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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yAlone
사일런트 나이트 (하)

[ 제 5 편 ]





12. 22th, December IV

형이 의자에서 일어서, 앉아 있던 날 일으켜 세웁니다.
내 얼굴을 손으로 붙들어, 자신의 입술을 겹칩니다.

따뜻하고, 상냥한… 그러나 그것만은 아닌, 갈증을 참아왔음을
역력히 느낄 수 있는 키스.
하지만 아직은 내 마음을 탐색하려는 듯, 가볍게 조금씩 탐하는….

그에 반응해 내가 입술을 열자 내 안으로 그가 들어와
치열을 한번 부드럽게 훑곤, 이어 내 것과 얽히기 시작합니다.

머릿 속이… 안타깝게 흐려집니다.
아래로부터 정체불명의 아쉬운 무언가가 의식을 휩쓸어,
난 저도 모르게 낮은 소리를 흘리며 그의 옷자락에 매달립니다.
그러자 그는 입술을 뗐습니다.

충족감과 그에 비례해 점점 커져만 가는 미묘하고도 순수한 욕구.

그 욕구에 어쩔 줄 몰라하는 날, 그는 번쩍 들어 안고선
거실을 지나 침대가 놓여 있는 방으로 가,
침대 위에 조심스레 내려 놓습니다.

눕혀진 내 위에 몸을 숙인 그의 머리를 이번엔 내가 끌어 당겨,
우리 두사람은 다시 입술을 겹치고 이번엔 아까보다 더 깊게  
서로를 탐합니다.

타액이 입 밖으로 흘러 넘치도록 서로를 깊게 깊게 갈망하는 동안,
저 아래 있던 내 욕구의 상징이 어느 사이, 부끄러운 형태를 갖추고
말았습니다.

그도 그걸 알았는지 조심스레 내 웃옷을 벗기곤,
자신도 위에 입고 있던 얇은 브이넥 스웨터를 끄집어 올려 벗어 버립니다.
근육이 적당하게 잡힌 매끈한 상체가 드러나자,
내 눈과 정신이 아찔해집니다.

길고 탄탄한 목과 그 위에 적당한 정도로 돌출돼 있는 목젖.
그리고 근사한 각을 그리고 있는 어깨.
밋밋한 일자가 아니라 근사한 굴곡을 그리고 있는 팔의 라인.
그리고… 허리와 골반을 연결하는 도발적인 부분…
지독히 남성적이고, 지독히 고혹적인.

뜨겁게 닿아 온 입술이 목선을 타고 가슴까지 흘러 내리는 동안,  
그의 손이 내가 입고 있던 곤색 면바지 버튼에 닿고
그리고, 지퍼를 내려 벗깁니다.
면바지와 함께 푸른색 박스 팬티까지 내려가,
난 수치스러울 만치 적나라한 모습으로 그의 시야에 노출되고 말았습니다.

그건 욕구와 다른 부끄러움을 내게 일깨워 주어,
난 자신은 듣지 못할 달콤한 호흡을 토해내며,
발그레해진 얼굴을 시트에 묻습니다.

그가 미소지었는진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도 자신의 하체에 걸치고 있던 진한 청색의 진팬츠를 벗어,  
침대 아래로 던져 버렸습니다.  

그리곤 시트에 닿아 있던 내 얼굴을 돌려 자신을 보게 하곤
속삭이듯 입술을 움직입니다.

" 봐… 나도 똑같아… 이젠, 안 부끄럽지…? "

가슴이 미친 듯이 고동칩니다.  
나신이 공기 중에 그대로 드러나 있음에도, 내 안 깊숙한 곳에서부터
생성된 열기가 한기 따윈 전혀 느껴지지 않게 만듭니다.

입술이 귓불에 닿아 오고,
손이 허벅지 사이의 중요한 부분에 닿아 서서히 움직이자,
곤란할 정도로 오싹한 감각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날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 으읏… "

들을 순 없지만, 분명 내 입에선 달짝지근한 소리가 흘러 나왔을 겁니다.
그의 손이 날 감싸고 찬찬히 움직이자,
어찌할 수 없는 감각이 그곳을 둘러 싼 섬세한 신경을 자극해,  
난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숨을 몰아쉬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신음소리를 막듯 자신의 입으로 내 입을 다시 한번 덮더니,
혀로 안을 한번 스치듯이 훑곤 손을 아래서 뗐습니다.

" 아…? "

아쉬움의 감각에 난 감고 있던 눈을 뜨고 그의 얼굴을 쳐다 봅니다.
그는 그런 날 보곤 손을 들어 이마에 흘러내린 앞머리를 뒤로 넘겨 주곤
빙긋이 웃습니다.

그리곤 내 목덜미에 입을 다시 대서
이번엔 아까보다 좀더 빠른 속도로 아래로 스쳐 내려 갑니다.
유두를 지나, 배꼽을 한번 훑고…
그리고…
그리고…

( 아… )

뜨거운 숨결이 날 덮친 듯한 감각.
그러나 오직 실제는 한부분만이 열기에 감싸여 있을 따름입니다.

그의 입에 내 것이 넣어져 있단 사실에, 난 처음엔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지만, 잠시 후엔 그럴 여유조차 잃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 으읏… "

그의 혀는 찬찬히… 부드럽게… 내 것을 머금은 채
반복해 더듬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나치게 격정적인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 자극적이었습니다.
뜨겁고 부드러운, 그러면서도 모든 이성을 흐트릴 듯한 감각에
난, 그저 허리를 비틀 뿐.

