하는 남자를 느끼게 만든다…
카이에게 이런 얼굴을 하게 만드는 누군가가 있다니.

" 혹시, 짝사랑입니까? "

" …아, 아마도요. "

" 히익∼, 천하의 이세사키 카이가 짝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니!?
   언제부터죠, 그건. "

" 꽤 오래된 일입니다. 4년 정도 전부터니까요. "

4년 전… 우리가 서로 알게 되었을 무렵이 아닌가?
그 때부터 쭉 카이에게 짝사랑 상대가 있었단 말인가?

어쩐지 믿을 수 없어서… 난, 조금 배신당한 듯한 생각이 들고…
동시에 가슴이 찌릿, 하고 아픔을 호소하는 걸 느꼈다.

" 4년 동안이나! 우와, 굉장히 순정적이잖아! "

" 그런, 깨끗한 게 아닙니다.
   …절대 이루어질 리 없는 생각을 4년 동안이나 품고 있다니,
   어쩔 수 없을 만큼 한심한 남자라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

사회자가 답이 막힌 모양이다.
반문한 카이의 눈동자가 자조적인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 TV 화면을 통해 지금,
전국 몇만이나 되는 카이의 팬들이 카이의 그 표정을 본다고 생각하자,
난 이내 TV를 두드려 부수고 싶은 격심한 감정을 느꼈다.
상처입은 카이를, 자신을 비하하는 카이를 대중의 눈에 드러내는 게
견딜 수 없어서…

" 그, 그런, 절대 이루어 질 수 없는 건, 없지 않을까요? "

" 예, 절대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 아마 일생 말 못할 겁니다.
   말하면, 그 사람 분명 저한테서 떠나버릴 테니까요.
   그럴 바엔, 앞으로 몇년이건 몇십년이건 짝사랑을 하는 편이 낫습니다. "

" 카이 군… "

카이의 안타까움이 전염된 것처럼, 경박한 사회자의 표정도 침통해졌다.
그래, 실제 카이의 괴로움은 화면을 통해서조차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무거워진 분위기를 떨치려는 듯, 카이가 신곡 이야기로 화제를 바꿨고,
몇분 후, 화면엔 열창하는 카이의 모습이 비쳐져 있었다.





그 밤.
왠지 모를 예감은 있었지만, 카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자신이 나온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봤느냐고 물었다.
난 무심코 놓쳐 버렸다고 대답했다.
카이는 <그래요> 하고 중얼거리면서
오늘은 이만 잘게요,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중얼거림은 내가 보지 않았던 것에
안도한 것 같기도 하고 실망한 것 같기도 했다.

그 날부터 한동안, 카이로부터의 연락이 끊어졌다.
서로 알게 되고부터, 전화가 없는 날이 5일 이상 계속된 기억이 없어,
난 만들다 만 카이의 곡을 보면서 흥얼거리는 걸로,
외로움과 마음의 공허를 달래고 있었다.
언제나 걸려 올 뿐 이쪽이 건 적은 없었지만,
오지 않으면 이쪽에서 걸까 하고 생각할 때마다,
바쁜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주눅이 들어,
수화기를 들었다 내려 놨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뭘까.
우리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유조차 알지 못한 채,
우리의 관계가 어딘가 흐트러지기 시작하고 있단 걸 난 느꼈다.
마지막 전화에서, 카이의 <그래요> 하는 중얼거림 만이,
귓전에서 메아리치고 있었다.







일주일 째 되는 밤, 전화가 울렸다.
수화기를 귀에 대자마자, 내 귀에 흘러들어 온 건
카이의 음성으로 나오는 슬픈 음악… 울음소리였다.

" 타, 마키, 씨. 나, 어떡, 하면 좋을, 까요… "

흐느낌에 섞여, 자꾸 끊어지는 작은 음성이 귀에 들린다.

" 카이, 어떻게 된 거야? 침착해, 울면 알아들을 수 없으니까. "

내가 몇번이나 그렇게 말해도, 카이는 그저 울고 있을 뿐이었다…

" 카이, 우리 집에 와. "

걱정되서, 걱정되서, 심지가 굳은 카이가 이런 식으로 울다니
지독히 걱정되서, 난 가만히 있을 수 없어져…

내 그 말에, 카이의 울음소리가 멈춘다.
흐느껴 우는 것 같은 소리가 몇번인가 난 뒤에,

" 아, 안돼요. 갈 수 없어. "

코를 훌쩍거리면서, 카이가 말했다.

