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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yAlone
사일런트 메시지

[창작/단편]


                       SILENT MESSAGE(사일런트 메시지)

                                   - 33333 리퀘스트 -

                                                                      
  
                                                       Presented by BabyAlone
                                          








사랑하는 오빠에게


오빠, 잘 있어? 건강하지?

지난번 면회 때 새까맣게 그을린 오빠를 보고
나, 촌스러워졌다며 계속 쪽만 줬지만 실은 돌아서면서 왜 그리 가슴이 아프던지.

대한민국 남자들은 다 가는 거라며 오빠는 내 앞에서 가슴을 폈지만,
막상 입대 날짜가 다가오면서 얼마나 속이 탔을지 나, 잘 알고 있었어.
내색은 안 했지만 말이야.
군대 간 동안 실컷 바람 필 거라 농담만 하고, 섭했지?

혹시 걱정하고 있다면, 그럴 리야 없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농담이었으니 안심하셔.
오빠가 군화를 거꾸로 신는다면 모를까,
지금의 난 숙제에 치어서 비구니 같은 매일을 살아가고 있으니.

음… 그렇지만 이건 분명히 말해 둘게.
나, 오빠가 군대 갔다고 해서 마냥 오빠 생각만을 하고 있지는 않을 거야.
무슨 소린지 알지?
2년 반 동안 오빠가 성숙해져 있을 만큼
나도 여기서 내 자신을 키우려고 생각하고 있다구.

그건 그렇고 난 지금 '인생미학'에 앉아 있어.
오빠랑 자주 들렀던 그 카페 말야.

커피 값이 좀 만만치 않긴 하지만,
가끔씩 들르면 왠지 오빠랑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아서
괜히 친구를 꼬시거나 혼자 와서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곤 해.
우습지?

어쨌든 난 지금부터 방금 전에 이 카페에 앉아서 본 일을 오빠에게 얘기하려고 해.
여느 때와는 조금 다른 편지가 될 지도 몰라. 괜찮지?

때는 저녁 6시 15분 전.
조규찬의 'Baby, Baby'가 흘러나오고 있었어.
야외에 앉아 있기엔 사실 조금 추워졌긴 하지만
바깥 정원에도 테이블이 있는 이곳은, 여전히 밖에 나와 있는 연인들이 많아.

안이건 밖이건 혼자 있는 사람은 나 뿐. 치잇, 왠지 썰렁해지는데…?
역시 실내로 자리잡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게 하나의 위안이 됐지.
앗, 그래도 나 외로운 거 아니야. 혼자 있어도 하나도 안 외로워. 정말이야.

아니, 나만 혼자 앉은 건 아니구나.
한구석 의자에 이 카페의 주인 아저씨도 혼자 계시네.
아저씨의 음악 선곡은 언제나 일품이야. 그래서 이 카페 단골이 된 거긴 하지만.

나랑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으셨지. 나도 웃으면서 가볍게 고개를 까닥여 보였어.
그러자, 아르바이트하는 남자애를 손으로 부르더니 뭐라고 말씀하시더군.

" 주문하신 헤이즐넛 나왔습니다. "

보고 있던 책을 치우고 테이블을 보니,
커피 말고도 옆에 티라미스 케익이 놓여 있었어.
의아한 표정으로 서빙하는 사람을 올려다보니,

" 주인 아저씨가 서비스해 드리래요. 단골이시니까. "

라고.
와아, 좀 우울했었는데 그 우울함이 싹 날아가 버렸어.

오빠 알지? 여기 케익 정말 맛있는 거.
오빠랑 나랑 일부러 오곤 했잖아, 케익을 먹고 싶어서.
모른 척 다른 곳을 보고 앉아 계신 아저씨를 다시 한번 보고 웃어 버렸지.
케익을 포크로 떠서 입에 넣으려던 순간, 때마침 누군가가 카페로 들어왔어.

……아.

난 저도 모르게 포크를 그대로 내려놓고 말았어.
왜인진 잘 모르겠다.
으음…… 굳이 설명하자면 뭐랄까…….
그래, 왜 지나가다가 쇼 윈도우에 예쁜 물건이 진열되어 있거나 그러면
저도 모르게 시선이 그쪽으로 가고 발이 멎게 되잖아.
그 때 내 눈이 그 사람에게 멈춘 건 그런 것과 비슷한 이유였달까.