손으로 쥐였을 때완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충족감…
그리고, 영원히 이런 감각이 계속되길 바라는,
이루어질 수 없는 욕망에 대한 안타까움…

그 안타까움 따윈 깨끗이 무시한 채, 그는 용서없이,
그러나 미칠 듯한 행복감을 내게 선사합니다.

" 아… 앙… 아… 아앗…! "

수치스러웠지만… 도저히 멈출 수 없을 정도의 환희에
내 시야가 뿌옇게 흐려진 그 순간.

모든 절제를 잃어 버린 난, 그만 그대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자극으로 긴장돼 있던 전신의 힘이 일시에 풀리자 방금 전까지
저도 모르게 움직이고 있던 허리와 팔도 축 침대 시트에 늘어집니다.

" 좋, 아…? "

윤곽이 뚜렷하면서도 전체 라인은 매끄러운 조형이
날 내려다 보며 말하는 것이 보입니다.
난, 힘이 빠져나간 고개를 움직여 끄덕였습니다.

그러자 날 내려다 본 얼굴은 행복하면서도 어딘가 아쉬운…
그런 미소를 비칩니다.  
그 미소에 정신이 들어 몸 아래로 시선을 내리자, 욕구로 가득 찬 무언가가
시야를 메꿔 난 그만 눈을 옆으로 하곤 다시금 얼굴을 붉히고 말았습니다.

머뭇거리며 눈을 드니, 그도 입술을 깨물며
난감한 표정으로 날 보고 있습니다.
그 얼굴이 뭘 원하는지 금새 알아차린 난,
수줍게 웃으며 다시금 가볍게 끄덕여 보였습니다.

- 괜. 찮. 아?

그의 입술이 움직여,
난 날 내려다 보는 곤혹스런 눈동자를 뚫어지게 응시한 채 팔을 올리곤,
그 단정한 입술에 검지 손가락을 갖다 댔습니다.

그리곤, 또 끄덕입니다.

( 으응… 괜. 찮. 아. 요. )

끄덕거림을 기다렸던 것처럼 그의 입술이 내게로 내려왔지만 그것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아까보다 더 부끄러운 장소로 침입해 왔습니다.
뜨거운 혀가 두개의 둔덕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타액을 바르기 시작합니다.

" …아… "

수치감에 꿈틀거렸지만, 이어 그가 한 한마디와 그 안타까운 표정에
그만 반쯤 일으켰던 몸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 …되도록, 안 아프게 하고 싶어… 알겠지…? "

그가 얼마나 날 배려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는 한마디에
나의 몸은 다시금 달아 올라, 그를 원하게 됩니다.

다정한 손길, 부드러운 눈길, 내 몸에 스치는 단단하고 아름다운 육체.
따뜻한 액체가 그곳을 적셔 들어가자 쾌감과는 다른 야릇한 느낌이 들었지만
이성으로 몸을 누르고 꾹 참아냅니다.

그렇게 한동안 온통 타액으로 적셔져 질퍽한 기분마저 느껴지는 그곳에
드디어 이물질이 침입해 왔습니다.

" ……! "

" 아파…? "

손가락을 느끼고 그 찌릿한 기분에 몸을 떤 내게
그가 걱정되는 표정으로 물어 와, 난 고개를 살짝 젓습니다.

…괜찮아요.

아직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몸은 긴장을 감출 수 없나 봅니다.

하지만 그 긴장감은 이내 그의 손가락이 안을 헤집기 시작하자,  
묘한 감각에 의해 지워지고 말았습니다.

…굳이 쾌감이라고까진 할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고통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런 감각.
이물감만은 어쩔 수 없지만… 동시에 한없이 야릇한…….

그가 아주 서서히 움직였던 탓도 있을 테지만… 결국 난 그의 팔을 붙든 채,
그가 다가오기를 어느 샌가 요청하고 있었습니다.


그를 원해…
그가 들어 오길 원해…
그와 하나가 되길 원해…


" …돼? "

안타까움을 읽었는지 그가 시선을 박곤 물어 옵니다.
미소지으며 수줍게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돌려져 그를 받아들일 준비를 갖춘 내 입구로
그가 서서히 침입해 옵니다.
놀라우리만치… 뜨겁게 달아오른… 나의 그가.

" ……! "

충분히 기다리고 준비한 탓에, 언젠가 같은 통증은 거의 없었지만
조금 쓰린 듯한 감각과 묵직한 이물감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를 내 안에 받아들인 충족감은
그 거북한 감각을 지우고도 남을 정도의 위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얕게 삽입한 상태에서 그가 조금씩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그가 내 안에서 존재를 드러내고 있단 사실 때문일까,  
타액으로 적셔지고 손가락으로 건드려져
어느 샌가 민감해질 대로 민감해진 내부는,
난생 처음 느끼는 감각에 우선 당혹하고 이어 즐길 준비를 끝냅니다.

" ……. "

그가 고개를 숙여 내 얼굴을 들여다 보는 것이 느껴져
난 눈을 뜨고 마음에서 우러 나오는 미소를 보냈습니다.
안심한 듯 기쁘게 웃는 모습이 보이고,
마음의 여유를 찾은 듯 얕게 수직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 동작이 조금은 안타까워 저도 모르게 몸을 흔들어 올리자,
기다렸던 것처럼 작게 원운동을 그리며 깊숙히… 들어 옵니다.

깊숙히… 깊숙히… 더… 더… 깊게…….

