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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yAlone
슈나우저 이야기

슈나우저 이야기 (1)


                                 Presented by BabyAlone




1.

우월… 왈!
- 『 안녕하세요? 』란 뜻입니다.

지금 주인들의 새 식구로 받아들여졌을 때, 전 이미 알아야 할 건 대충 다
알고 있는 그런 조숙한 강아지였습니다 - 물론 간접경험으로 말입니다.

저는 대한민국 서울 반포에 위치한 작은 동물병원에서 태어났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엄마와 떨어져 동물병원에서 지내야 했기 때문에
절 낳아준 엄마에 대한 기억은 한자도 없습니다.
자상한 수의사 선생님의 보살핌으로 팔려가기 전까지 전 건강하고 행복하게,
그리고 아주 정상적 환경에서 - 이게 중요합니다 - 자랐습니다.

수의사 선생님은 자신도 페키니즈 「보석」 - 중견 탤런트 중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하더군요 - 을 기르고 있었는데 이 보석형은 저에게
있어서 인생선배 같은 역할을 해주는 사람, 아니 개였습니다.  
자신의 조상이 중국 황실에서 키워졌다며 으쓱대고 뽐내는 것을 제외하곤
그럭저럭 인간성이 좋은 개였습니다.
태어난 지 5년이 막 된 보석형은 우리를 사가는 인간들에 대해 상당히 많은
걸 알고 있었고 저에게 아는 지식의 거의 전부를 아낌없이 전수해 주었죠.

태어난지 겨우 석달된 하루.
비가 오는 어느 날,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맘씨 좋은 의사 선생님 덕분에, 전 평소에 지내던 쇼윈도우에 진열된
유리상자에서 벗어나 보석형과 만담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 왈, 너 아냐? "

" 뭘요? "

" 발정기라는 거 말야. "

" 그게 뭔데요? "

" 아… 새끼. 뭘 몰라도 한참 모르네. 석달 됐으니 귀여워서 봐준다.
   얌마, 그게 없으면 넌 태어날 수도 없었어. "

" …예? "

보석형의 말에 의하면 우리들 개에겐 발정기라는 게 있다는 겁니다.
그 때 우리들 개들은 어딘가에서 오는 지 모를 야릇한 힘에 의해서
암컷은 수컷을, 수컷은 암컷을 갈구하게  - 라고 보석형은 표현했는데
정확한 의미는 저도 모르겠군요. 혹 아시는 분이 계시면 설명 좀 해주세요 -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갈구에 의해 둘이 만나면 새끼, 즉 저처럼
귀여운 놈이 태어난다는 겁니다.

상당히 은유적인 표현이라 전 보석형의 이야기 전부를 확실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굉장한 일이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습니다.

" 힉… 그런 대단한 게 있단 말이에요? "

" 음, 그래. 우리들 개 뿐이 아니라 다른 녀석들, 예를 들어 우리랑 사이가
   안 좋은 괭이 녀석들이나 저기 위에서 맨날 자고 있는 토끼들도 발정기 때
   짝을 지어 2세를 생산하는 거라구. "

" 그럼, 우리 선생님도 발정기 때 훈이를 「생산」하신 거예요? "

훈이는 가끔 동물병원에 놀러 오는 우리 수의사 선생님의 5살박이
아들입니다.
보석형과 비슷한 때에 태어났지만 하는 짓은 저만도 못한 앱니다, 애!

" 흠……. "

인생경험이 풍부하다고 자부하는 보석형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런 걸 이놈에게 말해줘도 될까 하는 표정으로 저를 살피더니
입을 열었습니다.

" 인간은 말이다… 좀 별종이야. "

" 예? "

" 그네들은 발정기란 게 따로 없거든. "

" 예? "

" 그냥 자기네 맘대로 짝짓기를 해. 아무 때나 말이지. "

" ……? 그럼 아기는 어떻게 만들어요? "

" 것도 좀 별나. 우리 개들은 보통 짝을 지으면 암컷이 임신을 하게
   마련이거든. 그런데 그들은 수시로 그 짓거리를 하면서도 좀처럼
   임신을 하지 않는단 말이야. 암튼 인간은 좀 별종이야. "

전 무슨 말인지 잘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인간들이 좀 별종이란 건 확실히 알게 되었죠.  

아무튼… 그런 소중한 지식을 전수받은 그 날,
전 소중한 저의 인생선배 보석형과 이별을 고해야 했습니다.

바로 그 날… 말입니다.




2.

우리가 그런 식으로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고 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문이 열리고 비에 젖어 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산을 든 채,
인간 두사람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 어서 오세요. "

수의사 선생님이 예의 상냥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들을 맞았고 저와 보석형도
첨 보는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예의상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그런데…,

" 우왓…! "

한사람이 이상한 소리를 지르더니 제 앞에 무릎을 접고 구부려 앉는 겁니다.

" 미니어처 슈나우저잖아? 넘 귀여워, 미치겠다. "

( 날 보고 귀엽다니, 보는 눈은 있군. )

전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시금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어 대며
그 사람이 내민 손을 할짝거렸습니다.

" 와… 한영형. 이거 봐. 얘가 내 손을 핥아. 내가 좋은가 봐. "

" 저, 금붕어 먹이 좀 사려구 왔는데요. "

한영이라 불리운 키 큰 인간수컷은 대꾸조차 않은 채
선생님에게 딱딱하기 그지없는 음성으로 말했습니다.

( 뭐야, 싸가지 없는 사람이잖아? )

" 예, 여기 여러가지 있는데 어떤 걸로 하실 거예요? "

선생님이 한영이란 싸가지 없는 사람과 열심히 금붕어 모이에 대해
대화를 주고 받고 있는 동안, 저는 절 예뻐해 주는 착한 사람이랑
즐겁게 놀았습니다.

" 가자. "

일이 다 끝났는지 지갑을 뒷주머니에 넣으며 한영이란 사람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 잠깐만…. "

제 앞에 쪼그려 앉아 있던 남자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일어서다가
갑자기 한영이란 사람의 팔을 잡더니 선생님에게 대고 외치듯 물었습니다.

" 이거 파는 개 맞죠? "

" 예, 맞습니다. "

언제나 변화없이 온화한 표정의 수의사 선생님.

" 한영형, 우리 이거 사자~ 응? 사자아~. "

" 연규, 너… 미쳤냐? "

한영은 착한 사람, 연규를 같잖다는 눈길로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아래에서 올려다 봐서 잘은 모르겠지만요.

" 우리가 갤 어떻게 키워. 시덥잖은 소리 그만하고 빨랑 나가자. "

" 얜 내가 필요하고 난 얘가 필요해. 우린 지금 방금 필이 통했어.
   어? 내가 다 알아서 할테니까 동의만 해주라, 엉? "

연규의 생각에 저도 동조하면서 한영을 올려다 보고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그러잖아도 방금 연규와 같은 사람이 제 주인이 된다면… 하고 생각했던
참이거든요.

하지만 우리 둘의 표정연기에도 불구하고 한영은 굳건히 자신의 태도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 장난치지 마라. 하여튼 귀여운 것만 보면 사족을 못 쓰니 원.
   너, 내가 사준 피카츄 샤프나 키티 메모장 제대로 쓰기나 하냐?
   지난번에 일본 출장갔다 시부야까지 들러 사갖고 온 D. N. 엔젤
   (스기사키 유키루의 만화 제목) 책받침은 어떻구.
   제대로 건사도 못할 거면 아예 말도 하지 마. "

" 이거랑 그건 다르잖아. "

" 그래, 더 문제지. "

" 잘 할께, 나 잘 할 수 있어… 혀엉! "

" 안녕히 가십시오. "

언제나 변함없이 온화한 표정의 수의사 선생님의 깍듯한 인사를 받으면서
한영은 문을 열고 나갔고 울상이 된 연규도 쫓아 나가 버렸습니다.

" 끼잉~ "

" 너무 실망하지 마라. 기회는 또 있으니까. "

어쩐지 슬픈 기분이 되어 쭈그리고 앉은 저를
보석형이 혀로 부드럽게 핥으면서 위로해 주었습니다.




3.

그렇게 그 날 하루가 다 끝나가고
동물병원이 문닫을 시간이 되어서였습니다.

" 문닫을 시간입니다만. "

선생님이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무슨 일인가 해서 스윽 하고 위를 올려다 보았습니다.

" 아, 금방 갈 겁니다. "

한영이란 남자였습니다!

저 인간이 왜 여길 다시 왔을까요?
퇴퇴! 재수없는 놈!