" 왜? "

" 하지만, 나, 타마키 씨완 만날 수 없어… "

거절의 말은 쇼크였지만, 것보다 카이 쪽이 걱정돼,
난 연거푸 다음 말을 던졌다.

" 그럼, 내가 카이를 만나러 갈게. 주소, 가르쳐 줄래? "

작게 옷 스치는 소리가 나,
카이가 수화기 저편에서 고개를 젓는 걸 알아차렸다.

" 안돼, 요. 휠체어의 타마키 씨를 오게 만들다니, 못 해요. "

" 그럼, 만나러 와. 부탁이니. "

" 하지만… "

카이가 주저하는 기분도 모르는 건 아니다.
실제, 충동이라곤 하나 그런 말을 한 자신이 스스로도 신기해…
막연히 일생 얼굴을 맞대는 일 따윈 없는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던 상대와
만나려는 것이기 때문에.

하지만 뭔가에 상처입어 눈물 흘리는 카이와… 난 직접 접촉하고 싶었다.
그 눈물을 닦아 주고 싶었다.
누구보다도 뭣보다도 소중한 사람을 더 이상 울리고 싶진 않았다.
기도하는 듯한 기분으로 난 카이의 대답을 기다렸다.

" …주소, 가르쳐 주실 수 있습니까? "





작년 바쁜 틈을 내, 카이는 운전 면허를 취득했다.
일하러 왔다갔다 하는 데는 전속 기사가 붙어 있어
자신이 차를 운전할 기회는 거의 없을 텐데도
왠지 카이는 어떻게든 면허를 갖고 싶다고 매니저에게 고집부려
교습소에 다니고 있었다.
보통 사람보다 꽤나 오래 걸려 면허를 손에 넣은 카이가 산 차는
중형 웨건으로, 주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좁은 차가 싫어서> 라고 카이는 말하지만,
어째서 무리하게 면허를 따 카이에겐 필요없을 웨건을 샀는지,
정확한 이유는 나도 모른다.
다만 페이퍼 드라이버(면허증이 유명무실한 운전자)가 되지 않도록
휴일엔 그걸로 드라이브를 하고 있다고 했다.
진한 녹색의 아름다운 차체를 한번 잡지로 본 적이 있다.

밤의 어둠 속, 카이의 차는 내 맨션 앞에 섰다.
깊디 깊은 녹색은 밤 어둠 속에 파묻혀 있었다.
문이 열리고 그림자가 내렸지만,
가로등 역광 탓에 실루엣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수분 뒤, 현관에서 차임벨이 울렸다.





눈 앞에 카이가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이쪽을 보지 않는 그에게 난 말했다.

" 처음이군. 쭉, 널 만나고 싶었어. "

그는 고개를 들었다.
TV로 보아 익숙한 그 얼굴에 지금은 어쩐지 피로의 색이 진하게 보인다.
그리고, 한참을 운 듯한 눈.

" 타, 타마키 씨…? "

카이가 멍한 얼굴을 하고 날 불렀다.

" 뭐야, 왜 그런 얼굴을 해.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

카이는 휙휙, 소리가 날 정도로 열심히 고개를 저었다.

" 뭐랄까… 놀랐어요. 왜냐면 타마키 씨, 최근 잡지 취잴 받지 않았죠? 
   분명 젤 최근이 벌써 1년 정도 전이잖아요.
   그러니, 내 머릿 속엔 1년 전 타마키 씨로 고정돼 있어서… "

" 나, 그렇게 변했나. "

쓴 웃음을 섞어 한 말에, 카이는 크게 끄덕였다.

" 머리가 자랐고, 좀 야윈 것 같고. 게다, 첨 실물을 만나서… "

" 그건 피차일반이야. "

처음 얼굴을 마주한 우리들의 대화는 굉장히 어색한 것이었다.
전화에선 그렇게 자연스레 얘기할 수 있었건만,
서로 얼굴을 보고 얘기하는 게 부끄럽게 느껴졌다.