정말 묘하게 아름다운 사람이야.
나보다는 조금 어린 것 같은데, 얼굴은 작고 키는 중간, 아니 중간보다는 크려나?
그리고 가무잡잡한 피부에다, 그런데 전혀 촌스럽지 않더라구,
눈이 무척 예쁘고 입술은 색이 진하고.

그런 것보다 하여튼 눈에 띄는 인상을 가진 남자, 아니 소년이라고 해야 하나.
이 카페에는 비교적 세련된 사람들이 많지만 저런 식의 얼굴은 그리 흔치 않기에
나 뿐 아니라 딴 사람들도 다 한번씩은 그를 쳐다보더라.
면바지에 보통 남자들한테는 잘 어울리지 않을 연두색 니트를 입었는데,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어.

앗, 딴 남자에 대해 이렇게 장황하게 묘사했다고 해서 삐지는 건 아니겠지?
오빠, 알잖아. 나 원래 예쁜 사람이면 남자고 여자고 눈 돌아가는 거.

분명히 말해두지만 저 남자애는 내 타입은 절대 아냐.
그렇게 매끈하고 부드러운 선을 가진 사람은 내 스타일이 아니라구.
난 조금 러프한 인상의 사람을 좋아해. ……오빠처럼(^-^).

굳이 말하자면 동생이라면 정말 이뻐해 주고 싶을 것 같은 남자애였어.
그렇다고 여자애 같이 예쁜 건 아닌데… 약간 중성적인 인상.

반짝거리는 느낌이었어.
이제 막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날씨.
그를 둘러싸고 있는 공기가 투명하게 반짝이는 듯한 기분.

그런 사람을 본 건, 꼭 두 번째야.
첫 번째가 누구냐구? 몰라, 몰라.

뭔가 쑥스러운 듯 주변을 조심스레 둘러보며 소년은 카페로 들어왔어.
그리곤 다른 자리들도 비어 있음에도
굳이 입구에 가장 가까운 테이블에 머뭇거리면서 앉았지.

서빙 보는 사람이 다가가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어.
난 그 테이블 바로 옆에 앉아 있던 터여서 그 애가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
조금 놀란 건, 목소리가 약간 어눌한 느낌이었기에.
마치 말을 배운지 얼마 안된 어린애가 내는 듯한 소리였달까.
……그랬어. 귀여운 얼굴과 어울릴 듯 어울리지 않을 듯, 그런 소리.

" 핫, 초코요. "

앗, 시키는 것도 귀엽잖아.
난 저도 모르게 키득거리며 웃었어.
가까운 테이블에서 낸 소리라 들렸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금새 입을 가렸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애는 내 소리를 듣지 못한 듯 팔목에 찬 시계를 들여다봤어.

6시 5분 전.
그리고 그는 그런 식으로 시계와 입구 쪽을 번갈아 가며
약간 불안한 눈빛으로 보고 있었지.
여기서 누구를 만나려는 듯 싶은데 은근히 긴장되는 건지도.

어쩌면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그 기분, 이해가 가거든.
나도 오빠 면회 가거나 오빠가 모처럼 휴가를 나와서 만날 때마다
괜스레 긴장이 되기 때문에.
왜 그런진 모르지만.

내가 케익을 반쯤 먹었을 때, 그제서야 소년이 주문했던 핫 초코가 나왔고
때마침 다시금 입구에 누군가의 모습이 비쳤어.
그리고 그는 자신의 앞에 놓여진 핫 초코를 보는 것보다 먼저 입구 쪽을 보았지.
기대에 찬 시선으로.

입구에 들어 온 건 키 큰 남자였어.
오빠랑 비슷한 정도인 것 같으니까, 한… 184?
굉장히 잘생긴 얼굴이었지만, 그런 것보다 더 눈에 띈 이유는
그가 군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

그래, 그 남자는 군복을 입고 있었어.
갓 휴가를 받아 나온 듯 군복을 그대로 걸친 채 카페 입구로 걸어 들어왔지.
그리고, 남자는 이내 환하게 웃었어.
입구 근처에 앉아 있던 연두색 니트의 소년을 발견하고.
소년도 이끌린 것처럼 기쁘게 미소지었지.

