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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yAlone
나는 거기에 있었다

[Jaywalk님 졸업 축하 단편]



                        나는 거기에 있었다


                                          
                                         Presented by BabyAlone
                                          
                                    



이 글은 제이워크 님의 졸업과 입학, 그리고 지금은 지나간 1월 1일 생일을
다시 한번 축하하는 의미에서 쓴 것입니다.





『 사랑은 때때로 갑작스럽게 찾아 온다. 』

                                                





나는 거기에 있었다.
녀석도 거기에 있었다.

압구정동 - 한 영화관 앞에 빙 둘러 배치되어 있는 나무벤치.

나는 그 중 하나에 자리잡고 앉아 있었다.
녀석은 다른 하나에 자리잡고 앉아 있었다.

친구 놈은 오지 않고 있었다.
놈의 핸드폰은 불통이었다.

약속시간이 지난 지 30분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나는 조금씩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녀석도 초조해지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녀석은 벗어서 무릎 위에 놔 둔 카키색 배낭 앞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냈다.

혹시 예상치 못했던 방향에서 친구 놈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두리번거리고 있던 나의 시야에 녀석이 방금 꺼내 든 담배갑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가장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담배인 <THIS>에서 꺼낸 장초에 불을 붙이고
녀석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받아들이듯 가능한 한 깊게 빨아 들이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퍽이나 인상적이어서 나는 들키지 않을 정도의 곁눈질로
녀석을 지켜 보았다.
맛있게, 그리고 깊숙이 연기를 빨아들이고 있는 녀석을.

연기가 하늘로 올라간다.
…끝없이 맑고 푸른 무한의 공간으로.





50분이 지났다.

친구 놈은 오지 않았다.
놈의 핸드폰은 여전히 불통이었다.
더 기다려 봤자 오지 않을 거라고 깨달았다.

조금 있으면 이미 티켓을 끊어논 영화가 시작할 판이었다.
어떻게든 주머니에 든 티켓을 처리해야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급한 일이 생각났다.
그것은 아까부터 목이 탄다는 것이었다.
점점 심해지는 갈증을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난 저편에 세워진 캔음료 자판기 앞으로 걸어가 동전을 집어 넣고
버튼을 누른 다음, 둔탁한 소리와 함께 떨어진 콜라캔을 꺼냈다.
걸어 오면서 콜라캔을 딴 다음 앞쪽을 스윽 훑어 보았다.

녀석은 더 이상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대신 옆에 놓인 카키색 배낭 안에서 이어폰을 끄집어 내서
귀에 끼우고 있었다.

나는 털썩 하고 녀석의 옆 벤치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콜라를 주욱 들이켰다.
미치도록 시원했다.

다시 곁눈질해 보았다.
녀석은 발끝을 까닥이면서 음악에 도취해 있었다.

햇살은 더할 나위없이 따뜻하고
간간이 부는 바람은 머리카락을 가볍게 날렸다.

한마디로 좋은 날씨.
친구만 나왔다면 A+를 주어도 괜찮을 만한 날이었다.
그러나 놈은 나오지 않았고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영화는 놈이 보고 싶어하던 것이었다.
그러나 놈은 나오지 않았고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다.

남은 콜라를 목구멍에 들이부었다.
미치도록 시원했다.
마지막 한방울까지 남기지 않고 마셨다.

나는 더이상 녀석을 곁눈질하지 않았다.
대신 손아귀에 쥐고 꾹 이그러뜨린 콜라캔을
꽤나 멀리 떨어져 있는 쓰레기통을 향해 힘껏 던졌다.  

들어가리라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찌그러진 캔은
깨끗한 포물선을 그리면서 정확하게… 쓰레기통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별 생각없이 던졌던 나는 주변 사람들이 감탄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는 것을 깨닫고 멋적어졌다.

뒤를 돌아 보니 녀석도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녀석은 멋있었어, 하고 말하듯 싱긋 웃어 보였다.

( 에…? )

나는 순간, 여자가 웃는 걸 봤을 때나 느낄 만한 그런 기분을
녀석의 미소에서 느꼈다.