" 자, 카이. 거기 앉아. "

난, 카이에게 시선을 뺏기지 않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정도로 실물의 카이는 멋지고 누구나 매료될 만한 매력을 갖고 있었다.

처음엔 고개를 숙인 채던 얼굴을 점차 똑바로 올려 날 응시한다.
그 시선에 사로잡힌다.
어떤 의미의 시선일까.

카이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입을 다문 채, 마치 내 모든 것을 붙들어 매려는 듯한,
강렬하고 깊은 시선을 보내오는 것이다.

" 저, 왜 운 거지? "

자연스럽게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리며 난 말했다.
카이가 수줍게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한다.

" 20살이나 되서 창피해요. 그런 식으로 울다니. "

그런가, 카이가 벌써 20살인가….

만났을 무렵, 그는 아직 고교생이었다.
성장한 카이를 보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아직 어린애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 하지만 저,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자니,
   이제 어떡하면 좋을지 모르게 되 버려서… "

카이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 …옛날, 서로 알게 된 직후, 넌 자주 수화기 저편에서 울고 있었지.
   난 네가 걱정되서 매일 전화가 오는 걸 기다리고 있었어.
   소릴 들으면, 그게 울음소리라도 안심할 수 있었으니까… "

불안정했던, 그 무렵의 카이.
울기만 하던, 어린아이.

" 하지만, 카이는 혼자서 일어섰어. 난 네 상담 상대에서 친구로
   바뀌었고, 4년동안이나 전화로 교제를 계속해 왔지.
    …그런데도 카이, 누구보다도 네게 가깝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난,
   왜 지금 네가 울고 있는지 몰라. 미안. "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카이는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 타마키 씨가 사과하실 일이 아니에요… "

" 하지만 난 카이의 기쁨은 내 기쁨이고, 카이의 괴로움은 내 괴로움이라고
   생각해. 언제건, 그걸 같이 나누고 싶어.
   하지만 지금, 카이는 혼자서 괴로워하고 상처입고 있어.
   그게, 너무 괴로워… "

카이는 양손을 떼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날 보고 있다.
그 눈동자에 떠오른 색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기대. 실망. 환희. 절망.

그런 것들이 스쳐갔다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
눈물로 젖은 그 칠흑의 눈동자를 뒤흔들고 있었다.

" …저, 타마키 씨, 사람을 좋아하게 된 적 있습니까. "

길고 무거운, 숨이 막힐 것 같은 침묵 후, 조용한 음성으로 카이가 말했다.

" 좋아하고 좋아해서, 어쩔 수 없는데, 하지만 그걸 털어 놓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아서, 이대로라면 질식해 죽어 버릴 거라고,
   생각한 적 없습니까… "

" …카이… "

그 프로그램에서 TV 너머로 전해 온 것의 몇배의 고뇌와
어둠과 같은 깊은 절망이, 카이를 속박하고 있음을 본 듯한 기분이었다.

" 카이, 내게도 이야기할 수 없어? 넌 대체 누굴 사랑하길래 그렇게
  괴로워 하는 거야? 지금의 널 보고 있으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이대론, 넌 그 사랑에 무너져 버릴 거야. 내가 소중하게 소중하게
  지켜 보고 길러 온 이세사키 카이가, 망가져 버릴 거라구! "

" 전 이미, 벌써, 망가지고 있어요… "

중얼거린 카이는,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한걸음, 또 한걸음 내게 접근해 왔다.

" 저, 정말로 조금도 움직일 수 없어요? "

그리고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무릎을 살짝 건드리며 그렇게 묻는다.

" 응, 유감이지만. "

카이는 상냥하게 내 움직이지 못하는 다리에 손을 대,
애무하듯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 타마키 씬 역시 대단해. 내 몇배나 몇십배나 괴로운 생각을 안고
   살아 왔으면서, 강함도 상냥함도 갖고 있어…. 그런데도 난,
   자유롭게 움직일 수도 있고 노래할 수도 있는데도,
   항상, 언제나, 작은 일로 괴로워 하고 있어. "

" 괴로운 일 따위, 없었어. "

난 조심스럽게 손이 미치는 위치에 있는 카이의 머리카락을 만졌다.
부드럽고 매끄러운 감촉이 느껴지는 그곳에서, 카이의 냄새가 났다.

