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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yAlone
Happy Weekend

[창작/단편]



                        
                            Happy Weekend

                          - 12345 리퀘스트 -

                                              

                                            Presented by BabyAlone    
                                            babyalone@orgio.net
                                            


                            
                                      




" 김현석 인생에 하등 도움 안되는 인간! "

라고 같이 술 마신 놈을 탓해 봐도 이미 소용없는 일이다.
어제 실연당했다며 징징거리고 전화한 놈 위로차
신촌에서 진탕 술을 마셨었다.
숙취로 아직도 머리가 띵하다.
  ……젠장.

면바지에 다리를 구겨 넣고 티셔츠 위에 니트를 걸친다.
팔을 집어넣고 머리까지… 우쒸,  뒤집어 입었잖아!

너무나 당연히, 지각이다. 지금 벌써 12시 40분인 걸.
약속시간은 11시. 지금부터 출발하면 무려 두시간을 기다리게 한 셈이다.
약속장소까지 가는 시간을 포함해서.

이런 때 지완이 녀석은 어찌하여 핸드폰을 받지 않냔 말이다!
틀림없이 갖고 나가지 않은 게 분명하다.
설상가상 내 핸드폰은 충전이 안돼 있고 기숙사 전화는 고장났다.

사실 녀석을 만나기 전까지 난 시간관념이 정말 없었다.
자랑스런 대한의 후예로서
'코리언 타임'을 열심히 지키는 건전한 젊은이일 따름이었는데…….
한데 녀석은 정말 시끄러웠다,
한번 지각할 때마다 쏟아지는 저 엄청난 원망의 눈길…
한겨울 빙판처럼 얼어서는 좀처럼 풀리지 않을.

에, 지완이라 함은 당근 내 귀여운 '그', 즉 연인의 이름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남자끼리 무슨…' 이라며 고개를 젓는 사람이 없는 줄로 안다.
이쪽이 정상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음, 좋은 녀석이다.
얼굴과 몸매도 당연히 한 미끈하지만,
똑똑하고 성실하고 예의도 바르고 착하고 귀엽고… 암튼 다 좋다.
나한텐 그렇게 보인다. 아니, 그렇게 안 보여도 좋다. 그런데…….

" 대체 이게 몇번째얏! "

귀에 선하다, 녀석이 던질 말.
그리고 녀석 주위에 형성될 시베리아 한랭전선도.
으윽, 상상조차 두렵다.

아니, 이럴 때가 아냐. 서두르지 않으면.
나는 정신나간 사람처럼 문을 잠그고 기숙사를 뛰쳐나갔다.

횡단보도 신호등은 건너기 바로 직전마다 빨간 불로 바뀐다.
미치겠다. 으아으아…….

약속장소는 롯데월드 앞.
녀석과 우리 집 정확히 중간 지점에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녀석은 정말 오랜만에 놀이기구를 타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싶다고 했다.
애냐, 정말… 하고 생각했지만, 그 예쁜 눈으로 날 쳐다보며 말하면
그런 말은 나오려다도 들어간단 말이지.

다음 주면 화이트 데이.
미리 축하하는 의미에서 잡은 약속이다.
날씨는 벌써 완연한 봄.
그러잖아도 지난겨울도 정말이지 유례없이 따뜻했단 기억이 난다.
봄도 빨리 온 듯.
겨우 목적한 건물 앞에 다다라 난, 숨을 몰아쉬며 앞을 봤다.

지완이 있다. 찬바람 쌩쌩…….
반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앞을 무표정하게 응시하고 있는 녀석을 보자
오싹 소름이 돋았다.
속쌍꺼풀이 가늘게 진 눈은 길쭉하니 날카로운데
그 눈이 어딘가를 빤히 응시하는 모습에서 상당한 위압감이 느껴진다.
2시간을 늦다니 대체 이 낙관을 어찌 극복하면 좋단 말인가! 오, 갓!!!

할 수 없다. 그냥 나가야 한다. 잔말 말고 사과하는 게 최고다.
게걸음으로 다가갔다.

" 저기이……. "

녀석이 이쪽을 본다.
등뒤로 싸늘한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한데 왜 식은 땀은 흘러내리는지…….

" 지완아……. "

나는 실실 민망한 웃음을 흘리면서 녀석에게 다가간다.