그런 느낌에 당황해서였을까…,
나는 여느 때의 나였다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을 했다.
아니, 첨 보는 사람에겐 누구도 하기 쉽지 않을 그런 행동이었다.

나는 녀석 쪽으로 걸어가서 녀석의 오른쪽 귀에 꽂힌 이어폰을 잡아 뺐다.
그리고 천천히 낮은 음성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영화 안 볼 겁니까? "

녀석은 왼쪽 귀에 꽂혀 있던 이어폰 나머지 한쪽을 귀에서 빼고
내 손에 있던 다른 한쪽과 함께 모아 쥐고 일어서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되물었다.

" 뭐라고 하셨죠? "

…맑은 음성이었다.

" 영화 안 볼 겁니까? "

" 왜… 같이 보자구요? "

녀석은 묘한 느낌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녀석의 미소가 퍽이나 근사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인식하고
또 당혹했다.

녀석의 입가에는 보일듯 말듯한 볼우물이 씩 웃을 때면 살짝 나타났고,
그것은 녀석의 미소를 조금쯤 중성적인 느낌으로 보이게 했다.

…그것은 근사했다.

나는 주머니에서 두장의 티켓을 꺼내 들어 보였다.
녀석은 그것을 빤히 보더니 이어폰을 뭉쳐 배낭 안에 집어 넣고
지퍼를 닫았다.

그리고 이번엔 웃지도 않고 말했다.

" 서두르지 않으면 시작하겠는데요. "

대신 웃은 건, 아마 나였나 보다.
안심한 입에서 말이 흘러 나온다.

" 서기형입니다, X정고 2학년에 다녀요. "

" 주윤빈이에요, 현X고 2학년. 말 놓죠. "

" 아, 응… 들어갈까. "

" 좋아. "

녀석의 볼에 다시금 우물이 파인다.
…그것은 정말이지 다시 봐도 근사했다.

아까 마신 콜라 때문인진 몰라도 내 안을 점령하고 있던 지독한 갈증은
어느 새 완전히 사라졌다.
아까 피운 담배로 충분할진 몰라도 녀석도
지금 특별히 담배가 고프진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이런 걸 예감이라 하는 건가.
…전화위복, 특별한 관계의 시작.

어느 새, 난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 그렇게 찾아오는 것이다.
사랑은 때때로 갑작스럽게 찾아와 사람을 당혹하게 만드는 것.





녀석이 가장 좋아하는 담배가 실은 <THIS>가 아니라 <KENT>란 사실,  
이어폰으로 듣고 있던 CD가 <RADIOHEAD>였단 사실은 물론이거니와,
이름과 학교 학년 외에 달리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시작>은,
그래서 더 매력적인 것인지도 몰랐다.





햇살은 더할 나위없이 따뜻하고
간간이 부는 바람은 머리카락을 가볍게 날린다.

한마디로 좋은 날씨.
친구 놈 따위 안 나와도 A+를 줄 수 있을, 그런 날이었다.

마음 속으로 찬사를 보내며, 난 녀석과 함께 영화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정말 근사한 날이었다.





나는 거기에 있었다.
녀석도 거기에 있었다.

두사람은 거기에 있었다.

그걸로, 시작은 충분.
그리고, 시작은 그렇기에 근사하다.



                                              - Fin -



I was like peace in a groove
On a sunday Afternoon

You were there so was I
In the park 4th of July

I was chilling with my Kool-Aid
When Miss Chilli came to relay

That you had a thang for me
Finest thang you'd ever seen

I must admit to you
I've heard them lines a time or two

Although for some apparant reason
Monkey lines are now in season

Lights off, lights on
I guess the groove is on so I am

Digging the scene
Digging on you
Digging on me

Baby bay-ooo-baby baby

It's on like that
It's on like that

I gotta be in love or something like that…

                                     <Digging on you> by T. L. C




                        …………………………………

이게 끝? …예, 이게 끝입니다.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 제이님을 위해,
<시작>을 주제로 한 글을 써 봤습니다.

이제까지 쓴 것 중 가장 짧은 글이기도 합니다.
이 이상 짧게 쓸 수는 아마 없을 것 같군요.

                                               Baby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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