" 저 녀석 사가려구요. "

재수없는 놈이라구 한 거… 취소…….

" 25만원입니다. 수컷이라 싼 거죠. "

" 음… 태어난 지 좀 된 놈 같은데 예방접종 같은 건 되어 있나요? "

" 물론입니다. 근데 어떻게 된 겁니까? 안 사시려는 줄 알았는데요. "

" 같이 사는 동생 놈이 하두 시끄러워서요.
   개짖는 소리보다 더 요란하니 버틸 재간이 있어야죠. "

한영은 높낮이가 없는 차분한 음성으로 말하더니 여기 있습니다… 하면서
돈을 치뤘습니다.

아아… 이렇게 갑작스러울데가……!!!

보석형이랑 이별할 날이 온 겁니다.

" 축하해… "

보석형은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눈이 젖은 듯 보였습니다.

( 형… )

내가 눈빛으로 작별을 고하고 있는데 한영이 절 집어 품에 안더니
문을 열고서 병원 밖으로 나가려 합니다.

" 안녕히 가십시오. 예뻐해 주세요. "

변함없이 온화한 수의사 선생님의 음성도 이제 마지막입니다.

" 안녕히 계십시오. "

한영은 약간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숙이고 답했고
우린 문 밖으로 나왔습니다.

킁킁~ 킁킁~
어, 이 인간, 좋은 거 바르나 보네?
이게 무슨 냄새지? 킁킁~

냄새를 맡으며 그의 품으로 파고 들어가는 저를 한영이 갑자기
휙 올려 들여다 봅니다. 그러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중얼거렸습니다.

" 아, 녀석. 하는 짓이 연규랑 똑같네? 웃기지도 않군, 정말…. "

한영은 저를 길 가장자리에 세워 둔 은색 티뷰론 조수석에 태우고는
자신은 차를 돌아와 운전석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한마디 했죠.

" 집에 가는 동안 얌전히 있거라, 알았지? "

( 내가 어린앤 줄 알아? 태어난지 석달이나 됐단 말야! )

저는 속으로 투덜대며 의젓하게 티뷰론 조수석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 정말이지… 저 싸가지 없는 인간은 운전도 험악하게 하더군요.
그런 곳에 앉아 있었다면 그 누구라도 멀미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얼마나 흔들리던지…
아, 정말 제 탓이 아니라니깐요?

…그래요… 저… 오바이트…했어요… 흑흑….

" 앗, 이놈의 개새끼가……! "

좌회전 차선에 들어서고 문득 옆으로 고개를 돌린 한영이 절 보더니  
경악하며 외치는 소립니다.

미안하다, 미안해.
그러게 누가 그렇게 운전하래…?

저는 막연하게 떠오르는 죄책감을 지우기 위해 일부러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영을 쳐다 보았습니다. 이렇게 「눈빛」으로 사과하는데 그냥 넘어가지
않으면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겠지요.

" 그 태연한 표정은 뭐냐…? "

…퍽.

때, 때리다니…
역시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었습니다, 저 인간은.

신호가 바뀌었는지 한영은 저에게서 눈을 떼고 거칠게 차를 출발시켰고
조금 더 차를 몰아 어느 아파트 단지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중 젤 안쪽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는 절 그냥 차 안에
내버려 둔 채, 문을 신경질적으로 닫고 나서 성큼성큼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어이…! 이봐…!
혼자서 들어가면 어떡해…?
이봐아아아…! 꺼내줘어어어…!

저는 처량하게 끽끽 울면서 차 유리창을 긁고 있었습니다.

그러길 잠시, 아파트 입구에서 누군가가 달려 나오는 것이 보여서
고개를 빼고 살펴 봤더니, 아아… 상냥한 나의 구세주!
바로 연규였습니다.  

연규는 부리나케 이쪽으로 달려오더니, 차 키를 꺼내 차문을 열고선
저를 안아 들었습니다.

" 우와, 보고 싶었어…! "

힘껏 껴안는 연규의 품에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지만
저도 기뻐서 마구마구 그를 핥아대기 시작했습니다.

" 푸하… 간지러워… "

연규는 킥킥 웃고 나서 절 조금 떼어 놓더니 제가 아까 토해놓은 시트를  
보고 또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습니다.
아마 연규는 웃는 게 습관인 듯 싶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한 순간이라도 연규가 웃지 않는 걸, 거의 본 적이 없으니까요.

" 한영형한테 한대 맞았겠다, 너? "

그랭그랭… 우웅… 무쟈게 아팠다궁……

" 아직 어린데, 실수할 수도 있는 거를, 그지? "

주인이란 이래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귀엽고 깜찍한 펫의 실수를 용납해 주고 이해해 주는 게
주인의 할 도리 아니냐 바로, 이 말입니다.

연규는 티슈 박스에서 티슈 몇장을 뽑아 제가 더럽힌 시트를
열심히 닦고 나서 다시 절 잘 안아 들더니 차문을 닫았습니다.

그들이 사는 집은 아파트 7층에 있더군요.
연규가 절 안은 채 문을 열고 들어 갔을 때, 한영은 거실에 없었습니다.  
연규가 고개를 빼서 저쪽 물소리가 나는 쪽을 넘겨다 보더니 또 웃으며
제게 말합니다.

" 샤워하나 보다. 기다려, 널 사온 보답으로 야참이나 만들어 줄까 하거든?
   저녁을 일찍 먹어서 아마 배 좀 고플거야. "

연규는 부엌에 들어가 뭔가를 만들기 시작했고 이내 집안에는
좋은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중, 저쪽 욕실문이 벌컥 하고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한영이
머리에 타올을 문지르면서 박스 팬티바람으로 나오는 것이 보입니다.

" 야, 개새끼. 비켜. "

흥, 그래. 비켜 주마.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

" 샤워 다 했어? "

연규가 예의 상냥한 미소를 지으면서 한영형을 올려다 보는 - 한영이 좀
많이 큰 편이더군요, 인간 수컷들 중에서도 말입니다 - 것이 보였습니다.

" 무슨 냄새냐, 이거? "

" 아, 핫케익. 아까 저녁을 너무 일찍 먹어서 배고플 것 같아서.
   먹을 거지? "

연규는 또 웃고선 핫케익을 접시에 담아 시럽과 함께 가져왔습니다.

" …살찌면 어떡하려구. "

" 형은 좀 쪄도 돼. "

" 뱃살 접히는 애인, 좋아? "

" 형이라면…. 형이라면 어떻게 변해도 상관없어.
   쥬스 꺼내올께, 잠깐 기다려. 오렌지 쥬스면 되지? "

접시를 2인용 식탁위에 놓은 연규가 그렇게 말하고
냉장고 쪽으로 걸어가려 할 때였습니다.
식탁 앞에 서 있던 한영이 연규의 팔을 잡더니,
뒤에서 그대로 끌어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곤 연규를 앞으로 돌려, 입고 있던 반팔 티를 끌어 올려
그대로 벗겨내더니 목에서부터 입을 맞추기 시작하는 겁니다.

오잉…?
분위기가 쪼께, 이상…한 걸?

" 형, 그만해… 쟤가 보잖어… "

" 개새끼한테 신경쓰지 마(순간, 제 머리에는 핏줄이 솟았습니다…). "

" 형… 일단 핫케익부터 먹고…… 읍… "

한영이 연규의 입을 막아 버렸습니다.

오잉? 저게 뭐하는 짓이야?
으… 저런 악당같은 놈…
순진한 연규에게 뭐하는 짓이냐구우우우…!

하지만 제가 더 놀란 건 연규가 그냥 저 악당놈이 하는 짓을 내버려 둔단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진실을 말하자면, 오히려 즐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근데 말예요… 제가 아무리 애라지만 저런 짓은 암컷과 수컷끼리 하는
행동이란 것 정도는 보석형의 성교육 땜에 잘 알고 있거든요.
인간은 발정기가 아니어도 시도 때도 없이 한다고 하던데…  
하지만 것도 암컷과 수컷 사이의 일 아니어요?

근데… 한영과 연규는 분명 제 생각으론 둘다 수컷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수컷끼리 저런 행동을 해도 되는 걸까요?