" 앗… "

그것은 갑작스런 쾌감을 선사해, 난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리고 맙니다.
그것은 마치… 아주 오랫동안 내 안에서 잠들어 있던 신비스런 뭔가를
깨워 낸 듯한… 그런….

그리고, 난 무심결에 그 작은 진동에 맞추어 몸을 들어 올린 채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느꼈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그가 저도 모르게 꿈틀거리며, 그의 욕구를 압박하고 있는 내부를
아까보다 좀 더 강하게 밀어 붙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내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한 그는, 거친 호흡과 함께  
내게 정신을 잃을 정도의 세찬 자극을 가해 왔습니다.

" 아… 윽… "

" …아파? 아프면 말해…… "

걱정스런 표정의 형을 난 조금은 원망스럽게 쳐다 봤습니다.
말과 달리 계속해서 강한 압박을 보내는 그가 사랑스러우면서도 얄밉습니다.


그런 건 묻지 말아요…
이런 식으로 아프다면, 평생 아파도 좋으니까…


" 아, 아… "

자신 안에 언제 이런 힘이 숨어 있었나 싶을 정도의 격렬한 욕구… 쾌감…

머릿 속이 어지럽게 뒤섞여 들어갑니다.

땀과 타액에 젖은 살갗의 부딪침…
미칠 듯이 달아 오르게 만드는, 뜨겁게 녹아내리는 달콤함.
마음이 있고… 몸이 그에 맞춰 하나로 합쳐질 때의 그 경이로움…
전혀 더럽혀지지 않은, 순백의 방탕함.


아… 이대로… 이대로… 지금이 계속되길 바래…


정신없이 읊조리는 내게 그의 입술이 다가와 겹쳐지고,
부드럽게 더듬습니다.

위아래서 동시에 흘러 나오는 액체가 서로의 몸을 적시고 마음을 적셔,
나란 존재가 물거품처럼 젖어 들어가는 환상을 느끼며…


아아, 이런 세계가 있었다니…!



귀가 울립니다.
눈이 부십니다.

노랫소리가 들립니다…
마치 천사의 합창같은.

빛이 눈으로 들어 옵니다…
한번도 보지 못한 투명함.

우리는 천사의 음성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쏟아지는 빛을 담았습니다-

이 순간…
우리는 잡았습니다…

…영원을.
…영원을.
…영원을.







13. 23th, December I

하얀 커튼 사이로 들어 온 빛 덕분에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은 얼굴 한쪽에 손바닥을 받친 채,  
날 내려다 보고 있는 따뜻한 얼굴이었습니다.
준언형이, 날 보고 있습니다.

겨우 팬티 한장만 걸친 알몸이긴 하지만
이불이 위에 얹혀 있어 춥진 않습니다.
그래도 조금은 창피해 이불을 손으로 살짝 끌어 당기자,
그는 미소와 함께 이마에 몸을 굽혀 가볍게 키스해 주었습니다.

" …잘 잤어? "

" ……. "

나는 시트 위로 눈만 내민 채, 고개를 주억거렸습니다.
몸 안엔 아직 어젯 밤의 쾌락의 기억이 남아 있어
얼굴이 붉어지게 만듭니다.
그런 내 생각을 눈치챘는지, 그도 엷게 웃으며
아래 있던 진바지를 집어 들어 다리에 뀁니다.

" ……? "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보자 그는,

" 커피라도 만들어 올께. "

하고선 몸을 일으키려 했습니다… 하지만…

넓고 매끈한 등…
그 등이 시야에 들어 오자,
그만 충동을 이기지 못한 내 팔은 그를 붙들고 맙니다.

스스로도 놀란 행동.

" …응? "

돌아 본 그의 눈을 쳐다 봤지만, 말은… 할 수가 없습니다.
입으로도, 손으로도.

그가 피식 한숨처럼 웃었습니다.

" 너, 정말… 너무하는구나. "

" ……? "

" 어젯 밤에 그렇게 자극해 놓고, 다시 또 그런 눈으로 보면
   참을 수 없게 되 버리잖아. 너, 쌕쌕 잘도 자더라.
   너 잠든 뒤에 잠 청하느라 죽는 줄 알았다.
   대체 왜 글케 예쁜 거냐. 한번 갖곤 부족해… "

" ……. "

귓불까지 빨개집니다.
잠들어 버린 날 보면서 그는 욕구를 참았던 걸까요.
한번 알게 된 쾌락의 유혹을 뿌리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겁니다.

어젯밤의 사건과 날 감싸고 있던 그의 몸을 되새기니,
너무나 수줍어져 버렸습니다.
고개를 푹 수그린 내 뺨을 형이 손가락으로 툭 치더니 씩 웃으며 말합니다.

" 걱정 마. 지금은 네가 원해도 안한다. 아침에 하는 거, 몸에 안 좋대. "
   ( 왜일진 각자 생각해 보시길… : 작가 백 )

대신에 그는, 내게 얼굴을 숙여
다시 한번 아주 따뜻한 입맞춤을 해 주었습니다.







[ 제 6 편 ]





14. 23th, December II

형이 자취하는 원룸으로 돌아오는 길입니다.
거의 다 왔습니다.

낮에 스키를 타고 저녁에 운전을 해서 돌아 오느라
무척 형은 피곤해 보입니다.
대신 운전하고 싶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옆에 깨어 있어 주는 것 뿐입니다.
형은 피곤하면 자라고 했지만요.

" …어? "

차를 막 차고에 넣으러 들어가려던 형이 핸들을 잡은 채, 눈을 크게 뜹니다.