" 내겐 음악이 있었어. 같이 걸어가는 동료도 있었고.
   장애는 확실히 핸디캡인지도 모르지만, 내게 음악을 빼앗을 순 없어. "

" …음악보다 소중한 건 없는 건가요? "

" 없어. "

단언한 날, 카이는 약간 눈부신 듯 봤고…
올려 본 그 눈동자에서 투명한 물기가 느껴졌다.

" 나도 노래가 좋아요. 노래하는 게 뭣보다 좋아.
   하지만… 하지만 내겐, 달리 더욱 소중한 게 생겼어요.
   그것을 잃을 정도라면,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될 정도로.
   만약 그것이 손에 들어 온다면, 전부를 잃어도 후회하지 않아… "

카이는 내 무릎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진동시키면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렇게, 오랜 동안 우리는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카이의 아픔이 눈물과 함께 스며들어 온다.
숨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울 정도로, 그것은 날 고문하고 있었다.

" 카이… "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난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 아무래도 얘기할 수 없어? "

" …아무, 래도요. "

너무 울어 떨리는 음성으로 답이 돌아 온다.

" 저, 카이, 전화론 내게 뭐든지 얘기해 줬었지.
   난, 너와 괴로움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얘기해 줘.
   ---지금부터, 네 핸드폰에 전화를 걸테니까. "

" 핸드폰에…? "

" 아아. 전화 너머로, 얘기해 볼래? 지금껏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

난 휠체어를 눌러, 방의 전화를 들었다.
지금까지 한번도 걸었던 적은 없었지만,
카이의 핸드폰 번호는 주소록의 젤 위에 있어서 간단하게 찾아낼 수 있었다.
천천히 확인하며, 그것을 누른다.

곧 뒤에서 발신음이 들렸다.
그 멜로디에 조금 놀랐다.
내가 처음으로 카이를 위해 만든 곡.
오래된, 벌써 3년도 전의 곡이었지만,
서로에게 있어 다른 뭣보다 특별한 곡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 …예. "

발신음이 그치자, 오른쪽 귀에선 수화기 너머의 소리가,
왼쪽 귀에선 육성이 들려 왔다.
그건, 너무나 신기한 감각이었다.

" 카이, 말해 줘. 뭐가 널 괴롭히고 있지? "

" …사람을 좋아하게 됐어요. 첨엔 깨닫지 못했죠, 그게 사랑이란 걸.
   하지만 깨닫고 나선, 어쩔 수 없게 되 버렸어요.
   좋아하고 좋아해서, 괴로워요… "

카이의 한숨이 떨리고 있다.
그것은 마치 죄를 고백하고 참회하고 있는 듯한, 가냘프고 연약한 한숨…

" 근데도 쭉, 자신의 마음을 모르는 척 도망쳐 왔어요.
   하지만 이전에 무심코 TV에서 털어놓고 말았어.
   그러자 사무소 사장이나 매니저나, 기자들에게 추궁당해서… "

" 응, 알고 있어. 미안, 요전번엔 거짓말했어. 나도 그 프로, 봤어. "

카이가 숨을 삼키는 걸 깨달았다.
다시 침묵이 흐른다.

" 타마키 씨, 무슨 생각 했어요?
   그걸 보고, 내가 그런 말을 하는 걸 듣고, 무슨 생각을 했죠? "

" 무슨… 이라니, 네가 괴로워 보여서, 보고 있을 수가 없었어. "

" …그래요… "

그 <그래요>는, 어디선가 들었던 적이 있었다.
안도와 실망이 섞인 그 중얼거림은
지금도 내 귓전에 또렷한 언젠가의 중얼거림이었다.

" 왜, 상대에게 그 마음을 전할 수 없지? 예를 들어 어떤 장애가 있다 해도,
   네가 그렇게까지 생각하는 상대라면, 단념해선 안 돼.
   게다가 그렇게까지 깊이 사랑받고, 맘이 흔들리지 않을 리 없어. "

" 단념하지 않는다든가, 그런 게 아녜요.
   단념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고 있는 걸. "

" 그럼, 시작하면 돼. 지금 이대로가 견딜 수 없다면,
   거기서 나아갈 수밖에 길이 없잖아? "

" 나가면, 이제 돌이킬 수 없어요.
   그 앞에 있는 걸 상상할 수 있으니까, 난 무서워서 나갈 수 없어! "

카이의 외침. 비통한 절규.
가슴이 부풀어 터질 것처럼 된다.
아프다.
여기저기가, 마치 찢어져 버린 것처럼 얼얼하게 아픔을 호소한다.