그 때, 마침 고갤 갸웃거리면서 이런 생각에 잠겨 있는 저와 한영의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러자 한영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절 노려 보더니 - 뭘 꼴아보냐? 뭐
그런 표정이었습니다 - 연규를 번쩍 들어 안고,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 형, 아무리 그래도 난 여자가 아니잖아…! 내려 줘! "

" 가만 좀 있어. "

연규가 몸을 뒤틀면서 싫다고 하는데도 고집장이 한영은 그대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면서 연규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더니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 끼잉… "

왠지 저만 따돌림당한 기분에 서러워져 조금 울 듯 하다가
굳게 닫혀 있는 방문 앞으로 가 보았습니다.

방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옵니다.
특히 청각이 예민한 저희 개들한테는 더더욱 잘 들리는 야릇한 소리들이….

" 으… 혀엉… 이건 너무 자극적이라구… 제발… "

" 가만… 좀만 참아. "

" 이거면 됐어… 형이 들어오기도 전에 쌀 것 같단 말야…. "

" 그럼 이제 간다. "

" 묻지 않아도 돼… 욱… "

" 아프냐…? "

" 정말 내가 어린앤 줄 알아… 우… 아, 거기… 좋아… 형은? "

" …몰라서 물어… 하아… "

" 그래두… 응? "

" 드럽게 좋아… ^^ "

- 지금 여러분은 행위하면서 상당히 말이 많은 커플의 표본을 보시고
   계십니다. 대부분 이렇게 말이 많을 거라 사료되지 않습니다만…
   암튼 넘어갑니다(작가 백).

제가 뭐 달리 할 말이 있겠습니까.
솔직히 대충 다 눈칠 깠습니다.
이해는 예… 여전히 안 갑니다만…
연규가 암컷이었나 보죠, 뭐… 가슴이 전혀 없는…….

알려드릴 오직 한가지는 그날 밤,
결국 그들이 핫케익을 먹으러 나오지 않았단 사실입니다.







슈나우저 이야기 (2)





4.

" 이 개새끼가 어디 숨어있는 거야? 연규…! "

한영의 간신히 자신을 눌러죽인 듯한 외치는 소리.
한영이 있는 곳으로 가는 듯 연규의 발소리도 들려옵니다.

" 너, 분명 교육시켜 놨댔지. 근데 바닥에 흥건한 이건 뭐냐?
   밟았단 말이다. "

" 어? 이상하다? 분명히 어젠 화장실에 깔아놓은 모래상자에 하는 걸
   봤는데. 둥아… 둥아…! "

「둥이」는 연규가 붙여준 제 이름입니다.

저는 침대 밑에 숨어 있습니다.
아까 방 밖으로 나오려 하다가 한영이 제가 싼 오줌을 밟는 것도,
열받아서 식식대는 것도 다 봤습니다.

예… 저도 잘못한 거 알아요.
어젠 분명히 화장실에 가서 쉬했거든요?
동물병원에서 교육받은 것도 있고…
근데, 가끔 이렇게 생각없이 쉬하고 싶을 때가 있단 말입니다.
뭐… 충동이라면 충동이랄 수도 있겠죠.
글구 원래부터 동물이란 아무데서나 싸게 되어 있단 말이에요.
그런 걸 억지로 장소를 정해서 싸라니, 정말 힘들다구요, 저두.
싸는 것 하나 맘대로 못해서야 이거 세상 살 맛 나겠습니까?

" 휴, 너 거기 있었구나… 한영형 무지 화났어. "

" 끼잉… "

" 얼릉 나와. 숨어 있다고 해결될 문제 아니니깐, 어서. "

결국 연규에게 숨어 있는 장소가 발각되고 문제를 저지른 장소인 마루로
나와야 했습니다.

한영이 아직도 식식거리면서 화장실에서 나옵니다.
발을 씻고 나오는 모양입니다.

나오자마자 도망가려는 절 붙잡고 세게 한대 날립니다.

- 딱!

우쒸, 폭력자! 새디스트!!!

" 이놈의 개새끼 땜에 내가 늙는다, 늙어. 이연규, 너 어떻게 된 거야.
   니가 다 알아서 하겠다고 해서 사온 거 아냐. "

" 형, 미안해… 내가 다 치움 되잖어… "

부엌에서 걸레를 가져 오던 연규는 아예 첨부터 꼬릴 내립니다
(은유적인 의미란 거 아시죠? 연규는 꼬리 없어요).

" 그래, 내가 애초에 뭐랬어. 이름도 잘못 지었댔잖아.
   둥이가 뭐냐, 둥이가. "

" 둥이가 뭐가 어때서. <메밀꽃 필 무렵>의「동이」를 바꾼 건데.
   그리구, 귀염둥이, 애교둥이… 뭐 그런 의미도 있고…. "

" 지금 이게 귀염둥이, 애교둥이냐? 말썽둥이, 밉살둥이, 먹둥이지.
   암튼 확실히 교육시켜. 그러잖으면 그냥 내다 버린다. "

" 미안해, 형…. "

연규가 풀이 죽어 말하니 한영도 좀 심하다 싶었는지
헛기침을 두어번 합니다.

" …흠흠. 너, 오늘 학원 안 가? "

" 오후반으로 돌렸어. 형, 아침 좀 제대로 차려 주고 싶어서.
   형, 다 씻었으면 와 앉아.
   형이 요즘 소화가 안된다 그래서 죽으로 했어. "


제가 이 집에 살게 된 지도 벌써 2달이 지났습니다.
「둥이」란 이름도 받았고, 어느 샌가 이 집의 버젓한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한 기분입니다.
물론… 여전히 한영이랑은 사이가 그저 그렇지만 말이에요.



저랑 같이 사는 사람들에 대해 조금쯤 궁금해 하실 것 같아서
말씀드릴까 해요.

우선, 저의 사랑스런 주인 이연규.  
저렇게 동안이지만 그래도 어엿한 방년 24세의 수컷으로
군대도 다녀왔다고 합니다. 카츄샨가 뭔가로요.
다음 학기에 복학할 예정으로 제법 명문대 신문방송학과에 다니는
재원이기도 합니다. 연규 가족들은 지방에 산다고 하네요.
나이에 안 어울리게 귀여운 거 수집병이 있지만 상냥하고 착하고,
한마디로 흠잡을 데 없는 대한민국 남잡니다.

그리고, 저의 앙숙(뿌지직) 오한영.
방년 28세.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전형적인 공돌이로 지금 어딘진
잘 모르지만 외국 기업에 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군대는 해병대로 갔다왔다는데, 저 지랄같은(실례) 성격은
아마도 군대에서 얻은 산물이 아닌가 추측합니다.  
연규와는 같은 중고등학교 선후배로, 두사람 사이에 정확히
무슨 역사가 있었는 지에 대해선 아직 저도 잘 모릅니다.

암튼 중요한 건…!
저 두사람이 연인이란 사실입니다.

아… 저도 첨엔 놀랐어요.
인간이 아무리 별종이기로서니 수컷끼리 좋아할 수도 있을까 하고요.
근데, 역시 인간은 별종이었습니다.
그리고 전, 그 중에서도 특이종들을 주인으로 갖게 된 거구요.
행인지 불행인지….

한동안은 둘중 하나가 암컷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아니더라구요.
버젓이 제가 보는 앞에서도 창피를 모르고 옷을 훌렁훌렁 벗는 한영에게
분명히 수컷의 심벌이 존재함을 먼저 확인했고… 연규랑은 목욕까지 같이 -
아, 창피… - 했기 때문에 그도 역시 확실한 수컷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그들은 수컷끼리 사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사랑의 행위를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꼭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땐 반드시 절 안방에서 내쫓고 - 한영이 말예요 -
문을 닫아 버립니다. 잠시 후엔 별별 이상한 소리가 연달아 흘러 나오고요.

뭐… 지금은 익숙해져서 먹을 것만 제대로 주면 아무 상관없게
돼 버렸습니다.

" 자, 아침. 맛있게 먹어. "

저에게 먹을 걸 챙겨주는 사람은 물론 연규입니다.

" 쟤, 슈나우저를 빙자한 잡종 아니냐? 어떻게 저렇게 먹을 걸 밝혀? "

(뿌지직) 이렇게 딴지를 거는 사람은 물론 한영이구요.

" 아직 애기잖어. 많이 먹여야 쑥쑥 크지. "

" 흥. 개들은 많이 먹임 바보된다는 거 몰라? "

저 인간이…!
지 손으로 밥 한번 챙겨준 적이 없는 주제에…!!!

이런 식으로 분노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침시간은 휭하니 지나가고
한영이 출근하고 나면 연규와 저만 남습니다.