" ……? "

의아해 형의 시선을 쫓아 앞을 바라 보니,  
굉장히 크고 번쩍거리는 차가 밑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형이 그 옆에 지프를 세우자, 대형 차에서 기사가 나와 뒷문을 열어 주고
안에서 누군가가 나오는 것이 보입니다.

언뜻 낯익은 듯한 모습에,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 누군가는 바로, 형의 어머니였습니다.
앨범에서 봤던 그 분.

형은 어머니를 보고서도 그다지 놀라지 않은 듯, 침착한 태도로
턱으로 나에게 차에서 내리라는 신호를 보내더니 자신도 차에서 내립니다.

정말 미인이었습니다.  
밍크 코트에 보석이 박힌 검정 구두.
머리는 업스타일로 단정히 올리고, 매끈하게 화장한 흰 얼굴.
코트 안에 입은 얇은 블라우스 사이로 다이어몬드 목걸이가 빛납니다.

" 어쩐 일이세요. "

형이 말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 어쩐 일이냐니. "

어머니가 기가 막히다는 듯 숨을 토하십니다.

" 같은 서울에 살면서 크리스마스에도 오지 않겠다길래, 내가 와 봤다.  
   너 어찌하고 사나 궁금해서 말이다.
   그렇게 해서야 아버지 눈에 들겠니, 너. "

정확하진 않을지도 모르지만, 대충 이렇게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더니 날 발견하곤 조금은 황당함이 섞인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 …누구니. "

어색하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가 나에 대해 뭐라고 설명하니,
어머니는 조금 차가운 표정으로 날 보더니 휙, 고개를 돌려 버렸습니다.
그 몸짓에 조금 주눅이 들어 있는 내게, 형이 집 키를 쥐어 주며 말합니다.

" 너, 먼저 올라가라. 나 엄마랑 밖에서 얘기 좀 하고 갈께.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르니까 느긋이 기다려.
   …알았지? 느긋하게 기다려. "

말한 대로 키를 받아 쥐고 현관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올라가다
문득 뒤를 돌아 보니, 형이 외제 차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왠지 마음이 썰렁해집니다.





15. 23th, December III

읽고 있던 잡지에서 눈을 떼, 벽에 걸린 시계를 봅니다.

[ 11 : 30 ]

형이 늦습니다.
어머니랑 나간 지 세시간이 넘어 가도록, 오질 않고 있습니다.

형이 휴대폰을 갖고 있단 사실을 알기 때문에,
전화라도 할 수만 있으면 하고 싶지만… 난 할 수가 없습니다.

------불가능한 일.

" 휴… "

한숨을 쉬며, 형의 책꽂이에서 뽑아냈던 만화책을 덮어 버렸습니다.
하도 할 일이 없어 컴퓨터 겜을 하다가
그것도 싫증나서 펼친 만화책을 도로 책꽂이에 꽂아 둡니다.

그러다, 다시 두툼한 자줏빛 앨범에 눈이 가고 말았습니다.  
마치… 뭔가에 끌린 것처럼 앨범을 끄집어 냅니다.

…펼쳤습니다.

" ……. "

어쩔 수 없이 그 페이지로 손이 넘어 갑니다.
어린 형과… 형의 어머니… 그리고, 누군지 모를, 따뜻한 인상을 지닌
아주머니가 담긴 그 사진이 있는 페이지로.

부드러운 인상.
푸근한 이미지.
대체, 누굴까요.
형에게 있어 대단히 소중한 존재인 듯한…
어머니보다 더 가까워 보이는 이 분은… 대체, 누굴까요.

하지만 사진을 본 그의 딱딱한 표정을 떠올리면
역시 묻기조차 꺼림직합니다.

그의 그런 표정…
좀처럼 본 적이 없는 얼굴…
생각하니, 목이 말라 옵니다.

부엌에 가서 냉장고를 열어 보니, 아무 것도 없습니다.
쥬스 마시고 싶은데….

( 마실 거라두 사러 갔다 올까? )

내가 없는 잠깐 사이, 형이 올 것 같진 않아서 난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가 차 키와 함께 키를 하나 더 갖고 있단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난, 점퍼를 걸치고 원룸 밖으로 나와
문을 잠궜습니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싸늘한 기운이 내 얼굴을 치고 올라 옵니다.

" 하아… "

밤공기 속, 입김을 내뿜으며 걷기 시작했습니다.  

형의 원룸이 있는 곳으로부터 좀 내려가면  
길 건너에 편의점이 있단 사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난 번 형과 함께 걸어 다녔을 때, 봐 뒀습니다.

하늘에 별이 별로 없습니다… 이 곳은.
시력이 꽤 좋은 편이라 자부하는 내 눈에도 보이지 않을 정도면,
공기가 꽤나 탁하긴 한가 봅니다.

경사진 길을 쭉 걸어 내려가, 한길로 향했습니다.
한길로 나가니, 원래 사람이 별로 없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몇몇 연인들이 걷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입니다.
서로 다정하게 어깨와 허리에 손을 두르고 걸어가는 그들을 보며
조금 씁쓸하게 웃었습니다.

…좋아 보입니다.
하지만… 형과 나는 저런 모습으로 당당하게 다닐 수는 없겠죠…
아마도… 안타깝게도… 그렇겠죠.

그래도… 그를 선택한 걸, 또 그에게 선택받은 걸 후회하진 않습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만일에, 행여 그가 날 버린다 할지라도… 절대로.

한길에 다다른 난 건널목에 선 채, 앞을 쳐다 봤습니다.

" ……?! "


언제고, 어느 순간이고 그만 생각해서 그런 걸지도 몰라…  
지금 시야에 그가 비치는 건.