" ……. "

녀석은 입술을 약간 동그랗게 만들며 가만히 나를 본다.
정식으로 화난 듯한 표정은 눈꼽만큼도 묻어 있지 않은데
그게 두배로 무섭다.

" 하아……. "

" ……해 봐. "

" 헤……? "

" 할 말 해 보라고. "

" 헤……. "

문득, 신변의 위협을 느꼈다.

" 저기… 미안……. 그러니까 늦잠……. "

" 서인원. "

" 헤……? "

지완은 여전히 틈이라곤 손톱 끝의 때만큼도 비치지 않는 태도와
심드렁한 말투로 내 이름을 불렀다.

" 뭐…뭔데? "

" 점심 사줘. "

" 헤……. "

멍하게 입에서 이도 저도 아닌 소리가 흘러나오는 날,
그제서야 똑바로 응시하더니 다시 한번 말한다.

" 배고파. "

" 아아, 물론이지! 물론이지! 뭐 먹고 싶어? 뭐 사줄까? 흐흐… 말만……. "

" 스테이크. 고기 썰고 싶다. 그리고……, "

여전히 심드렁한 투. 으음… 그 정도야…….

" 플레이 스테이션 투가 나왔더라. "

녀석은 게임 매니아다.
그것도 RPG, 전략 시뮬, 어드벤처,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디아블로나 스타크를 가볍게 즐기는 정도가 한계인 나와는 다르다.
아마추어면서 래더 300위 안에 들 정도니까.
PC 게임만 즐기는 것도 아니다.
저 먼 옛날의 겜보이부터 시작하여 세가 새턴에 플레이 스테이션까지
전부 구비하고 있는 게임기기 매니아이기도 하다.

" 어, 어, 사줄게. "

후우… 새로 나온 거면 가격이 상당히 셀텐데……. 20만원은 할 텐데…….
하긴 점심으로 단죄될 성질이 아니니까.
그리고 플레이 스테이션이라면 사 준 담에
나도 슬쩍 슬쩍 빌릴 수 있을 테니. 조아조아.

" 그래. 사야겠다고 별렀는데 좀 빠듯하더라.
   과외를 두탕 뛰는 너야 괜찮겠지? "

" 하하……. 껌이쥐……. "

통장 잔고를 체크해 봐야겠다…….

" 그리고, "

하아……?

"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왔으니까 그래도 이것저것 타 봐야 하잖겠어? "

" 어, 그렇지…… 하하…… 내가 낼게……. "

" 영화도 봐 둔 게 있었는데. "

" 어, 보자. 보자. "

그 때서야 녀석이 약간 표정을 푼다.
음, 가만있어 보자…….
스테이크 못해도 2만원 x 2 = 4만원에 플레이 스테이션 20만원에
영화 6천원 x 2 = 1만2천원에 그럼 도합이 25만 2천원.
으음, 아직은 할만…….

" 저녁은 음…… 술로 하지 뭐. 물론 술값도 니가 계산하는 거지? "

헉… 녀석은 술이 엄청 세다.
소주로 치면 앉은자리에서 2병은 물마시듯 들이킨다.
게다가 안주는 좀 많이 먹는가.

" 아, 안주는……? "

" 당근 니가 내야지. "

녀석은 뭐 그런 걸 묻냐는 투였다.

" 이왕 먹는 거 라운지에서 마시자. 그리고 모처럼 호텔에서 하룻밤, 어때? "

" 호텔……? 야, 너, 부모님……. "

" 하루 외박 정도야 뭐. 그게 아니어도 온천 가셨어.
   오늘 누나가 친구 불러서 잘 거라고 해서 그러라 그랬지.
   나도 안 들어 올 거라고. "

" ……. "

" 느지막이 일어나서 아점을 먹자. 물론 돈은 네가…… "

" 지완아. "

조용히 불렀다.

" 아? "

똑바로 쳐다보는 그를 보는 것이 괴로워 시선을 돌리고 나는 말했다.

" 그간 함께 한 시간 정말 즐거웠다. 행복하길 빈다. 안녕. "

천천히 돌아섰다. 그리고.
침묵이 흘렀다. 잠시.

" 하하하하! "

축 늘어져 걸어가는 내 뒤에서 상쾌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원망이 담긴 눈을 하고 돌아보니.

지완은, 허리를 꺾은 자세로, 웃고 있었다.