좁은 집안을 빠른 속도로 청소하고 아침먹은 그릇들을 설거지하고
작은 유리상자 안에 기르고 있는 금붕어에게 먹이를 주고 나서는
연규와 저의 자유시간.
이제 막 복학할 예정인 연규는 머리가 굳어졌다고 중얼대면서
영어책을 보거나 컴퓨터 앞에서 뭔가 하거나 합니다.
물론 저랑 놀아주기도 하고요.

뚜르르르르…

" 여보세요? …어, 경화? 왠일이야? …아, 그냥 집에 있어.
   …학원은 오후반으로 돌렸어. …뭐? 아. 그래, 알았어. "

연규가 전화를 끊더니, 저를 보고 말합니다.

" 둥아, 후배가 좀 보자 그러는데 어떡할래? 혼자 집 지킬 수 있어? "

" 끼잉… "

싫어…
연규가 나 버리고 감 싫어…….

" 알았다, 알았어. …가자. "

연규는 웃으면서 절 쓰다듬어 주더니, 옷을 갈아입고 나왔습니다.
흰 면티에 청바지.
단순한 차림이지만 연규는 그렇게만 입어도 참 근사합니다.
개인 제 눈으로 봐도 한영한텐 아까운 놈이에요.

절 안아 들고 아파트 주차장까지 내려간 연규가 갑자기 멈칫했습니다.

" 참, 근데 너 멀미하잖아. 바이크, 안되겠는데. "

연규가 절 안아 들고 선 앞에는 번쩍번쩍 빛나는 바이크가 있었습니다.  
한영이 티뷰론을 모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연규가 바이크를 타는 줄은  
몰랐습니다.
평소 연규의 온화한 이미지로 봐선 전혀 상상이 안 되요.
우락부락한 사람들이나 타는 바이크를 연규가 몰고 다닌다니…….

" 뭐, 할 수 없지. 큰 차를 이용하자구. "

연규는 웃으며 키를 바지 주머니에 집어 넣더니,
저를 들고 있던 큰 가방 안에 쑤셔 넣었습니다.

" 사람 많은 곳이니까, 개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구.
   잠깐만 얌전히 있어, 금방 꺼내줄테니. "

한영 말이람 모르지만 연규 말이니까 믿고 따르기로 했습니다.  
이래서 평소에 잘해야 된다는 거예요.
지하철의 텁텁한 공기도 참고 버텼습니다.

" 어머, 오빠. 얘 뭐야? 오빠 개 키워? "

카페에 막 들어간 연규가 앉자마자 제 존재를 알아차린 여자애가
호들갑을 떨며 지르는 소립니다.
아마, 아침에 전화를 한 그 경화란 사람인가 봅니다.

" 산 지 2주 됐어. "

" 이거 뭐야? 수염같은 게 나 있네. "

" 미니어처 슈나우저. "

" 이름이 뭔데? "

" 둥이야. "

" 아하하… 넘 웃긴다……. "

여자아이는 거의 벗은 거나 다름없는 미니 원피스를 입고 있었습니다.
저에겐 인간 얼굴이란 다 고만고만해 보이지만, 이젠 그럭저럭
누가 잘생기고 못생겼는지 구분지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고개를 빼서
절 보고 있는 여자아이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해 보았습니다.

흠… 뭐… 합격인가.

" 오빠, 남자 둘이 사니까 좀 지겹지 않아?
   솔직히 말해 봐. 밥도 오빠가 전부 다 하지, 그지. "

" 아니, 언제난 아니야. 회사 일이 한가할 땐 형도 도와 줘. "

" 역시 오빤 너무 착해. 근데 오빠, 나 오빠한테 뭐좀 물어 볼게 있다? "

" 뭔데. "

" 오빠랑 같이 사는 그… 한영이라는 오빠, 지난번에 오빠랑 같이 가고
   있을 때, 나랑 미란이 언니랑 마주쳤잖아. 기억나? "

" 응. 그런데? "

" 미란이 언니가 말이지… 그 때, 오빠 룸메이트한테 뻑 갔나 봐.
   여자친구 있냐구 나한테 몇번을 묻는 거 있지? 어때? "

" …어? "

연규는 조금 동요하고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 여자친구 있냐구. "

" 아… 그, 글쎄. "

" 어머, 같이 살면서 것도 몰라?
    …하긴, 그 정도 인물에 여자친구가 없겠냐구 나도 그랬지만서도.
    후훗, 그래도 난 오빠가 더 나은 것 같애. 너무 큰 남잔 밥맛 없거든?
    오빠처럼 175 조금 넘는 키가 젤 적당한 것 같애. "

연규는 계속 이어지는 여자애의 말에 대꾸도 못한 채 조금 당황한 낯빛을
하고, 방금 서빙하는 사람이 갖다놓은 물을 꿀꺽꿀꺽 마실 뿐입니다.

바보, 연규.
니가 애인이잖아. 왜 그렇다고 말 안 해? 응?

하긴 첨부터 여자애의 질문에 하자가 있었습니다.
「여자친구」있냐고 물었지, 애인 있냐고 묻진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연규는 남자구요….





5.

" 넌 TV까지 저런 프롤 보냐? "

항상 바쁜 한영이 왠일인지 이 주말, 소파에 느긋이 누워
TV를 보고 있습니다.
물론 누워서도 절대 그 얄미운 입을 가만두지 않고 있죠.  
하지만 지금의 화살은 연규의 몫입니다.

" 재밌잖아, 형. "

" 재밌긴 쥐뿔이 재밌냐. 개새낀 쟤 하나로 족하다. "

우쒸… 나도 못된 주인은 너 하나로 족하다!

연규는 한영의 투덜거림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스크린에만 눈을 박고
있습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다가가니, 귀여워 죽겠다는 듯 연규가
절 안아 들더니 TV 스크린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 저거 봐, 둥아. 네 친구들이야, 보여? "

정말로 스크린에는 동물병원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리운 친구들이
많이 비치고 있었습니다.
저도 연규 무릎에 앉아서 홀린 듯이 스크린을 쳐다 봤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개」에 관한 다큐멘터리였습니다.  
조난당한 사람을 구조하는 알프스 견(犬),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을 보조하는
맹인견, 썰매를 끄는 에스키모견 등등. 주로 큼지막한 개들이 많이 비치고
있었습니다.

" 개라면 그래도 저 정도는 되야지. "

한영이 들으란 듯이 중얼거립니다.
연규가 픽 웃더니 소파에 쭉 뻗어 있는 한영을 돌아 보며 말했습니다.

" 형, 둥이가 듣겠다. "

" 들어도 못 알아들을 놈이야, 저 놈은.
   하여튼 개, 특히 작은 개들은 아무 짝에 쓸모가 없대니깐.
   밥만 처먹지, 하는 일은 암것도 없잖어. "

저, 저…! 저 인간은 날 물로 보고 있는 게 틀림없어.

" 왜 그래, 형… 그 대신 귀엽잖어. "

연규가 자신에 대해 지적받은 양, 조금 풀이 죽은 듯한 음성으로 중얼대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 …여보세요? 예, 잠깐만 기다리세요… 형, 받아. "

수화기를 넘겨주는 연규의 표정이 조금쯤 불안해 보인다고 생각한 것은
저만의 착각일까요?
암튼 한영은 그런 연규와는 다른 여전한 무표정으로
수화기를 건네 받았습니다.

" 여보세요? 예, 안녕하세요. 아, 천만에요.
   덕분에 저도 이번 프로젝트를 무사히 끝낼 수 있었습니다.
   먼저 인사드렸어야 하는데… "

답지 않게 상냥한 목소리로 고맙다구 어쩌구 하면서 전화를 끊은 한영을
연규가 슬쩍 올려다 봅니다.

" …누구야, 형? 요즘 자주 전화 오던데. "

" 이번에 같이 프로젝트 작업한 사람. "

" 목소리가 예쁘더라… "

" 아, 얼굴도 제법 반반해. "

" 그래… 그렇겠지. "

" 질투하는 거냐? "

" 훗, 질투…? "

연규는 고개를 숙이며 웃어 보이지만 그 태도가… 어쩐지 불안을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저는 그의 손등을 핥기 시작했습니다.

" 간지러… 간지러, 둥아… "

그래, 그렇게 웃어.
연규는, 그렇게 웃을 때 젤 멋있어 보이니깐….

전 열심히 연규의 손등이며 안아올린 얼굴을 핥아대며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웃고 있는 연규의 표정 안쪽 깊숙이 숨겨져 있는 불안감…
한영은 정말 모르고 있는 걸까요?







슈나우저 이야기 (3)





6.