어머니의 차를 타고 올 거라 생각했는데
주머니에 손을 넣고 천천히 걷고 있는 저 모습… 형이 보이는 건…

아… 아니, 그렇지 않아… 진짜 형이다…
진짜 그가 저쪽에 있어…
날 알아 차리지 못한 채… 생각에 잠긴 채…


형이 맞은 편 보도블럭 위를 뭔가 생각하는 듯 걷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역시 사랑하고 있습니다.
저편에 보이는 것만으로, 내 심장을 이렇게나 고동치게 만들고
냉기에 식어 가던 뺨을 달아 오르게 만드는…

역시 사랑하고 있습니다.
잠시 떨어져 있는 것 뿐인데,
이렇게나 안타깝고 이렇게나 절절하게 가슴을 뛰게 만들고,
이렇게나 그의 모습이 그리운…
믿을 수가 없을 만치 그리운……

( 빨리 가야지… 내가 가서, 그를 놀라게 해 주고 싶어… )

신호가 막 바뀌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은 다급하게 발을 떼게 만듭니다.

그러나, 들리지 않는 내 귀는 형에게만 쏠린 내 정신을
안전한 방향으로 분산시키지 못한 채…
그만 몸으로 하여금 실수를 저지르게 하고 말았습니다.

그를 사랑한단 생각에 벅차 있던 가슴은,
그만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할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던 겁니다.
조심성 없는 바보인 나, 한가지 생각에 빠지면 오로지 그것에만 집중하는
나란 녀석은… 결과적으로, 그를 울게 만들 행동을 했던 겁니다.

( 준언형… )

정신없이 건널목으로 발을 디딘 그 순간.
갑자기 부신 빛이 눈을 쏘아,
난 저도 모르게 시야를 손으로 가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빛…
눈이 부십니다…
어지럽게 시야를 가리는…
의식을… 몽롱하게 만드는…

…그 순간에도 난, 형만을 보고 있었습니다.
…달리, 아무 것도 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만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오직, 그만을.
…나의, 그만을.

( 사랑해… 사랑해요… )



                [ 끼이이이이익------------------------!!! ]







[ 제 7 편 ]




  
16. 23th, December IV

눈꺼풀이 떨립니다.

" 으… "

빛이 겨우 의식이 든 눈꺼풀을 비칩니다.
번져 나가는 섬광 때문에 몸을 돌리고 싶은데,
빳빳하게 움직이지 않는 몸이 방해물이 된 듯, 괴로울 따름.

" ……! "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뭔가가 날 필사적으로 부른 듯한 느낌이 들어,
있는 힘을 다해 눈을 떴습니다.

" ………………. "

눈을 뜨자 보인 건,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 형의 모습.
그리고 흰 천장.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습니다.

" 형… 준언, 형… "

목에서 간신히 쥐어짜낸 소리를 냈습니다.
귀로 들을 수 없으니, 이게 소리를 낸 게 맞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가늘게… 목을 울렸습니다.

그가, 준언형이, 고개를 듭니다.

" ……. "

파랗게 질린 얼굴.
수심이 표정 전체에 드러나 있습니다.

내가 깬 걸 보자 언뜻 안심한 듯한 표정이
아직도 굳어 있는 눈동자 위로 살짝 스쳐 갑니다.

" 형… "

" …후……. "

그가 내쉰 한숨이 느껴집니다.
내가 정신이 들었다는 걸 앎과 동시에
그도 안도감을 겨우,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모양입니다.

" 다행이야… "

" 여기, 어, 디…? "

손을 들 기력도 없어서 난, 목에 힘을 주어 가능한 한 짧게 물었습니다.

" 바보야… 여기 병원이야. "

소독약 냄새 때문에 짐작은 했지만… 한데, 내가 왜 여기 있는 걸까요?

" 모르겠어? 너… 바이크에 부딪힌 거야.
   바이크니까 망정이지… 보통 차였으면, 정말 큰일났을지도 몰라. "

" ……. "

" 의사 선생님 말론, 가벼운 뇌진탕이래.
   이만 하길 다행이지… 너… 정말… 간 떨어지게 한다.
   혹… 무슨 일 생겼으면… 그러면…… "

형의 입을 열심히 지켜 보다 그 입끝이 조금 떨린 걸 깨닫고  
시선을 올린 난, 형의 눈을 보고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눈에 한가득 눈물이 괴어 있었던 것입니다.
금새라도 넘칠 듯 투명한 액체가 가득 고인 채, 날 보고 있는 눈동자.

( 형…? )

난 힘이 빠진 손을 뻗어 형의 얼굴에 갖다 댔습니다.
그러자 고여 있던 눈물이 더 이상 버티지 못했는지 그대로 흘러 내립니다.  

형이 당황했는지 간호원한테 말하고 오겠다며, 일어서려는 걸 붙들었습니다.
그러자, 그대로  무너지듯 주저 앉아 버립니다.
그 모습이 연약해 보여 손을 잡자 마주 쥔 손에 꾹, 힘을 싣습니다.

" 형… "

" 나, 너한테 무슨 일 생기면… 무슨 일… 생기면… 살지 못해…
   절대 살 수가 없어… 그러니까… "

형의 말을 정확하게는 알아 들을 수 없었지만,
방금 흘러 내린 눈물 한방울로 내 마음을 움직이기엔 이미 충분했습니다.

가슴이 저리듯 아파 옵니다.