" 미안. 많이 기다렸어? "

맞은 편에 앉자마자 한 남자의 말에, 소년은 가만히 고개를 흔들었어.

" 커피 주세요. 아,  고구마 케익도요. "

남자가 주문하는 동안에도 소년은 수줍은 미소를 담은 채 그를 보고만 있었지.
그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젊은 남자도 조금 쑥스럽게 웃으며 말했어.

" 그만 일이 생겨 좀 늦게 나와야 하게 됐지 뭐냐.
   집에 들러 갈아입을 시간도 없어 그냥 군복 입고 뛰어왔어.
   중간에 들러서 사야 할 것도 있었고. "

" ……. "

소년은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저 정이 담뿍 담긴 시선으로 상대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어.
그러는 사이에 남자가 주문한 커피와 케익이 왔고,
남자는 고구마 케익이 담긴 접시를 소년 쪽으로 밀어 주면서 싱긋이 웃었지.

" 먹어. 너 이거 좋아하잖아. "

" ……. "

소년도 웃더니 포크를 집어 남자의 손에 쥐어주었어.
형도 드세요, 뭐 이런 뜻이겠지?
남자도 다시 한번 웃고, 그리고, 두사람은 동시에 케익을 떠서 입에 넣었어.  
참으로 보기 좋은 광경이었어.

두사람, 무슨 관계일까. 친척? 선후배? 그냥 아는 형 동생 사이?
난 문득 궁금해졌어.
전혀 닮지 않은 두사람은 그러나 정말 어울리는, 한마디로 그림이 되었기에.

" 이거, 받아. "

문득 생각이 났는지 군복을 입은 남자는,
옆에 내려 놨던 종이 봉투에서 뭔가 포장된 것을 꺼내 내밀었어.
어, 하고 놀란 표정으로 소년은 선물을 받더니,
머뭇거리며 상대를 보다 남자가 재촉하듯 턱을 으쓱해 보이자
그 때서야 포장을 뜯기 시작했어.

" ……? "

호기심에 젖은 나는 커피가 식는 것도 잊고
들키지 않도록 조심스레 그쪽을 내심 주시하고 있었지.
남자가 남자에게 주는 선물이란 뭘까.
뭐 특별한 건 없으리란 것도 알지만,
그래도 괜히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두사람이라서.

선물은 좀 의외의 물건이었어. 뭐였을 것 같아?
그것은 말야, 전자수첩처럼 생긴 작은 단말기였어.
좀처럼 보기 힘든 거라 나도 저게 뭘까 생각을 하며 그쪽을 슬금슬금 보고 있었지.

" 이건 에어포스트, 라는 거야. "

" ……? "

말을 미처 듣지 못했는지 소년이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남자가 손을 들어 빠른 속도로 동작을 해 보였어.
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동그랗게 모으기도 하고,
아무튼 움직이는 속도가 무척 빨랐지만
그것만 보고도 소년은 금새 알아들은 듯 고개를 끄덕였어.
그러다가 이내 뭔가를 깨달은 듯 눈썹을 찌푸렸지.
오른손 손가락으로 원을 만들어 위로 올려 보였어.

오빠도 이젠 알았겠지?
그래, 두사람은 수화로 대화를 하고 있었던 거야.
아마 소년 쪽이 귀가 안 들리는 것 같았어.
처음 주문했을 때의 어색한 말투도 그렇고,
남자의 입 쪽을 내내 주시하는 모양도 그렇고.

아마 다른 사람의 말은 입 모양으로 의미를 파악하는 듯.
그렇게 알아듣는 것도 대단하고,
거기다 귀가 안 들리는 사람이 입으로 말까지 할 수 있다니
정말 굉장하다 생각지 않아?

" 안 비싸. "

남자는 그렇게 대답했어. 그리곤 바로 덧붙였지.

  " 오늘처럼 늦을 것 같은 때도 맘대로 연락할 수 없는 게 싫어서 산 거야.
    내가 답답해서. 이거 봐.
    보기엔 그냥 전자수첩처럼 생겼지만,
    팩스나 핸드폰에도 메시지를 넣을 수 있어.
    물론 내 핸드폰에서 여기로도 문잘 보낼 수 있고.
    ……맘에 안 드니? "

소년은 고개를 흔들어 보였어.
약간 흐려진 표정으로 손을 들어 자신을 가리키다 생각난 것처럼 입을 열었지.