" 지금은 아직, 그 사람의 마음은 내 쪽을 향하고 있어요.
   내가 바라는 형태는 아니지만, 그 마음을 난 손에 넣은 거에요.
   하지만 전부 털어 놔 버리면, 아마 난 그 마음까지도 잃고 말 거야.
   그렇게 되면 이젠 살아갈 자신조차 가질 수 없어요.
   분명 두번 다시, 노래할 수 없게 될 거야… "

" 하지만 카이, 이대로는 아무 것도 안돼. 부수는 걸 두려워하면 안돼.
   예를 들어 망가져 버렸다 해도, 다시 처음부터 다시 만들면 되잖아.
   시간은 얼마든지 있어. 네가 원한다면, 난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해. "

" 아무 것두 모르고 있으면서. 타마키 씬 몰라…! "

흐느낌과 길고 긴 침묵 후, 그 말을 토해냈다.
카이는 먼저보다 한층 더 가냘프고 알아 듣기조차 힘든 연약한 음성으로,
살짝 죄를 고백했다.

" 죄송해요, 타마키 씨. 나, 당신을 좋아해요……. "

그건 수화기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육성은 너무나 작아, 내 귀엔 닿지 않았다.
직접 내 귀에 흘러 들어 온 그 대사를, 그 의미를, 이해하는 데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좋아…

날?
카이, 가?

" 죄송해요, 죄송해요… "

왜 사과하는 거야, 카이.
모르겠어.
미안. 뭔가 말해야 하는데, 소리가 나오질 않아…

난 천천히,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to be continued…
       




<역자 후기>

멜을 읽어 보니 <천적> 시리즈완 퍽 다르군요, 란 감상들입니다.
예, 정말 그렇죠. <천적> 시리즈 때도  말씀드린 기억이 나는데…
RURU(후지키 사쿠야) 님의 글은 작품마다 그 문체가 달라집니다.
코믹과 시리어스, 하드와 소프트, 해피와 새드를 전부 소화하는…

그래도 굳이 말씀드리면 저 자신, 이 작가의 순애물이 좋습니다.
시로이시 군과 잇페이 선생의 알콩달콩 아기자기한 말싸움보다도,
카이 군과 타마키 상의 조금은 무겁고 애틋한 세리프가 좋습니다.
번역 자체는 조금 재미가 덜할 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멜로디>를 끝낸 다음, 번역할 글은 연하공은 아닐 듯 싶기도.
앙케트 멜들을 보면서 히죽거리며 웃고 있는 BabyAlone입니다.
훗, 역시 이분들의 취향이란 결코 범상한 게 아니었어… 하며.
그 결과는 <멜로디>를 완결지은 후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BabyAlone







[번역/시리즈]



                                    멜로디 (下)

               - 櫂(카이) & 大地(다이치) 시리즈 (1) -


                                              
                                        원작 : RURU(후지키 사쿠야)
                                                  cosumo@rc4.so-net.ne.jp
                                                
                                        번역 : BabyAlone
                                                  babyalone@orgio.net
                                                  babyalone@freechal.com




이 소설과 그에 이어지는 부수자료의 권리는
원작자인 후지키 사쿠야 상과 번역자인 BabyAlone에게 있습니다.

원작자와 번역자의 허가를 받지 않은 불펌은
절대 허락할 수 없음을 먼저 밝혀 둡니다.










< 어떻게 하면 음악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

그런 편지가 날아 든 게, 벌써 4년도 전의 일.
편지를 보낸 이는 누구나 동경하고 부러워 하는 톱 아이돌 스타.
10살이나 나이 차이가 나는, 울보에 귀여운 내 친구.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한 그와 30세를 맞이해 아저씨가 돼 버린 난,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까지나 친구였다.
함께 음악을 만들고 함께 인생을 걷는, 둘도 없는 파트너였다.

" 사랑해요. "

툭 하니, 그가 말했다.
마음을 놓아 버린 듯한 소리였다.
연결이 끊어진 핸드폰을 꼭 쥐고 놓지 않는다.