" 미안…해요… "

내가 말하자, 당혹한 듯 멈칫거리며
자신의 손바닥으로 눈물을 쓱 닦아냈습니다.

다행히도 내가 누워 있는 곳은 혼자 쓰는 독방인 모양입니다.
형의 눈물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이 순간 나 하나 뿐인 곳.
문은 굳게 닫혀 있고, 창문엔 블라인드가 쳐져 있습니다.
병실 한구석엔 가습기가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좁은 병실 안.
나와 형, 단 둘 뿐인… 조용한 공간.

" 어머니, 랑, 잘, 얘기하고, 왔어요? "

말하자 형은 정신이 들었는지, 응- 하고 끄덕였습니다.

" 늘 비슷한 소리지.
   별로 나한테 애정도 없지만, 그래도 걱정은 좀 되시는 모양이야.
   내가 형들에게 밀려 설 자리를 잃을까 하고….  
   내가 설 자릴 잃으면 당신 손해기도 하니까… "

들은 기억이 납니다.
준언 형은 다른 형제들과 어머니가 틀리다고---.

형 자신이 말했던 적도 있습니다.  
형의 어머니는… 형에게 별로  애정을 갖고 있지 않다고.

나로선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어떻게 자기 배로 낳은 자식에게 애정이 없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모든 어머니가 다 똑같은 건 아니겠지요.
실제로 내가 본 준언형의 어머니는 어딘가 차갑고 서먹한 인상이었습니다.

그래서 난, 그저 입을 다문 채, 아무 대꾸도 아무 행동도 하지 못했습니다.

" 원하는 대로 해 드려야겠지…?
   훗… 그래야겠지… 그래도 날 낳은 분이니까…
   죄송스럽게도 난 엄마를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지도 모르겠어…
   이렇게 된 건, 꽤나 어렸을 때부터인지도… "

" 그, 러면, 안, 되요… 형……. "

난 더듬거리며 말했습니다.
충고할 자격이 있다곤 생각지 않지만, 저절로 말이 입에서 흘러 나옵니다.

형은 쓰게 미소지었습니다.

" 알아… 설마, 전혀 생각지 않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역시…
   다른 사람들이 자기 어머니에 대해 생각하는 그런 감정은 아닐 거야.
   그런 감정으로 생각했던…그런 사람이 예전엔 내게도 있었는데……. "

형은 자신을 보고 있는 내 눈을 보더니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뭔가…
아주 진지하고…
아주 조용한 표정으로…
아주 중요한 뭔가를.

" 예전… 그래… 크리스마스 이브 날,
   내가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던 분이, 떠나 가셨어. "

" ……. "

" 그 앨범… 봤지? 나랑 엄마, 그리고 또 한분… 기억해? "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 그 분이 누구냐고… 물었었지. 그 분… 날 키워 주신 분이셔.
   우리 엄마가 날 낳아 주셨지만, 정말로 날 키워 주신 분은 그 분이야.
   …내 유모. "

짐작은 했었더랬습니다.
단순히 아는 사이가 아닐 거란 것쯤은.

" 그 분 곁엔 아무도 없었어. 가족이 전부 죽어 버려서…
   사고였는지, 뭔지, 난 지금도 이율 모르지만…
   아무도 곁에 없는 상태에서  우리 집에 오셨지.
   그분에겐 불행이었겠지만, 나한텐 행운…이었어.
   정말로, 엄마처럼… 날 사랑해 주셨는데…
   내가 울 때 안아주고, 웃으면 같이 기뻐해 주셨는데… 그런데… "

형은 말하기조차 버거운 듯, 한박자 쉬고 나서 말을 이었습니다.

" 그 분이 가장 아플 때… 가장 힘든 시기에… 나는 그 분 옆에  없었다…
   그 분이 암 선고를 받았을 때… 그 때…
   난 엄마와 외국에 나가 있었어…… 그 분이 가장 힘들 때……. "

" ……. "

" 웃기게도, 계속 주고 받던 편지가,
   내가 보낸 것에 대한 답장이 오지 않았을 때…
   나는,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생각했다.
   그 분이 우리 집을 나간 사실을 몰랐어.
   암 선고를 받고… 그렇게 혼자 남겨졌단 사실을 몰랐어… "

내가 모르던 시절의 그의 이야기를, 난 처음으로… 그에게 듣고 있었습니다.

" 내가 돌아와 겨우, 그 분을 찾았을 때… 그 분, 의식불명  상태였어…
   살집이 있어서 넉넉해 보이던 분이… 까맣게 말라서…
   침대가 너무 커 보였어… 그렇게… 힘들게… 고통을 버티고 계셨다…
   크리스마스 이브, 의식을 찾아 겨우 날 알아 보셨지만
   말도 할 기운이 없어서, 그저 손만 잡아 주시곤… 그리곤…그리곤…
   그렇게… 잠에 빠져서… 가버리셨어…… "

…처음으로, 그의 입으로--- 직접.
…그것도, 가장 아팠던 이야기를.

" 울었다, 처음으로…
   아프거나, 무섭거나, 억울해서가 아니라… 처음으로 슬퍼 울었다……
   원망했다… 원망했다… 그런 식으로 떠나버린 거……
   지금도 가끔은 그 분이, 그 상황이 원망스러워…
   내가 그 분을 도울 기회조차 없었던 거… 난… 괴로웠다…
   그런 일, 두번 다시 있어선… "

형의 눈이 똑바로 날 응시합니다.
고통스런 시선에서… 간절함이 담긴 애원의 눈빛으로.