" 으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으하하하……. "

난 한숨을 쉬었다. 반은 지쳐서, 반은 안심의 의미로.
그런 날 보면서 녀석은 키득거리는 웃음을 간신히 누르고 있는 듯한 말투로
덧붙인다.

" 롯데월드부터는 둘이서 계산하자. 됐어? "

" 헤…… 알았어. "

갑자기 밝아진 내 얼굴을 보며 한심하단 표정을 짓는 지완.

" 정말 단순 빵이군. "

" 언제는 그래서 좋다며. "

" 이건 그냥 단순의 경지를 넘었잖아. 띨해 뵌다. "

" ……. "

반박하려다가 지금의 내 처지를 깨닫고 참았다.
대신 다시 한번 사과한다.

" 자꾸 늦어서 미안해. "

실은 굉장히 화가 났을 것임에 분명.
그냥 늦는 것도 싫어하는 사람을 2시간이나 기다리게 했으니.

" 뭐, 핸드폰을 잊고 나온 나도 잘못이니까.
   건 그렇고 너무 미안해 하지 마. "

" 응……. "

감동이다.

" 나도 나온 지 얼마 안됐어. "

" ……? "

" 어제 술 취해서 나한테 전화한 거 기억 나냐?
   옆에서 누나가 들을까 봐 조마조마해서 혼났다.
   그 인간 그러잖아도 요즘 우리 관계를 의심하고 있는 눈치던데.
   여편네 취미 알잖냐."

" ……. "

" 네가 어제 술을 마셨으니
   오늘 제시간에 곱게 나올 리가 없을 거라 생각했어. "

" ……. "

전화한 건…… 기억에 없다. 나 그렇게 마셨나.

" 그럼, 기다린 거 아니었……. "

" 거의 안 기다렸지. "

" ……. "

" 역시 넌 놀리는 재미가 있어. "

" ……. "

난 따스한 한낮의 공기를 폐 깊숙이 들이마셨다가 크게 내보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가 뜨고, 천천히 누르듯이 말했다.

" 지완아. "

" 응(^-^). "

" 그간 고마웠다. 행복해라. 안녕. "

고개를 정중히 숙이고 돌아서려던 순간.
녀석이 내 어깨를 붙들었다.

" ……?! "

어깨를 붙들린 것도 느끼지 못할 만큼 짧은 순간,
내 입술에 녀석의 그것이 닿았다.
깜짝 놀라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리는 내 입술을 혀로 한번 슬쩍 핥더니
물러난다.
싱긋 웃는다.

" 화, 안 났지? "

그리고 살짝. 윙크.

겨우 정신이 들어서 주변을 돌아봤다.
건물 가장자리 그늘에 서 있었고 실로 한순간의 일이라
아무도 보지는 못한 듯 싶다.

" ……. "

난 다시금 한숨을 쉬었다.
이제까지 중 가장 깊이.

" ……지완아. "

" (갸우뚱) 응? "

" 예정 바꾸자. "

" (다시 한번 갸우뚱) 어떻게? "

" 롯데월드는 내일. 지금 당장 호텔이다. "

" 어이…! 야!!! "

녀석은 내 손에 붙들려 질질 끌려가면서 낮게 소리쳤다.

" 나 배고파 죽겠단 말야! 야, 야! 서인원!!! "

푸른 하늘 아래 살짝 오후의 햇살을 담은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의 온기를 전신에 느끼며, 우리의 달콤한 주말은 시작되었다.



                                                                                      END.




신청자 : tohye님(12345)
리퀘스트 : 친구 사이. 소프트한 내용. 배경은 휴일 낮 놀이공원

예, 고쳐야 하는 거 아는데ㅡ 것도 귀찮아서.
상쾌하게 한시간 반 동안에 끝내 버렸습니다.

엄밀하겐 놀이공원이 배경이랄 수가 없지만-.
…이해해 주십시오. 안 가 본 지 몇년입니다.

tohye님, 다른 바빌론 회원님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바빌론이 계속 건재하는 건 모두 여러분 덕분입니다.

P.S
오래도록 두기엔 창피한 글이라 며칠 후 내립니다.

* BabyAlone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4-08-23 01:45)

じみん   2004/09/17

오래 두기에 안창피해 보이는 글인걸요^^;;

세잎클로버   2004/12/29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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