" 어째서…… "

간신히 내 입을 비집고 나온 건, 그런 잔혹한 말이었다.
어째선지 물어 본들 소용없건만.
난 어떤 대답을 기대하고 있는 걸까.

지금까지 들어 온 모든 것이, 그의 미칠 듯한 애정의 모든 것이,
날 향한 것임을 알게 되자마자 그의 괴로움과 아픔은 그만의 것이 아닌,
내 것도 되었다.
나누는 게 아니라 같은 것을 공유한다.
내 것이 되자마자, 난 더 이상 냉정하게 있을 수 없었다.
다만… 다만, 내가 받고 있는 충격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그걸 알 수가 없어 말조차 꺼낼 수 없다.

" 기분 나쁘죠. 남잔데, 나… "

카이가 말했다. 자조적인 웃음을 띄우고.
본 적이 없는, TV나 잡지에선 결코 보이지 않는,
상처에 지친 성인 남자의 얼굴.

" 그렇지 않아. "

그것 만큼은 단언할 수 있었다.
등을 돌린 채, 마치 아직도 전화 너머로 얘기하는 것처럼,
우리들은 대화를 했다.

" 미안, 조금 혼란스러워서….
   하지만 기분 나쁘다든지,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건 아냐… "

왜냐면 사사오카는, 나의 또 하나의 파트너, 사사오카는
게이임을 공언하고 있고 그의 연인도 알고 있다.
클라리넷 연주자인 연인과 사사오카는 잘 어울리고,
솔직히 멋진 커플이라고 생각한다.
원래부터 동성애에 편견은 없었다.
내가 속한 세계에선, 극히 자연스레 존재하는 세계였기 때문에.

달라. 다르다.
난, 남자인 카이에게서 고백을 받은 것에 충격받은 게 아니다.
그것이, 카이였기 때문에.
다른 누구도 아닌.
날 좋아한다, 사랑한다고 그 입으로 말했던 게, 이세사키 카이였기 때문에.

" 카이, 난… "

침착하게 자신의 마음을 되짚어 보자 내 안에 남은 답은 단지 하나였다.
그리고 그걸 그에게 전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 난, 너의 애정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해. "

" ……! "

카이가 뭔가를 외쳤다.
소리가 되지 않는 소리로.

" 그보다 왜 네가 그렇게까지 깊은 생각에 빠져 버렸는지를 모르겠어.
   좀 더 빨리 털어 놨으면 좋았을 걸. 그토록 괴로워하기 전에. "

" 하지만, 전 남잔걸요! "

" 남자면서 남자를 좋아하게 돼 버린 것에, 죄의식을 느꼈어?
   추잡하다고 생각했어? "

" 그런 게 아니에요! "

" …내가 떠나 가는 게 무서웠어? "

카이는 울먹이는 소리로 코를 훌쩍이면서 열심히 대답한다.

" 당신을, 더럽혀 버린 듯한 생각이 들어서….
   나, 처음 타마키 씨를 잡지로 보고 그 인생을 알았을 때부터
   왠지 아름다운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어.
   음악에 감싸인 타마키 씨는, 내 앞에서 반짝이고 있었죠.
   계속, 계속, 동경하고 있었어… 그 때부터 아마 좋아했던 거에요.
   하지만 당신에겐 음악이 있어. 아무도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없을 정도로
   당신의 마음 속은 그걸로 가득해서, 사랑이라든지 연애라든지, 그런 건
   당신에게 너무나 시시한 걸 거라 생각해서….
   당신을 좋아하는 게 내겐 죽 괴로웠어요.
   내 그런 감정이, 당신을 더럽히고 있는 것 같아서… "

" …바보구나, 카이. "

넌 바보야.
그렇게나 괴로운 사랑을, 그저 혼자서 4년동안이나 계속 해 왔다니.
바보고, 어찌할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러워.