문제의 발단은 전화 한통이었습니다.

한영이 왠일인지 집에 들어오지 않은 다음 날.
연규는 몹시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습니다.

" 둥아, 괜찮겠지? 응? …괜찮겠지?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겠지? "

연규는 같은 대사를 몇번이고 중얼거리며 온 집안을 빙빙 돌아다녔습니다.
한영이 전화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몹시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싸가지 없는 넘 아닙니까.
자신의 전화 한통이 동거인에게 어떤 의미인 줄 정녕 모르는 걸까요?

저는 맘 속으로 못된 넘… 못된 넘… 하면서 연규의 뒤를 쫓아서
집안을 빙빙 돌아다녔습니다.

" 둥이야, 왜 그래? 배 고파? 아직 밥 먹을 때 아니야. "

히잉… 연규 너까지 날 식충이로 보는 거야?
그래, 나 배 고프다.
그러니까 그런 싸가지 없는 넘 걱정만 하지 말구 내 밥이나 챙겨 줘.
그 인간은 지옥에 떨어져도 살아 돌아올 놈이니까, 걱정 안해도 된다궁.

" 그래, 그럼 우유 줄께.
   조금만 먹어. 담부턴 하루 두끼 이상 못 준다?
   한영형이 그러는데, 개는 너무 많이 먹임 머리가 나빠진대. "

그 싸가지는 대체 어디서 그런 쓰잘데기 없는 지식을 배워 온 거야?

아… 우유당! 웅… 맛있군….
어, 전화벨이 울리는데?

" 여보세요, 한영형? "

연규가 부리나케 달려가 전화를 받습니다.
그러나 반가운 목소리는 이내 실망을 담은 양 줄어 들었습니다.

" …어, 경화구나.  …어… 아니…… 어…? 한영형을…? …….
   잘못 본 거 아냐? 형… 내가 알기론 여자 안 사귀는데…?
   ……어… 어. 어제… 안 들어온 건 맞는데… 어…… 그래… "

연규는 한참 뭐라 웅얼대더니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는 것이었습니다.

연규야… 왜 그래…? 응…?

나는 또 다시 걱정이 되어 앉아 있는 연규의 발을 핥기 시작했습니다.

" 둥이야, 우유 다 먹었니? 짜식, 한방울도 안 남기네.
   …그럼 그릇 치워야겠다……. "

힘없이 연규가 일어섰을 때, 현관에서 열쇠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 다녀왔어. "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침착한 말투의 한영입니다.
연규가 방금 전까지 걱정이 가득했던 얼굴을 억지로 펴면서 대꾸했습니다.

" 어… 왔어. "

" 응. "

" 세탁거리 줘. "

한영은 연규의 약간 차가운 말투에 움찔…하는 듯 했으나 이내
평소의 태도로 돌아와 옷을 갈아 입은 다음, 와이셔츠와 속옷을 내주면서
연규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 어디 아프냐? "

" 하루종일 집에만 있던 인간이 아플 게 뭐가 있겠어. "

" 괜찮다면 됐구. "

" 형이 나 아픈 거 신경이나 쓰는 사람이야? "

연규의 반문이 상당히 날카로왔던가 봅니다.

" 너… 왜 그래. 나 어제 연락없이 안 들어온 것 땜에 그런 거야?
   회사 일 땜에 나 이런 적 비일비재하잖아. 갑자기 왜 그래…? "

한영의 변명 - 저 인간은 변명하는 말투조차도 싸가지 없군요 - 에
연규가 고개를 들면서 물었습니다.

" 정말 회사 일이었어? "

" …그래. "

한영은 약간 미간을 찌푸린 채 대꾸하면서 담배를 피워 물었습니다.
그런 그를 보며 연규도 조금 미안한 듯 말투를 누그러뜨려 묻습니다.

" …저녁은. "

" 안 먹었어. "

" 굴비 구워줄께, 기다려. "

연규가 부엌으로 가더니, 냉장고에서 생선을 꺼냅니다.
한영도 연규를 따라 부엌에 서더니 이것저것 먹을 것들을 꺼내 놓기
시작했습니다.

연규가 푸훗… 하고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한영이 조금 쑥스럽고 안심한 표정이 되어
평소 때보다 약간은 높은 목소리로 반문합니다.

" …왜. "

" 어, 너무 형답지 않아서. "

" 뭐가. "

" 왠일이야. 형이 나 저녁 차리는 걸 다 도와 주고. "

" …어… 그런가……. "

따르르릉…
또 전화가 울립니다.
미소 띈 자세로 굴비를 오븐 안에 넣고 있던 연규가 전화를 받으러 갑니다.

" 어… 내가… "

조금 당황한 한영의 음성.

" 형, 형 전화야. 윤미영씨라는데. "

침착한 태도로 연규가 수화기를 한영에게  넘겨 줍니다.
그리고 다시 부엌으로 돌아왔습니다.

" …여보세요. 연락할 일 있으면 핸드폰으로 하시라고 말씀드렸을텐데요.
   …예. 아뇨, 특별히 곤란한 건 아니지만…… "

한영이 부엌에 선 연규를 힐끗 살피는 것이 보입니다.
연규도 알아차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던 부엌에 선 연규는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로 김치를 썰고 있을 따름입니다.

요즘 한영한테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걸까요?




7.

배가 고픕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연규가 이 시간이 되도록 들어오지 않다니 말입니다.
며칠 전에 준 갈비뼈를 물어 뜯고는 있지만 빈 배를 채우기엔 역부족입니다.

연규… 빨리 돌아와…
배고파… 배고프단 말이야…

" 끼잉… "

바야흐로 울상이 되려 하고 있을 때 복도 쪽에서 발자국 소리가 나,
미친 듯이 달려 나갔습니다.

연규니…?!

" 왈왈…! "

" 꺅…! 깜짝이야! "

문을 따고 현관에 들어 온 사람에게선 어딘가 낯익은 냄새가 났습니다.
아… 전에 본 경화란 여자가 연규를 부축하고 집안으로 들어 왔습니다.
여전히 반쯤 벗은 차림이지만 연규를 바래다 주다니 착한 사람이로군요.

" 우… "

" 오빠, 정신 차려! 괜찮아…? "

" 후우…… "

연규는 완전히 만취한 상태였습니다.

" 어쩐지 많이 마시더라, 술도 약하면서. 오빠, 정신차려. 집이야, 응? "

경화는 당황한 음성으로 말하면서,
겨우겨우 연규를 소파까지 옮겨 눕혔습니다.

" 으음… "

연규는 몇번 뒤척이더니, 어느 샌가 잠들어 버렸습니다.

" 훗… 정말, 어쩔 수 없대니깐……. "

경화는 피식 웃더니 잠들어 있는 연규의 양말을 벗기고
머리맡에 쿠션을 받쳐 주었습니다.
연규는 꼼짝도 않고 죽은 것처럼 잠들어 있습니다.
경화가 연규가 잠든 소파 옆 바닥에 주저 앉은 채 가만히 연규의 얼굴을
들여다 보는 게 보입니다.
제가 옆으로 다가가자 경화는 절 보고서 말했습니다.

" 정말 오빠 넘 예쁘게 생기지 않았니?
   넌 좋겠다, 맨날 오빠를 보면서 지낼 수 있으니까.
   우리 과에서두 젤 인기 많은 걸. 본인이 몰라서 그렇지.
   …바보같애. "

응, 내가 봐도 연규는 정말 너무 이뻐.

마음 속으로 대답하는 절, 경화는 이미 보고 있지 않습니다.
대신, 그녀는 뚫어지게 연규를 보다가 고개를 숙여 연규의 입술에
자기 입술을 갖다댔습니다.
꼭 무슨, 잠들어 있는 공주님한테 키스하는 왕자 - 별걸 다 아는군…
개 주제에… - 처럼 조심스런 자세로요.

" ……. "

경화가 입술을 떼더니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 어머…! "

자리에서 일어난 경화가 놀라 외치는 소립니다.
저도 덩달아 놀랐습니다.

좁은 아파트 거실 입구에 한영이 서 있었던 것입니다.
고양이과도 아니면서, 저렇게 기척없이 들어오는 법은 어디서 배웠대요?

" 어… 저기…
   연규오빠가 술에 너무 취해서요, 집에 바래다 주느라구……. "

" …예. "

한영은 조용한 음성으로 대답하더니,
방에 들어가 덮을 것을 들고 나왔습니다.
연규에게 이불을 덮어주는 한영 뒤에서 조금 주눅든 목소리로
경화가 말합니다.