" 나는…, 아무, 것도……. "

" 편지, 많이 보내줬잖아. 그거면 돼. 충분해. "

충분하지 않아요, 라고 말하듯 소년은 힘을 주어 다시 한번 고개를 흔들었어.

" ……. "

소년의 굳은 표정을 보자,
남자는 조금 생각을 하는 듯 가만히 있다가 씨익 웃었어.
옆에서 보는 사람까지 기분 좋아질 듯한 미소였어.

" 그럼, "

하고 입을 열었지.
그리곤 또박또박 끊어서, 하지만 나직하게 말했어.

" 네, 목소리를, 줘. "

" ……? "

소년은 눈을 크게 뜨며 되묻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
남자는 다시 한번 되풀이했어.

" 목. 소. 리. "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목소리를 달라니.
남자는 커피를 한모금 마시곤, 소년의 눈을 똑바로 보며 찬찬히 말했어.

" 다음 편지 보낼 땐 종이에 쓰지 말고, 테입에다 녹음해서 보내 달라구.
   짧게 말해도 돼. 물론 힘들면 안 해도 되고. "

수화를 간간이 섞어가며 그는 설명했지.
소년은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조금 쑥스럽게 웃더라. 눈이 반짝거렸어.

" 할 수 있겠어? "

끄덕.
쑥스러움을 담은 동작으로, 하지만 기꺼이 고개를 움직여서
소년은 긍정을 표시했지.
그리고 두사람은 정말로 기쁜 듯이 얼굴을 마주하고 미소했어.
보고 있는 사람조차 무심코 웃게 만들만큼 행복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런 뒤 케익을 다 먹더니, 계산하고
사이좋게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카페를 나갔지.
계속 두사람을 살피고 있던 난,
두사람의 뒷모습이 완전히 시야에서 벗어난 그 때가 돼서야
겨우 정신이 들어 주위를 둘러봤어.

그리곤, 나와 마찬가지로 저 두사람을 계속해서 살피고 있었던 듯
막 문에서 시선을 떼려던 참인 주인 아저씨와 눈이 딱, 마주쳤지.
우리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기분 좋게 미소지었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흐뭇함을 담아서.

오빠는 어때?

난, 아마도 그 두사람은 보통 사이가 아니었을 거라 짐작해.
넘겨짚는 걸 수도 있지만
역시 내 육감은 두사람이 '연인' 사이일 거라고 말하고 있어.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오빠는 그걸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아닐 거라 생각하니까
이렇게 편지에 적을 수 있는 거야.

'인생미학'의 주인 아저씨가 이반이란 사실을 말해 준 건 오빠였고,
그걸 듣고 기분 나쁘다고 말한 날 야단쳐 준 사람도 오빠였지.
그런 오빠를 만난 건 내 인생의 행운이라고, 그렇게 생각해.

고마워.
갑자기, 굉장히 기뻐져 버렸어.

문득 고개를 들어 카페 창 너머로 비치는 밖을 바라보니,
이미 어둑해져 가고 있어.
이제 슬슬 일어서야 할 시간이 된 것 같아.
혼자 보낸 금요일 오후는 조금 고독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굉장히 달콤하고 굉장히 따뜻하기도 하다고, 지금의 난 느끼고 있어.

참, 다음 주에 오빠 나온댔지.
생각하니 괜스레 벌써부터 두근거리네? 입이 찢어지려는 걸 참고 있어.
그 땐 나도 '목소리'로 잔뜩 얘기 할 거니까, 오빠도 얘기 많이 해줘야 해,
알았지?


                                                            오빠의 귀염둥이(^-^)가.



                                                                                      END.





신청자 : karen님(33333)
리퀘스트 : SILENT 시리즈 번외편

생각한 스토리는 두가지였지만, 결국 이걸로 결정했습니다.
새로운 등장인물 없이 가볍게 나가는 게 편할 것 같아서ㅡ.

레어넘버 프레젠트는 새드로 해 달라는 요청이 없는 한
무조건 해피엔딩인 스토리를 쓰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P.S
게스트 소설방에 멋진 글이 너무 많이 올라와서 감격에 젖어 있는 중입니다.
올해는 공개동에도 많은 글을 UP할 수 있을 지 모른다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 BabyAlone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4-08-23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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