" 연애나 사랑이 시시한 것일 리가 없어.
   오히려 그게 없으면, 음악은 존재하지 않아.
   내가 음악의 길로 나가게 된 계기는 은사의 존재지만,
   젊은 여자였던 그 은사에 대해, 난 존경이나 동경이 섞인 감정을
   갖고 있었어. 그게 내 첫사랑이었다고 생각해.
   세상에 알려진 계기가 된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도,
   그 오케스트라를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만든 곡이야.
   카이에게 준 곡도 물론 그래.
   난 널 사랑하고 있으니까, 널 위해 곡을 만들고 있는 거야. "

" 하지만… "

난 휠체어를 180도 회전시켜, 카이를 봤다.
카이는 아직 핸드폰을 쥔 채, 고개를 숙이고 떨고 있었다.

" 그건, 나와 같은 애정이 아녜요… "

" 응, 그럴 지도 몰라.
   난, 카이를 그런 눈으로… 연애 대상으로 본 적은 한번도 없었지만,
   카이의 마음을 안 지금, 나도 그런 식으로 카이를 보는 건
   그처럼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아. "

" 동정, 이에요. "

" 그렇지 않아. "

카이가 알아 줬으면, 얼굴을 들어 줬으면.
난 흘러 넘치는 말을 그대로 그에게 전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금 말을 아껴선 안된다. 거기 있는 그에게 전부를 전하지 않으면.

" 너에 대한 애정을 구별할 수 없어.
   남동생처럼, 가족처럼, 친구처럼, 널 사랑스럽다고 생각해 왔어.
   거기에 연인이란 말이 들어가도, 조금도 위화감은 없을 거야.
   난 아마… 널 사랑하고 있는 거야. 모든 의미로 구별없이. "

" …거짓말이야. "

" 믿어 주지 않는 건가? "

카이는 약하게 고개를 저었다.
믿고 싶지만 믿을 수 없다는 딜레마가 그를 덮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 난 말이지, 카이. 사랑을 하는 건, 먼 옛날 단념했던 사람이야. "

장애를 갖고 태어나 자신이 장애자라는 걸 인식한 그 때부터.

" 연애나 사랑은 언제나 내게서 아주 먼 곳에 있었어.
   가까워지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을 정도로, 먼 곳에.
   내 모든 걸 받아들여 나와 함께 걸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엔 없다고 언제부턴가 생각하고 있었어.
   그래서, 널 사랑한단 걸 인정하지 않고 있던 걸지도 몰라… "

아마, 훨씬 전부터 난 카이를 사랑하고 있었다.
의미 따위, 물을 필요도 없을 정도로.

" 하지만, 카이. 난 너의 애정을 받아들여선 안돼, 정말은. "

카이가 그 말에,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눈물에 젖은 눈동자가 일순 머뭇거린 뒤, 날 응시한다.

" 넌 언젠가 절대로 후회할 거야. 남자이고 장애자인 날 사랑한 걸. "

" 그럴 리 없어요! "

" 고마워. "

" 고맙단 말 따위 하지 말아요! "

카이가 일어서서 내게 손을 뻗는다.

닿아선 안된다고. 거절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마음의 경고에 난 따르지 않았다.
그의 손을 잡았다.
끌어 당겨지고, 안아 올려진다.
그는 날 유리 세공을 다루듯, 정중하게 소파에 앉혔다.
그리고 자신은, 내 앞에 무릎을 꿇는다.
진지한 눈동자가 날 올려다 본다.

" 후회 따윈, 하지 않아. 당신을 배반하면, 죽여도 좋아요.
   절대 떠나지 않을 테니까. "

" …무서워. "

난 무서웠다.
무엇이?
모든 것이.

그의 미칠 듯한 애정.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신.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
동성이란 사실.
나이 차이.
미래가 있는 그와, 장애자인 자신.
언젠가 자신의 존재가 그를 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 아, 역시 아름답군요. 타마키 씨. "

가만히 서로 응시하다가 수줍은 듯 카이가 미소지으며 말한다.
그 웃는 얼굴.
가슴이 아파온다.

이상하다.
저쪽이 말할 때까지, 이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니.
모르는 척 할 수 있었다니.

지금은 벌써 내쪽이 몇배나 카이에게 사로잡혀 있었다.

" …괴로웠어요… "

짜내듯 중얼거린 후, 카이는 그 가슴에 날 안았다.
카이의 냄새. 전화로는 몰랐던 것.
이번엔 내가 괴로워 할 차롄지도 모른다.
그의 팔 안에서 행복에 취해 있으면서도,
어딘가 괴로운 상념이 날 붙들고 있었다.