" 저, 그럼 가볼께요. "

" 혼자서 괜찮으시겠습니까. "

" 예. "

" 택시 타는 곳까지 바래다 드리겠습니다. "

" 아, 아니예요. "

경화가 작은 목소리로 괜찮다고 했지만 한영은 말없이 집 키를 들고  
현관으로 앞장서 걸어갔습니다.  
어차피 그렇게 할 거면 좀더 친절하게 대해줘도 될 것을
저 인간은 항상 저렇게 무뚝뚝해요.

" 후……… "

한영이 경화를 바래다 주러 간 사이,
연규가 괴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깼습니다.

연규야, 괜찮아?

저는 연규의 옆에 쭈그리고 앉아 열심히 볼을 핥았습니다.

" 둥이야, 이러지 마… 나 진짜 힘들다……. "

연규는 소파에서 겨우 일어나 앉아 머리를 감싸 쥐었습니다.
진짜로 힘든 모양입니다. 내 초강력 애교에도 반응하지 않다니….
평소의 연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연규가 그렇게 앉아 있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고 한영이 들어왔습니다.

" 어… 형… 지금 온 거야? "

" 널 여기까지 데려온 경화란 아이, 바래다 주고 왔어. "

한영은 조금 화를 억누른 듯한 말툽니다.

" 아아…… "

연규가 쓴 웃음을 짓더니 앉은 자세 그대로 한영을 올려다 봅니다.

" 형은 모든 여자들에게 친절하네. "

" ……? "

한영이 날카롭게 연규를 내려다 보았습니다.

" 경화도 데려다 줬다며… 경화도 형 좋아하게 되는 거 아냐?
   형을 만난 모든 여자들, 다 형한테 빠지잖어…
   아아… 여자만이 아닌가…? "

상당히 꼬인 말투.
하지만 그에 반응하는 한영의 음성도 그에 못지 않을 정도로 차가웠습니다.

" 훗… 그럴리가… 경화란 애, 너한테 폭 빠져 있던데…? "

" ……? "

" 정말 모르는 거야? "

" …형. "

연규는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면서 한영을 보더니 결심한 듯 말했습니다.

" 윤미영이란 사람이랑 어떤 사이야? "

" 지난 번에 말했잖아. 프로젝트를 같이 한 사이라고. "

" 아… 그래…? "

연규가 피식 웃었습니다.

" …경화가 그러더라…? 카페에서 형이랑 어떤 여자랑 키스하는 것 봤다고.
   혹 그 여자가… 윤미영이 아닌가 해서… 요즘 자주 전화오던데……. "

" ……. "

뭐라 화를 낼 줄 알았더니 한영은 예상 밖으로 고개를 옆으로 돌렸습니다.

" …그런 거야…? "

" ……. "

" 아아… 그런 거구나… 하긴 형은 거짓말, 못하니까……
   그래도 이번엔 거짓말 해주는 게 나았을 텐데……. "

" ……. "

" 역시… 여자가 좋은 거야? "

" 연규…… "

" 역시 그런 거야…? "

" …그런 넌. "

" 응…? "

연규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일어납니다.

" 경화란 애랑 하루가 멀다하고 전화하고 만나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았어?
   걔, 오늘 네가 자는 동안 네 입에 키스까지 하더군.
   하긴, 자지 않았는지도 모르지만.
   너야말로 이제 슬슬 여자애가 그리워지기 시작한 거 아냐? "

" 뭐야… 오한영…! "

연규가 벌떡 소파에서 몸을 떼더니, 한영의 배에 주먹을 찔러 넣었습니다.
욱…! 하고 큰 몸을 구부린 한영에게 분노가 잔뜩 서린 음성으로 내뱉는
연규.

" 지금 나한테 핑계를 대는 거야?!
   훗, 여자랑 먼저 놀아난 사람이 누구지? "

" 뭐, 놀아나? "

한영은 정말로 화가 났는지 연규의 멱살을 움켜 잡았습니다.
연규는 전혀 위축되지 않은 채 한영의 눈을 똑바로 노려 보면서 말합니다.

" 카페에서 키스하다니, 그건 놀아나는 게 아냐? "

" 당한 거라구…!!! "

" 그 말 어떻게 믿어,
   형이 좀더 제대로 처신했다면 그런 일 없을 거 아냐! "

" 그거 니가 나한테 할 대사냐?
   여자애한테 안겨 집에 들어오고 키스까지 당한 주제에!
   정말 이런 니가 지겹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는지 일일이 밝힐 수 없는
   거야, 언제나 오버해서 반응하니까. "

" 내가… 지금… 지겹다 그랬어……?! "

연규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습니다.

" …그래, 나도 형이 지겨워. 이렇게 형만 생각하고, 걱정하고,
   그리고 이것저것 챙기는 것, 지겹단 말야!
   알아? 나도 형만 아니었다면 보통의, 진짜 보통의 남자가 될 수 있었다는
   거. 중학교 때, 형을 만나 미친 놈처럼 빠지지 않았다면 좋은 여자앨
   만나 사랑하고… 이렇게 여러 부담 안고 살지 않아도 되었을 거라구! "

한영의 얼굴은 오히려 조금 붉어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 그래서… 헤어지기라도 하잔 소리냐? "

" …형은. "

" 니 의사에 달려 있어. "

한영은 얼굴은 여전히 붉었지만 말투만은 어느 샌가 차갑게 돌아와
있었습니다.

" 내… 의사…? "

연규의 목소리가 약간 떨리더니 고개가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한영은 그런 연규를 내려다 보더니, 이내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썰렁…한 분위기.
추버…….

누군가 내게 말 좀 해주세요.
이럴 때 대체 난 펫으로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 겁니까.

누군가 제발 좀 알려 주세요오…(워우워우).







슈나우저 이야기 (4)





8.

다음 날 날이 밝았을 무렵.

연규는 집에 없었습니다.
집을 나가 버린 겁니다…!!!

평소 연규의 온화한 모습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집을 나가다니.

일어난 한영은 연규가 없는 것을 마치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별로 놀라거나  
당황하지도 않고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마십니다.

전 한영의 발 밑에 가서 멈칫거리며 앉았습니다.

" 뭐야… 너. "

한영이 절 내려다 보더니 고개를 젓습니다.

" 이 따위 개새끼나 남겨 놓고 말이지… "

고개를 저으면서도 한영은 우유를 그릇에 담아 제 발밑에 놓아 주었습니다.
배가 고프니까 별 수 없이 한영이 주는 우유와 개먹이를 먹긴 했지만
전 무척 기분이 나쁩니다.

…어쩌면 저렇게 태연할 수가 있을까요?
…자기 연인인 연규가 집을 나갔는데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싸가지 없는 인간인 줄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저렇게까지 냉혈한인 줄은
정말 몰랐다, 이 말이죠.

그 날 저녁에 연규가 들어 올 줄 알고 있었습니다.
한영도 그런 건지 우연인진 모르겠지만 집에 일찍 들어왔더군요.

하지만 그 날, 연규는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아니,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다다다음날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전 본의 아닌 다이어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왠종일 집을 비우며 툭하면 야근인 한영으로선
제 밥을 일일이 챙겨줄 수가 없었던 겁니다.

배고파… 연규야… 나… 배고파…

전… 무척이나 굶주리고 있었습니다.



연규가 집을 나간 지 일주일째.

저녁 8시쯤이었을까요?
한영이 지친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여전히 집은 썰렁하고, 나흘동안이나 청소를 전혀 못한 탓에
먼지가 가득 쌓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넥타이를 푸르고 있는 한영에게 주삣거리며 다가갔습니다.

제발 밥 좀… 으으……

한영이 절 쾡한 눈으로 내려다 봅니다.
그 눈이 공허할 뿐만 아니라 볼도 쑥 들어가 있어서 전, 저 뿐 아니라
한영도 요 며칠간 거의 식사를 안했음을 알아 차렸습니다.

하지만…!
저 인간은 안 먹어도 괜찮은지 모르겠지만 전 다릅니다…!

전! 전! 성장기라구요오오오오오!!!

" 너도… 그런 거냐… "

한영의 입에서 쓸쓸한 소리가 흘러 나왔습니다.

그, 그래…
나도 배고파……

한영을 올려다 보며 저도 애달픈 표정을 지어 보였습니다.
한영은 그런 절 한동안 가만히 선 채 내려다 보더니,
옷도 벗지 않은 채 거실로 가서 수화기를 집어 들었습니다.