" 그러니까, 떠나지 마라. 나 놀래키지 마… 나, 너 원망하게 하지 마…
   나, 너 없으면 이제 한발짝도 못 뗀다… 절대 못 걸어…… 절대……. "





17. 24th, December

검사받고, 별 이상없단 의사의 진단을 듣고서야
저녁 늦게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난 형에게 우리 집엔 연락하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형은 상당히 양심에 걸리는 듯한 표정으로,
하지만 내 간곡한 눈을 보고 끄덕였습니다.

물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며칠 더 병원엔 다녀야겠지만,
큰 문제는 없을 듯 합니다.


스키장에서 줄곧 운전을 한데다 칠칠맞은 나 때문에
한숨도 잠을 못 잔 준언형은 무척 피곤한 모양이었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어 버립니다.

나도 눕긴 했지만, 영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책망으로 인해서.

중요한 걸 깨달았습니다.

단지, 사랑한단 그것 한가지론 부족하단 사실을.
더불어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단 사실을.

사랑하는 사람을 아프게 하지 않기 위해
난 앞으로 자신을 소중하게 조심해서 다루기로 했습니다.  

그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을 정도의,
강한 내가 되어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난 깜박 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문득, 잠이 깼을 땐 이미 자정이 넘어 있었습니다.

" ……? "

잠깐 잤는데도 묘하게 개운해진 기분에 난,
몸을 일으켜 침대 아래서 곤히 잠든 형의 얼굴을 들여다 봤습니다.

아이처럼 순수한 얼굴.
내가 사랑하는 얼굴.

난, 이 사람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한가지로 너무도 행복합니다.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치, 달콤하고… 행복한… 그런 기분, 그런 예감.

묘한 직감에 난, 침대에서 그대로 몸을 뻗어
베란다로 이어진 샷시문 앞에 쳐진 흰색 커튼을 살짝 열어
밖을 내다 봤습니다.

" ……!? "

조금… 놀랐습니다.
아니, 실은 꽤나 놀라고 믿을 수가 없어
몸을 일으켜 커튼 앞으로 가 밖을 내다 보니… 역시------

( 와아… )

하얀 솜털이 하나 가득 하늘거리며, 까만 천공으로부터 내려오는 중입니다.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조금씩 내려, 바닥으로 쌓여가는 순수의 상징….

정신없이 밖을 내다 보고 있던 난, 형이 깬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 뭐, 야…? "

뒤에서 부스럭대는 느낌에 몸을 돌려 보니,
형이 눈을 비비며 긴 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미소지으며 밖을 가리켜 보였습니다.

" 아……! "

형도 놀란 모양입니다.  
눈을 크게 뜨며, 정신없이 밖을 쳐다 봅니다.

그런 그의 얼굴을 보고 말했습니다.

" 우리, 베란다에, 나가, 볼래요? "

" 춥지 않아? "

" 전, 괜찮, 아요. "

그러나, 그는 내 몸 위에 두툼한 오리털 점퍼를 걸치게 하고서야
베란다로 나갈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의외로 그렇게 춥진 않았습니다.
아마 그건 형이 뒤에서 따뜻하게 내 몸을 안아 주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 언젠가, 비가 오는 날.
형이 이렇게 내 몸을 뒤에서부터 안아 준 적이 있었죠.

그러나, 느낌은 그 때완 사뭇 다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불안하고 두근거리는 느낌이던 그 때완 달리,
지금은 한없이 따뜻하고 포근하기만 한 감각.

앞날이, 미래가, 전혀 두렵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젠, 그 때보다 훨씬 견고해진 사랑이란 담요가 있으니까요.

" ……. "

귓전에 나직한 속삭임이 느껴져, 무슨 소릴까 돌아 보니
형이 잠깐 기다려, 하고 수화로 말합니다.

그리곤 안으로 들어가더니 뭔가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무척이나 쑥스런 표정으로, 그는 들고 있던 걸 내밀며 말합니다.

" ------크리스마스 선물. "

" ……? "

놀라 멍하게 그를 바라보니, 그가 미소지으며 자, 하고 다시 한번 내밉니다.

" 풀어 봐. "

그 말에, 포장을 뜯고 그 안의 작은 상자를 열어 보니…
그 안엔 금으로 된 체인식 목걸이가 있었습니다.  

언뜻 보기에도 근사하게 반짝거리는 목걸이를 멍하니 내가 보고 있자,
그가 대신 집어 들어 목에 걸어 줍니다.
파자마 깃 사이로 내비치는 금빛이 퍽이나 눈부실 것 같은… 그런.

" 실은 반지를 하고 싶었는데… 커플링 말야.
   …쑥스럽기도 하고… 네 손가락 사이즈도 모르고.
   그래서, 이건 남자들이 많이들 하고 다니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해서…
   실은 나도 똑같은 걸 하나 맞췄어. …우습지? "

하며, 그는 왼손에 따로 들고 있던 자신 몫의 목걸일 보여 주었습니다.

" 나, 난… "

더듬거리다 못해,

[ 아무 것도 준비 못했는데… ]

미안해서 수화로 말하자 그는,

" …네가 살아 있어 준 그 한가지로 만족해. "

하고 조용히 입을 열어 말합니다.

" 만일, 혹 네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난 살아갈 의미를 잃은 거나 다름없었을 테니.
   여기 내 눈 앞에 있는 것만으로도 근사한 선물을 준 거야, 넌. "

그의 표정은 진지하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눈의 배경은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목이 메어오는 걸 느끼면서 난
대답 대신, 왼손에 들려 있던 그의 목걸이를 받아 몸을 뻗어
그의 목에 걸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더 근사할 수 없을 미소를 짓습니다…
이제까지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문득… 그에게 줄 수 있는 한가지 선물이 머릿 속에 떠올랐습니다.
그 선물은, 무척이나 주기가 창피한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래요… 주고 싶습니다.
주고 싶습니다.