젊은 그는 앞날을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피어나는 정열에, 그대로를 맡겨 버리는 게 용납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멜로디가 들려 왔다.
날 꼭 끌어 안은 채, 그 귓전에 대고 카이가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건 카이가 만들고 있는 곡이었다.

멜로디가 흐른다.
두사람의 시간을 다정하게 채색하는 멜로디가.
나의 두려움마저 지워 흘려 보내는 우리들의 멜로디.

" 당신에게 주고 싶어서 만들었어요. "

수줍은 목소리로 연인이 말했다.
난 살짝 그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그 가슴에서 울었다.
달콤함과 씁쓸함을 포함한 그 멜로디가 귀에 기분좋게 흘러든다.
괜찮다면, 언제까지고 듣고 싶다.
지금이 영원하길 빌고 싶었다.

사랑해, 카이…….
널 지킨다고 맹세할게.
이제 괴로운 생각은 하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난, 모든 것과 싸우겠어.

네가 준, 멜로디.
그 멜로디가 언제까지나 울리도록 하기 위해서…



                                                                                                  END.  
    




<작가 후기>

이상해, 이상해,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중편을 써 버렸습니다.
왜냐면, 이상한 걸요. 확실히 첨엔 가벼운 예능물을 쓰자는 거였는데(^^;)
점점 주체하지 못해, 길어지고, 끝나질 않고…
뭐야, 당신들은 러브러브 해피로는 되고 싶지 않은가!? 하고 외치면서
키보드를 두드렸습니다(쓴 웃음).

결국, 슬픈 이야기가 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대화와 주로 타마키의 심정만으로 이렇게나 줄줄 써 버려
읽는 분들은 상당히 우울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죄송합니다, 시간이 있었다면 다시 쓰고 싶었어요.
이건 옴니버스론 적당치 않은 작품이군요.

3편을 쓰는 중 너무도 슬픈 일이 있어 해피엔드로조차 할 수 없었다는…
그러나, 새로운 시도였단 생각은 듭니다.
정말은 이런 식으로 죽 감정 표현을 쓰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러나 동시에 쓰는 것이 토하고 싶을 정도로 달콤한 작품이어서
그 반동이 굉장했던 기분이(웃음).

이 두사람이 이후 어떻게 될지…
쓰는 건, 마음에 여유가 있는 때가 아니면 안 될 듯 합니다.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할 것 같아서요(^^;).
깊은 생각 없이 장애자를 그리고 만 것도 반성하고 있습니다.
음악도요. 지식이 없는 주제에 적당히 써 버리고 말았습니다.

너그러이 봐 주십시오. m(_ _)m
지켜 봐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친 탓에 뭔가 감상을 주시면 기쁠 겁니다. 비평도 부탁드립니다.
하아, 정말로 쓰고 있는 제가 가장 괴로웠어요, 카이와 타마키……

P.S
이 작품 <멜로디>는 RURU님의 사이트 <미야코와수레> 옴니버스
제4회 <전화>를 주제로 씌어진 글입니다.



<역자 후기>

<전학생>은 그렇다 쳐, 대관절 <KID EGO>는 어떻게 된 거냐!!!
하시는데 저도 좀 심한 것 같단 생각이…(비굴 모드입니다, 네).
실은 한편을 완성했었는데 맘에 안 들어, 죄다 지워 버렸습니다.
하긴 <사일런트 나이트>가 기적에 가깝게 빨리 완성했던 것이죠.

왜 이런가, 시험삼아 각각 다른 소재의 소설 세개의 도입부를
써 본 결과, 당분간 창작 타임은 아니란 결론이 나왔습니다만.
번역도 별 매끄럽진 않겠지만 예, 지금은 번역 시즌인 듯(^^).
재미없는 창작보단 어차피 번역물이 낫지 않으신지요?(뻔뻔)

언젠가 다시 찾아 뵐 카이 군과 타마키 상은 이제 일본에선
마음 뿐 아니라 몸까지 완전히 하나인(^^) 사실을 알립니다.
미처 시리즈가 완결나잖은 상태라 당분간은 미뤄 둡니다만…
차기 번역물은 아마도 <LOVE and HATE>가 될 거란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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