지금… 뭐하는 거야?
니가 가야 할 곳은 부엌이라구.
맨 오른쪽에서 두번째 찬장 문을 열면 들어 있는 개먹이…
그걸 꺼내야 하는 게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이란 말이다…!!!

" 끼잉… 끼잉… "

저의 처절한 부르짖음엔 전혀 아랑곳 않고 한영은 전화기 버튼을 누릅니다.

" 여보세요? 네, 윤미영씹니까? …예, 저 오늘 잠깐 만날 수 있을까요.
   아뇨… 식사할 생각은 없습니다. 한 30분 정도만 차 마시면서 이야기함
   됩니다. 네, 그럼 8시 반까지 가도록 하겠습니다. "

전화를 끊은 한영은 다시 다른 번호를 눌렀습니다.

으… 밥…

" 아, 정호냐? 오늘 술이나 한잔 하자. …아아, 그래.
   연규…? 아, 녀석은 오늘 안돼. …그래, 그럼 9시 반에 보자. "

한영은 전화를 끊더니, 방으로 들어가 옷을 폴로셔츠와 면바지로
갈아 입더니 휭, 하니 나가 버렸습니다.

내, 내, 내, 내 밥은…!!!




9.

…한밤중.

배고픔을 잊고 겨우 잠들어 있던 제 예민한 귀에 끼익, 하고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 왈왈…! "

" 하아… 너냐? 아직도 너 뿐이냐…? "

역시나 연규가 아니고 한영이었습니다.
으… 술냄새…
몸 전체에서 술기운을 팍팍 풍기면서 한영이 들어옵니다.

비틀비틀, 몸을 전혀 가누지 못하고 있는 놈은 한심한 듯 쳐다보는 저와
눈이 마주치자 헤벌쭉 웃어 보이기까지 하는군요.
평소 칼도 안 들어갈 것 같은 모습관 전혀 달리, 무지 헤퍼 보입니다.

" 으… 나 마셨다… 좀, 마셨어… "

( 남은 밥도 쫄쫄 굶고 있는데 넌 술까지 퍼 먹었다 이거지… )

하며 분노의 시선 어택을 시도, 쫘악 째려 보려고 하는데…!

" 우윽… "

앞에서 눈을 가린 채 흐느끼고 있는 이 사람, 싸가지 없고 차갑기로 유명한
내 주인 오한영 맞아요?
소파에 앉은 그는 뒷 커버에 머리를 댄 그 상태 그대로 눈을 감은 채
줄줄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처절하리만치 아파 보여서 난, 그만 째려 보지도 못한 채
천천히 그의 발 밑으로 다가갔습니다.

왜 울어…?
응? 왜… 왜 울어…?

" 흐윽… "

술에 눈물을 나오게 하는 약이라도 타서 마신 걸까요?
한영의 눈에서도 눈물이 만들어질 거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난 조심스럽게 점프하여 소파 위, 그의 옆으로 올라섭니다.

평소라면 소파 더러워진다고 화부터 낼 놈일텐데, 이번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머리를 뒤로 기댄 채 눈물만 계속해서 흘리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리고, 절 알아 차린 그의 입술이 살짝 깨물리는가 했더니 전, 어느 샌가
한영에게 꼭 끌어 안겨져 있었습니다.

헉…! 수, 숨막혀…!!!
으으… 제에발………
인간 수컷과 에로틱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진 않다구!!!

" 연규… 연규야… "

나, 난 연규가 아니야!
에…?
뭐? 연규…?
한영, 연규 보고 싶은 거야?
응? 그런 거야……?

한영은 절 꼭 끌어 안고 계속 울었습니다.
엉엉 우는 건 아니고 조금씩 흐느끼듯이 우는데
그 모습이 참 슬퍼 보입니다.

난 저도 모르게 그가 불쌍해져서 그만 연규한테 하듯이
얼굴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혀로 핥았습니다.
한영이 자기 손으로 눈물을 닦더니 날 보면서 말하기 시작합니다.

" 나… 두렵다… 연규가 돌아오지 않을까 봐… 정말… 정말, 두려워……
   녀석이 날 돌아보게 만들기까지 꼬박 삼년이 걸렸었는데…
   이렇게 한순간에 가 버릴까봐 두려워… "

삼년…?
이런 식으로 계속 굶게 되면 난 삼년, 아니 삼개월도 못 살고
비운의 슈나우저 인생을 마감하게 되는 게 아닐까…?

" 녀석과 난 같은 중고등학굘 나왔어… 고3 때, 난 중2던 녀석을 첨 봤지…
   바로 우리 고등학교 옆에 있는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어…
   정말 눈에 확 띄는 놈이었다… 깨끗하고… 게다가 젊은 나이에 애 낳다
   죽어버린 내 큰 누나랑 꼭 닮았었어…
   한번 웃으면… 그 미솔 보는 것만으로 미칠 것 같아…
   어떻게든 녀석과 마주쳐 보려고 고3 주제에 갖은 시돌 다 했지… "

배 고파…어떤 시돌 해서라도 뱃속에 뭔가 집어넣어야겠어….

" 그러다 대학을 갔지만… 녀석처럼 날 끌어당긴 사람은 남자고 여자고
   없었다… 어떻게든 녀석을 돌아보게 만들지 않으면… "

어떻게든 먹이를 꺼내도록 만들지 않으면….

" 녀석과 만나긴 했지만… 녀석은 여자들이 줄줄 쫓아 다녀서…
   젠장… 나한텐 좋은 형 이상의 관심이 없는 것 같았어…
   훗… 손금 봐 주겠다고 해 손이나 겨우 잡아 보고… 웃기지도 않았지… "

훗… 이렇게 배가 고프다니 웃기지도 않아….

" 근데, 만난 지 3년 된 어느 날 여름, 한강 고수부지에서…
   농구를 둘이서 하고 난 끝인데… 녀석이 그러는 거야…
   왜 자기 같은 고삐리를 상대하냐구…
   자기가 내 수준에 너무 뒤쳐지는 것 같아 괴롭다나…? "

먹어야 될 타임에 너무 뒤쳐지는 것 같아 괴로버…

" 그 때 말이지… 그 때… 녀석 눈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키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거다… 정말… 참을 수가 없어서… "

이런 상황이라면 누구나 쓰레기통이라두 뒤지고 싶을 거야…
정말… 참을 수가 없어….

" 얻어 맞을 각올 하고 키스했는데… "

얻어 맞을 각올 하고 저 식탁 위에 올려 놓은 콘플레이크라도 먹을까?

" 녀석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거다… 나… 정말 놀라서…  
   하지만 기뻤다… 살아온 중에서 젤 행복한 순간이었어…… "

살아온 중에서 젤 배고픈 순간이다….

" 그런데… 그런데… 어째서 잡지 못한 거지…? 나란 놈은 정말…
   어째서 그렇게 무방비하게 그 여자의 키슬 받아들인 걸까…
   정말은 그 여자한테 아무 느낌도 없었으면서…
   이대로… 연규가 가버리면 어떡할까… 하아… 정말 나, 어떡하면 좋을까…
   개 자식아… 너도 연규 보고 싶잖아… 말 좀 해 봐……… "





10.

아마 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전 한영의 넋두리를 듣다 지치고, 한영은 말하다 지쳐서 어느 샌가
둘 다 몸을 맞댄 채 잠들어 버렸던 것 같습니다.

이른 아침 햇살이 베란다 사이로 환히 들어 오는 걸 깨닫고 잠을 깼을 때,
먼저 발동한 것은 후각이었습니다.
너무너무 그립던 체취가 가까이에 있었던 것입니다.

( 연규…?! )

하지만 연규는 날 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소파에 기댄 채 힘없이 잠들어 있는 한영의, 눈물이 말라붙은 얼굴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습니다.

" …바보…… "

연규의 입에서 가느다랗게 이런 소리가 새어 나오고, 그리고 그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연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 댑니다.

" 바보… "

입술을 떼고서 다시 한번 중얼거리듯 말한 연규는 옆에 앉은 채,
자신을 보고 있는 절 알아차리고 예의 트레이드 마크 같은 따뜻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리곤 절 껴안습니다.

" 고마워… 한영형을 지켜 줘서… 한영형 곁에 있어 줘서…
   널 데려와서, 네가 있어서 정말… 정말… 정말 다행이야…… "

연규의 품은 아주, 아주, 포근합니다.

연규… 돌아와서 기뻐……

그 품에서 행복감에 젖어 있던 전, 한영이 눈을 뜬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먼저 알아차린 사람은 역시 연규였지요.