용기를 내서.
자신을 가지고.


[ 노래… 불러 드릴까요? ]

수화로 말하면서 그의 눈을 봤습니다.

" 노…래… 말야? "

그는 깜짝 놀라, 크게 눈을 뜨곤 내 얼굴을 들여다 봅니다.
미소지으며 고개를 가만히 끄덕이니
멍-하게, 조금은 긴장되는 표정을 짓습니다.

역시 긴장되긴 했지만, 그 긴장을 누그러뜨리듯 목을 가다듬고, 난
청각을 잃기 전 들어서 기억하고 있는 몇 안되는 멜로디 중 하나를
되살려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음정도 박자도 분명 엉망일 게 뻔하지만,
할 수 있는 한 정확하게 소리를 내려 노력하면서…
난, 내가 기억하는 노래, <고요한 밤>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

놀라 굳어졌던 얼굴이 서서히 바뀌고, 뭐라 말할 수 없는 표정을 한 채
날 보고 있는 그의 모습이 보입니다.
어둠 속에 내리는 빛처럼 투명하게 웃으며
그는 조금은 물기어린 눈으로 날 바라 보고 있습니다.

분명 어설플 테고, 분명 틀린 곳이 한두군데가 아닐 내 노래를,
조용히… 진지하게… 듣고 있는… 나의 그.

" --------------. "

…노래가 끝났습니다.

조금… 창피합니다.
그가 날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어서.

쑥스러워 고개를 돌릴 때까지 그는 시선을 내게 그대로 고정한 채,
날 뚫어지게 바라 보고 있었습니다.

" …형…? "

익숙해진 건데도---- 왠지 침묵이 두려워져 먼저 입을 연 그 순간.

형이 날 꽉 끌어 안았습니다.
숨이 막힐 정도로 강하게.

처음엔 갑작스런 행동에 놀랐지만,
나도 이내 미소지으며 그의 등에 내 팔을 돌립니다.
그렇게 한동안 날 안고 있던 그는 팔을 풀곤,
날 보고 더 이상 그럴 수 없을 만치 환하게 웃더니,  
손을 들어 수화를 해 보였습니다.

[ 너… 목소리… 근사해. ]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한번 더 말했습니다.

[ …정말, 근사해. ]

- 근. 사. 해.

그의 입모양이 움직이는 게 보입니다.

" ……. "

그저 어색하게 미소지으며 본 내게,

" 다시 한번 불러 줄 수 있겠어? "

하고, 이번엔 입으로 말합니다.

" ……? "

" 다시 한번, 불러 줘. …그 노래. "

" ……. "

난 수줍게 웃고,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그의 앵콜 요청이니까, 다른 사람이 아닌 그만을 위한 선물이니까.
아무리 창피하고 아무리 쑥스러워도, 백번이고 천번이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를 위해서라면.



" 고요한--- "


…순간.


형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가 손을 드는 게 보였습니다…

양손바닥을 펴서 위로 올려 천천히 내립니다…


" 밤--- "

양손을 벌렸다 손바닥이 보이도록 겹칩니다…


" 거룩한--- "

오른손을 구부려 코에 댑니다…


" 밤--- "

그가, 수화를 하고 있습니다…
내 노래에 맞추어 그도, 수화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 어둠에--- "

양손등을 좌우로 펴서 중앙으로 겹칩니다…
긴장이 풀어지고…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조금 높이게 됩니다…


" 묻힌--- 밤--- "

…이 순간.

그가… 나와 함께 노래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와 함께 노래하고 있습니다.


" 주의 부---모--- 앉---아서------ "

우리는… 이 순간, 함께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순간, 공유하고 있습니다.


" 감---사---기---도--- 드---릴--- 때--- "

…하나의 멜로디를.
…하나의 가사를.
…하나의 노래를.
…하나의 마음을.
…하나의 순간을.


" 아---기 잘---도 잔다-------- "

몸을 겹치지 않고도, 우리는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이 순간, 우리는 하나입니다.


" 아---기 잘---도 잔다-------- "

…결코 갈라 놓을 수 없는,
…완전한,
…하나입니다.


하나--- 입니다.





Silent night holy night
All is calm, all is bright

Round yon Virgin, Mother and Child
Holy infant so tender and mild,

Sleep in heavenly peace
Sleep in heavenly peace…





눈부신 꽃송이가 밤공기를 뚫고 흩날리고 있습니다.
한없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공기 속…
내리는 눈꽃과 더불어,
마음에서 우러나온 투명한 멜로디가 서서히… 퍼져 가고 있습니다.

잔잔하디 잔잔한 파장 속,
저절로 흘러 나오는… 그것은,
---미소.

…눈이 계속 내리고 있습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입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쌓인 슬픔을 흘려 보내는 밤
긁힌 상처 자국을 지우는 밤

당신과 함께 흰눈을 맞는 밤
당신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밤
당신과 함께 미래를 꿈꾸는 밤

이 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무한의 밤

당신과 나의… Silent Night.



『 Silent Night. 』



                                                  - FIN -



Main B. G. M :

SILENT NIGHT - Christina Aguilera

Sub B. G. M :

MY ONLY WISH - Britney Spears
GROWN-UP CHRISTMAS LIST - Mon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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