한영을 본 연규가 질책하듯 나직하게 말합니다.

" 술 냄새가 지독해… "

하지만 한영은 그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은 채, 멍하니 연규의 얼굴을
보고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더니 쉰 음성으로 말했습니다.

" 어제 윤미영씨 만났다… "

" ……. "

연규의 입술이 굳어지는 게 보입니다.

" 당신한테 전혀 감정없다고 했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구… "

" 형… 설마… "

" 남자라고 말했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 목숨보다도 소중한 존재라고 말했다… "

" 바보… "

한영을 응시하는 연규의 눈에 눈물이 고입니다.

" 나도… 나도 경화한테 얘기했어…
   나, 형을 사랑한다구… 형 아니면 죽어도, 죽어도 안된다구…
   집 나가 친구 집에 있는 동안 형이 보고 싶어서 죽을 것 같아…
   형에게 아무리 상처입더라두 곁에 있어야겠다구…"

한영이 손을 뻗어 연규의 뺨을 만집니다.
어느 샌가 눈물이 흐르고 있는 투명하고 아름다운 얼굴…

그리고 두사람은 서로를 끌어당겨 안고, 그리고 키스하기 시작합니다.

" 사랑해…. "

마치 경건한 의식과도 같은… 길고 긴 딥 키스를…….
오래도록… 오래도록… 오래도록…

『 배…고…파…!!! 』





11.

" 이 개새끼가 어디 숨어있는 거야? 연규…! "

한영의 간신히 자신을 눌러죽인 듯한 외치는 소리.
한영이 있는 곳으로 가는 듯 연규의 발소리도 들려옵니다.

" 또 쌌단 말이다. "

" 둥아… 둥아…! "

저는 또 다시 침대 밑에 숨어 있습니다.
아까 방 밖으로 나오려 하다가 한영이 제가 싼 오줌을 밟는 것도,
열받아서 식식대는 것도 다 봤습니다.

" 휴, 너 또 거기 있냐… 한영형 무지 화났어. "

" 끼잉… "

" 얼릉 나와. 숨어 있다고 해결될 문제 아니니깐, 어서. "

한영이 식식거리면서 화장실에서 나옵니다.
발을 씻고 나오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절 봐도 이젠 때리지 않습니다.
성격 참, 조~ 아졌습니다.

" 이놈의 개새끼 땜에 내가 늙는다, 늙어. "

" 둥아, 너 갑자기 또 왜 그래. 그래도 형, 이건 어쩌다 있는 일이잖아. "

" …흥. "

한영이 고개를 돌리며 애써 화난 표정을 지어 보입니다.
연규가 킥킥 웃습니다.
나도 겸연쩍게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 솔직히 말해 봐, 형. 형도 둥이가 귀염둥이라고 생각하지? "

" 흥, 먹둥이. "

" 그 먹둥이를 나 없는 동안 굶겨서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게 만든 건
   누구지? 형, 나 없을 때 둥이가 오줌, 마루에 싼 적 있어? "

" …없어. "

" 거 봐. 이 녀석 뒤치닥거린 내가 다 하는데…  
   정작 형을 괴롭힌 적은 한번도 없잖아. "

" ……. "

" 큰 개들 같은 일은 못해두, 난 둥이가 최고야. "

한영을 지켜 주었으니까! 그지?(으쓱으쓱)

" …알지? "

응, 알아. 그러니까… 밥…

" 오늘 아침은 뭐냐? "

" 아아, 토스트에 쨈 발라 먹자구. 나두 오늘부터 개강이라 바뻐. "

" 우… 매일 다양한 아침을 해주던 시절이 그리워…. "

" 어서 먹기나 하슈. …여기 시리얼. 자, 둥이도 밥 먹어. "

말없이 시리얼에 우유를 부어 먹고 있던 한영이 생각난 듯 말합니다.

" 참, 경화란 애… 놀랬겠어…… "

" 내가 형 좋아한다는 사실 땜에? 남자라서? "

" …응. "

연규의 반문에 조금 쑥스럽게 대답하는 한영.

" 전혀 놀라지 않던데? "

" 어…? "

" 물론 말한 당일은 좀 울더라구. 근데 한참 울더니, 나한테 하는 말이
   우리가, 그… 뭐래드라… 야이? 예이? 오이? 하튼 뭐, 그런 게 있대.
   그런 소설이나 만화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들 같다나? "

" 그게 뭐야, 대체. "

" 나도 몰라. 그러고 나더니 히죽대면서, 집에 가서 우릴 모델로  
   소설이나 한편 써야겠다고 하더라구.
   자기가 그 야인지 오인지 하는 인터넷 사이트 쥔장이래나 뭐래나.
   건 그렇구, 윤미영씨는 뭐래? "

" 아아… "

한영의 얼굴이 조금 발그레해진 것도 같습니다.

" 내가 얘기한 그 날은 멀쩡히 수긍하는 것 같더니만,  
   다음 날 술취해 갖고 나 야근하는 회사 앞으로 왔어.
   엉엉 울면서 하는 말이, 자기가 좋아한 남자들은 다 딴 「남자」를
   좋아하고 있더라나? 내가 첨이 아니라더군, 그런 말한 상대가. "

" 헤에… "

" 걱정 마, 로펌에 있는 친구 놈 하나 소개시켜 줬다.
   지금은 둘이 좋아 죽을라 그러더라. 조만간에 양복 한벌 해주겠다나? "

그런 얘기를 나누면서 두사람은 마주 보고 웃었습니다.

나요?
난 밥 먹느라 바빠서… 얘기는 무슨…….



한차례 가벼운 폭풍이 분 후, 그렇게 우리 셋은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인간이란 참 희한하고 희한한 동물이라구요.
하지만 그렇기에 인간 옆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 펫들은  
즐거운 것입니다.
특히 나, 슈나우저 둥이의 주인들은 그 인간들 중에서도 별종이죠.

하지만 그런 그들도 나름대로의 행복을 즐길 권리가 있다고 전 생각합니다.
우리들 개와 달리 인간은 종족 보존만을 위해 섹스하진 않는 동물이니까  
좀 더 다양한 사랑을 하는 것이 외려 당연하지 않을까요?

언젠가 보석형을 만나면 이런 제 경험과 견해를 털어 놓고
아직 형이 보지 못한 세상도 많이 존재함을 알려 주고 싶습니다.

어쨌든 여러분께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아주 간단한 겁니다.

전 제 주인들을 좋아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아끼며 즐겁게 살아가는 그들 두사람을 너무너무 좋아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영원히… 그들이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말이죠…
음… 사소한, 작은 소망을 한가지 덧붙인다면…  

간식을 좀더 많이, 그리고 자주 주었으면 해요.
우유도요♥

제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입니다.
끝까지 읽어 주신 여러분, 진짜진짜 복 받으실 거예요!!!

왈왈(안녕히)-.

                                                                    - The End -    






<슈나우저 이야기>를 올리며



쓰면서도 즐거웠던 네번째 소설입니다.
허접하지만, 뭐랄까… 가볍게 쓸 수 있어 좋았다고나 할까요?

전 개를 좋아합니다.  
큰 개 중에선 콜리와 시베리안 허스키, 진돗개를,
작은 개 중에선 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미니어처 슈나우저와 페키니즈를
좋아합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미니어처 슈나우저 둥이의 모델은
제 일본인 친구 하나짱의 애견인 「긴타(金太)」이며,  
둥이의 인생선배인 페키니즈 보석의 모델은 남산 H 미용실에 있는
「미우」랍니다.

음, 다음에 올릴 소설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 확신할 수는 없지만 -
<전학생>이란 제목의 소설이 될 것 같습니다.
흔한 제목입니다만 달리 근사한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군요.

주인공은 초등학교 5년생.  
그렇다고 쇼타콤에 관한 소설이라고까진 할 수 없고,
(조금은 그런 구석도 없잖아 있지만)
그저 평범한 사랑 이야긴데 주인공이 다소 어릴 뿐입니다.
다만 조금 어두운 내용이 될 듯 싶습니다.

언제나 읽어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소설 올리는 게 즐겁습니다.
멜이랑 메모 남겨주시는 분들, 특히나 감사드려요.

야클 여러분들,
그리고 야클 멤버는 아니지만 이곳에 자주 들르시는 딴 분들께도
언제나 좋은 일만 생기길 빌며.


                                                   BabyAlone

세잎클로버   2004/12/29

왠지 연규나 한영의 시점으로도 상상이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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